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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은 하고 싶은 거 없어?"


리버플이 작게 속삭인다.


"하고 싶은 거?"
"리버풀이 같이 해줄게."


웃음기가 섞인 속삭임.

지휘관은 싱긋 웃으며 그녀를 본다.


"난 리버풀이랑 업무가 하고 싶은데."

"에에에-"


리버풀은 몸을 비틀어제끼면서 앙탈을 부린다.


"정말, 주인님. 리버풀은 지금 땡땡이치는 중이라구."

"업무에서 도망쳐 온 곳이 네 주인의 앞이야?"

"주인님은 혼내지 않으니까."


리버풀이 싱긋 웃었다.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심심함을 달랠... 아니, 리버플이 도와줄게!"

"흐음...."


지휘관은 미간을 좁혔다.


"그러면 하나 있긴 한데... 아주 급하고 중요한 일이."

"아하하! 역시. 주인님한테 오질 잘했어. 뭔데? 뭐야? 당연히 재밌는 일이겠지?"

"가슴을 까줘."

"응?"

"만진 다음 쥬지 존나 스윽스윽 비벼서 뷰르릇 발사해서 가슴이랑 목이랑 얼굴을 정액 범벅으로 만들고 싶어."

"아하하하!"


리버풀이 폭소를 터트렸다.


"좋아. 주인님이 그렇게 장어밥이 되고 싶다면, 그렇게 만들어 줄 수도 있어~"


리버풀이 싱긋 웃으며 살해 협박을 했다.

지휘관은 굳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거 말구. 좀 더 리버풀이랑 같이 즐길 수 있는 거 뭐 없어?"
"음....."


곤란했다.

업무가 밀려서 일이 바쁘기 때문이다.

이대로 마냥 놀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러면 간식을 준비해줄 수 있을까?"
"간식? 좋아! 장어덮밥을 가져다 줄게! 조금만 기다려~!"


리버풀이 환히 웃으면서 달려나간다.

지휘관은 생기가 넘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업무를 다시 시작했다.


"짜잔~ 리버풀의 장어덮밥이 왔습니다~! 따라란~~"


그녀가 콧노래를 부르며 세차게 들어왔다.

발랄한 천사답게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눈웃음이 완벽한 미소를 동반하며 접시를 가지고 720도 스핀을 돌면서 지휘관의 옆으로 와 섰다.


"상큼발랄 리버플의 지휘관쥬지 장어덮밥이 왔어요~!"

"....."


무슨 장어덮밥?

지휘관이 얼탱이가 없어 할 때였다.


"어머나, 발랄하게 건네주려고 빙글빙글 돌다가 소스가 튀었네."


그녀가 손가락으로 지휘관의 뺨에 묻은 소스를 훔치고 핥아 먹었다.

요염한 미소와 가느다란 눈웃음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장어덮밥을 먹으면 성욕이 들끓는다던데."

".....파워풀해진다는 말은 들어봤지."

"내가 만든 장어 덮밥으로 강화된 주인님의 장어는 과연 어떤 맛일까나~"

"......싫다고 한 거 아니었어?"

"리버풀의 가슴만을 목적으로 하는 엉큼한 손놀림이 싫다는 거였어."


그녀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지만 리버풀이 함께하는 야한 장난이라면, 좋아."

"하아... 이 몹쓸 메이드."


결국, 하루종일 땡땡이치겠다는 말이었다.

지휘관의 성처리를 핑계로.


"안 돼?"

"일단 다 먹을 때까지는 기다려줘."

"아하하~ 역시 리버풀의 주인님! 그 넓은 아량에 반해버릴 것 같아아아앙~"


그녀가 지휘관을 와락 끌어안았다.


"먹을 때 앵겨붙으면 곤란해."

"그럼 이렇게 해야지."


리버풀이 책상 아래로 들어갔다.


"주인님은 리버풀의 장어를 먹어."


지익-


지퍼가 내려가고, 팬티가 벗겨진다.


