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음의 높낮이, 익숙한 말투.
또 익숙한 인사 방식, 익숙한 외견, 익숙한 눈동자, 익숙한 눈빛.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나오는 결론, 익숙한 사람.
허나 반갑지는 않은 사람.
“…….”
나는 침묵했고, 그녀는, 벨파스트는 입꼬리를 올렸다.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 그녀를 잘 알지 못하는 이라면 모를 그것이었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그녀와 내 사이가 썩 가까웠었다는 걸 나타냈다. 구태여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지난 일인 까닭이다.
“놀이는 여기까지, 돌아가시죠.”
찰나라고 느껴지는 짧은 침묵이 깨지고, 한 걸음, 벨파스트가 다가온다. 단순한 몸짓에 불과했으나, 내게는 적잖은 감정의 동요를 유발하는 거대한 날갯짓으로 느껴질 따름이었다.
“이게……얼마 만이지?”
“정확히 30개월하고도 27일째입니다.”
“……그걸 또 세고 다니는구나.”
일말의 망설임 없이 즉각 튀어나오는 대답에 표정이 구겨진다. 물론 벨파스트의 안색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하루하루, 전부 기억한다는 듯이.
“주인님이 사라진 이후, 하루하루를 곱씹으며 지냈으니까요.”
돌아오는 대답은 내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었지만,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다. 당황스러울 뿐, 다른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존재할 수 없다는 표현이 더 옳았다.
지금 내 안에 자리 잡은 감정은 공포, 그것 하나로 충분했으니까.
“……문제 될 건 하나 없었잖아.”
“아니요. 모든 게 문제입니다. 당신은, 주인님은, 이 벨파스트의 주인님이시자 벽람항로의 지휘관이시니까요.”
“절차는 모두 마쳤어, 나는 퇴역했고, 민간인이야.”
“비서함인 제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상부의 인정도 받았다고, 전부 인정받은 사안이라고.”
“제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분명 후임도 세워 놨을 텐데? 내 후배, 아주 유능한…….”
“제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마치 벽을 보고 대화하는 느낌. 두려움에 뒤로 한 걸음 물러서려 했으나, 그곳에도 벽이 있었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앞도, 뒤도, 전부, 나는 가로막혀 있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에요. 저희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까요. 갑자기 사라지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참, 짓궂으셔라.”
하나, 벨파스트가 다가온다.
“주인님이 없으신 모항은 참으로 쓸쓸해서, 아파서, 슬퍼서, 눈물이 나와서.”
둘, 벨파스트가 웃는다.
“또 주인님을 대신하겠답시고 찾아온 그것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나서, 구역질이 나서, 토악질이 나서.”
셋, 벨파스트가 손을 뻗는다. 그대로 펼친다.
가장 아름다운 빛깔만 끌어모은, 티끌 하나 묻지 않아 하얀 장갑, 지금도 그러했다.
“저도 모르게 그만.”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저 하얀 장갑은, 분명 붉게 물든 시기가 있었음을.
콰직, 하고, 소리가 울린다. 단순히 주먹을 쥐는 행위였으나, 함선 소녀의 압도적인 근력은 그것을 가능케 했다.
그 소름 끼치는 파열음을 듣는 순간, 내 후임의 말로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내 후배를 어떻게 한 거야.”
“그저 메이드로서 당연한 행위를 했을 뿐입니다. 오물을 청소했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겠군요.”
다시 또 한 걸음, 그녀가 다가온다. 이제 그녀와 내 사이는 정확히 세 걸음 남아있었다.
“감히 ‘그것’이, 주인님의 자리를 더럽히고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으니까요.”
벨파스트가 웃었다. 눈도, 입도, 전부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어그러지고 비틀어진 마음은 여전히 나만을 향하고 있었지, 웃지 않았다.
“……기어코 미쳐버렸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주인님께 미쳐버린 메이드, 참으로 아름답지 않나요?”
눈을 감는다. 눈을 뜬다. 벨파스트는 이제 내 목전에 도달해 있었다.
동공이 떨린다. 호흡이 가빠진다. 그게 전부였다. 내가 할 수 있는 행위는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그 어떤 행위도 의미 없었다. 그녀와 마주한 순간부터, 난 이미 새장에 갇힌 한 마리 새에 불과했으니까.
“장난은 여기까지, 이제 돌아가시죠.”
숨소리마저 느껴지는 짧은 거리, 벨파스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도망칠 수 없었다. 내 앞에 있는 여인은 나를 찾으러 왔고, 나를 잡으러 왔고, 나를 가지러 왔으며 또 나를.
“나의 주인님.”
사랑하러 왔으니까.
짤 보자마자 회로 와바박 돌아가서 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