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이벤이라던가 뭐 기타등등 때마다

만쥬에서 벽람 공식 웨이보랑은 별개로 자사 웨이보에 뉴스기사처럼 벽람과 관련된 함생정보나 전쟁역사를 연재함

이런식으로 요스타 뿐 아니라 만쥬도 개별적으로 소소한 컨텐츠 제공하면서 소통하려고 노력하는데

병신 룽청은 맨날 만쥬탓 하면서 이런건 절대 해줄리 없으니 핫산해옴


이번엔 러시아 이벤이라 프로젝트7형 구축함 관련

워낙 내용이 길어서 의역했음 중국어 잘하는 게이 있으면 오타오역 지적좀 폰으로 적는다고 오타 있을수도 있음

괄호안에 내용은 내가 추가자료 찾아보면서 보충설명 붙인거임


원문은 아래

https://weibo.com/ttarticle/x/m/show/id/2309404609168278683904?_wb_client_=1




소련은 '대함대' 를 구축하는 것을 꿈꾸왔다. 거대한 육지를 가진 이 국가는 내전과 경제위기를 힘겹게 극복한 끝에 경제와 산업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망가진 해군을 다시 회복하고 발전시킬 경제력과 공업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소련의 대함대 계획중 구축함은 필수적인 것이었으며, 서양 해상강국들과의 기술교류를 통해 「레닌그라드급」, 「민스크급」 구축함의 자체 건조와 운용으로 점점 힘을 키워가던 소련의 붉은 해군은 50척에 달하는 신형 구축함을 빠르게 건조, 발트해 함대와 흑해 함대, 태평양 함대를 강화하고자 했다. 이러한 이유로 탄생한 것이 소련의 붉은해군 구축함대의 주축인 「그녜브니」급 구축함이다(다른말로 프로젝트 7형 구축함).


레닌그라드급과 민스크급 구축함을 건조한 이후, 소련의 해군은 노후화된 기존의 구축함을 폐기, 새로운 구축함을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소련 해군 고위층에 요구에 따라 그녜브니(분노라는 러시아어)급 구축함은 배수량 최소 1300t 이상, 30노트 이상의 최대항속, 항속거리 최소 1800해리 이상으로 건조되었다. 무장은 130mm Б-13단장포 3기(러시아 위키백과서 4개라고 나와있는데 만쥬팀이 실수한듯), 76mm 34-K 대공포 2문, 45mm 21-K 대공기관포 2문, 533mm 3연장 어뢰발사관 2문으로 구성되었으며, 제1중앙선박건조설계국(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네프스키 설계국)이 담당했으며, 기존 레닌그라드급과 민스크급 구축함 개발에 참여했던 기술자들도 일부 있었다.


여러가지 기술적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설계는 이탈리아의 마에스트랄레급 구축함을 카피하였다.


하지만 레닌그라드급과 민스크급 구축함은 성공적으로 완성되었음에도 종합적인 평가가 좋지 못했기에, 엔지니어들은 스스로의 기술부족을 잘 알고있었다. 따라서 소련당국은 이데올로기보다 실속을 중시하는 당시의 국가이념에 따라, 이탈리아의 안살도 조선소와 OTO 조선소에 기술지원을 요청하였다. 이탈리아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은 소련은 마침내 마에스트랄레급 구축함의 설계안과 도면을 얻게 되었고,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게된 소련의 설계사들은 빠르게 신식 구축함의 설계를 완성하였다. 마침내 1934년 12월, 신식 구축함의 설계안은 프로젝트 7형 구축함으로 공식적으로 명명되었다. 최초의 함선 이름을 따서 그녜브니급 구축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파도를 가르는 그녜브니급 구축함, 함선에 적혀있는 숫자를 보아, 흑해함대의 구축함이다

(17 적힌건 흑해함대 소속 구축함 볘스파샤드니 Беспощадный)


그녜브니급 구축함은 4개의 조선소가 총 53척을 공동으로 건조, 4개의 함대(소련해군은 발트, 태평양, 북방, 흑해 4개의 함대가 있었음)에 배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취역이후 소련 해군은 이 구축함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함선 공간이 좁다는 것이었는데, 선원이 쓸 선실은 커녕 무장의 배치조차 힘들었다. 이밖에 무게중심이 맞지않아 기내의 진동이 심해 선체가 굉장히 흔들린다는 내항성 문제도 존재했다.


이러한 문제가 산재하던 중에, 그녜브니급 구축함 생산중단의 결정적 단초가 된 것은 영국의 H급 구축함의 사고였다.

스페인 내전에서 순찰을 하던 H급 구축함 1척이 어뢰로 인하여 폭파하는 사건이 생겼다. 어뢰 자체는 큰 위력이 없었지만, 보일러실과 기관실이 붙어있어서 그곳에 직격하여 대파된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녜브니급 구축함과 폭파된 H급 구축함의 기내배치가 놀라울 정도로 흡사했다는 점이다. 이에 소련의 해군 수뇌부는 그녜브니급 구축함의 생존성을 우려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녜브니급 구축함의 건조계획은 중단, 53척의 계획 중 총 28척으로 끝나게 되었다. 이후 소련은 그녜브니급을 개선한 스따라졔보이(Сторожевой)급 구축함을 건조하게 된다(프로젝트 7U형 구축함).


새로 취역한 스따라졔보이급 구축함은 기존 그녜브니급의 개선형으로 대표적으로 기관동력등이 개선되었으나,

대숙청(Большой террор) 으로 인한 인력의 부재로 결국 기존 그녜브니급보다 성능이 떨어졌다.


