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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상견례 성사를 위한 진영 대표들간의 회의는 다른 날 같은 장소에서 다시 진행되었다. 이전과 같은 삼엄한 경계 태세는 만쥬들로 하여금 강도 높은 불만을 제기하게 만들었고, 한편으론 진영 대표들이 미처 구워지지도 않은 달콤한 파이를 더 많이 차지하려고 헛된 싸움을 벌이는 대신 소유즈가 진행하는 회의에 협력하게끔 했다.


이전보다 협조적이고 정돈된 분위기에 소유즈가 흡족해하며 회의를 개시했다.


"...우선, 저희 정보 라인을 비롯한 북련 첩보 자산을 가용하여 시부모님의 평균 연령대와 신체 연령에 관한 추론 정보를 생산했습니다. 실 수치의 근사값으로 예상되는 정보에 따르면 시부모님께선 항공기를 이용하셔도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항공기 내부 설비의 주거성과 편의성을 대폭 향상하여 두분이 겪으시는 불편함을 최대한 줄여야 하겠지만요."


"관련 정보는 모두 대외적으로 공개된 것들로 생산하여 혹시 있을 지휘관님 고국의 외교적 문제 제기를 원천 차단했습니다. 당연히, 당사자의 정서적 안정감과 벽람항로에 대한 신뢰 유지도 도모했지요. 일체의 도청을 비롯한 개인 정보 및 개인 생활 침해는 없었다고 저 SN Sovetsky Soyuz 가 보증합니다."


그녀는 이글 유니온 측 참석 인원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이글 유니온 여러분들껜 항로에 관하여 협력을 요청드립니다."


"에, 뭘 도와주면 돼?"


"저희가 수배할 전용기에 대한 영공 통과 허가입니다. 시부모님이 타실 전용기의 항적 추적에 대한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면 동체에 탑재된 ADS-B 장치를 가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전 세계의 민간 ADS-B 수신기에 의해 위치는 물론이고 목적지까지 드러날 테니까요. 대부분의 국가들은 ADS-B 적용 여부에 따라 영공통과를 결정하니 이 방면에서 조금만 힘을 써주시면 되겠습니다." (나무위키 Flightradar24 항목 참조)


"음... 쉽게 말해 허니의 시부모님을 안전하게 모셔올려면 신원을 밝히지 않은 항공기의 영공통과를 허가하라는 거지?"


소유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뉴저지를 비롯한 요크타운 II, 키어사지 등이 눈빛을 주고받았고 그녀들의 묵언으로 합의된 내용이 곧 소유즈에게 전달되었다. 이글 유니온 측에는 조만간 전용기의 도장과 기체 번호, 승무원 인적 사항 등이 전달될 것이라는 전언이 남겨졌다. 북련의 총기함은 다시 탁상의 중앙으로 얼음처럼 예리한 눈길을 돌렸다.


"다음은 숙소와 관련 일정에 관한 것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시부모님은 모항 청사 및 사령부 인근에 위치한 외빈용 호텔에 모시겠습니다. 1개 진영의 독자 접대는 허가치 않습니다."

좌중이 술렁거렸다. 대부분은 예정된 미래와 마주하지 않으려는 몸부림과 그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울림이었다.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시부모님 외에도 고국에서 파견된 인사를 몇명 초청할 것입니다. 명목적으로는 자국민의 보호 및 영주권 처리, 가족관계서 발급 등이고, 내부적으로는 벽람항로의 저등급 보안 정보를 댓가로 상견례 진행 보조를 받는 물밑 협상을 하기 위함입니다. 시부모님 입장에서도 국가의 공무원이 나서준다면 신변을 보호하고 안심하는 느낌을 받으실 테죠."


"만일 여러분들이 각자의 진영 숙소에 모셔 독자적으로 접대한다면, 지휘관님의 고국에서 파견된 인사들이 어떻게 보겠습니까?"


망할년.


지휘관을 공동 소유하기 위해 수작을 부리다니.


회의장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소유즈의 눈썹이 미세하게 자연스럽게 떨리는 찰나의 시간 동안 여러 진영의 대변인들은 울분을 터뜨리고 빠르게 수습하며, 어찌해야 지휘관의 부모님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지 정리했다. 대체로 각 진영이 대표하는 음식들을 진상하고, 전경을 구경시켜주며, 때로는 소속 함선들의 재주를 보여주는 것들로 좁혀졌다.

"...시부모님께서 다소 곤란하시겠군."


비스마르크가 먼저 운을 뗐고,


"저희는 식재료 발주부터 알아봐야겠네요~"


딩안은 싱글벙글 웃으며 행복감에 젖어있었다. 동황 요리는 다채롭고도 같은 아시아권에서 친숙하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으리라.

"..."


중앵 측은 침묵을 고수했다. 동황이 갑작스런 경쟁자로 부상했거니와, 독자 접대가 불가능하다면 중앵 청사의 전부를 보여드릴 수가 없었다.

파벌에 따라 청사도 달리 짓는 촌극을 부린 알력다툼이 나비의 날갯짓을 타고 태풍으로 돌아온 격이었다.


"예사롭지 않네? 소유즈."


