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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걸 받아줬으면 해."


지휘관이 초대장을 내밀었을 때, 노시로는 싸늘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편지인가요."


노시로가 편지를 받았다.

지휘관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기 위해 침을 꿀꺽 삼켰고...


찌익-


편지가 찢어졌다.


"어.....?"


후두둑.


그의 눈앞에, 찢긴 편지가 벚꽃처럼 휘날렸다.

시든 벚꽃처럼 떨어지는 편지의 잔해 너머로 노시로가 보인다.

싸늘한 사신과도 같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망연자실한 그에게, 노시로가 다가와 귓가에 속삭인다.


"당신을 죽이겠어요, 조센징."

"......!"


노시로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지휘관은...


"기, 기다릴게! 날 죽이러 와줘."


노시로의 손목을 잡고 그렇게 말했다.

기다리겠다고.

자신을 죽이겠다고 선언한 사람에게.


죽을지라도 그녀가 좋다는 걸까?

정상이 아닌 반응이었다.

그런 비정상적인 사고에, 노시로도 마냥 무시할 수많은 없었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살짝 뒤돌아본다.


"......."


노시로는.......







"언니. 내일 지휘관의 생일이라는 거 아세요?"


내일, 지휘관의 생일이 온다.

당연히 함내의 모든 인원이 들뜬 날이었고, 노시로의 동생 사카와도 그랬다.


"알고 있어요...."

"무슨 선물을 할지 어어엄청 고민되는 거 있죠!"


사카와가 밝게 웃으며 말했지만, 노시로시로는 그럴 수 없었다.


"언니는 뭘 선물할지 고민해두셨나요?"
"아직이에요...."

"어머어머? 언니. 선물은 미리 정해주셔야죠."

"사카와도 아직 안 샀지 않나요."

"저야~ 저 자체가 선물이기도 하니까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구요~"


사카와는 꿈에 빠진 소녀 같은 말을 뱉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아아~ 지휘관의 품에 꼭 안기면서 사랑해달라고 속삭이고 싶어라~ 그러면 푹 빠져서 바로 침대로 절 데려가 푹샥푹샥 할쨕핥쨕하면서 마구 탐해주실 텐데 말이에요."

"......"


밝은 성격의 동생과는 달리, 노시로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동생의 말을 듣고 가만히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언니."


그런 노시로를 가만히 바라보던 사카와가 옆에 불싹 나타났다.


"선물 생각하고 계세요?"

"네..."

"제가 도와드릴 순 없을까요?"

"......"


노시로는 고민했다.

사실, 둘중에 지휘관을 더 잘 아는 건 사카와였다.

노시로는....

지휘관과 그닥 친분을 쌓지 못했다.

원인은 그녀의 성격이었다.


"언제까지고 수동적이면 다가갈 수 없어요. 지휘관은 한꺼번에 수백의 여성을 상대해야 하니까."

"......알고 있어요."

"그러엄~ 조금 더 주도적으로 나서셔야죠!"

"....."


노시로는 그저 옅게 웃을 뿐이었다.


"저도 적극적으로 행동해요."

"네. 사무적인 태도로요."

".......저는 사카와랑은 다르니까요. 그 이상으로 다가가는 건 저에게....."

"그런 생각이 잘못된 거예요!"


사카와가 따끔하게 지적했다.


"다가가지 못해서 실패하는 게 아니에요."
"뭐라고요.....?"

"언니보다 더 조용하고 정적인 분들도 지휘관이랑 사랑에 빠지잖아요? 언니한테 부족한 건 적극적인 게 아니에요."

"......?"


사카와는 평소에도 이런 쪽으로 열을 올렸다.

하지만 오늘은 묘하게 평소보다 더 그러는 듯했다.


"사카와는.... 줄곧 저랑 사카와를 비교하잖아요."

"에이, 언니. 그건 그냥 지휘관의 반응을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사카와는 지휘관 앞에서 노시로를 자주 언급했다.

그럴 때마다 노시로는 부끄러웠고....

솔직히 말하면 약간은 질투도 났다.


"전 언니를 정말정말 좋아해요. 당연히 언니도 행복하기를 바라죠. 언니도 그렇잖아요?"

"......."

"후후훗."


사카와가 아예 그녀의 옆에 앉았다.


"관심을 끌고 싶을 때 가장 확실한 건, 컨셉이에요, 언니."

"컨셉.....이라고요?"


노시로가 흥미를 느꼈다.


"저는 일부러 언니의 질투를 유발하는 요염한 동생을 연기하고 있어요. 그게 지휘관을 더 불끈거리게 할 걸 아니까."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어요."


지휘관은 불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부드러운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우유부단한 사람은 아니다.

사카와가 선을 넘으면 한 소리 할 성격이다.


"그것 또한 제가 바라는 바인걸요?"

"......."

"저를 소중히 여겨주시는 만큼, 언니도 소중히 여긴다는 거니까. 만약 지휘관이 그 일로 절 혼낸다면, 저는 그 점을 말하면서 더더욱 지휘관의 품속 깊이 파고들 거예요."

"......"

"어떤가요, 언니? 컨셉이라는 거, 상당히 괜찮지 않아요?"


노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그럼..... 컨셉이라니, 어떤 컨셉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후후후. 제가 다 생각해둔 게 있죠."


사카와가 계획을 말했다.


"그, 그건... 너무 지나친 게 아닌지...."

"언니."


사카와가 미소를 짓는다.


"지휘관을 믿으세요."

"믿으라니...."

"지휘관님은 다 알아요."

"......"

"그걸 알기에, 저희도 이렇게 나아갈 수 있는 거고요. 저를... 아니, 지휘관을 믿으세요. 언니."


노시로시로는 불안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었다.


