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물고 내 방 침대 위에서 로도스 갤러리를 뒤적이며 

낄낄 대던 나는 야간 당직병 전용 채팅방에 알람이 하나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오늘 같이 할 오퍼레이터의 명단이 나온 것이다.


".....? 뭐야, 이거 여러 명이서 하는 것도 가능한 거였어?"


[니어, 샤이닝, 나이팅게일]


....사도 단체 3인방. 그녀들이 오늘 야간 당직병으로 동시에 뽑힌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시점에서 니어가 파우스트의 화살과 탈룰라의 화염을 

막아내면서 팔이 작살 난 상태였을 것이다....탈룰라도 막았었나? 

이건 좀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지금 그녀의 팔이 아작이 나버린 것 하나는 확실하다.

그래서인가? 셋이 동시에 나온 게.


띠링-


-이후 채팅방으로 3명이 각각 확인 채팅을 올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근무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당직실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이 거의 없던데....

설마 수르트가 있는 건가? 갑자기 독타를 죽이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난 수르트 명함이라도 얻으려고 100연차가 넘기 직전까지 돌렸었는데, 

이 놈은 초반부터 수르트를 뽑았네? 진짜 죽일까?


"......에휴, 개새끼."


....물론 거짓말이다. 나는 한숨 한번 푹 쉬고 방에서 나와 

편의점으로 가서 아이스크림들을 쓸어 담아 계산한 뒤 곧장 당직실로 향했다.

근무 시간까지 한 1시간 반 정도 남았지만, 

미리 가서 준비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거기에, 첫째 날 때 의자가 얼마 없었던 것 같기도 했었고.


저벅- 저벅-


"....아, 아카시 씨."


"사장님? 오, 마침 잘 됐네요."


당직실로 가려는데, 우연히 아미야와 마주쳤다.

아 미아미아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제가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그걸 그렇게 악용하지 마세요.

어쨌든, 오늘 니어 씨의 팔이 다 낫긴 했는데, 

막 나은 참이라 복귀는 힘들 것 같고, 재활 겸 당직병 임무에 지원하셨어요.

샤이닝 씨는 의사로써 니어 씨의 옆에서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고 하셨고, 

나이팅게일 씨는....그 분은 샤아닝 씨나 니어 씨 옆이 아니면 

매우 불안해 하셔서 세 분을 동시에 엮게 된 거에요."


....그런가, 이유는 납득했다. 그럼 이제 가서 준비해 볼까.

아, 그 전에 나는 아미야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내밀었다.


"-하나 드실래요?"


쫑긋-


.....아이스크림을 보자마자 먹고는 싶은지 당끼 귀는 쫑긋거리는데, 

고개는 좌우로 내저었다, 거절의 표시였다.


"....그건 당직 서는 분들 것이니까요, 전 괜찮-"


"그거 참 이상하네요, 제겐 분명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아츠는 없을 텐데, 사장님이 아이스크림 마렵다는 건 알 것 같은데요?"


"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귀를 가리켰고, 

자신의 귀를 확인한 아미야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그 귀여운 모습에 나는 낄낄 웃으며 아이스크림 하나 꺼내 

손에 쥐어주고 당직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ㅇ..아, 그, 그게/////////....어? 이게 언제 제 손에????"


"아이스크림 하나 없다고 화낼 사람 거의 없으니까요! 

그럼 전 이만 갑니다아~"


"아, 아니 잠깐만요!?"


"으헿헿."


후다다다다닥-


즐.겁.다!























-당직실에 도착해 냉동실에 아이스크림 봉투를 넣고 

근처 빈 방에서 의자 몇 개 가져왔다.

나머지 비품들과 CCTV 상태를 확인한 나는 의자 하나 

끌어다 앉고 사도 파티가 오기를 기다렸다.


[보닌 로도스 의료실인데]


작성자: 두린두린아.


