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 니스트?" 오딘은 눈 앞의 여성이 무슨 말을 하는 것 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모항은 하나 같이 죄다 이 모양이네."


"우리는 싸우기 위하여 만들어진 존재거늘, 페미니즘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싸우기 위한 존재에도 인권은 필요한거야. 이제보니 오딘, 너 말하는 게 명예 자.. "


"자?.. "


하우는 말을 끝내지 못한 채로 입을 다물었는데, 매섭게 가늘어진 눈초리가 오딘을 신경질적으로 바라볼 뿐 이었다.


"됐어. 넌 아닌가 보다."


킹 조지급의 막내가 몸을 돌렸다. 곧 오딘의 입술 밖으로 싱거운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당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오딘은 알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근래 모항내에서 하우를 중심으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 칸센들이 부쩍 늘고 있던데, 그것과 관련 된 일인지 싶었다.


"괴상한 녀석." 오딘이 중얼거렸다. 상대가 됐다니, 오딘 또한 몸을 돌려 갈 길을 서둘렀다. 자기가 있어야 될 곳으로. 지휘관이 기다리고 있는 집무실로.




검지 손가락의 가운데 마디가 집무실의 문이 두들기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들어와."


"나다, 지휘관. 언제나 처럼 바쁘구나."


기다란 흰색 머리칼을 옆으로 땋은 오딘이 문을 열고서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펜대가 사그락 사그락 거리며 여러 개의 종이 위를 춤추고 있었다. 지휘관은 오딘의 말마따나, 언제나 그렇듯이 바쁜 손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이번 주말은 금요일까지 껴서 부대 휴일이니까, 더 하지. 금요일치 계획서까지 지금 끝내놔야 돼."


지휘관이 초췌한 눈동자로 오딘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젋은 지휘관은 나이들어 보이고 싶어하는 걸까, 엉성하게 난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산더미 처럼 쌓인 서류더미들이 유감스럽구나."


"이번 주 내내 이랬는데 이제와서?" 지휘관이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이번 주말에는 각 진영에 속한 칸센들의 단합회가 있으니 말이다. 주말까지 다 끝낼 순 있는 건가?"


오딘의 말을 들은 지휘관의 이마가 미간을 좁혔다.


"맞아, 그 일 말이지.. 뭐 하우가 내 대신 진행을 맡겠다고 지원을 하긴 했는데.. 요즘 이상한 소문이 있어서 석연치가 않네."


"하우의 정체모를 동아리를 말하는 게냐."


평소 태평한 지휘관의 귀에도 들어갈 정도라면 하우의 행보가 심상치 않긴 하나 보다. 소문대로라면 벌써 로열 칸센들 수 십명이 하우를 따라다니며 다른 진영의 칸센들과 잦은 모임을 가진다고 했다. 하우는 어쩌면 자기만의 새로운 메이드 부대를 만들려고 하는 것 일지도 몰랐다. 그럴리는 없겠으나, 기존의 메이드대와 더욱 커진 새로운 메이드대까지 합해 무언가 다른 일을 꿈꾸는 거라면 지휘관이 확실히 알아볼 필요가 있을것 같았다.


"단합회에 철혈은 문제없다.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딘이 말했다.


"그래, 너도 있고 쉬페나 도이칠란트 그리고 체펠린 같이 듬직한 녀석도 있으니까. 하우에 대해서는 단합회가 끝나고 왜그리 부산스럽게 움직였는지 알아봐도 늦지 않겠지."


"그러고보니 지휘관, 그라프 체펠린의 이름이 나와서 말인데. 체펠린의 의장에…… …. .. "


오딘은 지휘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체펠린의 의장 고장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하우가 무슨 일이 꾸미고 있건 결국 칸센일 뿐이다. 모항의 지도자는 지휘관이다. 자기가 따르는 자 또한 지휘관 뿐이다.


지휘관은 체펠린의 기능고장에 대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메모를 적은 뒤에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오딘과 지휘관은 늦은 점심, 둘만의 단란한 시간을 여유롭 게 만끽했다.






"오딘, 나가는 길에 새 커피 좀 부탁해도 될까?" 지휘관이 찌꺼기 밖에 남지 않은 봉지를 탈탈 털어보이며 말했다.


"그러지. 돌아오는 길에 아카시에게 들리고 오마."


