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질문을 받은 아카시는 식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런 아카시의 반응에 난 한숨을 내뱉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일 줄이야.


어쩐지 분명 아무에게도 알려준 적이 없는 일정에 갑자기 메이드대가 나타나질 않나 우연치고는 휴가 도중에 함선들을 자주 마주친다고 생각했는데 서약반지에 위치추적 기능이 있었을 줄이야.


"어...어떻게 알았냥?"

"어쩌다보니. 일단 누구 지시인지는 둘째치고 왜 그런 기능이 있는지 알려줘야겠는데?"


내 물음에 아카시는 말해도되는지 한참을 고민하더니 조용히 운을 띄웠다.


"그러니까 말이다냥. 사실은..."


아카시가 들려준 내용은 실로 가관이었다. 지휘관의 안전과 위기 상황에서 즉각적인 초동대처를 위해 넣은 것이라고 하는데 아니 끽해봤자 모항에 틀어박혀서 휴가도 간신히 나가는 마당에 무슨 위기가 생긴다는 말인가.


"...지금 그 말, 네가 내뱉고도 말이 안된다는 걸 잘 알고있지?"

"그렇다냥..."


나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아카시를 보며 눈가를 가렸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이 모항에서 내 사생활은 전혀 보장이 되지 않는...하 아니다. 이거 누구 지시야?"

"그...그게 말이다냥."


내 질문에 아카시는 말해야되나 말아야되나 한참을 고민하는 듯 하더니 내가 반지를 빼려는 듯한 행동을 취하자 다급하게 내뱉었다.


"사, 상부랑 모항 내 대표들 간의 비밀리에 체결된 협약이다냥!"


상부랑 모항 내 대표들 사이에 비밀리에 체결된 협약이라고? 난 계속하라는 듯이 눈치를 보냈고 아카시는 한순간 후회한 듯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 걸 알았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진영 별 대표 회의에서 지휘관 몰래 발의 된 안건다냥. 거기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안건이고 지휘관이 알면 지금처럼 반발할 것이 뻔했기에 상부에 직통으로 제출했다고 들었다냥."

"그럼 상부에서 이 말도 안되는 사항을 받아들였다고? 나한테 한마디도 뻥긋 안하고?"


그게 말이야 방구야. 미심쩍은 눈으로 아카시를 쳐다보자 아카시는 우물쭈물하며 뒷 내용을 덧붙였다.


"이 안건이 통과가 안되면 세이렌이고 나발이고 썩어빠진 세상부터 뜯어 고친다며 반란을 일으키겠다고 선전포고를 가했다냥. 물론 지휘관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는 비밀유지 사항도 협약에 달아놨기 때문에 상부 측에서도 절대 말 못했을 것이다냥."


어쩐지 요새 상부에서 모항 생활은 어떻냐, 서약한 함선들과의 관계는 괜찮냐는 둥 엄청 신경 쓰더라니.


"그런 중대한 사항을 나 몰래 너희들끼리 정하고 나한테는 입도 뻥긋 안했다는 것이 괘씸하기는 한데. 이건 아카시 너 선에서 정리 가능한 거 아니였어? 애초에 모항 보급은 너하고 시라누이가 담당하는 걸로 알고있는데?"

"그게 말이다냥. 모항 보급 최고 담당자는 내가 맞기는 하다냥. 근데 나 혼자 저 많은 물자를 어캐 감당하냥? 그래서 주요 보급품은 내가 담당하고 비전투 보급품이나 특수 물품은 시라누이가 담당하고 있다냥."


젠장, 번지 수를 잘못 찾았군. 비전투 보급을 시라누이가 담당한다면 애초에 반지 건은 아카시가 뭘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추후에 알게되더라도 협약이 끝난 시점에서는 이미 늦었다는 거로군. 이럴 때만 아주 합이 척척 맞는구만. 합동 훈련 때 그런 합을 보여주면 참 좋을텐데 말이다.


