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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어둠이 내리면.

사람들은 향락을 찾아 밤거리를 떠돈다.


그러나 모든 이들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홀로, 고고하게.


모나크는 수사에 착수했다.






"끄응...."


모나크가 골머리를 앓았다.

그녀의 책상에는 서류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도저히 모르겠군...."


최근, 모항에는 거대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불가사의한 음모가 스멀스멀 표면으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대체 뭐지? 약물? 환각성 약물인가? 아니,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어.'


최근, 함순이들 중 일부가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는 일이 잦았다.

처음에는 컨디션을 조절 못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가 심했다.

며칠이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크게 다치는 사람도 나온 것이다.


그리고 점점 그 규모가 늘어나고 있었다.


하나씩, 하나씩....


마치 누군가 모항 전체에 업무를 논스톱시키려는 것처럼 말이다.

아직은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조사해달라는 의뢰가 있었다.


"후.... 윤곽이 전혀 잡히지 않아."


그러나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피해자는 있되, 가해자에 대한 정보는 흔적도 없다.

애당초 피해자가 멍해진 이유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나마 공통점이 있다면 며칠 내에 지휘관과 만났다는 건데....'


그건 누구나 그러지 않나?

모항에 사는 이상, 누구나 지휘관을 만난다.

그러니 이건 공통점이라고 보기도 뭐했다.


"거절할 걸 그랬나."


까놓고 말하면 시간이 많아서 받아들였다.

어차피 그녀는 깊게 어울리는 이 하나 없는 혼자였으니까.

그러나 조금씩 후회가 될 정도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면담을 해봐야겠어.'


모나크는 즉시 피해자?들을 만나러 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 한 번 말해줄 수 있나?"

"네....."


처음 만난 건 플리머스였다. 그녀는 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말했다.


"그냥 평범한 일상이군."
"네."


플리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병상에 앉아 있었다.

멍하니 있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부딪혔던 것이다.


"그밖에 뭔가 생각나는 건 없나?"

".....지휘관님은 어디 계신가요? 보고 싶어요."

"지휘관? 지금은 업무를 하고 있을 거다."


모나크는 대강 둘러댔다. 그녀도 모른다.


"...지휘관님의 환한 미소가 보고 싶어요."

"......"


플리머스 모나크가 아닌 허공을 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멍해지면서 마치 약에 취해 망상을 보듯 먼 곳을 보았다.

보고서에 적힌 증상 그대로였다.


'시작됐군.'


모나크는 집중했다.


"노래를 불러드리고 싶어요. 지휘관님이 제 노래를 듣고 싶어 하실 텐데...."

"......왜지?"

"그야, 저의 노래니까요."

"이해가 안 되는군."

"어머나. 모나크 씨는 이런 기분에 사로잡힌 적 없으신가요? 사랑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사랑하는 자의 노래를 듣고, 눈을 마주치고 싶어하지요."

"....."


사랑이라.


모나크는 쓰게 웃었다.


"그런 이야기는 됐다. 사건에 대해서 듣고 싶군."

"...하지만 이게 다에요. 왜 사건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을 뿐인걸요."

"머리가 많이 다친 모양이군. 기억을 못 하는 걸 보면."

"아뇨? 기억은 멀쩡해요."

"......"


모나크는 메모를 그만두었다.


'텄군.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협조해줘서 고맙다. 이만 가보지."

"아아, 지휘관님의 미소가 보고 싶어......"

"......."


모나크가 미간을 좁혔다. 그녀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플리머스를 다시 보았다.


"그런데 새삼스럽군. 지휘관과는 원래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나? 몇 번씩이나 관계를 가진 것으로 아는데."


지휘관은 수많은 함순이들과 사랑을 나누었다.

아마 안 해본 사람이 적을 정도일 거다.


'나는 조금 오래됐지만....'


쓸데 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튼, 모나크는 대답을 기다렸다.


"그야 원래 사랑이란 종잡을 수 없이 설레는 법인걸요."

"갑자기 다시 불이 지핀 이유라도 있나?"


관계는 몇 년 동안 계속됐다. 권태기에 빠져도 이상할 것 없는 기간이다.

