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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버려줘."


주인님이 피 묻은 붕대를 건넸습니다.

저는 바로 반응하지 못하고 아차 했습니다.


피가 묻은 붕대도.

감정 없이 버리라는 그 목소리도.

저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으니까요.


"다이도."

"아, 네!"


저는 정신을 차리고 피 묻은 붕대를 건네 받았습니다.

그제야 보였습니다.

주인님 앞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시리우스가.


"주인님.... 무사하신가요...?"

"바보 같은... 대체 왜 그런 거야."


지휘관이 자책하며 시리우스를 내려다봅니다.

두 사람이 교환하는 눈빛은 아득하고.. 아련하기 그지없습니다.


"그야....."


시리우스가 서글프게 웃습니다.


"저의 자랑스러운 주인님이시니까요."

"바보 같은...."


주인님이 비통한 심정으로 고개를 떨구셨습니다.


"다이도. 새 붕대를 가져다 줘, 그리고 뜨거운 물이랑 마취를."

"네, 주인님...!"


저는 서둘러 떠납니다.


맞습니다.

전쟁입니다.

그 전쟁 속에서, 저희는 항상 주인님의 곁을 지켰고.


.....저희의 본분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심지어 그 덜렁거리던 시리우스가.


'방금 주인님의 눈빛....'


그러나 어떻게 돼먹은 걸까요... 저란 메이드는.

이 순간에도 시리우스를 질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쓰레기만도 못한 천한 메이드에요....'


눈물은 흐르지 않으나.

마음이 흘러내립니다.


저는 상처 없이 멀쩡하나.

가슴에 구멍이 뚫린 기분입니다.


시리우스의 상처가 죽을 만큼 깊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저는 안도하는 동시에 질투했습니다.

어찌도 이리 못났을까요.


....목숨을 바친 이에게 경의를 표하지는 못할 망정.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눈앞에서 여동생의 복부가 절반이 사라지는 걸 봤기 때문일까요.


포탄이 날아왔을 때 정작 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저의 목숨을 바치는 행위가...

주인님에게 버려지는 행위라 여겨졌기 때문일까요.....?


저는 주인님의 죽음을 앞두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해냈습니다.


저는 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지켜냈습니다.


시리우스는 살아남았고...

저는 살아있습니다.


그 사소한 단어의 차이가....


저는 망가뜨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진격. 진격해!"


명령을 내리시는 주인님과.

주인님의 지시에 응답하는 수많은 여걸들.


지금 이 순간.

당신과 그분들은 전우의 마음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저는 없습니다.


"이걸로 이 구역은 정리됐어, 다음은?"

"서쪽에 소요가 생겼다고 들었다."

"비스마르크가 서쪽을 맡아줘."

"동쪽에서도 적이 진격해오고 있어."

"요크타운이랑 호넷이."


그렇게 지휘를 내리시는 동안, 저는 주인님의 등을 보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과 멀어진 기분.

투명한 장벽이 저와 주인님 사이를 가로막은 기분입니다.

하지만 알아요.


그 장벽은 저의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걸.


"병참의 호위가 부족합니다. 옆구리가 뚫린다면....."


주인님이 잠시 고민하십니다.


"내가 갈게."

"뭣?"

"잠시 재고를....."

"나 혼자 간다는 건 아니야. 다이도."

"네, 네...! 주인님."

"모두에게 말해둬. 전투 준비야."

"네... 주인님."


결국, 메이드들도 전선에 나섭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전에 없던 대 혼전이었기에.


어쩌면... 사망자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로 이 전쟁은 중요했고, 거셌습니다.


"잘 들으세요. 모두."


벨파스트가 모두에게 말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인님을 지켜야 합니다."

"......"

"저희의 목숨을 버리더라도."

"하지만 그건....."

"물론, 주인님은 슬퍼하실 거예요. 절대 허락하지 않으시겠지요."


메이드장께서도 편치 않은 표정으로 말합니다.


"다만, 목숨을 바친다면 그건 제가 가장 먼저입니다.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거랍니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지만 분위기는 무겁습니다.