"그럼 위치추적 기능을 제거하거나 해제하는 방법 쯤은 알고 있겠지? 내가 추후에 알고 반발했을 때의 대비는 해놨을 거 아니야."


내 말에 아카시는 유감이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 반지는 특수 공정을 한 제품이라 나도 상세한 내용은 모른다냥. 단지 지휘관을 위해 이런저런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는 거랑 강제로 부수거나 지휘관에게서 일정 시간 이상 떨어질 경우 즉각적으로 경보가 울린다는 것 밖에는 전혀 모른다냥."

"그러니까 자세한 건 시라누이에게 물어봐라?"


고개를 끄덕이는 아카시를 보며 재차 한숨을 내쉰 나는 왼손 약지에 껴져있는 반지를 쳐다보았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반지는 은빛 광택을 내며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따라 반지에 박혀있는 붉은 다이아몬드가 야속하게 느껴지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자. 내가 끼고 있는 이 반지. 애초에 네가 처음 나한테 건네준 반지는 맞아? 내가 어디서 반지를 주문할 줄 알고 그런 기능을 추가 해놓은거야?"


내 질문에 아카시는 그런 건 별거 아니라는 말투로 질문을 돌려주었다.


"뭘 그런 당연한 걸 묻고 있냥? 애초에 안건 전달을 지휘관이 직접하는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건 왜 물어보냥?"


젠장, 그런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니. 대부분의 일을 만쥬랑 비서함 쪽에 전달하는 식으로 일하는 것이 이리 화근을 불러올 줄이야. 앞으로 급하더라도 중요 안건이나 보급 관련 안건은 내가 직접 발로 뛰어야겠구만.


그렇게 고심하며 스케줄 조정을 생각하던 와중, 왠지 모르게 안절부절하는 아카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 저렇게 안절부절하지?


"아카시 왜 그래. 뭐 급한 볼일이라도 있어?"

"지휘관, 혹시 내가 지금까지 말했던 내용 중에 미심쩍은 것 없었냥?"


미심쩍은 것이라고? 아카시의 말에 나는 아카시와의 대화를 차근차근 되짚어보았다. 보자, 상부와 모항 대표들 간의 비밀 협약이랑 내가 낀 반지는 위치추적 외에 여러가지 안전장치가 들어있다는 것 그리고..., 잠깐?


내 얼굴이 당혹감과 경악 그리고 최악의 결론에 다다르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아카시는 체념한 듯 미소를 지으며 내 예상에 쐐기를 박아주었다.


"그 반지, 위치추적 기능 말고도 외부충격 방어, 실시간 건강체크 기능, 도청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냥."


오 그런 신박한 기능이 있었군요. 와.정.말.알.고.싶.었.던.내.용.이.었.어.요! 예상이 현실로 들이닥치자 아카시의 미소짓는 입가가 더욱 공포스러움을 자아내는 건 기분 탓일까?


"아까 상부와의 비밀 협약을 통해 그 반지의 존재가 어떻게 성립하는지 알았다면 과연 그 내용은 비밀유지 외에 뭐가 적혀있을지 궁금하지 않냥?"


아카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조용했던 복도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고 이내 누군가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평소 같으면 쉽게 나왔을 들어오라는 말이 오늘따라 왜이리 무겁게 느껴질까.


"사실을 모른 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면 좋았을텐데 아쉽다냥. 그럼 지휘관 난 그만 가보겠다냥. 아직 할일이 많이 남아서 다음에 마저 얘기해주겠다냥. 살아있다면 말이지..."


컨셉질도 그만둔 아카시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굳게 닫힌 성벽 같았던 집무실의 문이 열리는 순간, 난 밖에 모여든 수많은 눈동자들을 바라보며 식은 땀을 흘렸다.


그 눈동자들은 다양한 감정들을 내비치고 있었지만 단 한 가지, 나를 보는 눈은 하나같이 비틀린 애정으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올해 연차는 꽤 빨리 소진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