그러니 처음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저러는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화창한 날이었어요. 자료를 처분해달라고 하셔서 포격으로 전부 재로 만들었지요."


플리머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리고 기뻐해주실 지휘관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 돌아서는 순간이었어요."

"....."

"제가 실수로 미끄러져서 넘어지려는 찰나."


플리머스가 배시시 얼굴을 붉혔다.


"지휘관님이 제 허리를 안으면서 잡아주셨어요."

".....그래서?"

"네?"

"그 뒤에는?"

"그게 끝인데요?"

"......?"


플리머스가 손을 뺨에 대며 소녀처럼 꺄르륵 웃었다.


"그때가 생각나기만 하면 부끄럽고, 너무 사랑스러워서 자꾸만 정신을 놓게 돼요. 아아.. 지휘관님...."

"......"


모나크는 이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하나 싶었다.


'염장 지르는 것처럼 느껴지면 내 성격이 너무 꼬인 걸까.'


그녀는 벌써 몇 달을 지휘관과 어울리지 못했다.

순번 때문인 것도 있고, 그녀의 성격 탓인 부분도 있었다.

아무튼...


"이야기해줘서 고맙다. 그럼."

"지금 품에 안기면 틀림없이 임신할 텐데... 아아, 사랑스러운 지휘관님의 아이가 가지고 싶어요."


플리머스는 망상에 빠져서 웃었다.


임신.


자신과는 거리가 먼 단어에 모나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휘관과 만남이 줄어든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말이다.

모나크는 무슨 일을 해도 가장 우수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렇기에 어떤 일을 도맡은 며칠, 몇 주, 몇 달을 써서라도 최고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지 않으면 버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나크는 이미 한 번 버려졌었다.

그녀는 본래 킹 조지 5세급의 전함이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건조 계획은 폐기됐다.


이번이 그녀의 두 번째 목숨이자, 마지막 기회.

그렇기에 성과를 내는 것에 목숨을 걸고 있었다.


....두 번의 실패란 절대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맡게 된 탐정 일도 그런 맹락에서였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도, 우정도, 간단한 취미도 의미가 없어.'


오직 노력만이 가치가 있었다.

그렇게 업무에 집중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업무에 바빠서 직접 한 명, 한 명을 다 케어해주기 어려운 지휘관의 마음이 멀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참."


문을 닫으려는 때 플리머스가 말했다.


"뭐지?"

"저, 생리였어요."

"......?"

"지휘관님과 만났을 때 넘어졌던 것도, 그 이후에 넘어져서 머리를 박았던 것도, 생리 때문에 힘들어서였어요."

"......고맙군."


모나크는 씩씩한 발걸음으로 나섰다.

갈피가 잡히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지휘관의 생각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해가 뜨고, 날이 지고, 다시 해가 떴다가 날이 졌다.


그렇게 이틀 동안, 모나크의 집무실은 불이 꺼진 적이 없었다.


"역시."


피해자들의 자료를 조사한 모나크가 미소를 지었다.


"전부 생리가 찾아온 주기였어."


사건은 파악했다.

그러자 허무함이 밀려왔다.


"....이건 사건도 뭣도 아니었어."


이런 것에 시간을 허비하다니.....

하지만 어쨌든 원인은 밝혀냈다.

모나크는 일어나서 의뢰인에게 향했다.


"흐응~ 결국 발정기가 와서 그랬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폐하."


모나크에게 의뢰를 맡긴 건 엘리자베스였다.


"생리가 와서 지휘관과의 접촉이 평소보다 큰 영향을 끼쳤다....."

"플리머스가 다친 건 생리로 인한 컨디션 저하가 이유였습니다."

"뭐야, 사건도 아닌 일이었잖아."

"...그렇습니다."

"고생했어! 돌아가도 좋아."


엘리자베스가 시원시원한 태도로 그녀를 보냈다.


"저.... 폐하...."

"응?"

"저는,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비록, 조사한 결과는 변변찮았지만."

"응, 맞아. 정말 고생했어."

".....저의 능력을, 조금은 입증해보였을까요?"


그 말에 엘리자베스가 피식 웃었다. 그녀가 오만한 자태로 모나크를 내려다본다.

그러나 눈빛은 결코 강압적이지 않았다.


