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햇볕을 받으며 교실에 들어서자 누군가 열심히 칠판을 지우고 있었다.


“흐읍, 제발 닦여라! 어머, 선생님 언제 오셨나요?”


열심히 칠판을 닦던 포미더블은 교실에 들어온 나를 이제야 봤다는 듯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리려했고 그 결과, 손에서 지우개를 놓치고 말았다.


그녀의 손에서 떨어진 지우개는 통통 바닥을 구르며 내쪽으로 날아왔고 그렇게 난 허둥지둥 지우개를 주으러 달려오는 포미더블과 부딪혀 바닥을 굴렀다.


그 결과, 포미더블의 밑에 깔린 나는 그녀와 마주보는 상태로 드러누웠고 무언가 야릇한 분위기가 연출되려는 찰나,


“컷이다냥!”

 

아카시의 불만가득한 목소리가 우리 둘을 갈라놓았다.


“아 정말, 이번엔 또 뭐가 문제인가요!”

“뭔가 뭔가다냥. 분명 분위기는 좋은데 이대로 보내면 의뢰인이 만족을 못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다냥.”


“그러니까 그 느낌적인 느낌이 뭐냐고요!”


또 시작이군. 아카시의 느낌적인 느낌(?)에 부들거리는 포미더블의 팔을 가볍게치며 내가 아직 그녀의 밑에 깔려있다는 것을 알려주자 포미더블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죄송해요 지휘관님. 저 멍ㅊ...아니 아카시가 자꾸 이상한 말을 하는 탓에 그만 깜박했답니다. 제 무례를 용서해주세요.”


순간 본심이 나올뻔 했던 것 같은데. 괜찮다는 말을 그녀에게 전하며 나는 아카시에게 다시 한번 더 해보자고 말했다.


"알았다냥. 이번에는 장소를 다른 곳으로 바꿔보겠다냥.”


이동을 위해 부지런히 촬영장비를 챙기는 아카시와 만쥬들을 보며 사건의 발단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광고를 찍어야 한다고?”


“그렇다냥!”


집무실에 앉아 의뢰내용을 보여주며 자신만만하게 얘기하는 아카시를 보며 검지와 중지를 모아 관자놀이에 짚었다. 아무래도 돈에 미친 고양이가 또 이상한 걸 물고온 모양이다.


“좋아, 광고는 그렇다치고. 이 의뢰가 우리 모항으로 날아온 이유에 대해 설명해봐.”


교복 광고를 찍어달라는 의뢰서를 흔들자 아카시는 의뢰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의뢰서를 따라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이유는 이렇다냥!”


뭔가 주저리 주저리 내용은 길었지만 요점만 간단하게 추려보자면 지난번 모항노래자랑을 몰래 녹화했다가 외부에 녹화본을 팔았는데 그걸 본 한 교복회사가 함선들의 외모에 박수를 치며 광고를 수주했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모항 내부의 일을 유출한 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왜 하필 함선들을? 만약에 안된다고 하면 어쩌려고.”


광고라는 것이 모델만 섭외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뚝딱 찍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텐데 왜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우리란 말인가? 그 의문에 아카시는 헛기침을 한번하고는 의문에 대한 답을 말했다.


“이유는 별거없다냥. 마케팅부? 그쪽에서 영상을 보고는 이거다 싶어서 바로 높으신 분에게 연락을 넣었더니 일말의 컨펌도 없이 바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는 거다냥. 근데 알다시피 모항은 외부의 일은 의뢰로만 받지 않냥? 그래서 의뢰로 날아온 것이다냥.”


와, 정말 알기쉬운 내용이었어요! 아카시의 말을 들은 나는 의뢰서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의뢰를 받아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의뢰는 받지않겠다는 말을 하려던 찰나,


“아 참고로 의뢰보수는 작년 회사 순이익의 30%를 일시불로 선입금해주고 흥행에 성공할 경우, 추가로 10%를 더 주겠다고 했다냥!”


“하자. 당장 하자. 아니 못해도 해야 돼.”


맨날 훈련과 전투가 일상인 모항에 가끔은 이런 신선한 의뢰도 나쁘지 않겠지. 내가 절대 자본의 폭력 앞에 굴복한 것이 절대 아니다. 암 그렇고말고.