"리버풀은 주인님의 장어를 먹을게."


그렇게, 추잡스러운 식사가 시작됐다.






"힘이 넘치는 것도 곤란하네."


지휘관은 침대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의 엉덩이 뒤에는 알몸이 된 리버풀이 이불을 덮고 잠들어 있었다.

거의 7시간 가량 섹스만 해댔다.

당연히 업무는 손도 못 댔고.

이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지휘관도 살짝 피곤한 찰나였다.


끼익-


문이 열리며 벨파스트가 들어온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주인님."

"....알고 있었구나."


벨파스트가 리버풀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교성이 밖까지 들렸거든요."
"미안."

"아니에요, 주인님. 그보다 필요하신 건?"

"음, 홍차 한 잔만 줄래? 업무에 집중하고 싶어서."

"알겠습니다."


벨파스트는 고운 자태로 인사하고 나갔다.


잠시 후, 방안에는 끈적한 정액 냄새 대신 진한 홍차 내음이 널리 퍼졌다.

소리는 지휘관의 펜 놀림에 따라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전부였다.

리버풀은 아주 깊이 잠들었는지 작은 숨소리만 낼 뿐이었다.


'평화롭네.'


지휘관은 홍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리버풀을 보았다.

업무는 많지만, 일에 치일 정도는 아니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느끼는 이런 정적은 쓸쓸함보다는 정겨움이 묻어났다.


'이 평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잔잔한 일상이 좋다.

고요한 평화가 좋다.

약간의 일탈도... 좋다.

이걸 영원히 이어갈 수만 있다면.


그래, 영원히.


"잘 자, 리버풀."


지휘관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볼에 입을 맞추려고 했다.


"이얍!"


그때 리버풀이 벌떡 일어나 그의 목덜미를 꼭 껴안으며 키스했다.


"읏!? 뭐야, 안 자고 있었어?"

"설마 주인님이 안 자는데 메이드가 잘까."

"...입에서 흐르는 침이나 닦아."

"아하하하!"


리버풀이 침을 닦았다.

살짝 풀린 눈동자.

베개에 눌려서 붉어진 뺨.

누가 봐도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난 몰골이었다.


"화났어?"

"설마. 자는 동안은 조용해서 좋았어."


농담이었다.

....절반은.


"주인님."


리버풀이 드물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빤히 바라본다.


"응."

"주인님은 땡땡이치는 메이드라도 좋아?"

"좋아."

"사랑해?"

"사랑하지."

"......후후후."


리버풀이 두 팔을 벌렸다.

지휘관은 피식 웃으며 달려들어 그녀를 넘어뜨렸다.

두 사람은 침대에서 뒹굴다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누웠다.


"평생 이렇게 평온하게 있고 싶다."


리버풀이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러게."

"주인님."

"응."

"주인님은 오래 살아야해. 내가 심심하지 않도록."

"물론이지."

"주인님이 아니면 내 발랄함을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까."


이번에는 지휘관이 그녀의 뺨을 쓰다듬는다.


"물론이야. 함께할게. 영원히."


리버풀이 환한 미소를 그렸다.

그 미소는 거대한 행복을 품었다.

미래의 걱정이 전혀 없는, 그런 행복을.

그리고 그 미소는 이어졌다.


....수십 년이 지날 때까지.






"전쟁의 시대였지."


백발의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 노란 석양을 보았다.

그러나 그 노인의 심지는 굳었다.

얼굴이 주름졌어도 눈빛은 여전히 강렬했고.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여전히 빛을 발했다.


"죽음의 시대였어."


지난 날을 되돌려보는 노인의 옆에는 한 젊은 메이드가 있었다.


"아뇨.... 구원의 시대였어요."


그녀는 다소곳한 자세로 서서 노인의 곁을 지켰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그랬을까.

이 옆자리에 위치한 지.....

자그마치 수십 년이 흘렀다.


"구원?"