"솔직히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였어. 난해한 문제라고 생각했거든. 하찮은 일이었지만, 그 하찮은 걸 인정하고 나한테 보고하기까지는 분명 견디기 힘든 고뇌가 있었겠지."


그 말은 사실이었다.

사건의 정체가 발정기라서 기강이 해이해졌기 때문이었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너는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했어. 내가 너의 활약을 기억할 테니 안심하렴."

"...감사합니다. 폐하."


모나크는 스스로를 제왕이라 생각했다.

제왕은 여왕의 호령에는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에게 가치를 정해주는 것은 여왕과 지휘관 뿐.


사람은 홀로 서서는 자신의 가치를 알 수가 없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응, 잠을 제대로 못 잔 것 같은데, 푹 쉬도록 해. 고생 많았어."


모나크는 물러섰다.


'좋아, 이걸로 일단은 인정받았다.'


물론, 엄청난 활약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설령 아무짝에 쓸모 없는 하찮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한들 최선을 다해 임한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녀를 신뢰할 터.

급한 불은 껐다.

이제 남은 건.....


"....지휘관은 날 어떻게 여기고 있을지 궁금하군."


벌써 몇 달을 만나지 못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던데.....

과연, 지금 지휘관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당장.


'.....두려워.'


그러나 만나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두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만나러 갔을 때 지휘관의 반응이 쉬이 예상되지 않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건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장면뿐이었다.


"......."


결국, 모나크는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끄응....."


며칠 잠도 안 자고 무리했던 게 화근이었을까.

컨디션이 바닥에 떨어졌다.


"몸이.... 열이 나나?"


몸이 후끈거렸다. 숨결이 뜨겁고 열이 나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사건을 일단락한 후였다는 것이자.


"병원.....에 가야겠지...."


지독한 몸살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모나크는 아픈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전화는....."


그만두자. 직접 가는 게 나으리라.

제왕이 된 자가 몸살 때문에 사람을 부르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제왕이라 함은, 언제나 고고하게 빛나야 하기에.


"하아... 하아....."


단지 열만 나는 게 아닌 듯했다. 몸 전체가 뜨거웠고 특히 아랫배가 욱씬거렸다. 장염도 겹친 모양이었다.


"으읏...."


모나크는 비틀거리면서 의무실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이 보였다.


"입원했었다며?"

"이제 나 나았어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지휘관과 플리머스였다.


'하필.....'


모나크는 모퉁이에 숨은 채 숨을 골랐다.

정확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들키기 싫었다.

지금의 모습을 보이기도 싫었다.


야생동물은 자신의 상처를 숨긴다.

들키면 약자로 찍혀서 잡아 먹히기 때문이다.


이미 한 번 폐기됐던 그녀가 컨디션 조절도 제대로 못 하는 걸 지휘관이 알면....

버림받을 수도 있다.

다소 엇나간 생각이라는 건 그녀도 알지만, 컨디션이 안 좋아서 자꾸 안 좋은 생각만 들었다.


"바로 업무하러 가는 거야?"

"네. 그런데 지휘관님은 저를 마중나와 주신 건가요?"

"으, 으응..."

"후후후. 따로 볼일이 있으셨군요."

"미안."

"괜찮아요. 이렇게 우연히 만난 것만 해도 저에게 행운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요."

"고마워."


두 사람이 포옹하며 키스했다. 모나크는 그 장면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


"그런데 지휘관님이 직접 맞이하러 온 행운의 여성은 누구인가요?"

"모나크를 찾고 있는데, 혹시 봤어?"
"아하."


'어?'


모나크가 눈을 크게 떴다.


"5일 전인가, 찾아오셨었어요."

"그 이후로는?"

"못 봤어요."

"그럼 저 안에도 없어?"

"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 아무것도. 알려줘서 고마워."


지휘관이 싱긋 웃으며 플리머스를 보냈다.


'나를? 왜?'


모나크는 당황했다. 순간, 피식 하며 웃음이 터졌다. 기뻤기 때문이다.


'지휘관이 날 찾는다니....'


순수한 기쁨. 그러나 곧 의아함도 찾아왔다.


'그런데 5일이라니....?'


