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맨 지휘관 단편 모음집 : https://arca.live/b/azurlane/59362616  


(초가을 오전, 대강당 교실)


"지휘관님의 모국 언어를 배우느라 지루한건 잘 알고 있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분위기도 전환할 겸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원어민 강사를 일일 초빙했답니다, 들어오세요"

한국어 교육 담당 후드가 원어민 강사(?)를 부르는데...



"그냥 수업 일찍 끝내면 안돼요?"

세상만사 귀찮은 인도미터블



"가장 가까이에 있는 현지인이 필요하다고 해서 왔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지휘관



"와아!!!" "후드님 최고!"

재미없는 수업 듣다가 지휘관 보니까 기분이 좋아지는 체셔와 함순이들



"한국어 배워보니까 어때?"

"글자는 쉬운데 문법은 너무 복잡해요"


"문법? 나도 대학을 나오기는 했지만 한국어 문법이나 띄어쓰기는 한국인도 어려워 하는게 맞아, 국립국어원 원장도 한국어 띄어쓰기도 어렵다고 말한적이 있으니까 외국인인 너희들한테 어려운건 당연하겠지?" (1)


"국립국어원? 그게 뭔가요?"
"표준 한국어를 연구하고 정하는 기관인데... 여긴 그런거 없어?"

"그런 기관은 없는데요?"

"그래? 씁.... 그러면... 저기 아이리스에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 같은 기관이 있는거야"

"그런 기관도 있나보네요"

"한국어 문법에는 어느정도 규칙이 있지만 교착어 특성상 어미가 변화하고 불규칙 활용에 높임 표현이 있어서 후드한테 배우고 많이 써봐도 헷갈리는게 많기 때문에 방법이 없어, 많이 겪어봐야돼, 현지인이 지적하는게 빠를지도"

"네?"


"음... 하나만 하고 넘어가보자, '내가 마늘을 많이 먹는다' 라는 표현이 있어, 많이는 형용사 '많다'에서 부사형 접미사 -이-가 붙은 부사인데... '많다'의 반대는 뭘까?"

"음... '적다'요"

"그렇지, 그럼 많이 먹는다의 반댓말은?"

"적이 먹는다"


"땡! '많이 먹는다'의 반댓말은 '적게 먹는다'야" (2)

"어째서요?"

"예외처리야, 한국에서는 그런표현 안쓰니까 오답이지"

"왜요?"

"영어라고 전부 과거형에 -ed/-ied 붙이는거 아니잖아? 왜냐고 물으면 '옛날부터 그렇게 써왔습니다'가 답이지? 한국어도 그래"

"으..."

"이런거 말고 실전 한국어나 배워보자고"



"실전 한국어...?"

지휘관이 뭔 개소리를 하는지 의심하는 모나크 


"한국어 웹사이트는 검색엔진의 입장에서 딥웹에 가까운 폐쇄적인 구조라서 구글로 찾으면 자료가 생각보다 많이 안나와, 그러면 검색에 잡히는건 칸센라이브나 세이렌인사이드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들인데... 이건 실시간으로 교육에 쓰기 부적합하고, 오늘은 비속어 하나하고 표현 두개만 해보자고"

그렇게 말하면서 칠판에 슥슥 글자를 적는 지휘관


'아니, 근데, 씨발'

칠판에 글자를 적는 지휘관


"한글은 금방 배우니까 읽을 수 있지?"


"아니... 근데... 씨발...? 이게 뭐지?"

칠판에 적힌 글자를 읽는 모나크


"한국에서 많이 쓰이는 실전 한국어 표현이지, 이 3가지를 능숙하게 쓴다면 너희도 현지인처럼 대화할 수 있지"

"먼저 '아니'부터 시작해보자, 상대방의 말을 반박할때 주로 쓰는데, 말을 흐리면서 부드럽게 문장을 시작하는 이니시에이션(initiation), 이름하여 '아니시에이팅(아니-tiating)' 라고 하ㄴ"



"엥? 그게 무슨 말도안되는 표현이에요"

"아니 플리머스야,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게 어떻겠니? 이거는 한국에서 만든 피진 잉글리시야"

"오! 지휘관님이 벌써 '아니'를 쓰셨어"

"진짜로 자주 쓰는 표현인가봐!"

