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음집 : https://arca.live/b/arknights/70277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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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냉동고라고 했었지?'

방 밖을 나선 가비알은 와파린이 말한 냉동고를 찾아 복도를 돌아다녔다.

와파린이 그녀에게 준 물건은 박사의 정액 샘플이었다. 허여멀건 걸쭉한 액체가 시험관 안에 차 있었다.

'누가보면 하드인줄 알겠네.'

시험관 속 내용물이 얼어붙은 모습을 상상하며 가비알이 키득거렸다.

그녀가 이따금씩 공용냉동고에서 훔쳐먹던 하드가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아마 주인이 수르트였을텐데, 잡히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 와파린이 말한 냉동고도 그 주변에 있으려나.

공용냉동고가 있는 위치를 떠올리며 가비알은 발걸음을 옮겼다. 기왕 거기까지 행차한 김에 하드도 몰래 하나 빼먹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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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넣는다?"

찌긋, 박사는 자신의 성기를 와파린의 음부에 문질렀다.

평소의 분위기대로라면 단숨에 구멍에 귀두를 밀어넣고 신나게 허리를 흔들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가비알과의 대련의 여파는 아니었다. 비록 사정감은 올라오지 않았으나 욕정은 남아있었다.

페니스는 여전히 단단하게 발기한 채였고 허리를 흔들 힘도 남아있었다.

박사가 머뭇거리는 이유는 와파린의 달라진 분위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연애경험이 없는 모태 솔로의 박사라도 매일 같이 살을 맞대다 보면 느껴지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 착정작업에 참여했던 와파린이 별 감정없이 기계적으로 정자를 뽑아냈다. 젖가슴을 쥐어짜거나 입 안을 범하듯이 탐할 때도 무표정한 모습으로 작업을 이어나갔다.

허나 눈 앞에서 다리를 벌린 채 자신을 기다리는 모습은 다르다.

그녀가 마음 어딘가에 그어둔 감정의 선, 그 선이 흔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건 아니다. 포기하자.

꼭 오늘이 아니어도 좋다. 다음에도 기회는 있다.

선을 앞에 둔 마지막 한 발자국을 포기하려던 그 때,

"박사, 와 줘. 제발."

와파린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박사는 일선을 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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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맛이지.'

가비알은 냉동고에서 막 꺼낸 하드의 맛을 음미했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설탕과자 덩어리가 어금니에 으스러진다.

미처 식지 않은 흥분의 열기가 쭉 가시는 기분이다. 남몰래 훔쳐먹는 음식이라는 배덕감에 그 맛이 더했다.

'와파린이 말한 냉동고는... 아, 여기겠네.'

한 구석에 위치한 낮선 냉동고가 보인다. 안을 확인하니 아무것도 없다. 와파린이 말한 냉동고가 확실했다.

하드를 입에 문 가비알은 박사의 정액 샘플을 냉동고에 넣었다.

행여나 다른 누가 착각이라도 할까봐 옆에 있던 마카를 가져와 '가비알&와파린 전용 냉동고' 라고 글자까지 큼지막하게 써놓았다.

좋다. 행여나 다른 냉동고를 고른 것이라도 이렇게 적어둔다면 자신이나 와파린에게 연락이라도 갈 것이다.

"그럼 오늘은 푹 쉬어볼까."

가비알은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방으로 떠났다. 착정작업의 댓가로 와파린에게 하루 휴무도 받은 상태다. 침대에서 늘어지게 잠이나 잘 생각이다.

하드를 입에 문 가비알이 신나는 걸음으로 방에 돌아가는 동안,

"또... 또 훔쳐먹었어!"

음식을 도둑맞은 수르트가 이를 갈며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