냉정히 말해서, 비록 이런저런 결함이 있었을지언정 소련의 1세대 자체개발 구축함들은 역사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탈리아의 함선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강함 화력과 빠른 속도를 가지게 되었고, 이로인해 대형 함선이 부족했던 소련의 해군은 그녜브니급에 중책을 맡기게 되었다. 극동태평양함대에 투입된 9척의 함정을 제외한 나머지 그녜브니급 구축함들은 대부분 험난한 전투에서 구사일생으로 혹사당했으며, 소련군의 국가 수성에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전후 안샨을 포함한 그녜브니급 구축함 4척(레코르드니-안샨 / 례즈키-푸슌 / 례쉬톌니-창춘 / 례티비-타이위안)은 중국으로 인도, 「4대금강」(한국명 사천왕,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존재, 이걸 벽람에서 안샨급 애들이 각각 청룡 주작 백호 현무 옷을 입고 있는 걸로 고증했음)으로 불리우며 중국의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했다.


현재 다롄의 호랑이 해변에 정박중인 타이위안,

사대금강은 중국의 해군 건설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로즈니는 가장 일찍 취역한 그녜브니급 구축함 중 하나로 1935년 12월 21일 착공, 이듬해 7월 31일 진수된 후 38년 12월 9일에 정식적으로 취역했다. 처음엔 발트함대에 소속되었지만 얼마못가 추운 북방함대로 전출, 겨울전쟁(소련 핀란드간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하기 전부터  그로즈니는 백해 해역에 기뢰부설 임무를 빠르게 완수하며 전쟁을 대비했다. 독소전쟁 발발 이후 그로즈니는 주로 수송임무를 맡게 되었고, 독일군 전투기의 무차별적인 포격세례를 받게되었다. 하지만 방공화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가지고도 이러한 핸디캡을 모두 극복해낸 그로즈니는 종전까지 무려 60번의 작전수행에서 적기 6대를 격추시켰고, 전후 그로즈니의 활약상은 적기훈장(Орден Красного Знамени)으로 보상받게 되었다.


1942년 구축함 그리즈니


그로즈니에 비해, 스트례미텔니의 함생은 그리 뛰어나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다른 그녜브니급 구축함들도 마찬가지이다. 스트례미텔니는 1936년 8월 22일 정식으로 착공, 1937년 2월 2일에 진수되었으며 1938년에 정식으로 함대에 편입되었다. 처음엔 발트함대에서 복무를 하던 스트례미텔니는 이후 겨울전쟁에 참전, 일부 임무를 수행한 뒤 북방함대로 전출된다. 당시 독일군은 소련 북방의 중요항구인 무르만스크를 빼앗을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독일의 침입을 막기위해 스트례미텔니는 다른 자매함 2척과 함께 상륙작전의 엄호를 맡게된다. 작전수행 6일 후 모항으로 돌아온 스트례미텔니는 독일군의 JU87 급강하폭격기(슈투카)에 의해 4발의 폭탄에 피격, 반쪽으로 갈라져 파괴되었다. 1942년 4월, 스트례미텔니의 잔해를 인양하여 훼손이 덜된 부분을 자매함 라즈야룐니의 수리에 사용하였다. 이렇게 자매함의 부품으로써 스트례미텔니는 전투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예인선의 도움을 받아 입항하는 스트례미텔니


그리먀시는 그녜브니급 구축함 중 가장 크게 성공한 구축함이다. 1938년 8월 28일 발트함대로 경력을 시작한 그리먀시는, 겨울전쟁에서 순찰 경계와 병력수송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독일이 소련을 공격한 다음날, 위기에 처한 북방함대로 달려간 그리먀시는 첫 호송작전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고 이후 전설을 쓰게 된다. 그리먀시는 독소전쟁 기간동안 90회의 작전에 투입되어 63개 선단의 호송임무를 수행하였고, 극도로 불리한 상황과 악천후 속에서 여러 위기를 맞이하며 이동중 폭격으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대의 적기를 격추, 20대의 적기에 피해를 입혔고 독일 잠수함 U-585을 격추, 두 척의 잠수함에 피해를 줬다. 이러한 활약으로 북방함대의 최고 에이스 함선이었던 그리먀시는 1943년, 친위(Гвардия)함 이라는 칭호를 수여받게 된다(2차대전기 북방함대에서 유일하게 이 칭호를 받은 함선임). 이후 대개장을 받게 된 그리먀시는 계속해서 소련의 붉은해군에서 빛을 발하며, 그녀의 그림자를 소련군의 이후 실험에서 확인할 수 있다(핵실험에 쓰고 버려짐, 이후에 우표나 기념주화등에 등장할 정도로 네임드쉽으로 남음).


구축함 그리먀시 투시도


단결은 곧 힘이라고 믿는 그롬키도 처음엔 발트함대에서 복무하다 이후 북방함대로 전입해왔다. 1941년 9월에는 노르웨이 내 독일군 진지에 대한 공격임무에 참여했다. 1942년 호송작전중이던 그롬키에게 기계 고장이 발생하는 일이 생겼고, 계속해서 독일군의 폭격세례를 받게된 소련 해군은 결국 무르만스크에서 그롬키를 철수시킨다. 그달 말에 복귀한 그롬키는 또 다른 호송작전 중에 독일군 폭격기에 피격당했으며, 5월 6일엔 독일군의 해안포격에 의해 피해를 입게된다. 그롬키는 그리먀시와 마찬가지로 일선에서 계속해서 싸웠지만, 그리먀시에 비하면 운이 없었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부상을 딛고 분전했던 동지를 위해, 1945년 3월 6일 소련의 해군은 적기훈장을 그롬키에게 수여한다.


모든 사진의 출처는 인터넷(구라안치고 이따구로 출처적음)


그롬키 스킨 한정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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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게임정보는 아니고 별개로 운영하는 웨이보서 올라온 함생정보라 정보탭 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