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안으로 따쓰한 햇살이 창문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따듯하고 향기롭다. 벌써 여름이 된건지 창문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바람은 알싸한 여름의 향기를 태운 체 자유롭게 세계를 유랑한다.

...어디선가 어렴풋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아이들이 웃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 하였다. 


한여름낮의 합주곡이라는건 이런걸 말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잠깐 들 정도로 감미로워서...흐트러진다. 생각도,마음도,몸조차도. 

정말 우습게도 만약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춰준다면, 혹은 모든것이 끝나버린다면...그것 나름대로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RTS, 지금 갑자기 세계가 멸망할 확률은 몇%지? 너도 이 아름다운 합주곡이 들리니?"


"주접떨지 말고 일이나 하세요 박사님, 아직 풀어질 때가 아닙니다."


저 냉정하고 일 잘하지만 싸가지만큼은 밥말아먹은 Ai의 말처럼 때가 아니였던것일까.

한여름낮의 합주곡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지저귀는 새소리는 어느샌가 폭탄이 터지는 소리로,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울음소리로,알사한 여름의향기는 비릿한 피냄새로 이외에도 갖가지 감미로운 멜로디들의 자리에 머리를 으깨는 소리,비명소리,베는소리,씹는소리같은 추한것, 이세상을 이루고 있는 익숙하고 기분나쁜 것들이 자리한다.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인륜배반적인 불쾌한 것들이 섞여 또 다른 합주곡을 만들어낸다.


'분명 저번작전에서, 폭탄의 파편에 맞아 한쪽 다리를 잃은 아이도 저렇게 울부짖었지. 이 철퍼덕거리는 소리는...피를 밟는 소리네, 이 꺠무는 소리는 개들이 시체를 파먹는거구나, 기분나쁘게 현실감이 있는데.'


잔혹한 천사의 테제. 분명 제목을 짓는다면 이런 제목이 달리지 않았을까.

왜인지는 몰라도 내 손에는 피가 잔뜩 묻어있다. 


비누를 손을 문대고 씻어보아도 씻겨지지않는다.


하하,정말 재밌는 일이야. 논리적으로 하나도 말이 안될텐데 이런 현상은.


"...난 가끔 우리가 하는 행동이 정말 옳은지 잘 모르겠어."


"저번작전에서 사람들이 대체 몇명이 죽었지? 우리는 몇번이나 더 많은 죽음을 직면해야하는거야? 더이상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걸 보더라도 손이 떨리지도 밤에 잠을 못자지도, 구토를 하지도 않아."

 

"반복되는 충격은 자극은 반응을 둔하게 만들지. 눈을 뜬 이후부터 정신없이 눈앞의 상황을 해쳐나가다 보니 눈앞에서 사람이 수백명 갈려나가도 태연하게 서있을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어. 나만 그렇다면 상관 없을지도 몰라."


"아미야는 아직 미성년자야, 스즈란이나 샤마르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대체 무슨짓을 하고있거지? 이런 아이들조차 전장에 서야하는거야?"


"아이들 뿐만이 아니야 모두에게 미안한 짓을 했지. 나는 웃으면서 그들을 속였고 그들은 알면서도 지옥으로 걸어들어갔지, 그저 내를 믿고있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 때문에."


"내가 인간이긴 할까? 나는 인간성을 잃고 그저 그런 회색머리 금수같은 것이 되어가고 있어. 아니, 어쩌면 이미 다 잃어버렸을지도 모르지...젠장!"


나는 소리를 질렀다.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체로.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은 어떤 행동일까?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있긴 한걸까?

나는 그저 이대로 있으면 안된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행동을 한걸까? 

아니면 그저 알량한 자존심따위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그것도 아니면 어떤것? 


생각이 많아진다는건 정말 긴박한 상황이라는 뜻인데 지금은 무엇이 그렇게 잘못된걸까?


....모른다.


아, 난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무엇하나 아는게 없었지.


손이 떨린다. 머리가 아프다. 어딘가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것같다.전신이 뒤틀리는 느낌, 이전에도 겪어본적 있는 느낌이다. 우욱, 토할것같아.

이럴떄는 분명...어떻게 해야했더라? 분명 켈시가 뭐라고 했는데..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서랍! 서랍을 열면 된다고 했지.

눈앞이 새빨갛다. 귀가 먹먹하다.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나도 무겁다.


지면이 내게 다가온다. 나도 지면을 향해 다가간다. 차갑다.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린다. 사람들이 들어온다. 포근하다. 들어올려진다.

...나뭇잎이 떨어진다. 한장. 두장. 세장. 네장....열두장. 열세장.


아, 드디어 마지막 잎세가 떨어진다.


