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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를 만지지 마십시오."


침대에 앉아서 벽을 닦던 셰필드가 벌레 보는 듯한 눈으로 그를 쏘아봤다.


"그 표정은 너무하지 않니."

"아, 해충으로 인식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세필드는 옷을 단정히 하며 일어났다.


"벽 더 안 닦아?"

"방안에 일을 방해하는 벌레가 있는 듯합니다. 그것부터 처리하고 하겠습니다."

"일을 방해하는 벌레라니. 큰일이네."

"주인님을 말하는 겁니다만."

"나?"


지휘관은 모르는 척 눈을 크게 떴다.

손바닥에는 아직도 셰필드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던 말캉한 감촉이 선명했다.

셰필드는 작게 한숨을 뱉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벨파스트가 주인님의 응석을 지나치게 받아주고 있는 듯합니다. 이대로라면 주인님은 글러먹은 인간이 될 게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아."


지휘관이 대뜸 말했다.

진지하고.

또 근엄하게.


"엉덩이를 만지는 건 내 삶의 활력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문제라고."

"....."

"사실 셰피가 팬티를 입었기에 궁금했어. 왜 갑자기 안 입던 팬티를 입었나, 하고."


본래 셰필드는 노팬티로 다니는 치녀 메이드였다.

본인 말로는 기동력을 올리기 위해서 팬티를 안 입는다는데....

바람의 저항력 때문이라면 T팬티를 입으면 되는 게 아닐까 싶지만.

어쨌든, 셰필드는 팬티를 입지 않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최근 셰필드가 팬티를 입기 시작했다.


"주인님 때문입니다."

"나?"

"자꾸만 보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뭘 보는데?"

"......"


셰필드가 그를 노려본다.


"미안, 화났어?"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 방해하신다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군요."

"미안. 나도 도와줄까?"

"주인님께서는 주인님의 업무를 하시지요. 저는 저의 일을 하겠습니다."

"응...."


지휘관은 머리를 긁적이며 방에서 나간다.

그러다가 문득, 돌아서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사과했다.


"셰피, 미안. 항상 고생해주는데 자꾸만 장난쳐서...."


몸을 반쯤 돌리며 그녀를 봤다.

셰필드는 아까처럼 엉덩이를 쭉 내밀고 벽을 닦고 있었다.

그녀의 엉덩이는 치마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

그런데..


주륵-


셰필드의 팬티가 젖어 있었다.

정확하기 보지 균열 사이가.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주인님."

"아, 아니. 그냥 고생해줘서 고맙다고. 청소도 힘들 텐데."

".....청소 임무라면 맡겨주십시오."

"응."


지휘관은 나가서 문을 닫았다.

그의 머리에는 방금 본 것이 박혀 있었다.


왜 보지가 젖어 있었을까?


또, 보지가 젖을 정도로 흥분했다면.

왜 거부했을까?


'흐음.....'


평소였다면 히히 섹스 하면서 넘어갔을 거다.

그러나 앞뒤가 맞지 않는 셰필드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다.


'혹시 내가 뭔가 실수를 한 걸까?'


지휘관은 셰필드를 관찰하기로 했다.

청소를 할 때도.

씻을 때도.

식사를 준비할 때도.


셰필드가 갑자기 왜 팬티를 입었고.

흥분하면서도 그를 밀쳐내는 이유가 뭔지.

매도하는 표정 뒤에 대체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알기 위해.







"......."


그리고 어느 날, 셰필드가 복도를 걷다가 멈춰 섰다.


"대체 언제까지 쫓아다니실 생각이십니까?"

"......."


모퉁이에 숨어 있던 지휘관이 도망치려는 때였다.


"나오시지요."


가시 돋친 목소리에, 결국 지휘관이 모퉁이에서 정체를 드러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셰필드는 공손한 자태로 돌아서서 그를 보았다.

아주 살짝,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져 있었다.

그걸 본 지휘관이 쓴웃음을 지으며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역시 화났어?"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지휘관의 머리를 긁적였다.


"그... 정말 미안한데. 요즘 셰피를 감 잡을 수가 없어."

"......."


셰필드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쭈뼛거리는 태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흔들리는 동공.


'하아.... 또 자책하고 계셨나요.'


뭐..... 이번에는 지휘관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말씀드리지요."

"....!"


지휘관이 고개를 들었다.


"최근, 지휘관님이 메이드들에게 응석을 부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 응.... 업무에 지치다 보니."


셰필드의 말은 사실이었다.

업무에 지친 지휘관을 위해 메이드들이 치마를 들추고 나선 것이다.

단순히 섹스라기보다는, 그의 힐링을 위해서.


엉덩이를 쓰다듬게 해주고.

무릎베개를 해주고.

필요하다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푹 쉬게 해주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본디 메이드란 주인을 위한 존재니까.

힐링이 필요하다면, 힐링할 수 있는 여건을 주는 것이 그녀들의 임무.

그러나 도가 지나쳤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들의 업무보다 주인님의 힐링만을 우선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딱히 누구라고 지적하시는 않겠습니다. 너나 할 거 없이 모두가 그랬으니까."

"음....."


업무에 지장이 생겼다.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다이도조차 허둥거렸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뭘 하다가 늦으셨나요?

-주, 주인님께 자장가를 불러드리다가...


메이드장인 벨파스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늦은 만큼 늦게까지 일하면서 피로가 누적됐다.


-으음.....


한 번은, 벨파스트가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벨파스트가?"

"조금 쉬라고 했으나, 그러지 않더군요. 업무를 아직 못 끝냈다면서."