(대충 전신에 붕대를 감은 채 잠들어 있는 

한 수염 덥수룩한 남자의 붕대에 낄낄 웃으며 낙서하는 두린 짤)


-수술 끝이래! 회복까진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목숨엔 

지장이 없다고 하더라구, 괘씸해서 낙서 한 줄 남겼어!

미쳤어, 어떻게 방패 하나로 건물을 녹이는 불꽃을 막으려 들어?

수르트가 맞받아 치지 않았다면 죽었을 거야.

이 괘씸한 아저씨에게 다들 빨리 나으라고 한마디 씩 적는 거 어때?


로도스독타혈액도둑: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할 환자에게 뭐하는 짓이냐!!

             ㄴ 두린두린아: 그래서 안 할 거야?

             ㄴ 로도스독타혈액도둑: .......

             ㄴ 안셀: 와파린님??? 왜 대답을 ㅇ


가비알: (와파린이 펜 들고 에이스가 있는 병실로 돌격하고, 

안셀이 그걸 막고 있는 짤 있는 짤)

    ㄴ 가비알: 야 이 미친 년아아아아!!!!!!!!!

    ㄴ 독타: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두린두린아: 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안셀: ㅇㅏ아무ㄴㄷㅗ와주세ㅇㅛ!!!!!!!!

    ㄴ 사리아: 지금 가겠다.


.....무려 수르트 덕에 에이스가 살아버린 광경을 목격해 버렸다.

내가 알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잠시 머리가 굳었으나, 

이내 댓글을 읽으며 낄낄 웃었다.


"아휴, 개꿀잼."


이윽고 가비알이 와파린과 두린을 혼내는 아미야의 사진을 올렸다.

그녀의 입엔 아까 내가 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었다.


지잉-


".....아, 먼저 와 있었나."


"오."


-그때, 문이 열리고 당직실로 세 명의 여성들이 들어왔다.

깊스를 풀고 팔에 붕대만 감은 니어, 

언듯 보면 칼처럼 보이는(물론 진짜 칼이지만.) 지팡이를 든 샤이닝,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오는 나이팅게일까지.

사도 일행을 직접 두 눈에 담게 되니 감개무량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들에게 악수를 건네며 인사를 했다.


"-야간 당직병 아카시라고 합니다, 세분 모두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니어가 붕대를 감지 않은 손으로 맞잡으며 대표로 인사를 받았다.


"마가렛 니어라고 한다, 이쪽은 샤이닝과 나이팅게일이고.

잘 부탁하겠다, 아카시."


.....어후, 누가 빛의 기사 아니랄까봐, 손을 맞잡으며 

싱긋 웃자 어마어마한 후광에 눈이 멀 뻔했다.












-업무를 시작한 뒤, 확실히 4명이나 붙어서 그런지 

CCTV 체크 업무가 굉장히 수월했다.

오죽 여유로웠으면 내가 핸드폰을 꺼내 갤러리를 둘러보고 있었을까.


"....업무 중에 핸드폰 보지 마세요."


"마냥 빈둥거리려고 보는 건 아니라서 괜찮아요."


"....네?"


"여긴 정보의 흐름이 정말 빠르거든요.

뻘글도 많지만, 나름 건질 만한 것들이 좀 있거든요."


스윽-


난 자리에서 일어나 타치를 챙겼다.

세 명의 시선이 모이자, 난 방금 갤러리에서 본 것을 

그녀들에게도 보여줬다.


"-야간 편의점 직원 분의 글이네요....?"


"로도스 함선 후문 쪽 비상문 잠금 장치가 풀린 채로 고장나 있다고요....?"


".....그렇군, 지금 확인하러 갈 생각인가?"


"네, 한 분은 절 따라와 주시고, 다른 두 분은 보안팀에 

연락해 주시고 후문 주변 CCTV들을 주시해 주세요."


그러자 니어가 일어나 따라오려 했으나, 

샤이닝이 말리고 자신이 따라 나섰다.


