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금요일... 생일이네"


나는 달력을 넘기며 무의식적으로.. 

나의 아내 리나운을 쳐다봤다


"뭐... 생일.. 안챙겨도 돼"

"아니야 아니야.. 그날 외식이라도 할까?"


리나운은 설거지를 마치고 앞치마에 손을 닦는다


"돈 아껴... 그냥 집에서 대충 먹지"


나는 그래도 아쉬워서 한번 더 제안했다


"아프고나서 계속 집밥만 먹으니까.. 맛있는거 사줄께 응?"

"됐다고"


냉랭하게 말하고 들어가버린다. 


나는 마루에서 멍하니 방문을 쳐다봤다. 


생일 전날...은 병원진료가 있는 날이다. 



리나운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지만.. 3년뒤

어지럽고 배가 울렁거린다고 해서 임신인줄 알았는데

이미 암이 꽤 번진 뒤였다. 


치료를 하고, 많은 수술과 처방을 받았지만

배의 수명을 지탱하는 용골 내 큐브 에너지는 많아야 6개월남았다고

지지난달 판정을 받았다. 


마지막 희망으로 다른 처방과 신약 투입을 해봤고..

그 결과를 들으러 생일 전날 병원방문을 한다. 




나는 방문을 열었다. 몸을 돌린채 화들짝 놀라 폰을 끄는 그녀..


"리나운... 자?"

".... 아니"

"잘거야?"

"응..."


나는 그녀의 옆에 누워 몸을 끌어안았다. 


몸을 뿌리친다. 


"가까이 오지마.. 옮아"

"안옮아.. 그리고 옮아도 돼"


내 말에 리나운이 한숨을 쉰다. 






...





내 바람과 다르게.. 병원은 리나운에게 확정판정을 내렸다

시한부..


6개월..남짓한 시간이 나와 그녀의 시간이다


담담히 듣더니 리나운은 피식 웃는다


"그거봐.. 기적같은게 있을 리 없잖아"


그녀는 의사에게 인사를 하고, 입원준비를 한다

일단은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해보자는 방향..


병실은 깔끔하고 좋았지만.. 그녀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간호사와 의사를 대한다


"어차피 죽을건데... 가습기는 왜 갖다놔"

"그동안이라도 편하게 숨쉬라고"



그 다음날 리나운의 생일.. 링거를 줄기줄기 맞고있다. 

나는 케이크와 꽃을 사들고 갔는데

그녀는 뭐하러 이런걸 사왔냐고 틱 내뱉는다. 


"몸은 좀 어때"

"약때문인지 여기저기 아파"

"응... 생일 축하해 리나운"

그녀는 몸을 훽 돌린다


"케익.. 간호사들 나눠줘.. 나 느끼한거 먹으면 이제 탈 나"

"그럼 여기 딸기라도 먹어"


내가 사온 딸기를 보더니 하나 간신히 먹는다

20개중 1개만 먹더니 손을 휘휘 젓는다

치우라는 제스쳐다


"맛있네. 그만먹을래"


귀찮다는 표정이다. 


"다음 생일은 준비할 필요없어. 그냥 무덤에다 케익하나 놓고가"


그녀의 매정한 말에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갈때 내 옷...하고 짐좀 집에 옮겨놔줘"

"으응"



나는 어제 입원하면서 입고온 옷들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생일이지만 그 어느날보다 우울한 날이었다. 




..




"저기.. 리나운 남편분.. 지휘관은 매일 오네"

"그러게.. 당직이나 훈련빼면 매일와"

"어떡하냐 젊은 부부같은데"


간호사들이 수군거린다. 나는 그 소리를 뒤로 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땅콩 스콘을 들고 병실로 찾아갔다


커튼을 치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아... 진짜... 좀 "


귀찮다는듯 일어난다. 


"커튼 확 치지마 짜증난다고"

"알았어"

"왜 왔어 어제도 오고... 요즘 한가해?"

"응? 아아.. 잘 있나해서... 겸사겸사"

"여기 올 시간이면 진급공부도 좀 하고, 집에서 좀 일도 하고 그래"

"으응"

"집가서 관리비 내고"

"응"

"화분 물은 줬어?"