"음....."

"누구의 잘못이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셰필드가 계속 말한다.


"주인님이 업무에 시달리는 건 누구나 압니다. 그 정도가 상당하다는 것도, 압니다."

"....."

"힐링이 필요하시겠지요. 주인님을 더 가까이에서 보살피는 것은, 메이드에게 있어 가장 큰 영광입니다."


당연한 일이다.

주인이 그녀들을 필요로 해줄수록 힘이 나고, 열정이 되살아난다.


"그러나 열정이 과로를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과로를 낳지요. 주인님도 아실 겁니다."

"....알아."


지휘관도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한다.

모든 함순이들을 위해.

그녀들의 안전을 위해.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업무에 임했다.


"그래서 제가 팬티를 입은 것입니다."

"......"


누가 들으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아니, 필시 그렇겠지.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셰필드였다.

농담을 모르고 매사에 진지한.

그리고 노팬티 패션에 열정과 의지를 가진 그녀기에.


그런 셰필드가 노팬티의 고집을 꺾었다는 건.

그만한 각오를 다졌다는 뜻이다.

지휘관은 그걸 알았다.


"....다른 메이드들을 대신해서 업무하는 거야?"

"대신이라는 말은 조금 그렇군요."


셰필드는 언제나 그렇듯 덤덤하고 무심하게 말한다.


"서로의 역할이 조금 바뀌었을 뿐입니다. 업무의 비중이 달라졌을 뿐이지요."

"비중이 달라졌다니..."


지휘관의 표정이 변했다.

마치, 그녀를 동정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셰피... 결국, 다른 애들이 나랑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너 혼자 일했다는 거잖아. 남들보다 배로."

"그 말은 틀렸습니다."


셰필드가 강하게 말한다.


"배로 일하는 게 아닙니다."

"무슨 소리야?"


다른 메이드가 지휘관이랑 시시덕거리는 동안 일을 한다.

그건 곧 셰필드의 담당 업무가 늘어났다는 의미였다.


"주인님을 곁에서 직접 모시는 것은 결코 놀이가 아닙니다."


셰필드가 화가 난 듯 미간을 좁혔다.

그 동안 숱한 성희롱 앞에서도 그냥 화내는 '척'만 할 뿐이었던 그녀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진심으로 화를 냈다.


"놀이가 아니라니...."

"주인님께서도 종종 다른 함순이분들의 기분을 풀어주실 때가 있지요."

"아, 응... 그렇지."

"남의 감정을 풀어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감정이란, 자기 자신도 제어하기 힘든 것이기에."

"......"

"주인님께서 유독 메이드들에게 칭얼거리시는 건, 그것이 메이드에게만 보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셰필드는 강하고, 단호한 투로 말한다.


"주인님께서 업무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른 함순이분들도 영향을 받을 겁니다."


배려심이 있는 누군가는 지휘관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무리할 거다.

마음이 여린 누군가는 지휘관이 힘들어하기 때문에 결재를 받기 힘들어 할 거다.

호탕한 누군가는 지휘관이 힘들어 하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힐 터.


"현재 모항이 사망자 한 명도 없이 이어질 수 있는 건, 지휘관님이 모든 것을 총괄하기 때문입니다."

"......"

"각개전투가 시작되면 통일성이 흐트러질 터. 그것은 곧 모두의 손해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조금 과대해석한 감이 있긴 하지만."


지휘관도 인정했다.


"그렇게 안 될 거라고 단언하기도 어렵지."

"그렇기에 현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주인님께서 메이드에게 응석을 부리고, 그로 인해 힐링 받으시는 것. 저는 이걸 모든 업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셰피....."


지휘관이 지휘관인 이유는, 그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모항은 그를 필요로 한다.

지휘관의 정신 케어는 모든 업무를 통틀어 최우선 시 되어야 한다.


"다만, 그 업무에 꼭 제가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

"다른 메이드들이 그 업무에 치중하는 만큼, 저는 다른 업무에 비중을 늘릴 뿐입니다. 이건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지, 결코 일이 두 배가 되거나 제가 다른 메이드들의 일을 떠넘김 받는 것이 아닙니다."

"......"


지휘관은 할 말을 잃었다.


"너는.... 셰피, 너는 그걸로 되겠어?"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아무런 보답도 못 받고 혼자 묵묵히 일하는 거잖아. 정말 그걸로... 괜찮아?"


셰필드가 피식 웃으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주인님."


셰필드가 고개를 들며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메이드란 대가를 바래서는 안 됩니다."

"어....?"

"저는 보답을 받고자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

"주인님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의 임무이자 사명. 그리고 저의 바람입니다."


뺨을 어루만지는 손은 따뜻했다.

손길은 부드럽고....

셰필드의 눈은 촉촉했다.


"그러니 이러지 마십시오."

"이러지 말라니..."

"제가 최근 모질게 군 건, 주인님의 그런 점이 싫기 때문입니다."

"무슨....?"


지휘관이 입을 떼려고 할 때.

셰필드가 그의 목을 껴안으며 입을 맞췄다.


"당신의 따스함과 엉큼한 장난이....."


긴 입맞춤 끝에, 그녀가 속삭인다.


"저를 응석받이가 되게 만드시니까요."

"너....."


지휘관이 깜짝 놀라서 그녀를 보았다.

그 말은....


"저 역시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셰필드가 돌아서서 나아간다.

그녀가 남긴 온기가 이상하리만치 선명해짐과 함께

바람을 타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당장 곁에 없다 한들.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한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변치 않을 겁니다.


당신은 제가 가장 사모하는 주인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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