그리고 감각이 사라진다.


"차라리, 이대로 콱 죽어버리면 좋을텐데."


얄궃게도 이번에도 죽지않을거라는 생각에 어렴풋이 드는 안도감,환멸을 느끼며 깊은 잠에 든다. 


현대에 들어서 가장 눈부신 인류의 발전중 하나로 평가받는 의료기술의 진보가 오늘만큼 원망스러웠던적이 있던가.

마지막순간 갑자기 드는 아이러니함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낮설지는 않고 익숙한 천장이 나를 반겼다.


정신이 맑고 기분이 좋다. 

살짝 날아갈것같은 느낌도 드는게 뭔가 약이라도 먹은것같은기분이다.


딱히 당황스럽거나 하지는 않는다. 병실은 이전에도 자주 들락날락 했으니까 뭐 이제는 냄새조차도 익숙한 수준이고.

물론 내 옆에 앉아있는 여성에게서 더욱 익숙한 향기가 나지만. 진한 커피향과 약간의 소독제 냄새, 그리고 민트향.


"정답, 켈시!"


배개가 사정없이 나에게 날아온다. 

길게 자라버린 은발 머리가 찰랑인다. 역시 내 머리카락이지만 향기롭다. 아마 몇일 전부터 사일라흐가 계속 내 머리를 관리해주어서 그런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얼굴에 떨어진 배개가 포근하다. 

필라인의 힘이라면 맞았을때 꽤나 큰 충격이 느껴져야 할텐데 일부러 충돌 직전에 힘을 뺸거겠지? 예전부터 항상 이상한 면에서 친절한 부분이 있다.


"아, 더 자고싶다."


"실없는소리를 하는걸 보니 이젠 다 나았나보군."


"그래, 보다시피 이렇게 몸도 마음도 개운하고 좋은데? 그보다 쓰러진지 몇일 지났는지 알아? 나 일이 많이 쌓여있었던것 같은데."


"하아...너란놈은 항상...왜 이딴식인지. 네게 할당된 업무는 내가 대신 처리했다."


그녀는 몇가지 검사를 시행해보고는 퇴원절차를 밟게 해주었다.


"오늘은 안정을 취해라. 새로 두명의 오퍼레이터가 입사하니 그들과 친목을 다지는것도 나쁘지 않은선택지가 될수도 있겠군. 아, 내가 말하는 친목의 의미는 이성적인 사이로 깊게 들어가라는 뜻이 아니라 명령하는쪽과 수행하는쪽으로서 서로 믿고 맡길수 있는 친한 사이가 되도록 하라는것이다, 뭐 네가 썩 내켜하지 않는다면 오늘은 내방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든다. 아, 오해하지 마라 이건 그저 어디까지나 괜찮은 방안을 제시한것일뿐 무언가 제안을 한다거나 그런건 아니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동등한 위치의 둘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눠보는것도 괜찮다는 의미이다. 이런방법은 예로부터 많이 쓰였는데...고사에 나오는 부분이나 삼국지같은 과거 문헌에 따르면 동등한 위치의 두명의 사람이 한방에서 깊게 이야기를 나눈다는것은..."


"알았어, 그러면 입사하는 오퍼레이터 애들 관련 자료좀 보내줄레? 이만 난 가볼게 항상 고마워 진심으로."


복도에서 그가 멀어진다.


"하아..."


'좀 더 이야기 하고싶었는데,아직 보내기 싫은데,왜 너는 항상 이렇게 먼저 가버리는지, 그리고 항상 쓰러지는지. 멍청하고 미련하구나...'


아직 그녀에겐 해야할 일이 아주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절망스럽게도 그녀의 이성은 해야하는 일과 하고싶은일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구분할수 있다.

다시, 그녀는 해야할 일을 하기위해 걸음을 욺긴다. 한걸음 한걸음이 무겁다. 

무심코 그가 지나간 곳을 뒤돌아보면, 아직도 붉은피가 추적추적 바닥을 적시고있는것처럼 느껴지기에. 그녀는 뒤돌아볼수 없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박사님!!!박사님!!!"


"맹우여!몸은 괜찮은가!!!"


"저랑 언니가 건강스프 만들어왔어요!! 문 열어주세요!!!"


"박사!!케오랑 벌꿀쿠키 먹기로햇자나아!!!"


"우리 할 얘기가 있지 않아? 당신이 먼저 이렇게 쓰러지면..."


"박사를 위해 내가...돌로 인형을 만들어봤다, 자..잠깐 볼수있.."


쾅!쾅!쾅! 펑!펑!펑!


바깥에서 오퍼레이터들의 처절한 외침과 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난다.

