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이었어

 끊임없이 내리는 눈에 별빛마저 덮이는

 주변을 밝히는 거라고는 방 가운데 화톳불이 전부인데

 오밀조밀 모여 서로 뺨을 붙인 아이들한테 그 포근함이 얼마나 아늑할지 알잖나

 나무 틈 밖으로 들리는 매서운 바람 소리와 대비해서 더더욱 말이지몰아치는 눈 폭풍은 듣기만 해도 어린 기억에도 추위가 사무쳐 떨릴 정도니.

 차기 마을 전사의 명예를 건다는 호언장담은 진작 하품으로 잠겼고잠을 잊고자 순서대로 번갈아가던 이야기도 한 명씩 슬쩍 차례를 빼먹으며 침묵을 이었어

 그렇게그 자그맣던 눈들이 몇 번이나 겨우 껌뻑였을까

 버티고 기다리겠다는 각오가 무색하게전부 섭리에 대한 저항을 멈추고 사르르 감기고 말았겠지.

 

 그 전달자는 바로 그때야 부락에 도착했다네.

 보지 못하는 건 아이들뿐만이 아냐어른들도 이미 곤히 잠든 정적에서만 그가 움직일 수 있었던 게지.

 신중할 수밖에그 자 역시 우리의 거점이 우르수스 순찰대에 들키는 걸 원치 않았으니까.

 포악한 야만인들이 이런 구호활동을 결코 용납할 리 없지탐욕스러운 놈들은 언제나 우리 땅을 차지하려고만 하지자비를 베푸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어

 더군다나 마을을 오가는 전달자가 있다는 걸 짐작하면서 그를 협박해 길잡이로 삼고자 더욱 더 짐승마냥 눈에 불을 키고 찾아다녔을 테지몹쓸 놈들인간의 도의라고는 없는저주받은 악마 놈들

 (부족의 큰 어르신은 여기서 눈을 부릅뜨고격정적인 분노를 담아 우르수스의 잔혹함교활함비열함에 대해 반복적으로 진술했다이 목소리와 분위기의 변화는 사미의 어르신들이 아랫세대에게 구술 전승을 재현 중 우르수스에 관해 언급할 때 공통적으로 보이는 패턴이며개인의 고된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 기복과 부족의 역사를 전승하는 이야기로써 작위적인 연출의 모습이 섞여있다.)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어둠 속에서 적들을 피해 깊은 눈보라 속이곳에 찾아온다는 게 얼마나 힘들겠는가

 더군다나 물자를 가득 실은 썰매를 끌고 말이야도와주는 사람이라곤 기껏해야 현지인이나 페로족 한 두 명이 다일 텐데.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 자를 목격할 수 있었던 초병 하나가 어린 동생에게 들려준 거라네.」 

 


 신비한 녹색 발광이었지

 그건 이상 없다고 그 사람이 전하는 신호야

 분명 잠깐 눈에 비친아주 찰나 동안 마주한 빛이었는데그 영롱한 아름다움이 아직도 생생히 떠올라

 나뿐만이 아니었을 거야우리는 잠시 홀린 듯 멍하니 있다 황급히 저쪽으로 달렸지

 저 나무 보이지그래부족에서 가장 오래된 산탈라 나무 꼭대기에 걸려 있잖아

 저 등의 붉은 빛은 수신용이야그에게 이곳 위치와 교접의 뜻을 밝히는 거지.