플리머스를 찾아간 건 사흘 전이었다. 이틀의 공백기가 있었다.


'그리고 보니....'


이상하게 몸에 힘이 없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계속 주저앉을 뻔했던 걸 겨우겨우 참았다.

대체 무슨 일이...


'으... 정신이.... 더는 안 되겠어. 의무실로....'


모나크가 모퉁이에서 나가려고 발걸음을 뗄 때였다.


"아....!"


휘청-


다리에 힘이 풀려 몸이 기울었다.

똑바로 설 힘이 없던 모나크는 제대로 된 낙법도 취하지 못한 채 쓰러진다.


텁-


그때 지휘관이 나타나 그녀를 몸으로 받았다.


"아..."

"모나크 찾았다."


허리를 감싸 안은 정도가 아니었다.

지휘관이 그녀를 껴안으면서 잡아주었다.

지금 모나크의 모습은 마치 연인의 품에 뛰어드는 듯했고, 지휘관은 부드럽게 그것을 받아주었다.


"지...휘관....."

"힘이 없네. 설마 이틀 내내 잠만 잔 거야?"
"이틀 내내....?"


아무것도 모르는 모나크의 반응을 본 지휘관이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엘리자베스한테 들었어. 많이 과로한 거 같다고."

"......"

"그런데 그 후로 이틀 내내 너를 찾아다녀도 만날 수가 없어서 걱정했어."

"....걱정했다고.... 나를....?"

"응."


지휘관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어디 쓰러져 있는 건 아닐지, 감기라도 걸린 건 아닐지."

"......."

"반응을 보니까 지금까지 계속 잤던 거 같네. 많이 피곤했나 봐."

"......."


모나크가 뺨을 붉혔다. 잠만 처 잔 나태한 여자가 된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몸이 뜨겁네. 혹시 몸이 많이 안 좋아?"

"......."

"열이라도 있나?"


지휘관이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마와 비교해보았다.


"음, 열은 없네. 다행이야."

"열이... 없어.....?"


모나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온몸이 뜨거웠다.

이상하게도 지휘관을 만난 직후부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화끈거렸다.


"응. 체온이 좀 높긴 한데, 이마는 멀쩡해."

"......."


지휘관의 목소리가 이상하리만치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그의 온기는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운 동시에 솜처럼 포근했다.

품에 안겨 있는 지금의 상태는 영원이 계속됐으면 했고.

동시에 여기서 더 나아간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모나크의 아랫배가 욱씬거렸다.

어쩌면 이건 감기가 아니라....


-흐응~ 결국 발정기가 와서 그랬다는 거네?


생리 주기가 찾아왔다. 모나크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지, 지휘관...."

"응."

"생각해보니,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아, 그러네. 뭐라도 좀 먹을래? 아니면 의무실에서 링거라도?"

"나, 나...."


모나크가 그의 옷깃을 꽉 쥐었다.

목이 막혔다.

입이 떨린다.

과연 말해도 될까?


두려웠다.


받아들여지지 않고 내쳐지면 어쩌나..... 무서웠다.

먼 옛날.

본래 그녀의 자리였어야 할 설계안이 폐기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처럼 공포가 들끓었다.


"나는....."

".....모나크."


지휘관이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의 목덜미에서는 향기로우면서도 야한 냄새가 올라왔다.


"아무도 널 내치지 않아."

".......!"

"듣자하니 임무를 의뢰받았다면서. 훌륭하게 완수했고."

"......그, 그렇다. 훌륭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완수했다."

"말하고 싶은 걸 말해도 돼. 앙탈부려도 되고,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해도 돼."


지휘관이 포옹을 살짝 풀고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뺨을 쓰다듬는다.


"사실, 그런 공적이 없어도 돼."

"...공이 없어도 된다고?"

"우리 둘 사이잖아. 얼마든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


모나크는 그를 빤히 올려다보다가 옅게 웃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며 그의 품에 안겼다.


"...수저를 들 힘도 없어. 그러니....."


모나크는 소심하게 자신의 바람을 고백했다.


"....함께....... 나랑..... 나랑 함께......"


뒷말은 끝내 뱉지 못했다.

그러나 뱉을 필요도 없었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지휘관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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