소설 모음집 : https://arca.live/b/arknights/70277024


유체란 자유로이 흐르는 물질을 통칭하는 말이다. 기체와 액체, 플라즈마 상태의 물질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유체는 고압에서 저압으로 흐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는 비단 지구에서 뿐만이 아니라 테라에서도 통용되는 상식이다.

"으읍! 켁, 케헥!"

그러므로 분출된 박사의 정액이 가비알을 목구멍을 통해 넘어갔던 것은 어찌보면 필연적인 일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가비알, 괜찮아?"

가비알이 박사의 방을 찾은 목적은 정액은 확보다. 아무리 섹스 배틀이라는 괴상한 방식으로 착정 방식이 변했다고는 하나, 본래의 목적이 바뀌지는 않았다.

가비알이 넘어간 정액을 애써 밷어내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결과가 어찌되었던 간에, 정액은 가져가야만 했으니까.

점액처럼 끈적한 정액을 애써 뱉어낸다. 다급하게 토해낸 탓에, 비강으로 정액의 일부가 역류했음을 가비알은 느꼈다.

'흐읍, 냄새...'

눅진하고 비린한 밤꽃 냄새. 이상하게도 불쾌하지는 않다. 구릿하긴 하지만 자꾸만 맡고싶은 기분이 든다.

크흥! 퉷!

그 이상한 감각을 애써 무시하며 비강에 걸린 정액을 빼낸다. 원체 농도가 짙었던 탓인지 묵직한 잔향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박사, 나의 승리다."

중독될 것만 같은 박사의 향취를 애써 무시하며 가비알은 당당히 승리를 선언했다.

"그래. 축하해."

박사는 가비알이 뱉어낸 정액 샘플을 내려다봤다. 대부분이 그녀의 위장으로 넘어간 탓에 양이 적었다.

그래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샘플의 오염이야 와파린도 신경 쓰지 않은 지 오래된 테다, 이 정도의 양으로도 데이터는 뽑아낼 수 있을 테니까.

진짜 문제가 있다면 몇 번 더 가비알의 도움을 받아 정액을 채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싫다는 뜻은 아니었다. 인간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호감을 가졌으면 가졌지 싫어하지는 않았으니까.

문제는 그녀의 과격한 플레이에 있었다. 강인한 육체를 밑바탕으로 펼쳐지는 일련의 테크닉은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박사는 가비알을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녀의 진공 펠라로 착정작업을 이어나가다가는 정액보다도 자지가 먼저 뽑혀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수고했어 가비알.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무슨 소리야? 이제 겨우 1라운드 끝났는데?"

허나 가비알은 박사의 제안을 거절했다.

"다시 자리에 누워 박사. 이제 2차전 시작이야."

"졌어! 내가 졌으니까, 오늘은 그만 하는걸로..."

박사가 두 손을 내저으며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무슨 소리, 아직도 빳빳하게 서 있잖아. 박사, 대결은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야."

달아오른 볼과 상기된 안색으로 가비알은 박사의 거절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누우라면 누워, 박사. 2차전은 삽입 섹스로 진행될 거니까."

#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

태산처럼 우뚝 솟아있는 박사의 자지, 그 위로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자신의 모습.

진탕 술이라도 마신 것처럼 머리가 띵하다. 아랫배가 욱신거리고 호흡은 거칠다. 뺨을 쓰다듬어보면 손가락으로 그 열기가 전해진다.

진공 펠라치오 때 참았던 숨 때문일까, 아직도 비강에 남아있는 정액의 향기 때문일까.

원인이 무엇이 되었건 간에 결과는 명확하다. 뜨거운 욕정이 온몸에서 끓어오른다.

지금 당장이라도 박사의 자지로 뜨거운 뱃속을 긁어내고 싶다. 박사의 항복선언에도 대결을 끝내지 않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가비알이 삽입을 주저하는 이유가 하나있다면 그것은 그녀 스스로 다짐했던 맹세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승리를 거둔 남성만이 자신과 몸을 섞을 수 있다는 맹세.

이미 펠라치오로 정액까지 삼킨 마당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삽입 섹스와 펠라치오를 동일선상에 두기란 무리가 있다.

더군다나 자신은 이미 1차전에서 승리까지 해버렸다. 박사가 그녀를 먼저 보내버렸다면 이를 근거로 승리를 주장할 수도 있었겠으나 결과는 그와 정반대로 나타난 상황.

"역시, 처음부터 삽입은 좀 그렇지?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길어져가는 대치상황에 박사가 대결을 끝내려 했다. 고민에 빠져있던 가비알의 머리가 세차게 회전했다.

자신을 이긴 남자와만 섹스를 할 수 있다. 자신과 섹스를 하기위해선 남자가 자신을 이겨야 한다.

그 이유는?

오로지 강한 남자만이 자신을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한 남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자신을 범한 남자를 강하게 만들어도 결과는 똑같아지는 것이 아닐까?

가비알의 머릿속에 있던 조건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섹스를 할 남자는 자신을 이겨야한다.' 라는 선제적 조건이 '자신과 섹스를 한 남자는 자신을 이겨야한다.' 라는 조건으로 바뀌어 갔다.

자신은 자신과 섹스를 한 남자에게 패배해야만 한다. 언젠가 박사가 자신에게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도록 그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가비알은 성공적으로 삽입에 대한 합리화를 끝냈다.

"멈춰, 들어간다."

결론을 내린 그녀가 허리를 내렸다.

"자, 잠깐만!"

찌긋, 찌그그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