쑥덕대는 다른 함순이들



"Oh... wait.... 같이 흐리게 시작해서 덜 공격적으로 보이는 표현인데, 자주 쓰여"

"그러면 근데?는 뭐냐?"

"by the way인데, '아니'하고 결합해서 '아니 근데' 로 써서 앞에서 하는말 잘라먹고 반박하는 용도로 많이 쓰이지"

"그걸 많이 쓴다고요?"

"아니 근데 어쩌겠니? 실제로 많이 쓰이는걸, 너희들이 한국어 웹에서 검색하다보면 좋든 싫든 자주 보게될 표현 중에 하나야"

"자연스럽게 쓰시네요?" "진짜로 많이 쓰나봐요"


"서방님 그러면 마지막에 이건 뭐냐, 씨...팔? 듣기만 해도 좋은 단어는 아닌거 같다냐"

"아니 체셔야... 왜 서방님이라고 하는거니 씨발? 씨발은 fuck에 대응되는 욕설이지"

"좋은 표현은 아닌데요, 이걸 왜 많이 쓴다는건가요?"


"이 '씨발' 이라는 표현은 비격식적 비속어 표현이지만 shit에 가깝게 긍정-부정-중립, 감탄, 좌절, 고통, 긴장 등 다양하게 사용되는 다목적 표현이라서 용례를 알아둬야 이게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건지 알 수 있기 때문이지, 외국어를 배울때는 그나라 욕설부터 배우라는 말도 있는데, 후드는 이런거 안가르쳐줄 거같아서 말이야"

"그건 그렇죠"

"그렇다냐"


"......"

뒤에서 앉아있다가 무슨 수업이 이따위로 진행되는것인지 어이없어 하는 후드


"자, 만약 내가 벨파스트가 내온 홍차를 마시기 싫다고 홍차 냄새난다고 하면서 눈앞에서 그냥 엎어버린다고 하자, 체셔야, 그럼 여기 없는 메이드장이 내 행동을 보면서 뭐라고 반응할까?"



"'지금 뭐하시는겁니까 주인님?' 이라고 하지 않겠냐?"

"부드럽게 시작하면서도 화가 머리까지 뻗쳐서 '씨발'을 쓰면?"



"음... '아니 씨발 지금 뭐하시는겁니까 주인님?' 이라고 하는거냐?"

"그렇지! 윗사람한테는 욕설을 당연히 안쓰는게 예의지만, 머리에 화가 끝까지 올라버리면 눈에 뵈는게 없기 때문에 욕설이 나올 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벨파스트 앞에서 홍차를 바닥에 부어버려서 진짜 욕을 하는지 시험하는 건 안돼, 고대 동양의 어느 왕처럼 허리가 반으로 접혀서 죽을지도 몰라" (3)

"아...알았다냐"


"그리고 내가 밖으로 나간다면 착한 벨파스트가 뒷정리를 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냐"

"그럼 뒤에서 한숨쉬겠지?"

"그렇지 않겠냐?"

"그럴땐 하... 씨발... 이라고 한숨쉬는거야, 여기서는 체념과 허탈, 분노가 섞인 복합적인 '씨발'이지" 

"오..."

"그리고 시리우스가 그 홍차 엎질러진걸 밟고 미끄러져서 넘어지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겠지? 아니면 새끼 발가락을 가구에 박아서 고통스러울때도 있겠지? 그럴때 좀 쎄게 부딪혔으면 한국인은 '악! 씨발!' 이라고 소리를 질러, 이때 '씨발'은 고통으로 인한 감정표현으로 사용되는 예시지"

"주인님... 제가 넘어진건 어떻게..."


"......"