지휘관이 묻자 리버풀이 옅게 웃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보조개 같은 작은 주름이 져 있었다.

노안으로 생근 주름은 아니다.

지난 세월의 흔적이었다.


"주인님은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하셨지요."


리버풀이 잔잔한 목소리로 말한다.


"저희는 구원을 받았어요."

"......"

"당신이 말씀하신 전쟁으로부터."

"그런가?"

"네."


단호하고 확실한 대답이었다.

리버풀은 성장했다.

몸도, 그리고 마음도. 또한 정신도.


"구원이라....."


그리고 지휘관은 노화했다.

둘의 첫 만남부터 성장한 상태였던 지휘관에게는 리버풀과는 다른 의미의 세월의 흔적이 남았다.


"그렇군."

"....당신은 어떠셨나요?"

"나?"


노인이 비죽 웃었다.


"나는 전쟁에서 태어나, 전쟁에서 살아왔지."

"......"
"그리고 그 전쟁을 끝낸 것도 나야."

"......"

"...너희 모두가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지."


노인은 여전히 석양을 보고 있었다.

한 발작 뒤에 물러서 있던 리버풀은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는 듯했다.

후련하면서도 뿌듯한, 그러면서도 잔잔한 미소를 지은 백전노장의 표정이.


"나 역시 구원 받았소. 모두에게."

"...그렇군요."


리버풀은 미소를 지었다.


"저희는 서로를 구원해준 셈이네요."

"그렇겠군."

"나의 주인님."


리버풀이 지휘관의 휠체어 옆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살며시 쥐며 세월의 흔적을 느꼈다.

그의 손에는 젊음의 탄력을 대체한 주름이 있었다.


"당신이야말로."


지금 지휘관을 올려다보는 리버풀의 눈에 담긴 감정은 단순한 주인과 메이드의 것이 아니었다.

그 이상의 존재를 보는 듯했다.


"저희의 구원자세요."

"....그런가."


노인은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절대 리버풀을 바라보지 않았다.

휠체어의 뒤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수많은 기척이 느껴짐에도.


"아름답군."


주홍빛의 석양이 붉게 문든다.

피를 연상케 하는 불길한 색은 아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아침 햇살 같은 석양이었다.


"....당신도요."


노인은 줄곧 석양을 보고 있었다.

리버풀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끝이 오고 있다.

석양과 함께....


"....리버풀."

"네."

"....땡땡이치는 지휘관이라도 사랑해?"


돌연, 리버풀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지휘관의 표정이 보였다.


대체 얼마나 오래된 일일까.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을 옛날의 일.

상큼하고 발랄했던 그녀가 철들기 전에 있었던.....


지금 이 순간.

리버풀은 그때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랑해?"

"...물론이죠."


리버풀은 쓰게 웃으며 지휘관의 뺨을 쓰다듬었다.


"물론이에요. 좋아해요. 사랑해요."

"....조금만 놀다가 올게."


지휘관이 웃는다.

그 미소는 노인의 미소일까.

젊은 날의 미소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늦게 오면 찾으러 갈 거야."


리버풀이 미소를 지었다.

입가에 주름졌던 주름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기다릴게."


이번에는 지휘관이 그녀의 뺨을 쓰다듬는다.

두 사람이 따스한 온기와 함께 따스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주인님?"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과 함께 지휘관의 몸에 힘이 빠졌다.

마치 바람이 그를 데려가는 것처럼.

마치... 바람을 타고 땡땡이치러 도망간 것처럼.


"......"


긴 침묵이 흐른다.

휠체어 뒤쪽에 서 있던 수많은 여자들이 눈물을 훔쳤다.

벨파스트. 비스마르크. 요크타운.... 운젠.....


모두의 구원자가 방금 땡땡이를 치려고 떠났다.

그러나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영원처럼 길었던 세월의 끝.


찬란할 정도로 빛나는 석양의 축복 아래에서.


모항의 큰 별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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