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더기나 쌓여 있던 서류 더미를 적당히 처리하고, 한 숨 돌릴 겸 생수병을 입으로 가져가던 스위프트슈어가, 지휘관의 느닷없는 성희롱에 마시던 물을 그대로 뿜고 말았다.


"지휘관! 그... 그게 대체..."


"하지만 슈어는 찌찌가 큰 걸."


"네?! 아뇨... 저 따위가... 아니, 그게 아니라!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말씀은 하면 안 되는 거예요...!"


"하지만 큰 걸 크다고 말하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냐. 나만 알기는 너무 아까우니까, 당장 밖에 나가서 전력으로 외치고 와야겠다."


"와아앗!!! 잠시만요! 그러지 마세요!"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뛰어나갈 것만 같은 기세의 지휘관의 팔을 그녀는 필사적으로 붙들었다.


"앗... 외간 남자의 팔을 함부로 잡다니... 슈어는 변태..."


"앗... 죄... 죄송합니다..."


평소 습관대로 사과가 먼저 튀어나온 그녀였으나, 깨닫고 나니 자신의 잘못은 없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왜 변태인 건데요?! 변태는 지휘관 님이시잖아요...!"


"그건... 맞다!"


"헥."


당당하게 인정해 버리는 지휘관의 모습에, 그녀는 순간 헛숨을 내뱉고 말았다.


"슈어. 나는 변태다. 변태는 변태다워야 하는 법. 그러니까 나는 슈어의 찌찌가 크다는 사실을 공표하고 와야 한다."


"그게 무슨 터무니없는 이론이예요! 안 돼요!"


"왜 안 되는데? 그렇다면 안 되는 이유를 알려줘라. 101개 정도로."


"101개씩이나?!"


자신감이 살짝 부족하지만 매사에 진지한 그녀는, 지휘관의 말대로 곧이곧대로 온갖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제한 시간은 101초를 주겠다. 1초에 1개씩 생각해 내면 되겠네."


"101초?! 적어도 101분으로 해주세요..."


"흠... 나도 바쁜 사람인데. 어쩔 수 없지. 나는 슈어가 좋으니까. 그럼 101분 줄테니까."


"네... 네에... 감사합니다."


101분으로 타협을 본 그녀는, 살짝 상기된 얼굴을 애써 진정시키며 비서함 자리에 다시 앉았다. 어라? 그런데 방금 지휘관으로부터 살짝 고백 비슷한 멘트를 듣지 않았었나? 슈어가 좋다고 했던 것 같은데...?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애써 진정시킨 붉게 상기된 얼굴에 다시금 열이 몰리기 시작했다.


'어라? 그런데 나는 왜 101분이나 써서 내... 가슴이 크다는 사실을 공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해야 하는 걸까...?'


곰곰히 앉아서 생각해보니, 애초에 이건 터무니없는 일이 아닌가? 그제서야 지휘관에 페이스에 휘말린 것을 알게 된 그녀가, 부끄러움과 창피함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의식하며 반문했다.


"자... 잠시만요! 애초에 제가 왜 그런 이유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요...?!"


"쳇, 아쉽군. 다 넘어간 줄 알았는데."


"지휘관님은 변태! 이런 분이실 줄은 몰랐어요!"


"잠시만요. 이거 오해입니다. 말로 먼저 좀 하고... 이것이 대화를 통한 함순이와의 상호주의 아니겠습니까?"


"무슨 오해예요! 누가 들어도 명백한 성희롱이잖아요!"


"하지만 슈어의 찌찌는 우리 기지의 자랑이란 말이야... 그거 좀 자랑해보겠다는 건데 어찌 이리 구박을 주는지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지휘관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순간 흠칫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구박주지 않았어요! 게다가 그... 그 정도로 자랑할 정도의 크기가 아니니까요!"


"그... 저런 헛소리는 하면 안 되고. 슈어의, 슈어의 찌찌 크기에 걸맞는 대우를 해줘야 합니다."