"자, 주인님을 지켜드리러 가요."

"네."


그렇게 메이드대가 출동했습니다.

임무는 병참선 및 주인님의 호위입니다.

잘 해낼 수 있을까요?


-동쪽 이상 무.

-서쪽을 주시하라.


처음에는 순조로운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경고 대로, 옆구리를 습격해올 가능성이 있기에 신중했습니다.

경계를 철저히 했습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겁니다.


적들이 마구잡이로 공격한 건.


퍼퍼퍼펑-!


포격이 시작됐습니다.

무차별적인 공격.

물론, 저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반격! 반격하세요!"

"전투기! 전투기가 폭탄을 투하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격추 시켜, 빨리!!"


전투기와 대포가 우박처럼 쏟아집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쟁이었습니다.


"적의 공격이 너무 거세요, 후퇴를....!"

"안 돼요! 막지 못하면 전방의 전선이 고립됩니다!"

"큭.....!"


포탄이 터집니다.

다친 동료가 바다에 빠집니다.

병참선 중 하나가 피격 당해 소중한 물자와 식량이 바다로 가라앉습니다.


"밀리고 있어요, 이대로는-"

"곧 주인님의 지시가 내려올 겁니다, 그때까지 모두 버티세요!!"


메이드장이 외쳤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벨파스트, 다이도!!"


주인님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황의 긴박한 상황 때문일까요.

절대 전선에 드러내서는 안 되는 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적의 중심을 끊어줘! 지금이라면 가능해!"


주인님이 적의 진영의 중심부를 가리키셨습니다.

아군이 밀리는 것에 신경이 쏠려서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돌파구.


주인님이 빛을 밝혔고.

저희 나방들은 빛을 향해 몰려듭니다.


"다이도! 저와 함께 가요!!"

"네, 네....! 다이도, 갑니다!"


저는 메이드장의 지시를 받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때였습니다.


"지휘관을 죽이면 끝이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볼 지어니.


적측의 지휘관이 주인님을 봤습니다.

거대한 총포의 시커먼 구멍이 주인님을 바라봅니다.

화약이 타들어갑니다.


"안 돼애애애!!"


목이 터져라 절규했습니다.


'총포를 쏴서 맞추면?'


빗나가는 순간 주인님이 다칩니다.

한 발의 기적에 모든 걸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 확률 낮은 기적이 발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폐허로 돌아갈 것이기에.


'가장 안전하게 주인님을 지킬 방법은......'


그때 시리우스가 떠올랐습니다.

포격에 맞아 복부가 절반이 사라지고.

피가 주인님의 온몸을 적시는 그 장면이.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건 또 다른 생명입니다.


"다이도, 갑니다! 주인님 다이도가 가요!!"


저는 비명을 터트리면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벨파스트가 뒤에서 저를 불렀고.

주인님이 그러지 말라고 저에게 외칩니다.


그러나 들리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제 눈에 보이는 것은 적의 총포와, 주인님을 지키기 위해 달려갔던 시리우스의 등 뿐이었습니다.


과거가 펼쳐지고.

과거 속 시리우스의 위치에 제가 섭니다.


"다이도!!"


주인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저의 등을 보고 계시는 걸까요?

제가 시리우스의 등을 봤던 것처럼?


"주인님....."


저는 몸을 날리면서 살짝 뒤를 돌아봤습니다.

이제 보입니다.

저만을 봐주시는 주인님이.


그러나.


저는 주인님의 총애를 받을 자격이 없는 천한 메이드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스스로를 바침으로써 죄를 씻는 것이겠지요.


시리우스....


"질투심 많은 저를 용서해주세요."


적이 포탄을 쏩니다.

포탄이 불을 뿜는 그 순간, 메이드장의 공격이 적을 휩쓸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발사 준비를 끝낸 포탄을 치우지는 못했습니다.


콰아아앙-


포는 필연인 것처럼 발사됐고.


다행히 포탄의 궤적과 주인님 사이에는 제가 있었습니다.


...붉은 꽃이 피는 오후였습니다.







".....!"


아.....


".....!! ...!"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소리일까요.


