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음집 : https://arca.live/b/arknights/70277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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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까?'

죽이는 건 쉽다. 손날을 세워 목젖에 찔러넣기만 하면 된다.

가진 지위와 정력이 대단하다고는 하나, 지금 방 안에는 박사와 자신뿐이다. 무방비한 사람 하나 치우는건 아무것도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 뒷수습이다. 저 사내를 죽이고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나간다해도 이놈들이 자신을 쫓아올 지도 모르는 일이다.

살의와 염려가 뒤엉켜 집중이 흐트러졌다. 박사는 위협스레 자신을 노려보는 샤르아의 시선을 느꼈다.

"......정지, 멈춰."

그 순간, 그녀의 옆에서 낮선 목소리가 들렸다. 샤르아는 걸음을 멈췄다. 무시할 수 없는 살기가 전신을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키틴질 재질의 꼬리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꼬리끝에 달린 침에서는 시퍼런 독액이 뚝뚝 떨어졌다.

'언제부터?'

숨소리는 커녕,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살기를 고의적으로 내보이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손, 내려."

날카로운 독침이 위협스레 눈 앞에서 흔들린다. 이길 수 없다. 샤르아는 패배를 직감했다. 상대는 만전의 상태에서도 당해낼 수 없었던 진짜배기였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직접 싸워봤으니까. 사막의 전통 무녀복을 입은 저 소녀가 바로 자신의 지부 절반을 날려먹은 장본인이었다.

'여기 소속이었나?'

결코 경비 따위로 놀려둘 재원이 아닐텐데. 이 제약회사의 정체는 뭘까.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보다도 살아남는 것은 우선이었다.

"망할."

두 손을 들어 항복의사를 보인다. 변명은 하지않는다. 순간이긴 하지만 살기를 보인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맨티코어, 계속 있었던 거야?"

"응... 암살자, 위험하니까. 처음부터 지켜봤어..."

자신을 포박한 여인, 맨티코어의 말을 들은 샤르아는 경악했다.

'처음부터 있었다고?'

이 방에 들어온 이래로, 샤르아는 단 한번도 박사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기척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 뜻은 맨티코어라는 여인의 은신술 실력이 아득히 자신을 뛰어넘었다는 소리.

"수고했어. 덕분에 살았네."

"도움돼서, 기뻐..."

박사가 맨티코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박사의 손에 몸을 맡겼다.

"박사... 저 여자랑 계속 할거야?"

"응. 끝은 봐야지. 제품 테스트도 필요하고."

"나도... 도와줄 수 있어. 내 몸, 마음껏 써도 돼."

"나중에 하자. 돌아가면 진득하게 놀아줄테니까."

"...응. 알았어."

박사의 손길을 즐기던 맨티코어가 눈을 떴다. 그녀는 샤르아와 눈을 마주쳤다.

"허튼 짓, 하지 마. 끝까지 지켜볼거야."

그녀의 보라빛 눈은 고요했다. 샤르아는 소녀의 눈에서 갈무리 된 살의와 집착을 읽어냈다.

"......네."

깊이를 알 수 없다. 그 속에 내재된 살의도, 집착도 읽어내고 싶지않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끄덕였다. 그제야 소녀가 모습을 감췄다.

"놀래켜서 미안해. 예민한 친구거든."

"방금 그 분은...?"

"우리 회사 소속 오퍼레이터. 가끔 내 방에 숨어드는 취미가 있지."

취미라고?

샤르아는 무어라 말을 꺼내고 싶었으나 입을 다물었다.

지금도 사라진 소녀는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것이었다. 기척을 느낄 순 없었지만 명백했다.

집착의 대상을 위협한 자신을 가만히 두진 않을테니까.

"그건 그렇고, 아까 눈빛이 심상치가 않던데. 무슨 불만이라도?"

"아뇨, 괜찮습니다."

"그런 것 치곤 말투가 바뀐 것 같은데. 그럼 슬슬 이어서 해볼까?"

"자, 잠깐! 그 전에 약을..."

샤르아는 다시 성행위를 이어나가려는 박사의 팔을 붙잡았다. 소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었지만 그보다도 약이 절실했다.

지금 그녀의 몸은 평상시보다도 6배 강한 발정이 나 있는 상태. 샤르아는 여기서 행위를 이어나가다간 정신이 이상해 질 것만 같은 예감을 느꼈다.

한 알, 한 알만 있으면 된다.

진정제의 효과는 강력하다. 지금의 열기를 완전히 씻어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분명 상태 개선에 도움은 될 터.

"한 알만, 한 알만 있으면 돼. 그러니까 제발..."

두 팔로 박사의 손을 붙잡고 샤르아가 애원했다.

"이걸 어쩌지. 아까 다 써버려서 한 알 밖에 안 남았는데."

"그래! 그 한 알만이라도 좋으니까...!"

"안 돼. 곤란해."

"왜... 어째서?"

"너 생각해서 하는 소리야. 지금 이걸 복용하면 4일 뒤엔 어쩌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서비스가 끝나고 난 뒤에도 네 몸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을 경우를 이야기 하는거다. 아까보니 몇 번 만지기만 해도 가버리던데 그 몸상태로 제대로 돌아갈 순 있을까?"

망할.

샤르아는 박사의 말을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섣불리 짐작할 순 없으나 앞으로의 남은 기간이 편하게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었다.

만약 지금 마지막 환단을 복용해 버린다면 그때 자신의 몸을 회복시킬 수단은 없다.

시간과 재정이 넉넉하다면 남자를 구해 발정기를 해소하겠으나, 지금 자신은 지부로부터의 보복을 두려워해야하는 상황.

그녀는 꼼짝없이 남은 4일을 약의 도움 없이 버텨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할까? 이 정도면 충분히 쉰 것 같은데."