지금 애들한테 뭘 가르치는건가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후드


"그리고 내가 러스티 뒤에서 '러스티 아줌마'라고 하면 러스티는 뒤를 돌아보면서 '씨발 지금 뭐라고 했어요?' 라고 할 수 있어, 이때 '씨발'은 분노일수도 있지만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부른것에 대한 짜증일 가능성이 높아, 애버크롬비가 후드한테 '후드 아줌마'라고 부르면 후드가 뭐라고 할까"



"씨발... 입에 달라붙는 표현이네요... 헉! 제가 무슨"

입에서 욕이 나오다가 놀라는 후드



"무슨 수업 내용이 이래요?"

"너희가 한국에 갈 일이 있겠냐만서도 그전까지는 인터넷으로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접할일이 많을텐데, 정식 출판물이 아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국어로 쓰여진 내용은 고맥락의 주어 생략, 한국어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는 암묵적인 동의, 축약어, 인터넷 밈, 비속어가 많아서 이런거 배워놔야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먹는데 도움이 되거든"


"......"

갑자기 집중하는 모나크


"네?"

"누가 너희들 욕하면 받아쳐야지, 세이렌은 받아치면서 말한마디 못받아치면 안되잖아?"

"네? 함포가 있는데 왜 말로 받아쳐야해요?"

함포외교를 지향하는 브루클린...이 아닌 플리머스 (4)


"어? 어............ 아! 고폭탄이나 대공포로 처리하면 파편이 많이 튀니까 깔끔하게 스스로 꺼지라고 만드는거야"

파편(고기덩어리)

"아하! 알았어요!"

순순히 납득하는 플리머스였다


(그날 저녁, 모나크의 숙소)

"아니 한국인들은 '집에나 가서 김치-저장소에서 김치나 꺼내먹어라'라고 하면 자기집에 있는 김치-냉장고 자랑한다는데 사실인가?"

한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사이트에서 번역기 돌려가면서 글쓰는 모나크


"우리집엔 없는데 부모님 집에 두개 있는데"

"ㅇㅇ 4도어 있는데 니집엔 없냐? ㅋ"

"과일하고 맥주보관하기 좋은데 왜 안삼?"

"원룸도 아니고 결혼했는데 김치냉장고 없는 집도있나?"

김치냉장고 보급률 90%의 나라에서 김치냉장고 보유여부를 묻는 모나크 (5)


"아니 근데 집마다 김치냉장고가 있다고? 한국인들은 1년 내내 김치만 먹고 사냐? 씨발 미친 김치-인간들 같으니라고"

지휘관에게 배운 실전 한국어를 그날 저녁에 바로 응용하는 모나크

 

"ㅇㅇ"

"그런데? 너 어디사냐? -짱?-"

"베이징 자택에서 검거"

"로열"

"로열? 좆같은 급식에 장어젤리 처먹고 살바에야 김칫국에 김치볶음밥에 김치 먹고만다 씨발 ㅋㅋㅋ"

"ㅇㅈ 훈련소 짬밥보다 맛없는 해병푸드 안사요 우웩"

"한국말 잘하는데 몇년 살았냐?"


'과일하고 맥주보관... 살까?'

고민하는 모나크였다



(1) 前 국립국어원장의 고백 "띄어쓰기, 나도 자신 없다" , 조선일보, 2013.05.22. 

(2) 작년 한글날 직후에 썼던 단편 참고

(3) 1173년, 무신정권 이의민이 의종(고려)의 척추를 꺾어 시해, 이른바 이의민의 추나요법

(4) 브루클린(경순) 강화 대사 중에 '실력은 함포 외교의 기본'이라는 대사가 있다

(5) https://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1214 한국 갤럽조사 참고


https://arca.live/b/azurlane/112587328 이거 보고 쓴 단편

솔직히 원어민 강사 있으면 노잼 문법말고 슬랭 섞인 실전 회화를 배우는게 맞지않냐?




한국인이야 문법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구성이지만 

외국인 입장에서는 은/는/ㄴ 구분이야 그렇다 해도 갑자기 ㄷㄹㅂㅅ 탈락 튀어나오고 하면 머리아플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