신기한 기분입니다.

굉장히 다급하게 몰아치는.....

그러면서도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이도...!!"

"아......."

"다이도..!!"


어느 순간, 저는 눈을 떴습니다.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 있다가 부상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수면에 올라오는 그 순간 정신이 들었고.

저의 곁에는 주인님이 계셨습니다.


"....주인님?"

"다행이다, 정신이 들었구나."

"아.... 주인님....."


눈을 뜬 곳은 병상이었습니다.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시리우스처럼요.


그리고 다행입니다.


'무사하셨군요, 주인님.'


저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마음 한편이 다소 편안해졌습니다.

그러나 응어리진 자괴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제 괜찮아.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났-"

"왜.... 왜 다이도를 버리지 않으셨나요....."

".....무슨 소리야?"

"저 같은 천한 메이드는.... 자격 없는 메이드는... 피 묻은 붕대처럼... 버려져야 마땅한 것을..."


주인님이 미간을 오므리십니다.


"다이도."


따스한 손길이 제 뺨을 쓰다듬었습니다.

왜 이리도 따스한 건지....


"네....."

"임무를 다 한다고 해서 버려지는 건 아니야."

"......."

"피 묻은 붕대는 빨아서 다시 쓰면 돼."

"......하지만 저는...."

"네가 무얼 느꼈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드럽고 따스한.... 그러면서도 깊이 슬퍼하는 목소리입니다.

시리우스를 대하셨을 때처럼요.


"네가 다치면 내가 다친 것처럼 아파."

"......."


주인님이 눈물을 흘리십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저의 손을 잡고서.


"시리우스도, 너도. 내 곁을 떠나지 말아줘."

"주인님.....?"

"날 두고 먼저 가지 말아줘. 제발."


저는 놀랐습니다.


지금 주인님의 감정....

저도 잘 아는 감정이었습니다.


'제발 다이도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실수할 때마다 생각했던 말입니다.

주인님께 미움 받을까.

주인님께 버려질까....

두려웠습니다.


허당인 시리우스가 주인님의 총애를 받는 게 질투 났던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총애를 받기 위해 완벽해지고자 했던 저였기에.

실수를 저질러도 예쁨 받는 시리우스가 질투 났습니다.


그리고 방금 느꼈습니다.

저와 주인님은.....

어쩌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이런 저라도... 괜찮으세요? 주인님이 모르셔서 그래요. 저는.. 저는 정말로 천하고 추악한..."

"다이도."


주인님이 조용히 기도합니다.


"내가 지휘하는 이유는, 너희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야."

"......."

"살아서 곁에 있어줘. 너도, 시리우스도. 모두 다."

"......."

"살아서 같이 나아가야지. 만약 죽는다면, 그건 우리 모두가 함께가 아니면 안 돼."


얼굴이 뜨거워집니다.

그 온기를 식히는 물이 눈가에서 흘러내렸습니다.


"정말.... 정말 이런 다이도라도 괜찮으세요...?"

"그런 너니까 좋은 거야."


주인님이 저를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말해, 웃음이 멈추지 않는 기분이었습니다.


"시리우스도 널 엄청 걱정했어."

"......시리우스가....?


문득,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옆을 보니 시리우스가 병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함께 지켜내요."


저는 놀랐습니다.

숱한 저의 질투를 분명 느꼈을 터.

그럼에도 시리우스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렇군요...'


질투를 느낀 것도.

좌절한 것도.

버려질까 두려워했던 것도.

모두 저의 감정에서 비롯된 환상입니다.


"네....."


저는 한 손에 주인님의 손을.

다른 손에 저의 여동생의 손을 쥐었습니다.


"함께... 지켜내요. 저희 모두."


바깥에서는 벚꽃이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그 흐름을 따라 환호가 들려옵니다.

병참선을 지켜냄으로써 최전방에 안정적인 물자가 보급됐다고 합니다.


저희는 승리했습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

창밖에서 휘날리는 벚꽃을 보며.


저희 세 사람.

서로의 마음을 잇습니다.


서로를 생각하는 이 마음으로.

누구 하나 먼저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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