"알....겠어요. 사카와의 말대로 해보죠."







"노시로, 여기... 이걸 받아줬으면 해."


그날 오후, 지휘관이 편지를 건넸다.

초대장이었다.

다만, 생일 파티의 초대장이 아니었다.


'이건.....'


보다 더 은밀한 초대장.

1대1로 만나는 데이트의 초대장이었다.


'설마 지휘관님이 먼저 행동하실 줄은....'


지휘관은 특별한 날마다 한 명을 콕 집어서 부르곤 했다.

발렌타인 데이가 특히 그랬는데,

생일날에도 몇 명에게 초대장을 보내 정을 쌓길 즐겼다.

올해는 그 대상이 노시로였던 것이다.


"......."


기뻤다.

순수한 기쁨이 자궁에서부터 차올라 심장과 머리를 달궜다.

하지만....


-이런 만남은 1회성으로 그쳐요! 보다 확실한 인상을 심어서 관계를 오래 지속하는 게 필요해요!


사카와의 조언대로 지휘관의 뇌리에 박을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는 그저 초대를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저 데이트를 즐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좀 더 확실하게 저를 기억해줄 수단이 필요합니다.'


노시로도 그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일을 열심히하면 무엇하나.

그것이 고작인 것을.


홀로 사모하면 무엇하나.

그것이 전부인 것을...


수백의 함순이가 홀로 사모하고 있고.

수백의 함순이가 모두 열심히 일한다.


지금 상태의 노시로는 지휘관에게 있어 수백의 함순이 중 하나에 불과하다.

개성이 없는, 그저 존대를 하고 동생을 살짝 질투하는 뿔 달린 여자애.

그게 지금 노시로의 위치였다.


'좀 더... 저를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노시로는 결의를 굳혔다.


"편지인가요."


지휘관이 침을 꿀꺽 삼킨다.

그도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휘관의 모든 신경이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바로 지금이 클라이맥스였다.


찌익-


노시로는 편지를 찢었다.


"어.....?"


지휘관이 탄성을 뱉을 때, 노시로의 마음도 찢어지는 듯했다.


'죄, 죄송해요.... 지휘관님....'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어졌다.

그녀는 계속 밀고 나간다.


후두둑.


찢긴 편지 조각들이 벚꽃처럼 휘날렸다.

시든 벚꽃처럼 떨어지는 편지의 잔해 너머로 지휘관이 보인다.

사태가 이해가 되지 않아 당황한 표정이었다.


망연자실한 그에게, 노시로가 다가가서 속삭인다.


"당신을 죽이겠어요, 조센징."


사카와가 권한 컨셉이 바로 이것이었다.

한국인을 혐오하는 일본인 컨셉.

마침 국적도 똑같다.

과연 먹힐까?


노시로는 결과를 알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그 말만 뱉고 지휘관을 재빨리 스쳐 지나간다.


텁-


그때, 지휘관의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기, 기다릴게! 날 죽이러 와줘."


등 뒤에서 지휘관이 외쳤다.

분명히 말했다.

기다리겠다고.

자신을 죽이겠다고 선언한 사람에게.


노시로 큰 충격을 받았다.

슬픔과 기쁨.

죄송함과 감사함.

걱정과 안도가 동시에 느껴졌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췄고, 가만히 뒤돌아서 그를 보았다.


"......."


노시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어떤 말도 뱉을 수가 없었다.


지휘관이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꼭 와줘.


그가 인자한 미소를 지어주며 꼭 오라고 입모양으로 속삭였다.


"........"


그녀는 지휘관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떠났다.


'알아주시는군요.'


사카와의 말이 맞았다.

지휘관은 알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들켰던 걸까요.....?'


어쩌면, 사카와가 지휘관 앞에서 굳이 그녀와 자신을 비교했던 이유가 이게 아니었을까?

감정을 먼저 전달하지 못하는 언니를 위해서 은근슬쩍...

지휘관에게 언니의 마음을 알려준 거라면....

 

"후훗....."


노시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복도를 걸었다.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사카와를 찾았다.

그러나 방에는 이미 없었다.


편지도, 어디를 나간다는 말도 없이 홀연히 사라졌다.

평소라면 조금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알았다.


'저를 배려해준 거였군요. 사카와.'


노시로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 깨끗이 몸을 씻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차디찬 컨셉의 가면을 쓰면서 감정을 다스렸다.


"왔어?"


약속 시간이 됐을 때, 지휘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 몸에 그 더러운 손 대지 마세요. 조센징."

"하하."


노시로의 차가운 말에도 지휘관은 웃었다.


"예쁘네."

"......당신도 그런대로 봐줄 만은 하네요."

"고마워."


두 사람은 어긋난 대화를 하며 길거리를 걸었다.

모순된 표정으로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뒤틀린 표현으로 오늘의 즐거움을 표했다.


"조센징이라도 이런 운치를 아시는군요."

"당연하지. 키 작은 쪽바리년아."

"흥....."


어처구니없는 말을 뱉으며,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오늘의 두 사람은 어제의 두 사람보다 더 가까운 듯했다.


혐오라는 장벽을 사이에 뒀으나, 마음은 그 장벽을 뚫고 서로 맞닿아 있었다.


"지휘관님....."

"응?"

"......"


노시로는 말하지 않는다.

지휘관은 묻지 않았다.


"......"


부드러운 정적이 흐름과 동시에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와 함께 벚꽃이 휘날리며 두 사람을 감싸듯 회전했다.


'어.....?'


우연이었을까?


노시로는 벚꽃 사이에서 찢어진 편지 조각을 보았다.


제대로 읽지도 않은 편지가 바람을 타고 두 사람 주변을 감쌌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게 된 두 사람을 축복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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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이었나 널 죽이겠다 그거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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