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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그림자로 언급됐던, 지휘관 중 한쪽의 이야기를.



그 남자 또한 지휘관과 마찬가지로 

모항의 지휘관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X는 여러 세계들을 돌아다니며

세상에 강림하였고 세계를 붕괴하였다.



각각의 세계는 대부분의 틀은 유사했으나 

발전의 속도에서 차이를 보였다.



X는 그렇게 여러 세계를 파괴해오며 

지금에 이른 것으로 추정됐다.



META 함선 소녀들의 증언을 통해서 모두가

각자 다른 세계에서 왔음을 보이는 것이 그런 연유다.



하지만 이 지휘관은 R&D가 발전되어

적당한 방어를 위한 기술이 구축되기 이전에



X가 강림하였고

세계는 불길에 휩싸였다.



모든 희망이 뭉개진 가운데,

그래도 그는 싸웠다.



자신이 원한 바가 아녔을 운명의 저주에서

해방되기 위한 싸움을.



아무리 지휘관이라고 해도 이미 필연적으로 

멸망해가는 세계를 되돌릴 수는 없겠지.



일이 여기에 이르자 그는 

최후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었다.



자신들의 함선들을 다른 차원으로 대피시키며

다른 세계의 지휘관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희망이라고도 할 수 없는 슬픈 가능성이었다.



그렇게 그는 영혼마저 빼앗기고는 

그림자가 되어 최후의, 



마지막 세계의 계승자인 지휘관이

그림자가 된 비운의 사내가 가진 



최후의 희망이었다.



※※※



"이 세계에서 뭘 원하지?"



지휘관은 X에게 물었다.



몇 번이고 부활을 반복하며

지휘관을 쫓아오는 X에게



지휘관은 의문을 던졌다.



그녀는 아이리스의 함선소녀인 마르코폴로나

세이렌인 아비터·하이어로팬트·V를



침식으로 그녀들의 몸을 이용하면서까지

지휘관에게 환상을 보여주는 등 



메시지를 전해왔으니까.



그런 그녀의 기묘한 집착에 

지휘관은 의문을 던진 것이었다.



"인간은 두 손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양손을 가득 채우고도 만족이란 걸 하지 못하죠."



"인류사는 전쟁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만큼

오랜 시간동안 동족을 서로 갈라치고 지배해왔습니다."



"네가 원하는 것은 복수로군."  



지휘관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



과거, 냉전이 끝을 고할 무렵.



서로를 멸할 수도 있는 열량의 씨앗을 품은

두 강대국이 눈씨름을 벌이던 시대가 끝나자,



마치 고삐가 풀린 것 처럼 세상 곳곳에서 

크고 작은 다툼이 분출했다.



어느 민족은 과거의 원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느 종파는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절대성을 

증명하기 위해 궐기하고,



절망적으로 가난한 나라는 학대받는 이들을 

군사조직으로 만들었다.



그렇다. 총만 있으면 누구나 서로를 죽일 수 있다.



검이나 도끼같은 것이라면 가까이서 

상대의 육체에 칼날을 꽂고,



그 칼날이 투구와 함께 두개골을 

깨부수는 모습을 목격해야만 한다.



그런 원시적인 무기와 달리 총은 

훨씬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살상도구였다.



방아쇠를 당기기만 한다면 멀리 떨어진 상대가

힘 없이 쓰러진다.



인류는 다른 국가를 지배하면서 무위를 떨쳤고

힘에 논리를 추구하는 것이 극에 달했던 시기는



팽창주의, 제국주의로서 증명했다.



과학의 발전도 모두 전쟁에 의해

양분삼아서 진화했음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



"과거 저는 이 세상을 창조하였고

제 첫 창조물인 인간을 사랑했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가진 지혜와 지식을 나눠주었고

그것을 통해서 인류는 번영을 누릴 수 있었죠."



"인류의 진화를 바라보는 것은 당시로서는

제게 큰 성취감이자 보람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족을 쫓는 욕망의 끝엔 언제나 후회가 있죠, 그게 인간들이 되풀이하는 실수. 해선 안 될 짓을 저지르고, 후회하기 만을 반복하는 어쩌면 악마의 잔혹성은 인간을 본땄을지도 모릅니다."



X는 그녀의 손에 작은 지구의를 띄우고는 

하찮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들의 욕망의 끝이 도달한 결과물이 

핵병기라는 것은 당신도 이미 잘 알고 계실텐데요....??"



"그래서 전 인간에게 그들의 욕망이 만든 무기로

그들의 욕망의 결과물들을 이 세상에 뿌려



대멸종을 통해서 세계를 다시 0에서부터 

재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 인간들은 모든 지성체들의 당연한 권리인 

'자유'마저도 그 가치를 깨닫는데 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전장의 먼지가 가라앉은 곳에서는

분노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멸종을 옳다고 

판단하는 건 누구일까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가 그 역할을 맡기 전까진....."



X는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지휘관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선택권을 드리겠습니다."



"저와 함께 세상을 정화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눈앞의 거짓된 평화를 구가하시겠습니까?"



X는 지휘관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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