"뭐가 헛소리예요! 이젠 몰라요 진짜! 공표할 거면 마음대로 하세요! 정말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는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지휘관이 미소를 지었다.


"슈어는 요새 잘 지내는 모양이구나. 처음에 배치되었을 때와 달리 많이 달라졌어. 좋은 의미로."


"뭔가요 갑자기...? 그거야 여기에 계신 분들이 잘 해주시니까요..."


갑자기 달라진 주제에 의심쩍어하면서도, 살짝 부루퉁하게 입을 내민 그녀가 순순히 대답한다.


"함대의 모두와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군. 그러고 보니 저번 주말에는 조지와 같이 외출을 갔다면서?"


"조지 님께 들으셨나요? 그러고 보니 저번 외출 말입니다만..."


재잘재잘.

가장 존경하는 로열 기사단장인 조지와 함께 외출을 했던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굉장한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었다. 외출 목적은 쇼핑이며, 밥은 어디서 먹었고, 옷은 무엇을 샀는지 등등... 제법 소녀다운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착임 초기의 자신감 없고 내성적인 스위프트슈어의 모습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저번에 식당에서 조지를 만났는데, 아주 마음에 드는 속옷을 발견해서 기분이 좋다고 하더군. 하늘색 베이스에 살짝 프릴이 달려 있다고 했었나... 슈어도 같은 디자인으로 샀니?"


"아뇨... 저는 검은색의 와이어 디자인.... 핫?!"


자연스럽게 대답하려던 그녀가, 이내 이상함을 감지하고 얼굴을 붉혔다.


"아쉽네... 좀만 더 있으면 사이즈까지 알 수 있었는데 말이야. 눈치가 많이 빨라졌군. 스위프트슈어."


"전 이제 아무 말도 안 할 거니까요!"


"하지만 슈어야. 너 비서함 처음으로 착임했을 때 이런 말도 하지 않았니...? 어디 보자..."


지휘관이 서랍 속에서 서류를 뒤적이다가 이내 조금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종이를 꺼내들었다.


"스위프트 슈어. 착임 후 첫 비서함 업무 개시일... 20XX년..."


"와아앗! 기록은 또 언제 남기신 건가요!"


"착임 후 첫 각오... 비서함을 담당하는 이상, 보고하는 모든 것에 책임을 가지고 확인하겠습니다. 이상."


지휘관이 기록을 더듬어가며 말했다.


"즉, 너의 찌찌 사이즈도 책임을 가지고 확인 및 보고해야 한다, 이거다."


"비서함 업무에 그... 가슴 사이즈의 보고가 왜 필요한 건데요!"


"찌찌다, 찌찌. 명칭은 제대로 하자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으니까!"


문득, 대화의 흐름이 변했다는 것을 그녀는 눈치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제... 가슴 사이즈를 논의하고 있었나요...? 원래는 이게 아니었는데..."


"눈치가 빠르군. 그냥 슈어의 찌찌는 빵빵하다! 라고 기지 내를 돌아다니면서 동네방네 소문만 낼 생각이었는데."


"차라리 그게 나아요! 왜 사이즈를 알고 싶은 건데요?!"


"가슴 사이즈에는 남자의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두 개나. 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거든."


"...저 이만 돌아갈게요."


"앗, 돌아가기 전에 가슴 보여주고 가!"


"뭘 보여줘요! 절대 안 돼요! 시간 다 됐으니까 전 돌아갈래요. 그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인 채로, 스위프트슈어는 비서함 업무를 종료하고 재빠른 속도로 지휘관실을 퇴장했다. 원래는 적당히 놀려주고 끝날 생각이었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니 이대로 끝나면 재미없을 것 같다. 그녀의 가슴 사이즈를 알아낸다. 생각만 해도 짜릿한 관계로, 지휘관은 그 다음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뇌에 잠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