"아..맞다"

"화분 그거 비싼거야. 죽으면 나한테 죽어"

"응.."


나는 그녀의 잔소리에 응이라고 대답만 한다. 


"아, 그리고 내일 토요일이니까, 내일 점심때 크로플좀 사와"

"어디서?"

"거기... 자주가는 카페 옆에"

"응..."


병실을 나서기 전.. 그녀의 손을 잡았다

힘이 느껴지지않는다


"저기... 힘내"

"응.. 죽기전까지 힘내고있으니까 압박주지마"

"아.. 그래? 미안"


나는 멋쩍게 그녀의 손을 내려놓았다. 




병원을 나와 집에 도착했다. 

아무도없는 집. 적막하다.

이 생활을 6개월쯤 했다. 


6개월 내로 사망한다했는데, 아직 살아있다. 




술도 못마시고, 좋아하는 운동도 못했다. 

나도 병에 걸린것 같다..

가족간병이라는 병..


매일 병원을 가긴 하지만 

보통 짜증나는 표정과 무심한 얼굴이다

집안일 잔소리는 그렇게 해댄다. 



문득 머릿속으로 리나운은.. 언제죽을까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뭐래.. 시발.. 이기고 나을 생각을 해야지..'





다음날 해사 동기가 나를 찾아왔다. 

임관 15주년이라고.. 해군휴양지 콘도 일정을 물어본다. 

동기가 준 카달로그를 받아서 읽어봤는데

식상한 장소들 뿐이다. 


"해군은 돈 없냐.. 맨날 지브롤터 아니면 마요르카야 ㅉㅉ"

"ㅋㅋㅋㅋ보내주는게 어디냐?"

"사쿠라엠파이어는 동남아시아 섬들 많이 간다더라.. 발리, 싱가폴.. 푸켓 등등"

"ㅋㅋㅋ발리는 가보고싶긴 하다"

"됐어.. 난 안갈래"

"그래도 병원에서 잠시 외출 허락받고 리나운하고 같이 가봐"

그 말이 더 마음을 짓이겨놓는다. 


"그게 쉽냐..."

"에유... 암튼.. 힘내라. 웃을일이 없겠지만.. 기운내"

"고맙다"


놓고간 카달로그에는 휴양지의 사진이 크게 실려있다

옛날 신혼여행 생각도 난다. 그때는 돈 없던 시절이라

해군휴양지 지브롤터로 가서 싼값에 신혼여행을 다녀온 기억도 난다. 



혹시몰라 카달로그를 챙겼다. 

리나운도.. 바다를 보면 기분이 나아지지않을까 싶어서..


동기녀석이 나가고, 나도 그녀의 심부름을 마친 후 병원갈 준비를 했다. 

크로플을 사고 병원으로 갔다. 




문을 열고 병실을 들어가니 낯익은 뒷태... 리나운의 절친

후드가 병문안을 와 있다. 


'아직 대화가 다 안끝났나..'


그녀가 시킨 크로플을 들고 병실 밖에서 기다리는데

둘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들린다. 



"새로운 기함은 그럼.. 뱅가드가 하나?"

"아니.. 모나크 선배가 하지않을까 싶네.."


"ㅎㅎㅎ 누가돼든... 아.. 나도 바닷가에서 좀 놀고싶다"

"몸은 좀 어때? 치료받는거 힘들지?"

"봐라.. 나 지금 이거 가발이야"

"가발? 왜 가발 맞췄어?"

"그냥.. 매일 남편 오는데 머리 민둥머리면 좀 흉하기도 하고.."


나는 그 말에 눈물이 날거같다. 문 뒤에서 듣고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후드가 피식 웃으면서 

리나운과 대화를 이어간다




"아직 사랑하나보네"

"응...근데 요즘 좀 내가 정뗄려고 막 대하고있어"

"왜?"

"그래야... 나 죽고나서 홀가분하게 다른사람과 재혼할거아니야"

"미쳤다 ㅎㅎㅎ 별 생각을 다해"

"일부러 막 요즘 바가지긁어서 내가 지겨워지길 바라고있지 ㅎㅎㅎ"

"으이그..."

"암튼.. 남편이 날 싫어해서 매일 안오면 좋겠다... 

