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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잘하는 게이들의 오역및 오타지적 앙망

괄호안은 본문에 없는, 내가 번역하면서 추가한 보충설명임

글이 길어서 의역많음



[벽람함조국]Vol.69 「무르만스크」호 순양함 이야기


부제 : 이 꼬리 어때요? 부들부들한게 만지면 기분이 좋아요~히히,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북극지역의 한파속에서 혁명사업의 완수를 위해 분전한 것은 소련의 함선 뿐만이 아니었다. 동맹국을 지원하는 「무기대여법」에 따라, 서방 국가에서 오랜 기간을 복무한 구형 함선들이 소련의 붉은 해군에게 넘겨졌다. 이들은 붉은 진영 소속으로 동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반 파시즘 전쟁의 승리에 기여했고, 전후 소련 해군의 재건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가장 힘든 시기를 함께했다. 서방 국가의 원조로 소련에 오게 된 함선 들 중에는 오마하급 경순양함 「밀워키」호가 포함되어 있었다. 멀리서 소련까지 건너온 이 함선은 「무르만스크」라는, 소련 최대 부동항의 이름을 수여받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무기대여법 : Lend-Lease, 미국이 동맹군 존나 지원해줌)



1922년 3월 24일, 미국 워싱턴 주의 토드 조선소에서 오마하급 경순양함 2번함 밀워키가 성조기를 두른 채 환호속에서 진수되었다. 이 함선이 바로 훗날 알려진 무르만스크다. 미 해군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설계하고 건조했던 제1형 순양함 무르만스크(밀워키)의 역할은 그녀의 자매함들과 같이, 주력 함대의 선발대로써 구축함들을 이끌며 전쟁 전 정찰활동을 통해 주력 함대에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탄생하였다.


성황이던 무르만스크(밀워키)의 진수식


오마하급 경순양함은 상기했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보통 함선들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었던 최대 35노트의 초고속의 항속을 가지게 됐다. 따라서 오마하급은 빠른 구축함들과의 정찰임무를 수행 할 수 있었다. 또한 항속거리 10노트 9000해리라는 스펙을 가짐으로써 주력함대와 함께 원거리 항해 임무도 수행 할 수 있었다. 물론 표준배수량 7160t, 152mm 주포 12문을 장착하여 동급의 적들에게도 압도적 화력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취역한지 오래되지 않은 무르만스크(밀워키)가 금문교를 지나는 사진


하지만 오마하급 경순양함도 설계상 한계로 인한 단점이 존재했다. 예를들면, 건조 도중에 설계디자인을 변경하는 바람에 막 취역한 오마하급은 과적의 문제를 가지게 되었다. 이로인해 오마하급 함선은 개조하기 힘들었으며 개조를 하려면 장비를 일부 제거하여야만 했다.

두번째로, 건현(배가 물위에 떴을때 드러나있는 부분)이 너무 작아서 함미와 함수, 어뢰실이 파도에 취약했다.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속도에 집중한 나머지 선원의 생활을 지나치게 희생하였다. 선원들의 생활 공간은 지나치게 좁았으며, 단열이 되지않아 추운 지역에선 굉장히 춥고, 더운 지방에선 굉장히 더웠다.

그럼에도 미 해군은 오마하급 경순양함을 높이 평가했다. 비록 개량된 신형 순양함이 나올때마다 처음 진수시의 위상을 잃긴 했지만, 높은 항속과 강력한 화력으로 계속해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1929년 3월 6일 촬영된 무르만스크(밀워키)의 함수(艦首, 군함의 앞부분)사진을 보면, 폭풍으로 인해 파도가 배에 유입됨을 볼 수 있다


1923년 6월 20일, 정식으로 미 해군에서 임무를 시작하게 된 무르만스크(밀워키)는 과학탐사, 함대훈련 등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훗날,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하였다. 당시 브루클린의 해군 조선소에서 수리중이던 무르만스크는 수리를 마치자마자 빠르게 합류, 남대서양 해역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무르만스크는 이탈리아 잠수함의 공격을 받은 브라질 화물선을 구조하기도 했고, 유조선의 화재 진압을 하기도 했으며, 봉쇄구역을 몰래 넘으려던 독일의 함선들을 친구들과 함께 격파하기도 했다.