"마가렛, 아직 당신은 전투하기엔 일러요."


"하지만...."


"제가 갈게요."


"....알겠다, 부디 조심해다오, 나이팅은 내가 돌보고 있지."












-샤이닝과 함께 로도스 후문의 비상문 쪽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확인한 비상문은 정말로 고장 나 있었다.

난 고장 난 비상문을 살펴봤고, 샤이닝은 제보한 야간 편의점 

직원에게서 사정 청취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억지로 부순 것 같아 보이진 않는데."


비상문은 겉보기엔 멀쩡해 보였다.

안쪽은 내가 함부로 뜯어 볼 수 없어서 확인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누가 강제로 망가뜨린 것 같진 않았다.

이건 엔지니어 쪽 사람을 불러야 할 듯 싶었다.


"-샤이닝 씨, 그쪽은 좀 어때요?"


"....오늘 막 미세하게 문이 열려 있는 걸 발견했다고 

한 걸 보면, 저 상태가 된 지 꽤 된 것 같습니다."


"아...."


-탄식이 절로 나왔다, 왜 내가 입사한 시기에 이딴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쯧, 한탄할 시간은 없었다.

혹시 모를 대참사를 대비해 빡세게 순찰을 돌아야 한다.


띡-


"-당직실, 보안팀에게 연락 받았습니까?"


당직실로 무전을 보내 보안팀을 이쪽으로 부를 생각이다, 

아무래도 이런 건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나는 내가 잘하는 일을 

하러 가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치직.......지직....치지지직......]


".....?"


-무전기에서 노이즈만 들리고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이거 고장났나- 싶어 귀에서 빼서 몇 번 툭툭 두드린 다음 

다시 무전을 보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으음, 샤이닝 씨. 제 거 무전이 고장난 것 같은데, 

당직실에 보안팀에게 연락 받은 거 없냐고 물어봐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니어 씨, 보안팀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그리고 침묵, 몇 초간 지속된 침묵에서 내 마음 속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내 마음에 확신을 더하듯, 굳은 표정의 

샤이닝이 입을 열었다.


".....제 것도 고장 난 걸까요?"


".....잠시만요."


난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와이파이 상태를 확인했다.

작은 검음색 부채꼴의 와이파이 표시가 꽉 차 있었다.

안심하며 다시 주머니에 넣으려던 그때, 

불현듯 나는 다시 핸드폰을 꺼냈다.


".....설마."


그리고 로도스 갤러리를 다시 켰다.















[-연결 실패, 로도스 사내 네트워크에 연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씹, 재밍이다!!!!"


"네!?"


어떤 새끼인진 몰라도, 현재 로도스 사내에 재밍이 일어났다.

전화, 무전, 와이파이 모두 막힌 상황, 이제 어떡해야 하지?


"ㅈ, 재밍이요!? 어, 어떡해야...!!"


"....서버실, 그리고 보안실로 가야 합니다, 서버실 쪽은 제가 갈 테니, 

아카시 씨와 직원 씨는 보안실로 가셔서 보안팀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서버실로 사람을 보내게 해주세요."


"ㅈ, 저도요?!"


야간 편의점 직원이 깜짝 놀라 말했지만, 

샤이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게 누군가의 장난이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최근 저희는 리유니온과 충돌했었죠.

그렇다면 이건 높은 확률로 리유니온의 공작일 텐데, 

전투 능력이 전무하신 당신이 홀로 남겨졌다가 

만약에라도 그들과 마주치면-"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을 게요!"


와락-


....직원이 내 팔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이걸 어떻게 하나 생각하던 그때, 당직실이 보안실로 향하는 

길 중간에 있음을 떠올렸다.


"그...직원 씨?"


"베니라고 불러주세요....."


"그럼 베니 씨, 보안실로 가는 길에 저희 당직실이 있습니다.

거기에 저희 말고 근무하는 오퍼레이터 두 분이 계시니까 

그쪽까지 데려다 주겠습니다, 오케이?"