“알겠다냥. 그럼 난 지금부터 바로 장비를 준비하러 가보겠다냥!”


“잠깐.”


소매를 기쁜듯이 흔들며 나가려던 아카시는 내 말에 내쪽으로 다시 몸을 돌렸고 그런 아카시를 보며 난 깍지낀 손을 턱밑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아직 우리 얘기가 덜 끝나지 않았어? 이제 의뢰 얘기는 끝났으니까 멋대로 모항 내의 일을 유출한 건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아.”


그렇게 자그마한 소란 후, 나와 아카시는 곧바로 광고모델을 찾는다는 공고를 모항 이곳저곳에 붙였고 심사숙고 끝에 포미더블이 모델로 당첨되었다.


다행히 장소는 의뢰주 측에서 준비를 해두었기에 모델이 선정되자마자 우리는 곧장 출발. 그렇게 순조롭게만 진행 될 줄 알았던 광고촬영은 감독을 맡은 아카시의 느낌적인 느낌으로 난항을 겪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그 느낌적인 느낌이 뭐냐고요 도데체!”


“글쎄. 아카시가 뭘 원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장소를 이동하던 중, 포미더블의 불만섞인 목소리에 난 그녀를 천천히 달랬다. 아직도 아카시의 느낌적인 느낌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동한 곳에서도 아카시는 연신 컷을 내뱉으며 불만을 표출하였고 그렇게 20번 쯤 컷이 나왔을 무렵, 결국 포미더블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아 정말, 이젠 못하겠어요! 도데체 뭘 원하는 건가요 아카시!”


“흐음, 조금만 더하면 뭔가 나올거 같다냥. 근데 어디가 부족한지 모르겠다냥.”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거야 이 수전노 고양이 새끼야!”


당장이라도 아카시에게 달려드려는 포미더블을 간신히 제압한 나는 잠시 휴식을 제안했고 그 말에 아카시가 동의를 하자마자 포미더블은 화를 삭히기 위해 자리를 떳다. 아무래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군.


-


“화가나서 말도없이 나가더니 여기 있었던거야?”


한참을 헤맨 끝에 본관 정문에 앉아서 밖을 보고있는 포미더블을 발견한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네며 다가갔고 그런 나를 힐끔 돌아본 포미더블은 한숨을 쉬었다.


“거기 있으면 답답해서 말이죠. 지휘관님께는 죄송할 따름이에요. 모처럼 이렇게 고생하고 계시는데.”


표정은 전혀 미안해보이지 않는데. 피식 웃으며 그녀 옆에 앉은 나는 그녀를 따라 멍하니 밖을 바라봤다. 여기 올때는 분명 화창했는데 언제 내리기 시작했는지 밖은 가벼운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지휘관님은 제가 왜 지원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뜬금없는 포미더블의 말에 난 그녀를 바라보았고 포미더블은 무릎을 끌어안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별 이유 없어요. 요새 지휘관님이랑 뭘 해본지도 오래됐고 출격도 나간지 오래됐으니까요. 이대로라면 지휘관님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건 아닐까 싶은 찰나에 공고가 눈에 띄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지원하기는 했는데 솔직히 자신은 없네요. 아카시가 뭘 원하는 지도 모르겠고 저도 제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차라리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방에서 락이나 듣고있을 걸 그랬나봐요.”


그렇게 말하며 기지개를 피는 포미더블을 보며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지원한 의도가 안 궁금한건 아니였는데 막상 듣고나니 단순한 이유였다니. 그런 내 모습을 본 포미더블은 아차 싶었는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무, 물론 지휘관님이 저를 잊으실지도 모른다거나 하는건 제 지레짐작일 뿐이니까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괜차...”


“이렇게 비오는 날에만 할 수 있는 고민해소 방법이 있는데 해볼래?”


뜬금없는 내 말에 영문을 모른 채 나를 바라보던 포미더블의 손을 붙잡은 나는 그대로 비가 쏟아지는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꺄악, 지휘관님!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이렇게 비를 맞으면서 아무 생각없이 달리면 진짜로 고민이 없어진다니까!”


