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렁 커어어어허컥. 푸허억

"미친새끼 해군 지휘관이란 새끼가 코에는 탱크 엔진을 처박아 놨나."

체셔는 방바닥을 장식하듯 어지러이 흩어진 옷가지들을 내려다보았다.

다리 사이로 기분 나쁜 액체들이 뒤섞여 허벅지로 흘러 내렸다.

땀인지 애액인지 아니면 저 뚱땡이의 것인지 성분조차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OO모항으로 전속된지 벌써 1년째. 본가에서의 푸대접보단 나으리라는 윗대가리들의 말은 그녀에게 무척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일 그녀가 거부했더라도, 인사 명령장을 들이밀며 이곳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모항에 들어오자마자 온갖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경멸, 동정, 위로, 시기, 질투, 살의 그리고 이미 다 소화됐을 3일전 식사가 마치 위에서 부활해 올라오는 느낌을 주는 끔찍한 시선까지.

그 돼지새끼는 입가에서 턱으로 흐르는 세 줄기 침은 상관없다는 듯 체셔에게 달려들었다. 불연듯 체셔의 머리속을 비집고 이틀전 상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곳의 지휘관에게 이쁨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봐. 문제를 일으켜 이쪽으로 반송된다면.......

그 말끝의 단어는 떠올리기만 해도 공포감에 온몸이 떨리는 끔찍한 것이었다. 그녀는 억지로라도 웃으며 지휘관이라는 작자에게 인사했다.

"냥~ 서방님 처음 뵙겠다냥! 로열의 체셔라고 한다냥~"

우욱 씨발. 웃음기를 유지하면서 체셔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려는 쌍욕을 억눌러야만 했다.

얼굴은 여드름과 개기름으로 범벅이며, 머리는 삼일 정도는 안 감은듯 떡져 있었다.

두툼한 안경 렌즈와 쭉 찢어진 눈은 체셔에게 근원적 혐오감을 일으켰다.

무엇보다도 눈, 코, 입의 배치가 초등학생이 어질러둔 장난감방 같았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랴. 체셔는 살아남기 위해 못생기고 뚱뚱한 육수 지휘관에게 갖은 아양을 떨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밤에 이르렀다.

체셔는 최대한 지휘관이라는 작자와 심리적, 육체적 거리를 두려 했다. 그러면서도 지휘관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자기 선에선 상냥하게 그를 대했다. 그것이 지휘관을 착각하게 만들었다.

평생 여자는 어머니와 할머니 밖에 모르던 뚱땡이가, 자신에게 잘 대해주니 기고만장해진 것이다. 그의 요구는 점점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손, 발, 겨드랑이 등등. 체셔는 역겨워 죽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버텼다. 전 상관의 마지막 충고가 그녀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스크랩. 함선들에게 가장 끔찍한 최후였다.

살아남는게 나으니까. 적어도 싸움에 나선다는 전투함으로써의 삶의 이유가 남아 있으니까. 체셔는 안쪽 입술, 혀, 잇몸,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버텨야했다.

그럴때마다 그녀는 고통과 깊은 자괴감에 시달려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은 동정 지휘관에게 그녀를 겨드랑이로 가버리게 했다는 더 큰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어느 날, 체셔는 지휘실을 박차고 나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오이겐을 보았다. 그녀는 체셔를 지나치며 소름끼칠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체셔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으나, 얼굴 근육을 풀고 웃으며 지휘실로 들어갔다.

"서방님~ 부르셨냥?"

바닥에 널부러진 거대한 돈까스에서 불닭소스처럼 시뻘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체셔는 이를 꽉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돼지의 안경은 반으로 갈라져 죽었고, 렌즈 파편이 얼굴 주변에 튀어있었다.

"으응. 체셔 왔구나. 오이겐에게 맡겼던 비서함 임무를 해제했어. 자기도 아쉬운지 괜찮은 척 하면서 환하게 수락하는거 있지?"

어쩐지 신나하더라. 체셔는 단박에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다.

"근데 얼굴이 왜 이러냥? 서방님 아프겠다냥......."

더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속으로만 내뱉었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돼지의 피를 닦아주려다가, 도로 집어넣고 널부러진 지휘관모로 얼굴을 대충 문질렀다.

"아쉬운척 연기를 하길래... 하루만 미뤄주겠다고 했더니 이러더라. 하하. 끝까지 날 배려해줬다니까 오이겐."

오이겐의 폭행 사유를 명확히 이해한 체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년의 웃음에 가려진 비웃음 또한 알 수 있었다. 뺑이쳐라 병신아.

 군대에서 유서 깊게 내려오는 전통, 후임자에게 짬때리고 튀는 선임이었다.

씨발련.

그리고 체셔는 듣기 싫었던 말을 기어코 하는 지휘관을 죽이고 싶었다.

"내일부턴 네가 내 비서함이야. 체셔. 잘부탁해."

말을 마친 지휘관은 그대로 쓰러졌다.



체셔는 별말 없이 지휘관의 간호를 해 주었다. 그것은 지휘관의 마음에 들려 한 행동이 아니었다.

오이겐과 철혈년들에 대한 일종의 보복에 매진해 있던 그녀는, 지휘관의 호출에 무미건조하게 응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다 지휘관에게 더 큰 오해를 가져다 주었다.

마치 그의 상처에 체셔는 마음이 아파 별 말 못하고 묵묵히 간호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지휘관은 병상에서 그녀가 자신의 운명의 상대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오늘로 이어져, 뜬금없이 만쥬 레스토랑으로 불려나온 체셔는 황당한 고백을 받았다.

"주...죽을래! 아님 나랑 결혼할래!"

