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런 느낌으로)


*1*


모항 어느 회의실. 딱 봐도 비밀스러워 보이는 장소에 위치한 그것은 만쥬 경비대원들의 보초를 붙여 그 비밀스러움을 더욱 배가시켰다. 몇 안되는 복도와 문 너머에선 갑작스런 추가 근무를 배정받은 만쥬들의 욕설과 귀염뽀짝한 발소리만 들렸고, 회의실에는 내부에서 발생한 소리에 특정 파형의 주파수를 의도적으로 섞어 녹음을 원천 차단하는 보안 장치가 가동되어 회의의 주체와 안건을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게 했다.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 이곳에 모인 이유는 모두가 아시리라 믿습니다. 일반 회의실이 아닌, 지휘 체계 붕괴를 대비한 비상 회의실을 사용하는

금일 안건의 중요성을 말이죠."


"소유즈 자네가 강조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고 있다. 지휘관 부모님과의 상견례에 관한 것이 아닌가?"


"논의할 내용이 또 있나요? 지휘관님의 부모님께선 저희쪽 음식 문화와는 코드가 맞는 걸로 결론이 났는데요."


"언제부터 '저희'란 단어가 샤르데나 제국만 지칭했지? 식탁 위라면 아이리스도 지지 않는다, 바스크 지방이라면 그분들 입맛에도 맞출 수 있을 테지."


"좀 닥쳐봐요 바르, 식사 대접 얘기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잘했어요."


"어디는 그 문제로 꽤나 고생중인데 여유롭나 보군? 의장으로 다리가 아작나봐야 정신을 차리겠는데."


"진정해라 비스마르크, 내가 엄, 프리히도 아니고."


"소유즈씨, 회의 자체는 반대하는건 아니지만 몇 주째 고정적으로 다뤄지고 있지 않나요?"


"좋은 지적이에요 딩안씨, 지휘관의 문화 차이 문제는 저희 중앵에서 지휘관님의 모국어에 능통한 교사진을 초빙하는걸 추진중이랍니다."


"풉, 교사진을 구하면 뭐하나요? 영어를 못해서 쓸모가 없는데."


"지휘관님의 언어와 문화에 관한 문제는 저희 유니온에서 해결하지요. 당국에게 벽람항로의 저등급 보안 정보 몇 개를 제공하고 상견례 관련

인사 파견을 받는 물밑 논의가 진행중입니다. 영주권과 가족관계 증명서 발급 등의 행정 처리도 모항에서 할 수 있겠지요."


"잠깐, 귀측의 막되먹은 예의는 뭔가요? 요크타운II..! 이 자리 또한 외교의 연장선임을 상기하세요!"


"응 진주만~"


"이이익!"


"다들 벌써부터 지휘관과의 신혼 생활에 들떴구나? 후후후, 우리를 이 작디 작은 회의실에 불렀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거지?"


끄덕.


임플레커블이 회의의 안건을 적절히 추리했고 소유즈가 작게 끄덕였다. 그녀가 모항에 입항한 후로 가장 먼저 깨달은 교훈 중 하나는 진영 대표자들의 하찮고도 시덥잖은 말싸움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자국의 이익을 그다지 대변하지도 않았거니와, 현재를 논하며 서로의 과거를 들추어 깎아내리는데 여력을 소모했다.


덕분에 지휘관과의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다룰 수 있었지만. 지휘관의 중요성에 대해 가장 먼저 역설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당연히 지휘관에게 고하여 호감을 쌓을 생각은 아니었으되, 앞으로의 가정에 있을 여러 문제와 행사들을 다루어 남편과 시부모님의 부담을 줄이려면 미리 관련 노하우를 터득해야 할 것이었다.


현재까지 가장 늦게 합류한 총기함인 자신에게 후임이랍시고 떠넘기는 의도도 있을 것이었으나, 지휘관의 아내가 되기로 한 이상 아내들간의 서열은 남편께서 정하리라 생각했으므로 소유즈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자신과 닮은 주제에 자신보다 더 열심히 임한다며 경계를 거두지 않는 저 털뭉치 언니를 제외하고. 여우가 으르렁 거리는 듯한 모습의 시나노는 자리를 위협받았다 생각했는지 회의 내용을 필사하여 검토하고 있었다.


기꺼이 회의 업무를 도와주니 이쪽에서도 적대할 이유는 없었지만. 내심 귀엽고 북슬북슬한 생물은 작은 체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도 했다.


아무튼.


"질투(1. 남을 부러워함이 부정적으로 격앙된 감정. / 2. 질(Vaginal)로 싸우는 것(鬪), 캣파이트.) 는 그만하시고들, 회의의 본론에 주목해 주시지요. 우리는 아직 시부모님의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모릅니다."