 그리고 수색 과정에서 난 그 전달자의 모습을 봤어

 ...땀범벅이었어모자와 외투로 가리지 못한 눈가와 코끝에 송골송골 맺혀서

 그 땀방울이 몸에 붙은 눈송이와 뒤섞여 얼어붙으면서 그를 더 춥게 하는 게 보였지

 체온을 뺏긴 얼굴은 진작 새빨갰고그 위로 백발은 축축하게 헝클어졌어추적을 피하며 폭설에 마구 휘날렸을 테니

 게다가 그는 내 생각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어그동안의 긴장과 추위를 버티다 겨우 헐떡이던 날숨에는 쉰 목소리가 섞였더군

 초췌한 피로를 감추지 못하는 그 모습을 보면 이 은인에게 이런 절차를 매번 밟는 게 죄송스러울 정도였어하지만 그는 모두를 지키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수순이라며 괘념치 않았어

 단지불이라도 좀 쬐다 가라는 만류엔 아직 물자와 소식을 기다리는 다른 부락들이 있다며 다시 서둘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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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라력) 1099, 122507:09 p.m. 

 


 ???: ...



 


 

 에라토는 <사미 부족의 설원 전달자 구술 전승>을 잠시 뒤집어 놓고떠오르는 대로 운율을 입 밖으로 흘려보냈다

 그 기록은 그녀가 라이타니엔을 여행할 때 접한 사미 출신 학자의 저서를 필사해 수집한 거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는 먼 옛날에서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 영웅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온갖 이동도시에서 온 로도스 오퍼레이터와 환자들이 대부분 알 정도로 테라 전역에 널리 퍼져진 아이스필드 메신저’ 이야기를.

 


 에라토하지만 아름다운 장미에 손을 뻗으면 가시가 날카롭게 찌르듯이하얀 눈이 뒤덮기 전에 그의 발자국은 짙은 진흙이 뒤엉켜 질퍽였으니 

 광활하고 깨끗한 설원이여한때 그 위에 펼쳐졌던 그 자취를 다시 보고다시금 노래하라

 영웅의 업적을 완전무결한 흰 눈꽃송이라 칭송하기 전에그것에 닿기까지의 모든 고난과 역경을 부르리.

 

 달려라전달자여에르미스(Ἑρμς)가 나그네의 밤길을 인도할지니.

 그 길이 도둑들이나 달아나는 깜깜한 길이어도 비겁하다 책망하지 말지어다. 그대는 대낮에 마차와 권속을 꾸린 당당한 자가 아니라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테니.

 보레아스(Βορέας)의 차가운 노여움 속에도 맞서지 않고발을 멈추지 않도다설령 그대를 추적하던 자들이 머리 위로 메탈 크랩을 쏠 지라도... 

 ...메탈 크랩?

 


 (폴짝 뛴 메탈 크랩 하나가 에라토의 머리 위를 향해 떨어진다.) 

 


 덥썩.

 에라토는 다행히도 안경과 코뼈가 위험해지기 전에 자기 머리 위로 쏘아진(?) 메탈 크랩을 양손으로 받아냈다

 그것은 로도스의 전문 사육사와 오랫동안 함께 지낸 파트너였다

 


 

 

 빈스토크콩아거기 있었구나고마워에라토 씨.

 괜찮아그새 몸이 커져서 전에 로키가 쓰던 초대용 상자가 너한텐 작은 모양이야다른 상자를 찾아야겠어

 버블: (상자를 내려다보며그때 로키는 자유롭게 움직였는걸나도 이렇게 깜깜한 곳에 웅크려 있다간 바로 뛰쳐나갈 거야참을 수 없다고.

 포푸카빈스토크 언니다른 상자들은 크기가 작아큰 상자는 더 큰 선물을 담아야 하고.

 언니가 일러준 대로 메탈 크랩이 어두운 곳을 좋아하고 콩이가 선물 뽑기까지 잘 기다린다 해도이 상자 안에선 조금만 들썩거려도 다들 콩이인 걸 알아챌 거야어쩌지

 케오베: ...나한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내일은 모든 아이들이 콩이랑 놀아주는 거야!

 그럼 다들 콩이를 두고 다툴 필요도 없고콩이에게 즐거운 하루가 될 거야내일은 콩이에게 그... 그래. ‘휴가인 거야!