오이겐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복수극을 꿈꾸던 그녀에게, 죽고 싶냐는 지휘관의 물음은 마음속 깊은곳의 공포를 떠올렸다.

"서...서방님? 그게 무슨......."

오래된 싸구려 드라마 멘트를 반 정도 갖다쓴 듯한 지휘관의 고백에 체셔는 어안이 벙벙했다.

"마...말 그, 그대로야!"

하필 그날은 체셔를 제외한 로열 함선들의 대작전 수행 완료 기념 회식이 이뤄지고 있었다. 레스토랑의 분위기는 북련 함순이의 얼음뷰지보다도 차갑게 식어버렸다.

체셔는 주변의 눈치와 지휘관의 표정, 여러가지 것들을 종합해봤다. 그리고 좆됐음을 깨달았다.

아. 내가 이 병신에게 너무 잘 대해줬구나. 멀리서 같은 pr함인 파란색 참피, 넵튠이 휘파람을 불며 분위기를 띄운다.

"이야~ 로열의 자랑~ PR함 체셔님께서 우리 지휘관님께 고백을 받으셨네? 경사잖아~"

"히익. 저딴 주인님께 사랑받느니 버려지는게 더 나아요."

다이도가 한 소리 붙였다가 시리우스에게 얻어 맞았다. 대부분은 안타깝거나, 안 됐다는 표정으로 체셔를 바라봤다. 로열 함선들은 조금씩 자리를 떠나더니, 이내 레스토랑엔 지휘관과 체셔만이 남았다.

체셔는 눈물을 똑똑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한 방울, 두 방울. 쏟아지다시피 흐르는 눈물 사이로 체셔는 억지 웃음을 지었다.

"흑...흐흑...서방님........ 고...맙다냥~"

체셔는 살기 위해 반지를 받았다.

그 뒤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싶다고 하니, 안 한 것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생으로 괜찮을까라는 말에 대답할 기회는 없었다.

안쪽으로 반의 반까지도 들어오지 못한 나약한 살덩어리는 5초간 헉헉거린 끝에 물렁해졌다.

비통한 심정으로 누워있는 체셔의 뺨을, 자기 생각으론 부드럽게 만져줬다고 생각한 지휘관은 이렇게 말했다.

"체셔도...좋았어?"

그녀는 왼팔로 두 눈을 가린채 끄덕였다. 지휘관은 그녀가 부끄러워 한다고 생각했다. 허약한 지휘관은 이내 잠들었고, 미친듯한 코고는 소리는 쿠르스크 전차전을 연상케했다.

체셔는 욕실로 들어가 미친듯이 온몸을 닦아냈다.

얼굴, 목, 팔, 다리, 가슴, 고간 그리고 입속까지.

양치질을 네 번째로 하던 중 그녀는 치솟는 분노에 그대로 칫솔을 욕실 바닥에 내팽개쳤다.

"씨발...씨발...씨발, 씨발, 씨팔, 씨이이팔!"

중순양함의 펀치는 인간의 것보다 강했다. 그녀의 주먹이 욕실 거울에 처박혔다.

"아 됐어. 이제 다 필요 없어."

욕실에서 나온 체셔는 지휘관이 대자로 뻗은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시원한 연기가 체셔의 속을 삭혀주었다.

스크랩이고 뭐고 다 상관 없다. 비서함이라는건 임무에서 빠지고, 작전에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허나 상부에서 그녀에게 일렀던 것처럼, 이 못생긴 돼지는 업무 능력 하나는 대단했다. 그러니 그의 마음에 들어야 좋을 거라고 했겠지. 그녀가 할 일은 서류작업 몇개 빼곤 없었다.

다만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도 다른 함선들과 함께 친하게 잘 지내고 싶었다. 반품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휘관에게 들이댄 것 때문에, 다른 함선들은 그녀를 미친년 취급했다.

자신의 진영에서마저도 소외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돌아가봐야 스크랩처리 당할게 뻔했다.

"어떻게 할까냥......."

냥이라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가 입에 베어버렸음을 자각하자 체셔는 희미하게 흐느꼈다.

이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예전처럼 살 수 없게 됐다. 더러운 것에게 사랑받고 있다.

더는 중순양함 체셔로 있을 수 없어.

전투에 나서고 임무에 나서는 전투함 체셔. 그것만을 위해서, 스크랩당하지 않도록 온갖 고초를 감내했다.

 하지만 유일 비서함에, 지휘관에게 반지까지 받은 지금. 여기 남은 건 체셔가 아닌, 메이드도 고양이도 아닌 어중간한 창녀 뿐이었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담뱃불이 긴 생각 끝에 검지로 쥔 데에까지 타들어왔다. 체셔는 짤막한 통증과 함께 꼴초를 떨어뜨렸다.

"앙~ 체셔의 담배가 떨어졌다."

모항 커뮤니티에 올라온 체셔가 담배피는 모습을 도촬한 사진. 그것으로 중앵 쪽 누군가가 그려서 올린 단편 만화가 기억났다.

체셔는 고개를 틀어 행복한 모습으로 자는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두툼한 손으로 배를 긁적거리는 뚱땡이 지휘관.

체셔는 다시 태어난들 이놈을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생각이 체셔의 행동에 불을 붙였다.

잠시후 만쥬호텔 2층 304호실에서 둔탁한 폭음이 들렸다.

체셔는 행방이 묘연해졌고, 지휘관의 시신 일부가 현장에서 수습됐다. 상부는 최대한 사건을 별탈 없이 덮으려 했다. 함선들의 동의도 얻었다.

체셔라는 이름의 중순양함은 지금도 바다 어딘가에서 배회하고 있다는 괴담이 돌았다. 고양이도 아니고 메이드도 아닌 기괴한 차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