"북련의 총기함님, 주인님의 부모님의 연세가 어떤 사유로 저희 계획에 영향을 끼치는지 여쭤봐도 될련지요?"


"좋은 질문입니다, 로얄 메이드대 측 결혼 논의 전권대리 카리브디스. 시부모님의 연세에 따라 상견례의 골자가 크게 바뀌기 때문입니다."


쿠궁.




술렁술렁술렁. (존나게.)



좌중이 크게 흔들렸다. 최신예 내진 설계와 씹돼지 최전성기 포미더블의 몸무게로 인한 중력 왜곡 현상으로도 막을 수 없는 흔들림에 맞서 소유즈는 침착하게 본론을 전개했다. 인민의 피와 땀을 어떤 북련의 도가니에 쏟아부어야 할지 결정하는 최고회의로 수차례 벼려진 그녀야말로 이 일의 적임자였다.


"모두들 아시다싶이, 상견례는 지휘관님의 아내될 저희들이 시부모님을 찾아 뵙는 것입니다. 서로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중요한 자리죠."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시부모님이 머물고 계신 국가와 벽람항로 이곳 모항 사이에는 물리적으로 최소 몇천 km의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괌 모항을 경유해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거립니다."


"잠깐, 소유즈. 우리가 시부모님을... 아."


"맞습니다, 유니온 측 결혼 논의 부 참석위원 뉴저지. 시부모님이 신체적 및 그 외 기타 사유로 비행기 이용이 불가능하다면 저희가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비행기가 기각된 이상, 열차나 크루즈도 상당한 부담이 되실테니 말입니다. 대 세이렌 전선을 책임지는 진영 대표들이 동아시아의 1개 중견~중강국에 단체로 방문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십시오."


"...정치적, 군사적 무게가 상당하겠군."


"동아시아의 눈과 귀를 가리는 걸로는 어림도 없겠는데? 우리가 잠수함으로 이동하면 모를까."


"잠수함은 당국의 심기를 거스를 뿐더러, 정숙성 유지를 고려한다면 왕복하는데 1년 가까이 소요될 겁니다."


"반대로 시부모님을 이쪽으로 모시는 방안도 걸림돌이 될 요소가 많군요. 지휘관님의 고국이 개입할 여지도 있고, 이미 방문 신청 대기중인 귀빈 리스트에 대한 형평성이 지적되며, 벽람항로 회원국들이 보안 유지에 대해 항의할 수도 있겠어요."


"좋은 지적입니다 리슐리외. 하지만 두 사람만을 데려오므로 거추장스런 움직임이 줄어들기에 저희를 보는 눈도 적어지겠죠."


"요컨데, 지휘관의 부모님의 여건을 파악해서 접견 방식에 따른 리스크 관리를 먼저 해야한다는 겁니다."


"진영 전통의 식사를 대접해 드린다느니, 지휘관님의 고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서 시부모님과 내적 친밀감을 쌓는다느니, 어떻게 뵐 지도 정하지 못했는데 어불성설이군요. 젓가락질부터 연습하는게 더 도움이 되겠습니다. 심지어 접견 방식이 정해지면 상견례를 어찌 진행할지도 논의 대상입니다."


"저희가 뵐 분들은 일부다처제에 익숙한 중동 토후국의 거물이 아니라 1개 중견국, 혹은 말석 선진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입니다. 상견례 하나만으로도 당신 아들의 인생이 결정되는 중대사인데 며느리가 한 명도 아니고 십수여명이다? 여기에 섹스 파트너만 해도 곱절은 있다면? 저희의 이 상황이 바깥 세계에선 절대 일반적이지 않다는걸 여러분들은 인지하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각자의 존재를 시부모님께 각인하기도 전에 이 결혼의 정당성부터 설파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토론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서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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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각 접견 방식의 리스크를 최소화 하라는 말을 끝으로 몇 번째인지 모를 결혼 계획 회의는 끝이 났다. 급히 자리를 비우는 진영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진영은 그 자리에서 핸드폰이나 태블릿 pc로 진영 회의를 개시했다. 소유즈는 이제서야 업무에 열중하는 모항 선배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를 경계하던 시나노는, 언제 필기가 끝났는지 모를 노트를 캡처하고 가공하여 논의 밑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수많은 안건 중 한 개의 몇 단계에서 첫 단추를 멘 소유즈는 어느 한켠을 바라봤다.


"그럼, 여러분들도 말씀해 주셔야겠습니다. 지휘관님의 부모님, 저희들의 시부모님이 비행기 이용이 가능하신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