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일어나고 있다. 내 이해를 넘어선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발단은 이러하다. 정확히 두 달 전에 내 휴대폰에 수상한 어플, 이름하여 최면 어플.

 

흔히 창작물에서 보던 물건이라 짓궂은 누군가의 장난으로 여겼지만, 사람은 호기심의 동물, 무심코 당일 찾아온 벨파스트에게 사용해 버리고 말았다.

 

반쯤 장난이었지만, 풀려버린 동공과 내 말을 뭐든 따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무심코 확신했다.

 

“……세상에.”

 

이건 진짜라고.

 

그리고 이어, 나는 그녀와 관계를 맺었다. 여러모로 떳떳하지 못한 행위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남자의 본능인걸.

 

일반인들과는 비교하는 것이 실례인 매력을 가진 그들이다. 결국 난 이 어플을 적극 활용하며 여러 함선 소녀와 관계를 맺었고, 죄책감은 차츰 행위에서 오는 열락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게 근 두 달간의 일이다. 최면 어플은 내 일상에서 떼 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며, 고된 인생의 유일한 낙이라고 봐도 좋을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무심코 최면 어플을 킨 화면을 직접 보고야 말았다. 단순한 실수였다. 스스로 최면에 걸리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30초간의 정적, 10초간은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고, 다음으로는 작금의 사태를 파악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이 최면어플은 가짜다. 당장 내가 걸리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최면 어플을 사용해 함선 소녀들과 여럿 문란한 행위를 해왔다.

 

이를 합산하면, 최면어플은 가짜다. 하지만 함선 소녀들은 이 아무런 효과도 없는 화면을 보고 내 행위를 거부하지 않았다.

 

종합하여 내리는 결론은.

 

그들은 이것이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나와 관계를 맺기 위해 친히 어울려줬다.

 

“……염병.”

 

목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동공은 미친 듯이 흔들린다.

 

애초에 내 휴대폰이 이런 게 생긴 것 자체가 그들의 소행일 수도 있다. 아니, 깊이 생각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것도 없는 핑크빛 화면을 보며 어울릴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 지금 보니 어색한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유독 최면 상태에서도 얼굴이 붉어지는 기색이 강했던 탈린이라던가, 업무 중에도 힐끔힐끔 자꾸만 내 휴대폰을 바라보던 에기르라던가.

 

모두 알고 있었다. 내가 이 어플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례합니다. 주인님.”

 

“아, 드, 들어와.”

 

생각하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노크가 울렸다. 황급히 입을 떼느라 약간 말을 더듬는 불상사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휴대폰을 숨기는 데는 성공했다.

 

이어 끼익, 문이 열리고, 찬란한 은발의 주인공인 그녀가 들어온다. 고개를 숙이며 살짝 치맛자락을 들어 인사하는 행위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인지한 건데, 이 어플을 사용하기 전보다 고개의 각도가 낮았다. 정확히는 가슴골을 보다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어플을 사용하도록 유혹하는 모양새였다.

 

“오늘은 벨파스트가 비서함이었지?”

 

“네. 그렇습니다.”

 

최대한 담담하게, 마음의 격류를 숨기며 말한다. 벨파스트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고, 나는 긴장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일이 별로 없군요. 빨리 끝날 거 같아 다행이네요.”

 

언뜻 보기엔 정말로 일이 많이 없어 다행이라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내겐 빨리 끝내고 어플을 사용해달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분히 두려웠다.

 

“그, 그보다 벨파스트, 여기를 봐.”

 

“네? 무슨…….”

 

그렇다면 우선은 침착하게, 내 가설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야릇한 핑크색이 벨파스트의 동공을 가득 채운다. 점점 멍해지는 표정, 평소와 같았지만, 나는 달랐다. 목울대를 넘기며, 잠시 그녀를 관찰했다.

 

보석과도 같은 푸른 동공은 탁해지고, 반듯했던 표정은 살짝 풀리고, 시선은 휴대폰을 향한다. 언뜻 보기에는 정말로 최면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평소였다면 아마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몸을 탐했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사용했던 물건이니까.

 

“오늘은 조금 피곤해 보이니까. 방에 들어가서 쉬어.”

 

“…….”

 

때문에 나는, 한 가지 변수를 일으켜보기로 했다.

 

“……네.”

 

명백히, 평소보다 대답이 느렸다. 극히 찰나지만 동공에 이채가 깃들기까지 했다.

 

그리고 느릿느릿, 그녀가 방을 나선다. 끼익, 문을 열고, 문을 닫는다.

 

벨파스트가 방을 나선 즉시, 나는 황급히 달려가 문에 귀를 대었다. 혹시나 그녀가 무슨 소리를 낼까. 어쩌면 정말 최면에 걸려 그대로 방에 돌아가는 건…….

 

“……오늘은 아무 일도 없네요. 대체 왜.”

 

역시나.

 

이로써 확실해졌다. 그들은 이 최면 어플이 가짜인 걸 알면서도 내게 친히 어울려 준 것이다.

 

단순히 나와 관계를 맺기 위한 까닭으로.

 

따라서 오늘부로 나는, 이 최면 어플을 남용한 대가로.

 

“……이럴 거면 이제 그냥 강제로…….”

 

이제부터는 살기 위해 그녀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