 벌컨 언니가 그랬어어른들에게 휴가라는 건 하루 종일 일을 안 하고 상쾌하게 해주는 치료약 같은 거라고딱히 쓴맛은 아니지만

 빈스토크모든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게 콩이에게 휴가일지는 잘 모르겠다만...

 


 빈스토크는 상자와 콩이그리고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콩이가 그녀를 위해 몸을 둥글게 말아 상자에 다시 들어갔지만좁은 공간에 낑낑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은 벌써 내일 콩이와 놀 기대로 눈빛이 반짝였다분명 콩이가 뭐하고 놀면 좋아할까무슨 장난감을 가지고 오면 좋을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더군다나 버블은 이미 선물 중에 콩이가 있다고 환자실의 다른 친구들에게 소문을 퍼뜨린 모양이다.

 


 빈스토크: ....

 


 빈스토크는 못 이기는 척 짧은 한숨을 쉬고는그동안 크고 작은 일에 자신을 도와주고머리를 맞대며 함께해준 어린 친구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빈스토크할 수 없지. ‘사업계획일일 콩이와 놀기 특권 뽑기 선물은 다음 파티까지 미완성인 걸로.

 그러면 내일 나랑 같이 다른 친구들에게 안전 수칙을 안내해주고 놀면서 지켜봐 줄 사람이 필요한데도와줄 수 있을까

 버블&포푸카&케오베!

 빈스토크좋아그럼 어른들에게도 잘 소개해준다는 조건으로 특별히 로키망치힘찬이꼬불이 모두 데려올게.

 콩아너도 부탁할게약속한 고급 사료를 다 같이 먹을 수 있게 듬뿍 줄 테니까

 이 결정이 이득이 될지손해가 될지내년에는 좀 더 철저한 홍보 계획을 준비해야겠어.

 


 에라토: ... 

 뭔가 잊은 게 있지 않나요빈스토크

 


 그동안 에라토는 한참 떠올리던 영웅의 시가를 멈춘 채 주변을 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마구 뿌려진 접착제와 야광 스티커후프비스트라던지 온갖 모양으로 오리다 가위와 함께 바닥에 떨어져 못 써버릴 색종이너저분하게 흩어진 박스와 포장지.

 어지럽게 돌아다니다 벽에 부딪치는 메탈 크랩과 그 충격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장식과 양말별 하나만 꽂곤 연결하다 만 전구 회로가 지저분하게 뒤엉킨 트리와 리스

 그리고 귀와 뿔에다 걸린 빨간 리본을 풀지도 않곤 신나서 장난치는 꼬마들과 다 큰 아이 하나...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참으며 그녀는 빈스토크와 아이들의 화기애애한 사업 계획 변경을 기다려 줬던 거다.

 


 에라토준비하다 말고 이렇게 어지럽히면 어떡해요하우스 파티까지는 2시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제전을 앞둔 코리니아의 광장 정도로 치장할 필요는 없더라도적어도 무대에 문제는 없어야 하는데

 이대로 만전의 준비도 못하고 긴장해서 낭송을 제대로 못했다간으으...

 빈스토크미안해에라토 씨선물을 준비하는 데 잠깐 문제가 좀 생겨서.

 이제 해결하고 다시 하려던 참이었어다 준비했고 정리만 하면 금방이야그치얘들아?

 에라토그럼 저도 이쪽 일을 먼저 거들도록 할게요.

 마침 여러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으니.

 


 에라토는 빈스토크와 아이들 옆으로 와 함께 정리하고마저 파티를 꾸미는 걸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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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이라고 할까, 사실 자작 게임 이벤트 스토리 시나리오입니다. 대충 명빵에 이런 스토리가 있으면 어떨까 하고 만드는.

 처음 잡은 주제는 스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필드 메신저'. 해당 스킨을 가진 오퍼레이터들을 스토리에 넣는 것이 목표!

 분량이 마구 늘어나 크리스마스에 시작해서 겨울 내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우려먹게 생겼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끝까지 쓸 수 있으면 좋겠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