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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가."

머리와 등을 간지럽히는 햇살이 늦여름의 정오임을 알렸다. 점심시간을 거르고 깜빡 잠들었는데 꿈자리가 사나워서인지, 가벼운 숙취가 일어난 것처럼 두통이 머리를 쿡쿡 찔렀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로 향했다. 눈살을 찌푸리며 컵을 꺼내 들고, 옆에 있는 재료들에 손을 뻗었다. 커피 가루. 스틱 설탕 한 봉지. 그리고 크림을 많이. 별생각 없이 재료를 집어넣은 뒤에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려다가, 다시금 방금 꿨던 꿈이 떠올라 혀를 찼다. 몇 년 전이었다면 마시지도 않았을 이 조합이지만. 이젠 이거밖에 안 마시고 있다.

[박사님. 시에스타... 정확히는 뉴 시에스타의 입장 심사가 통과됐어요. 지금 게이트를 통과하고 있어요.]
"고생했어."

귀에 설치해 둔 통신기로 직장 상사인 아미야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커피가 담긴 컵을 들고 다시 의자로 향했다. 창문을 뚫고 오는 눈부신 햇살을 손으로 가리며 밖을 바라보니, 두 가지 색의 푸른색 비단 위로 알록달록 수놓인 풍경이 시야에 새겨졌다.

"여기도 정말 오랜만이네." 

해변 도시 시에스타. 아니, 정확히는 '전' 해변 도시 시에스타가 맞는 말일 것이다. 몇 년 전에 이곳에 방문했을 때 발생했던 화산 폭발 미수 사건으로 인해, 시장 허먼 도이코스의 결정으로 이동도시화가 진행되어 현재는 '뉴 시에스타'라는 이름으로 컬럼비아의 속령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실제로 화산도 얼마 전에 폭발하여 그 날을 기념일로 삼았다 들었다. 리유니온을 토벌하고 가는 첫 휴가였는데 거기서도 사건이라니. 다시 생각해 보면 인생에 조용한 날이 없음을 느꼈다.

로도스 아일랜드가 갑자기 시에스타에 방문하게 된 건 여름이니 오퍼레이터들에게 휴가를 주기 위함도 있지만, 명목상으론 상반기 지부 감찰을 위해서다. 세계 각지에 로도스 아일랜드의 지부가 설치되어 있는 만큼, 각 분기 및 반기마다 수뇌부를 여러 팀으로 분리해서 각 지부의 감찰을 맡게 되고, 우연히 난 시에스타 쪽을 맡게 된 것이었다. 

그 많은 곳 중에 휴양지인 시에스타로 배정되다니. 심지어 시에스타 지부의 대표라면 똑 부러지기로 유명한 메딕 오퍼레이터 실론이니 서류 관련해서 딱히 걱정할 것도 없다. 이 정도면 그래도 충분히 운이 좋은 셈이다. 한동안 기분도 영 좋지 않았는데, 이왕 이리된 거 일 끝나고 바캉스나 즐겨볼까. 

[박사님. 손님이 오셨어요.]
"손님?" 

조금 전 통신으로부터 30분쯤 지났을까. 의자에 몸을 맡긴 채 상상의 나래를 피고 있을 때였다. 단말기 너머로 아미야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손님이라. 그러고 보니 이번에 시에스타 측에서 사업 관련해서 로도스와 미팅을 가지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 했지. 근데 이상하다. 그건 내가 아니라 영업부 녀석들에게 말해야 되는 거 아닌가?

"사업 관련 미팅 외에는 손님이 없지 않아?"
[네. 그게 맞는데... 그 손님이 박사님을 뵙고 싶어 해서요.]
"나를? 내가 아는 사람이야?"
[그... 네. 박사님도 매우 잘 아시는 분이에요.]

답변에서 느껴지는 머뭇거리는 어조. 분명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특정할 수가 없었다. 시에스타에 있고, 사업 관련해서 방문했으며,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설마...?"

순간 머릿속에 한 사람의 뒷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꿈속에서도 봤던 그 모습에 살며시 불쾌감이 느껴져, 무심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애써 속으로 부정하며 미간을 짚었다. 이미 오래전의 일이지만 다시금 떠오르니 속이 쓰릴 거 같았다. 하지만 어찌 됐던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지금 그 손님은 어딨어?"
[그게... 지금 그쪽으로 간다며 방금 떠났어요. 곧 도착할 거에요.]
"이런.... 일단 알겠어."

통신을 종료하고 급히 세면대 거울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가서 바캉스를 즐길 생각에 미리 면도를 해둔지라 얼굴은 나름 깔끔했다. 남은 건 더워서 옷걸이에 걸쳐둔 후드만 입으면...

"여긴 하나도 안 변했네."

익숙한 목소리에 후드를 잡은 손이 멈췄다. 제발 아니었으면, 이라고 조금 전까지 몇 번이고 빌었는데, 그 기대는 철저히 부정당했다. 어쩐지 오늘따라 운수가 좋더라니. 모든 게 이를 위한 빌드업이었단 말인가.

발작하듯이 요동치는 심장을 제지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돌리면서 보이는 시야엔, 매우 낯익은 여성이 문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챙이 넓은 검은색 모자 아래로 반짝이는 금색의 긴 머리. 그 머리카락 사이에서 요염하게 반짝이는 에메랄드 눈동자. 백옥 같이 흰 피부를 감싸는, 정장과 수영복을 반씩 섞은 것만 같은 검은색 복장. 그리고 복장 주변을 엄호하듯이 원을 그리고 있는, 길고 풍성한 동물의 꼬리.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이 내 눈앞에 있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저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당당히 서있는 자태를.

용문 근위국의 고위 간부이자, 대부호 스와이어 가문의 영애, 베아트릭스 스와이어. 

"오랜만이야. 박사."

'과거에' 내 애인이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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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만에 명챈 들어온다. 잘 지냈냐 명붕이들아. 쓰라는 별눈나편은 안 쓰고 스와마망 후일담으로 돌아왔다. 


일단 근황부터 말하자면... 11월에 2등 항해사로 진급했음. 거기에 새로 탄 배가 일본 항로라서 스케줄이 조오오오오오오낸 바쁘다 보니 자연스레 글 쓰는 걸 못 하게 되드라. 이제 업무 꽤 적응해서 다시 글 써보려 함.


분명 전에 별눈나 편 쓴다고 말은 했었는데, 갑자기 스와마망 후일담을 쓰기 시작한 거엔 다 이유가 있음. 이번 수와이어 대사집 보고 개그지 같아서임.  원본은 츤데레 암컷어필 개오지는 마망이었는데, 수영복 대사는 조낸 드라이하고 사무적이어서 개빡쳤음. 가오~ 어디감???


이걸 보고 너무 그지 같아서 속으로 해병묘신 연달아 외치다가, 족같으면 내가 써버리면 되겠구나 하는 결론에 다다라서 급히 후일담을 쓰게 됐음. 활용하기도 조낸 난감한 수와이어 대사집을 가지고 플롯을 고민해 본 결과, '아! 얘네 둘이 실연한 상태로 시작하면 개연성이 맞겠다!'라고 생각해서 이런 전개가 되버림. 문제는 그 다음을 생각 안 해봄.


개빡쳐서 글을 싸질렀는데 이거 심히 조진 거 같다... 일단 다음 글도 짱구 굴려서 담주 내로 써와 봄.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