뉴저지가 싱글생글 웃으며 상체를 주욱 늘어뜨렸다. 공적인 자리가 아니었다면 곧장 가면을 벗고 본색을 드러낼 상이었다. 그마저도 매우 얇았지만. 요크타운과 키어사지도 자리에서 비롯되는 예를 적개심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었다. 소유즈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가운 웃음을 머금을 뿐이었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지휘관님의 시부모님은 수상하리만치 모국어를 잘하는 외국인 처자들에게 홀렸으리라.


"후훗, 과찬이십니다. 유니온 분들께선 바니걸이나 폴댄스 같은 다소 과한 여흥으로 시부모님을 곤란케 하지 마시길."


"로열의 메이드대도 마찬가집니다. 티타임은 좋지만 시부모님의 수행은 로열의 차례가 올 때에만 부탁드립니다."


소유즈가 혹시 모를 사태를 우려하여 당부의 말을 건넸다. 뉴저지는 웃음을 짓고 있었고 한창 회의 내용을 기록하던 벨파스트는 옅게 끄덕였다.

진영들의 고삐를 어느 정도 손에 쥔 그녀는 시부모님의 고국에서 올 인사들을 위해 문으로 나눠진 방 한개를 각 청사에 확보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논의된 행정 처리 및 통제의 용이를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이건 요청이 아니라 권고 사항입니다만. 여러분들께서 지휘관님과 시부모님을 접대할때에, 소속 서약함들을 전부 소개해드리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그분들은 평범한 시민이시니 모든 함선들을 눈에 담는 것도 벅찰 것입니다. 때로는 적절한 거짓도 필요한 법이지요. 신뢰를 쌓으려고 성급히 다가다다 그분들이 당황스러워 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이 의견에는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동의했다. 소유즈의 말을 이해했을 뿐더러, 참석자들 전부가 각 진영 내에서 시부모님을 접견할 인원으로 이미 '선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자애로운 요크타운과 헌신적인 벨파스트, 모두를 아우르는 어머니형 리더쉽을 지닌 무사시와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마저 시부모님을 뵙지 못할 서약함에게는 형식적인 연민만 가지고 저 뒷편으로 치워버렸다.


회의가 일단락되자 일련의 조치가 시행됐다. 만쥬 경비대가 들이닥쳐 회의 자료가 실린 컴퓨터와 방음 설비, 도청 방지 장치와 외부 전파 방해 장치들을 회수했다. 참석한 인원들은 모두 정밀검사를 통한 검문을 받은 뒤에야 활동이 허가됐고 이는 소유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회의실은 곧 모항에 널린 하나의 빈 방으로 돌아왔으며 그럼에도 사람 냄새를 묻히기 위해 일부 경비대가 남아 흡연을 하고 잡담하며 시간을 보냈다.


참석 인원중 진영 대표 혹은 전권 대리, 그리고 소유즈는 어느 방으로 향했다. 좀 전의 회의실보다도 삼엄한, 아예 별도의 외부 경비 인력을 배치해서 경계중인 지휘관실이었다. 경비 인력중에는 도청 장치 따위의 흔적을 찾아내는 전문가도 있었는데, 지휘관의 결혼 소식을 입수한 각 진영의 요원들이 잠입하여 남긴 눈이나 귀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소유즈 일행이 향하는 곳은 지휘관에게 순환 배치된 n번째의 집무실이었으니, 벽람항로 소속 진영들간의 결혼 경쟁 외에도 훗날을 대비해 우위를 점하기 위한 진영 정보부들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도 빈번히 일어나는 곳이 작금의 모항이었다. 당연히, 소유즈와 진영 대표들 또한 외부 경비 인력의 안내를 빙자한 통제를 받아서야 지휘관과 만날 수 있었다.


"... 여긴 무슨 일이지?"


지휘관은 꽤 초췌해 보였다. 서약에 만족하지 못하고 결혼이라는 우를 범하는 휘하 함선들에게 질릴 대로 치여 집무실에조차 마음 편히 머무를 수도 없으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모항 내적으론 함선들로부터, 외적으론 소속 진영들의 정보부는 물론 혹시 모를 콩고물을 노리는 제 3의 국가들까지 물밑 접선부터 온갖 수단을 써서 대면하려 애를 쓰니 말이다.


예로부터 결혼은 곧 가장 강력한 구속이자 동맹의 표식이었던 바, 이웃 국가들과 결혼으로 얽히고 시달린 옛날의 군주들도 지금의 지휘관에겐 갓 성인이 된 애송이가 인생의 피로함을 논하는 격이었다. 그러므로, 지휘관은 조금이라도 피로함을 짊어지지 않으려면 그녀들의 의도대로 따라주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눈은 퀭퀭하지만 오른손은 벌써 펜을 잡고 결재 승인 준비를 마치고 있다.


"늘상 고생이 많으십니다, 지휘관님."


일행 대표로 소유즈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진영 대표들의 서명은 물론 '기밀 서류'와 '승인됨' 등의 도장도 찍혀 꽤나 요란한 인상이었다. 파랗고 시커먼 잉크와 붉은 인주 사이로 선명히 보이는  '상견례 계획안 (최종)'이 지휘관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펜을 한 번 눌러서 잉크가 잘 나오나 확인하고 결재란에 본인의 서명을 기입했다.


이로써 상견례에 시동이 걸렸다.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명분들이 모여 기반이 되었다. 본인이 밀어넣은 단석으로 완성된 기반이 어떤 미래를 짊어질지 알더라도, 지휘관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적어도, 지금 보다는 편안해지리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