물론 긴 현역기간동안 불상사가 없던 것은 아니다. 1943년 5월 31일, 무르만스크는 브라질 해안에서 언니 오마하와 불의의 충돌사고를 내고 말았다.


무기대여법에 근거, 소련에 제공되는 탱크가 소련행 화물선에 실려있다


남대서양에서 무르만스크(밀워키)가 소소한 전과를 거두는 동안, 소련 지원루트인 북극항로는 여전히 위험에 처해있었다. 북극항로는 서방에서 소련에 물자를 공급하는 「대동맥」으로, 「무기대여법」에 따라 지원되는 물자는 대다수가 이 항로를 통해 소련으로 공급되었으며, 1941~1943년, 소련이 굉장히 위험했던 시기에 소련은 특히나 북극항로로 들어오는 물자에 의존했다. 몇 년간 12755대의 탱크, 22200대의 항공기, 375800대의 트럭, 400만t의 탄약 및 기타 보급품이 북극항로를 통해 소련에 공급되었고 이 과정에서 함선 약 100척이 격침되는 뼈아픈 대가를 치루었다. 공급선을 마중나가던 소련의 소규모 북방함대도 계속해서 손실을 입게 되었고, 함선의 수가 계속 줄어들면서 임무 수행이 힘들어지게 되었다.


(1941~43년은 독소전쟁기간동안 소련이 존나 고생하던 시기, 이때 무르만스크 항구로 들어오던 미국의 지원이 큰 도움댔다고 함)


1943년 8월 6일부터 8월 17일까지 브루클린 해군 항구에서 수리받는 무르만스크(밀워키)


시간이 흘러 이탈리아가 연합군에 항복하게 되었다. 소련은 이탈리아 해군의 함선 분배문제로 미국 영국과 논쟁을 벌이게 된다. 소련 해군은 전쟁에서 큰 손실을 입었고, 이탈리아의 함선들을 자국 함선으로 사용하여 이 손실을 메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는 미국•영국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생각이었다. 따라서 미국•영국은 자신들의 일부 함선을 소련에 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치사하고 인색하던 영국 해군과 다르게, 미국은 통크게 소련에 함선을 제공했다. 왜 통이 크냐면, 미국이 소련에 넘겨준 15척의 함선 중에는 무려 좋은 활약을 계속 보여주던 무르만스크(밀워키)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44년 2월 8일, 오마하급 경순양함은 브루클린에 입항, 소련으로 갈 준비를 시작했다.


1943년 8월, 뉴욕시 인근을 항해하던 밀워키, 소련에게 대여된 후 이름은 무르만스크로 바뀌게 된다.


1944년 3월 29일, JW58 선단이 소련의 부동항 무르만스크를 향해 지원물자를 싣고 출발했다. 이 물자운송선을 보호하기 위해 경순양함 밀워키가 함께 했다. 하지만 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귀환하는 다른 함선들과는 달리, 경순양함 밀워키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소련해군에 인도되었다. 4월 20일, 밀워키는 정식으로 소련 북방함대에 입단하였다. 밀워키는 처음 도착한 항구의 이름을 따서 무르만스크로 개명되었다. 무르만스크는 남은 전쟁기간 동안 북극해 인근에서 호송 및 순찰임무를 담당한다.



소련 해군에 정식으로 입단하게 된 무르만스크, 함미의 이름도 수정되어 있는것에 주목


전후 무르만스크는 훈련함이 되었다. 1948년 소련의 함대 훈련에 참가하였다. 임대기간이 끝난 후 1949년 3월 16일, 무르만스크는 소련으로 간 15척의 미국 함선중 가장 먼저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무르만스크는 소련 스타일의 도장을 제거하고, 다시 이름을 밀워키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무르만스크는 영국이 소련에게 임대해준 함선들과 다르게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무르만스크의 자매함들은 이미 모두 퇴역했음에도 무르만스크는 계속해서 아름다운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 해군은 시대에 뒤떨어진 무르만스크를 계속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1949년 12월 10일, 무르만스크는 결국 해체라는 운명에 처한다.


미국에 돌아와 도색을 끝마친 무르만스크(밀워키), 함선의 상태가 굉장히 좋다



모든 사진 출처는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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