"ㄴ, 네! 감사합니다!"


"그럼 샤이닝 씨, 몸 조심하세요."


"....알겠습니다."


이윽고 우리들은 둘로 갈라져 달리기 시작했다.

제기랄, 싸움 피해서 왔더니 오히려 온갖 사건 사고에 

죄다 휘말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탓-


".....!? 베니 씨, 숙여요!!!"


한참 달리던 중, 우리 외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마치 도약하는 듯한 짧은 소리가.

급히 베니에게 경고한 뒤 온 몸에 아츠를 끌어올려 

신체 강화를 발동하고 타치를 뽑았다.


부웅- 콰앙!!!!!!


"-커헉!!!!!"


"아카시 씨!!!!!"


신체 강화가 발동되자마자 육체가 경고하는 대로 

검을 위로 들어 올리자, 뜬금없이 거대한 방패가 내 타치에 부딛쳤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의 균형이 무너져 바닥에 쳐박힌다.


"...후욱- 후욱-"


"-리유니온...! 정말로...!!"


"염병하시겠네....."


두꺼운 방호복에 검은 헬멧, 그리고 거대한 방패.

리유니온 중기갑병이 천장에서 떨어져 덮친 것이다.


".....이 미친 놈이 왜 천장에서 떨어져, 시발....!!"


"....."


부웅-!!!!!


내 머리로 방패를 휘두르는 것을 엎드리다시피 숙여 피하고 

옆으로 구르며 일어나 베니 쪽으로 향했다.


"-아카시 씨! 괜찮으세요!?"


"목 붙어 있는 걸 봐선 그런 것 같은데요!?"


저벅- 저벅-


"....근데 이제 안 괜찮아질 것 같아요."


"아....아아....!"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우리 뒷쪽으로 리유니온 병사들이 나타나 우릴 포위했다.

항복해야 하나? 아니, 그럼 직장에서도 짤리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 이 자리에서 저들이 우리 항복을 받지 않고 그대로 내 목을 자를 수도 있다.

그럼.....사실 상 답은 하나지.


"-베니 씨, 잠깐 실례할게요."


"네? 우왓....!"


남는 왼손으로 베니를 끌어당겨 앞으로 안았다.

그리고 타치에 아츠를 흘려 넣자, 붉은 검신을 타고 

검은 기운이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신체 쪽에도 아츠를 더 돌려 신체 강화의 출력을 

더욱 높이자, 어디로 가야 할 지 눈에 보였다.


"-단숨에, 돌파하겠습니다. 혀 깨물지 않게 조심하세요."


"ㅇ...아, 네!"


크게 한 발 내딛자 콰득-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움푹 파였다.

내딛은 다리에 힘을 주다 한계까지 짓누른 용수철을 해방하듯 

피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리유니온 병사들과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위로 지나가고 싶었지만, 복도가 높지 않아서 불가능했다.


퍼엉-!!!!!


"이게 뭔-"


콰득!!!!


-뼈가 강제로 뜯겨 나가는 소리와 함께 선두에 있던 

리유니온 병사의 목이 날아간다.

몸에 피가 묻는 기분 나쁜 따스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작은 방패를 내게 내민 녀석을 아츠가 담긴 타치로 

방패 째로 베어 넘기고 온 사방을 향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나와 베니를 노리고 내질러진 온갖 칼들이 타치에 

잘려나가 공중을 떠도는 모습이 강화된 눈에 천천히 흘러간다.


서걱-


....모든 것이 내가 한 행동에서 몇 박자 늦게 일어난다.

베니를 살짝 확인하자 속이 안 좋은 지 얼굴이 파랬다.

빨리 빠져나가지 않으면 내 옷에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푹!!!!


"큽...!!!"


-등쪽에 뭔가가 박히는 거친 이물감과 함께 고통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화살이 박힌 걸까, 화살이 아니더라도 

서서히 전신에 화끈한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하며, 

몸이 피로 뒤덮인다. 이게 내 피인지 상대 피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퍼억!!!!!


