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장면


왜 리토리오는 이스탄불이라는 명칭을 씹었을까



이스탄불은 현재 터키의 대도시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리토리오가 콘스탄티노플로 장황하게 설명을 했지만 왜 이탈리아가 아니고 터키의 도시인가?



본디 이곳은 콘스탄티노폴리스라는 비잔틴 제국의 도시였다.

굳이 로마-비잔틴-이탈리아 라는 관계를 설명하진 않겠지만, 현재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의 문화를 정신적으로 계승한 국가라 보면된다. 암튼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에 의해 멸망하면서 이 도시를 오스만이 꿀꺽 하게 되는데 거기서 이스탄불이 된 것이다.



이러니 리토리오는 토리첼리의 발언을 씹은 것이다.

근데 재밌는건 로마 제국부터 존나 강력했던 비잔틴이 왜 멸망했는가인데 이게 존나게 파란만장하다. 사실 이스탄불 자체가 존나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암튼 1071년 이슬람과 기독교의 갈등이 극에 달한 시기인데, 이 해에 비잔틴은 만치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투르크족에게 아주 개박살이 나버린다. 그냥 전멸을 당했는데 견훤이 당시 비잔틴 지도자였으면 옆에 있던 사람 한두명은 필히 죽였을 것이다. 왜냐고?

이 전투로 비잔틴 동부를 이슬람이 다 쳐먹었거든. 그리고 이때부터 유럽국가의 정신적 지주였던 비잔틴은 서서히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전쟁에 패하고 알렉시우스는 투르크족에 대항하기 위해 서유럽에 원조를 요청한다. 근데 이것도 비잔틴에게 최악의 수가 되었다.

그의 원조 요청은 십자군 전쟁의 원인이 되었는데...



1차 십자군은 비잔틴에게 소아시아를 되찾게 해주는 활약을 했지만, 원래 비잔틴 영토인 시리아를 지들이 쳐먹음.

그리고 이 때문에 서유럽과 비잔틴은 갈등이 깊어지는데 이미 힘이 다 빠진 비잔틴은 뭐라고 항의조차 못하는 상황.

그런 상황인걸 서유럽도 인지하고 1204년에 4차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해버리고 약탈하는 통수를 저지른다.



이때의 비잔틴은 그야말로 거지 그자체였는데, 이들은 시외곽에서 1261년까지 명맥만 이어오다가 간신히 다시 콘스탄티노플을 되찾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스만 : 저 도시를 수도로 삼아야겠다.

비잔틴 : 시발 우리 이 도시말고 남은게 없는데 그러고 싶음?

오스만 : ㅇ 존나 그러고 싶음.



그렇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수성전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이 시작되었다.

이 때의 콘스탄티노플 도시 인구는 고작 4만명, 병력은 7천 밖에 되지 않았다.

이때 오스만이 들고온 병력은 그 열배



또한 병력차만 문제가 아니었는데, 이 새끼들은 이때부터 존나 크고 우람한 대포를 들고와서 빵빵 쏴제끼니 기술력에서 이미 넘을 수 없는 격차를 가지고 있었던 것

사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방전을 벌인게 용한 수준. 이 장판파급 방어전은 다음 시간에 설명하도록 하고, 결국 오스만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이스탄불로 강제 개명을 당해버린다. 이러니 리토리오가 토리첼리한테 얼탱이가 없는 것도 당연한 것



넌 씨발 눈치도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