박사가 손짓으로 그녀를 불렀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샤르아는 그의 손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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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읏, 흐아아앗!"

"어이, 제대로 조여. 정액이 자꾸 새어나오잖아."

찰싹, 박사의 손이 샤르아의 엉덩이를 가볍게 때렸다. 둔부가 화끈거렸다. 흐읏. 샤르아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배, 배가 터질 것 같아..."

"벌써부터 엄살은. 아직 4시간도 안 지났다."

아직도?

샤르아는 고개를 들어 시각을 확인했다. 그의 말대로 채 정사를 시작한 지 채 3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이걸 4일씩이나 더 버텨야 한다고?'

"싼다. 꽉 조여, 흘리지 말고."

뷰르르릇!

또 다시 안으로 정액이 쏟아져 나왔다. 뱃속을 채워가는 뜨거운 감각에 샤르아의 몸이 떨렸다.

박사의 정액이 자궁을 채워갈 때마다 오싹거리는 쾌감이 느껴졌다. 평소였다면 몇 번이고 절정하며 실신했을 정도의 쾌락.

허나 샤르아는 실신할 수도, 절정할 수도 없었다.

그 이유는 손목에 걸린 팔찌.

색에 미친 탕녀처럼 아무리 허리를 내리찍어도 절정 직전까지만 허락되는 쾌락의 한계점.

처음에야 그녀도 나름대로 즐기는 마음으로 교접에 임했다. 절정 직전의 쾌락을 오랫동안 느낄 수 있는 기회는 결코 흔치 않았으니까.

허나 그 즐거움도 2시간 즈음 이어지다 보면 점차 변질되기 시작했다.

결코 해소할 수 없다. 바닷물을 마실수록 목마름이 심해지는 것처럼 교접을 이어나갈 수록 절정에 대한 샤르아의 갈증 또한 심해져만 갔다.

"더, 더 세게!"

"여기서 더?"

짝, 짝.

이전보다 좀 더 강해진 세기로 박사가 엉덩이를 때렸다. 맞은 부위에서 생소한 쾌감이 느껴졌다.

샤르아는 그제서야 자신의 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더, 더 많은 자극.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

사람의 신체는 쾌감에 쉽게 무뎌진다. 마약 중독자들이 초회에 비해 점차 투여량을 늘려가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샤르아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했다. 절정을 통해 발정을 해소할 방도가 없었기에 쾌락의 역치가 점차 높아져 갔던 것.

'나, 돌아갈 수 있을까?'

이젠 돌이킬 수 없다. 돌아갈 기회는 한시간도 전에 지나버렸다. 샤르아는 몸의 변화를 인지했다.

이 계약이 끝나고 나면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 도망칠 방도 따위는 없었다. 보라색 눈을 가진 소녀가 지금도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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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가버린 것 같은데.'

눈이 풀렸다. 페니스를 아무리 세게 찔러넣어도 별 반응이 없다.

박사는 시험삼아 암살자의 가슴을 세게 쥐어짰다. 흐아앗. 짧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허나 반사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여전히 풀린 동공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너무 심하게 했나? 아냐, 그럴리가.

순간 떠오르는 죄책감을 내리누른다. 그녀는 자신에게 살의를 품고 행동까지 옮기려한 암살자다.

맨티코어가 아니었다면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었던 상황. 감히 살의를 드러낸 죗값은 이자에 물려 단단히 치뤄줘야 했다.

하지만 넋이 나간 상태로 행위를 이어나가기는 싫었다. 이래서는 러브돌을 사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어이, 아가씨."

"......"

"어이, 정신차려!"

짝, 짝.

"으, 응?"

가볍게 뺨을 두드리자 그제야 반응을 보인다.

"이대로 나흘동안 박고만 있는 것도 재미는 없으니까. 내기를 하나 하자."

"또 내기...? 내기 싫어..."

워낙에 당한 것이 컸던 탓인지 단어만 꺼내도 거부반응을 보였다. 이러면 곤란한데. 잠시 고민하던 박사는 단어와 조건을 바꿔보기로 했다.

"그럼 게임을 하자. 내기말고 게임."

"게임...? 게임..."

"패배도, 벌칙도 없는 너한테만 유리한 게임. 어때, 생각이 좀 들어?"

"......내용은?"

"날 80회 사정시켜라. 그러면 널 풀어주지. 물론 횟수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나흘이 지나도 계약이 끝나는 건 똑같아."

박사가 제시한, 리스크가 없는 조건에 샤르아의 동공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80회? 그건 무리야..."

"아니, 나는 가능해. 네 의지가 부족할 뿐이지."

"의지보다도 몸이 문제야. 그 전에 내 음부가 망가지겠지. 치료도 안 해줄거면서 무슨..."

몸상태를 운운하는 샤르아의 말에 박사는 아츠를 운용했다. 초록색 빛이 둘의 몸을 한차례 휩쓸었다.

"이건... 설마 치료아츠?"

"그래. 이 정도면 몸이 망가질 걱정은 없겠지."

샤르아는 쾌락 사이에 가려졌던 은은한 통증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발정난 몸의 열기는 그대로였으나 상처만은 말끔하게 회복되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좋아. 수락하지."

"대신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

"남은 계약기간 동안 날 주인님이라 불러. 조건은 그게 다야."

"흐, 취향 한 번 고약하네. 정말 그게 다야?"

"그래, 나도 한번쯤은 주인님이라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으니까."

박사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샤르아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앞으로의 나흘 동안 여자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사정시킬 것이었다. 자신을 주인님이라 부르며 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겠지.

박사의 하물이 빳빳하게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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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끝나가네요. 아마 후일담 제외하면 2~3편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