내 기이한 행동에 정신이 나갔냐며 연신 비명을 지르는 포미더블을 이끌고 난 그대로 운동장을 몇바퀴나 돌았고 한참을 빗속을 뚫고 달린 후에 우리는 정문으로 돌아왔다.


“정말, 다 젖었잖아요! 축축해서 기분만 나쁘다고요.”


“그래도 쓸데없는 생각은 없어졌잖아?”


내 말에 포미더블은 몸을 숙인 채 날 화가 난듯 올려다보았고 난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며 상쾌한 듯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고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 웃은 뒤 포미더블은 눈가를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확실히 기분은 상쾌하네요. 덕분에 잡생각이 싹 사라지기는 했어요.”


“그렇지?”


그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던 우리는 그제서야 어떤 꼴을 하고있는지 눈치챘다. 비에 홀딱 젖은 교복은 우리의 몸매를 가감없이 드러내주고 있었는데 그 탓에 그녀의 큰 가슴이 더욱 도드라졌다.

 

“지...지금 어딜 보시는거에요!”


내 시선을 눈치챈 포미더블이 몸을 홱 돌리며 비명을 질렀고 난 아무 말없이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미안, 일단 이거라도 걸치고 있을래?”


비에 젖은 겉옷이라도 일단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런 생각으로 겉옷을 벗어 내밀자 포미더블은 무언가 생각하더니 내가 내민 겉옷을 뺏어서 몸에 걸치더니 그대로 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포, 포미더블?!”


“뭐, 뭐요. 어차피 걸치나마나 앞이 안가려져서 보이는 건 똑같다고요? 그럴거면 이렇게 붙어있는 편이 안보이니까 괜찮다고요!”


물론 말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그 탓에 그녀의 가슴이 더 잘 느껴지게 되었고 빗물에 젖은 몸에서 발생하는 열로 인해 그녀의 체향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자극에 내 몸은 건강하다는 듯이 바로 반응을 내비쳤고 아랫쪽에서 내 반응에 그녀는 흠칫 놀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그... 이건 말이지?”


“...괜찮아요.”


괜찮다니? 뭐가 괜찮다는거지?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당황하고 있자 점점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고 내 입술과 그녀의 입술이 맞닿으려던 찰나,


“컷이다냥!”


만족했다는 듯 활기찬 아카시의 목소리에 우리는 화들짝 놀라며 떨어졌고 뒤이어 아카시의 콧노래가 들려왔다.


 “이야, 둘이 어디로 사라졌나 싶었더니 여기서 명작을 찍고있었냥? 찾으러 갔던 만쥬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큰일날 뻔 했다냥.”


“어...언제부터 거기 있었던거죠?!”


“응? 아, 그야 물론 지휘관이 포미더블의 손을 잡고 뛰쳐나갈 때부터다냥!”

 

아카시의 말에 포미더블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고 아카시는 그런 것도 모른 채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이야, 이 정도면 조금만 편집해서 보내기만 해도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사려고 들거다냥. 역시 아카시와 지휘관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냥. 아, 비 맞고와서 추울텐데 얼른 여기와서 난로 좀 쬐라냥!”


“...못해.”


“냥?”


“이 돈에 미친 수전노 고양이, 절대 용서못해!”


분노에 찬 포미더블은 내가 붙잡을 새도 없이 아카시에게 달려들었고 그제서야 사태를 깨달은 아카시는 부리나케 포미더블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우냐아아앙, 지휘관 살려달라냥! 가슴 괴물이 날 죽이려든다냥!”

 

“누가 가슴 큰 고질라라는거야. 이 좆냥이 새끼야아아아아악!”


그런 헤프닝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납부한 광고는 말 그대로 대박을 터트렸고 해당회사의 교복은 학생들 뿐 아니라 포미더블을 코스프레하려는 사람들도 사갈 정도로 큰 호황을 이뤘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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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진지하게 가고싶어도 성격이 성격인지라 어쩔 수 없이 개그로 끝나는 우리 못뚱공...


초반에 나오는 모항노래자랑은 아래 글을 참조

https://arca.live/b/azurlane/96936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