그냥 나 보러올때 질려서 다른여자 만나고 그럼 차라리 나은데"

"이러니 막장드라마가 현실을 못이기지 어휴ㅎㅎㅎ"


후드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그냥 사랑해주고 살아. 뭐 가는마당에 그런 배려까지.."

"아니 그냥..."

"왜곡된 사랑이야 으휴"


후드가 리나운을 면박준 뒤 외투를 입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서둘러 눈물을 훔치고 반대편 복도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뒤에 후드가 인사하고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병실에서 서성이며 후드가 나가길 기다렸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진다. 


나는 바로 병실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내 리나운이 입원한 병실...


리나운이 놀란 얼굴로 침대에 앉아서 나를 쳐다본다


"어...언제부터 있었어?"

나는 놀란 그녀의 표정을 뒤로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후드와 이야기하는거 다 들었어.."


내 말에 그녀가 몸을 휙 돌리더니 병상 커튼을 닫아버린다


"크로플 놓고 나가. 나 잘거야"


나는 그런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병상 커튼을 걷어버렸다. 그리고 이불위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런 마음이라면.. 그렇게 할게"

"...."

"리나운.. 이제 지겨워.. 6개월 넘었는데 이제 좀 날 편하게 놔주라"

"...."

"그냥 빨리 죽어서 나도 내 시간좀 가지고 그럴게 응? 언제 죽어? 빨리 죽어줘 제발.."



...




한참 뒤 훌쩍거리는 소리가 난다. 안고있는 손 위로

리나운의 눈물이 떨어진다


리나운은 내 손을 잡고 엉엉 울며 고백한다


"나도.. 나도 이 엿같은 투병생활 빨리 끝나게 죽고싶어 얼른.. 얼른 죽어서 편하게..

매일 매일 주사나 약도 먹기싫고 그냥 빨리 죽고싶어"


라며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린다. 



그간의 투병생활동안 나와 리나운 마음속의 벽과 짐이 모두 날아가며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끌어안으며 애써사온 크로플이 봉투안에서 엉망이 되었지만

알바 아니다..



그렇게 마음의 앙금을 녹인 그 날, 리나운이 내 손을 잡은채로

아쉬워하며

집에가는 나를 배웅해준다


"휴양지는 지브롤터로  꼭 가고싶어.. 올 여름까지 살아있다면.. 우리 신혼여행 거기로갔었잖아"


카달로그를 쥔 채 웃어보이는 그녀..


리나운의 웃음을 뒤로하고 투병 중 처음으로 웃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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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게도 신은.. 그녀에게 여름을 허락하지 않았다

거짓말같이 카달로그를 전해준 뒤로 5일 뒤.. 의식불명의 상태로 쓰러졌다가

2일뒤 하늘의 부름을 받고 가버렸다. 




...



고요한 병실.. 정리를 간호사가 도와준다. 

한참을 정리하고.. 서랍과 캐비넷에서

그간 리나운이 쓰던 물건을 다 담아준다


투병중일때 유품상자를 건네준다


옷과 화장품, 귀중품, 지갑 등등을 주는데


휴양지 카달로그가 나온다


"이런 책이나 신문은.. 버릴까요?"


나는 그 휴양지 카달로그를 들어 살펴봤다. 중간에 볼펜으로 별표 쳐진 

바다가 보이는 지브롤터의 별장... 



"아니요.. 같이 주세요"


리나운은 그 신혼여행갔던 지브롤터의 별장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바보같이.. 더 좋은 숙소도 많은데...

나는 그 카달로그를 고이 접어 옷 안쪽에 넣었다. 




로비에 앉아 기다리는데 간호사가 온다. 



"리나운님.. 남편분 되시죠?"

"예... "

"저.. 많이 힘든 상태인건 알겠습니다만.. 이것까지는 해주셔야 해서"


뭔가 서류를 잔뜩 가지고 온 간호사.. 사망관련 화장동의서.. 시신처리 절차..

사망신고서류 등등.. 


하나하나 작성하고 건네줬다. 



"부고 공지를 해야해요.. 장지는 어디로.. 하실건지.."

간호사의 질문에 나는 조금은 망설이다 대답했다. 



"바다가 보이는.. 지브롤터 해안이요.."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