오딘은 지휘관과의 짤막한 시간을 끝내고 집무실을 걸어 나갔다. 조금 더 있고 싶었지만 이제 곧 순찰 시간이었다. 본디 지휘관을 대동한 채로 가는 것이 맞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기에 자기만 가기로 결정을 했다. 오딘은 지휘관이 빨리 업무를 끝내고 쉬기를 바랬다. 그렇게 된다면 자기와 여러가지 군사교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상상만해도 즐거웠다.


오딘의 잽싼 발걸음들이 특유의, 장갑으로 보호 된 치마를 덜그럭 거리며 모항을 누볐다.


애시당초 오랜 시간이 걸릴 만큼 본격적인 순찰이 아니었기 때문에 약 두 시간 남짓한 시침이 흐르고 나자 더 이상 가볼만한 곳이 남지 않았다.
오딘은 가볍 게 숨을 고르며 지휘관에게 줄 커피를 사기 위해 아카시의 보급창고로 걸음을 돌렸다.


좋은 때에 마인츠를 불러다가 진짜 철혈 본토에서나 맛 볼 만한 커피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마인츠의 커피 사랑 또한 지휘관 못지 않으니, 둘이 잘 맞을 것이 분명했다.


.. 그래도 마인츠를 부르는 건 조금 더 나중에나 불러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오딘이었다. 마인츠가 우리 둘 사이에 껴버리면 자기가 커피에 대해 할 말이 없어질 테니까. 그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보급창 안으로 발을 들이켜니 중앵의 녹색머리 고양이 칸센이 예의 그 냥냥하는 재밌는 말투로 오딘을 환영해줬다. 오딘은 곧 바로 용건을 말했고, 아카시는 커피 원두를 건내줬다.


그때, 누군가가 커피 봉지를 든 오딘의 이름을 간드러지게 불러 세웠다.


"오딘!" 


"하우인가."


금발을 찰랑거리며 하우가 걸어왔다. 주위에 로열 칸센들을 대동한 채였다. 아마도 이름이.. 누군지 모르겠다. 복장을 보아하니 메이드대가 아닐까 싶을 뿐이었다.


"몇 시간전에 만났었지? 이렇게 또 만날 정도면 우연 이상의 필연이라고 봐도 될 정도네. 역시, 당신을 옥여맨 코르…. .. 억압을 벗겨내 주는 건 내 사명인거야."


"짧게 말하지. 용무가 있어서." 오딘이 하우의 말을 자르며 커피 봉지를 들어 보였다.


"커피?.. 무슨?"


"지휘관이 부탁한 심부름이다."


".... .. " 하우는 대답이 없었다.


"괜찮은가."


".. 그 자댕이는 손이 없….  발.. 없노? 조팔 이제…. 하.. 다 하…. 비.. 함을.. 노예로 부리... 노.. 이기.... "


"자.. 댕이?"


오딘은 점심부터 이 칸센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자댕이? 자댕이가 무슨 말 일까. 혹여나 알아야 될 새로운 암구호 같은 것 일까.


"하우, 다시한번 말해주면 좋겠는데. 자댕.. 이가 무슨 뜻이지."


"오딘!"


돌연 하우의 두 팔이 오딘을 끌어안았다. 순양전함과 전함간의 태생적인 출력차이 때문인지 오딘이 아무리 밀어내려고 해도 하우는 떨어질줄을 몰랐다.


"주말 까지만 기다려. 주말만 되면, 모든 칸센들이 모인 단합회에서 이 모항을 바꿔내 보일 테니!"


하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오딘을 내려준 뒤에 메이드들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침착하 게 돌아가는 하우와 달리 오딘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례한 놈 같으니. 이상하게도 하우 하고만 만나면 상대의 기세에 말려드는 것만 같았다. 조팔이라던지, 자댕이라던지 잊자. 괴상한 녀석이 쓰는 괴상한 단어 따위 잊어버리자.


오딘은 자기 생각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하우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 했다.


"번탈남 창남 지휘관한테 단단히 코르셋이 조여졌노.. 곧, 이 메이드 애들 처럼 자유롭 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이기야."
오딘은 알 수 없는 한기를 느끼며 집무실로 걸어갔다.







벽람 단편, 페미전사 하우의 반란 (2/2) 에서 계속.



보풍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