"커헉-!!"


"-젠장, 빠져나가잖아!!! 어서 쫓아!!!"


"너무 빠른데?!"


"석궁병!!! 저거 더 도망가기 전에 빨리 맞춰!"


뒤에서 석궁병을 재촉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왼쪽 다리에 격통이 느껴졌다.


쿠당탕-!!!


"-끄아아악....!!!!"


"아흑!!"


....신체 강화를 발동하지 않았다면 왼 다리 자체가 

날아갔을 뻔할 커다란 화살이 왼 다리에 박혀 있었다.

한바탕 넘어져 베니와 함께 바닥을 굴렀고, 

그걸 본 리유니온들이 일제히 달려온다.


우르르르르르-


".....씨발."


"아....안돼...."


.....내가 여기서 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문득 뒤로 슬쩍 고개를 돌려 베니를 바라봤다.

'원작'에선 전혀 언급되지 않는 엑스트라.

내가 없었던 이야기에선, 그녀는 조용히 살아갔을까, 

아니면 그저 사망자 명단에 이름 하나만 올라간 채 사라졌을까.


".....내가 진짜 죽고 싶어 환장한 게지."


"네....?"


"가세요, 베니 씨."


콱-


타치를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킨다.

로도스 일원으로써의 의무감 같은 건 아니었다.

그냥.....마땅히 힘을 지닌 사람이라면, 

적어도 할 수 있을 때까진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살 길을 열어 주는 것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그런 마음이, 문득 들었을 뿐이었다.


"아시죠? 이대로는 당신은 방해라는 거."


"......"


"-당직실로 후다닥 달려가서 니어 씨 불러와요.

지금 뭐가 뭔지 모르겠고, 겁은 나고, 몸은 힘드시겠지만, 

저도 살고 싶으니까 빨리 정신 차리고 뛰시란 말입니다."


베니의 눈의 떨림이 멎었다.

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직실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노리고 석궁병이 멀리서 화살을 쐈지만, 타치로 튕겨냈다.


".....후우."


내 몸에 있는 거의 모든 아츠를 신체 강화에 집중했다.

다행히, 지금 내 앞에 대치하고 있는 이들의 무기는 

빈말로라도 좋은 품질은 아니었다.

지금의 탈룰라 성격 상, 저들은 성공해도 좋고, 

실패해도 문제 없는 버림 패.

타치에 담긴 약간의 아츠 만으로도 충분히 베고, 막아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싸움,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다.


텁- 푸북!!!!!


"끕......휘유, 이거 재생하는 속도 봐라?"


이들의 발걸음을 묶고, 최대한 오래 버티기만 하면 

이기는 판인데, 하필 내가 신체 스펙 하난 개쩌는 오니족이네?

거기에, 그 신체 능력을 더욱 끌어 올려주는 신체 강화?

이기는 건 둘째 치고, 버티는 거라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방금 내가 베푼 선행에 신이 감복하기라도 했나, 

다리에 박힌 화살을 뽑고 잠시 숨을 돌리며 

머리를 식히니 내가 살 길까지 뚜렷하게 보였다.

....근데 이거 생각해 보니까 그냥 마토이마루가 된 듯한 기분이....?


"....에라, 모르겠다."


쐐애애애애애애액-


극한까지 강화된 몸 탓에 천천히 날아오는 것처럼 보이는 

화살을 슬쩍 피하며 나는 그냥 모든 잡념을 지우고 타치를 

꽉 쥐었다, 딱 하나, 유일하게 천천히 흐르는 이 세상의 

움직임에서 별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한 중기갑병의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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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중기갑병을 마주했을 때 실수로 캐스터 배치를 잘못해서 조졌었죠, 

빡쳐서 마토이마루로 혼자 남을 때까지 잡아뒀다가 마지막에 한꺼번에 

다굴쳐서 조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