몇몇 과격한 오퍼레이터들이 퇴원소식을 듣고 집무실에 와서 생 난리를 치며 개판으로 만드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이그제큐터에게 부탁해서 직원들을 쫒아내고 접근하지 못하도록 호위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고, 고생했다. 역시 너에게 맡기길 잘했어. 이번에 새로 입사하는 오퍼레이터들 관련정보를 좀 봐야하거든."


"어디보자..이번 오퍼레이터는 이름이 특이하네, 아르투리아라니... 뭐? 페코 네 사촌누나야? 와..세상 참 좁아 그치?"


항상 무표정으로 굳어져있던 그의 표정이 살짝 구겨진것은 나만의 망상이 아니였다. 말을 듣자마자 그의 표정이 찡그러졌으니까


'설마 지금 네가 페코라고 줄여불렀다고 이렇게 화내는건가?'


"..그녀는 위험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로도스가 그녀를 받아들이는 결정을 한것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듭니다.적어도 결정을 조금 더 보류하거나 재검토할 필요가..."


"무뚝뚝한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내가 켈시에게 물어볼게 그래도 일단 오기로 한건 정해진거라서, 일단 나도 최대한 조심할테니까."


'다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페코라고 줄여서 부른탓에 화난건 아닌것같네.'



"그녀의 아츠는 그녀가 항상 들고다니는 검은색 첼로를 매개체로 사용합니다. 그녀의 연주를 들으면 이성이 마비되고 충동이 극대화 되어 마치 브레이크가 없어진 차량처럼 과격하게 욕망의 실현만을 위해 행동하게 됩니다. 이미 그녀는 아츠를 통해 여러건의 중범죄를 저지른 전적이 있으며 이로인해 입은 피해의 규모가 상당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현상금이 걸린 지명수배자입니다."


"네 사촌이 지명수배자라니...아, 뭔가 미안하네. 이 이야기는 이제 그만할까."


"두번째로 입사하는 직원은 양초의 기사, 비비안나씨는 박사님도 잘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일단 니어랑 같이 카시미어에 갔을 떄에도 봤고 이후에도 위기협약떄도 협력해주신 분인데. 겉모습도, 마음씨도 꽤나 아름다운 여성분이셨지."


"그녀의 아츠는 꽤나 활용도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인사부도 박사님을 통해 더욱 발전할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마가렛 니어와 사적인 친분이 있습니다.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녀가 입사를 결정하게 된 계기는 인사부에서도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카시미어에서 니어의 우승 이후 무슨일이 있었는지 조금 더 알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신입들은 전반적으로 경험이 많고 노련하지만 속을 알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최근 박사님의 건강상태를 고려했을때 무리해서 신입분들의 교육을 진행할 필요는 없을..."


"그래도 일은 해야지, 앞으로 한지붕에서 살 사람들인데 매정하게 굴수는 없잖아? 적어도 얼굴한번은 비춰줘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신뢰나 호흡을 맞출떄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근처에 경호인력을 최대한으로 베치하겠습니다."


"페코, 아무리그래도 2명 교육하는데 경호인력이 10명이 넘는건 좀 아니지 않아? 아무리 많아도 두명이면 충분해."


"...알겠습니다."


"너도 많이 지쳤지? 문 바깥의 소란도 어느정도 진정되었으니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휴식을 취해. 아,갈때 복도에 설치해놓은 폭탄 제거하는거 잊지마 나는 그거 밟으면 진짜 죽거든."


"저는 로도스가 앞으로도 평화로운 나날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체 아르투리아는 어떤 인물이길레 모든일에 무관심한듯이 대하는 이그제큐터가 저렇게나 경계하는것일까. 그정도로 엄청나게 위험한 인물이라도 되는것일까. 


금기에 대한 탐구, 학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하는것.

금지된것에대한 지식이나 행위는 금지되어있기에 더욱, 사람을 매혹시킨다.


기억을 잃고 방금전까지 정신도 잃고있었던 나도 나름 학자라는걸까. 속에서 게걸스럽게 입을 벌리고있는 탐구욕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나방이 이런 심정이 아닐까...같은 생각이 들지만 어쩌겠는가?


'이정도로  기분좋게 설랬던게...몇년 전이였지?'


이렇게나 기분좋게 가슴이 뛰는데. 


'적어도 이 떨림이 멎기 전까지는, 다가가야지...라는식의 태도는 너무 무책임하겠지?'


규칙적인 심장박동의 진동을 외면한체, 가슴속에 타오르는 작은 불씨를 작은 천으로 가려본다. 가린다고 가려질지는 모르겠지만.


"기대되네...촛불도,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