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총각이라고?"


 놀란 목소리가 집무실에 울려퍼졌다. 지휘관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주변엔 다행히 그와, 그의 앞에 있는 대령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목소리 좀 낮춰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아니, 야, 미친."


 하던 말을 끝마치지 못한 대령이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고 얼굴을 쓸었다. 혹여나 남들이 들었을까 난처해하는 지휘관의 그 모습을 바라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대령은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저 얼굴과 저 몸을 가지고 숫총각? 얼씨구. 여자들이 눈깔이 삐었나? 대령은 속으로 그런 말을 삼켰다. 저 고지식한 지휘관 앞에서 그런 말을 꺼냈다간 계급이고 자시고 고운 말을 듣지는 못할 터였다. 아무리 계급이 자기보다 낮을지라도, 적어도 대령은 자신의 체면을 한껏 올려주고 있는 저 지휘관의 심기를 거스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근데 그건 그거고, 저 나이에 숫총각이라면 설마.


 "야, 너 혹시……."

 "……동성애자 아닙니다."


 쓰게 웃은 지휘관이 제 손에 든 술잔에 담긴 술을 털어넣었다. 허어, 다시 한 번 대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령도 제 손에 든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크흐,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술기운이 얼큰했다. 벨파스트가 차려준 안주를 집어먹을 새도 없이 대령은 목소리를 낮춘 채 재차 지휘관에게 물었다. 이럴 땐 거침 없는 단어 선택이 중요했다.


 "야, 저기 어디인가 지휘관은 지 좆이 마를 날이 없다던데, 그 와꾸 가지고 아직도 아다라고?"


 거름망 하나 없이 직설적으로 내뱉어진 대령의 질문에 지휘관이 고개를 돌렸다. 대령은 본래 단어 선택이 제 자리에 맞지 않게 저질이었다. 하지만, 좆이 마를 일이 없다는 천박하기 그지 없는 표현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욕망와 함께 성욕, 대령의 표현의 빌리자면 번식욕, 이 하늘을 치솟는다 하는데, 그렇다면 항시 세이렌과의 전장에 목숨을 맡겨두는 지휘관들과 그 휘하 함선 소녀들은 어떠할까.


 흔들다리 효과니 뭐니 하는 거창한 심리적 현상을 들이밀 필요도 없었다. 하물며 남자 구경도 못한 함선 소녀들에게 눈 앞의 지휘관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선물과 다를바 없었다. 출격이 없는 날에는 그야말로 육욕에 빠져사는 지휘부에 있다는 소문은 그도 들은 적이 있다. 그의 함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이야기였지만.


 대령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렇다고 지휘관에게 들이대는 함선 소녀가 없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대령의 바라본 바에 그랬다. 방금만 해도 오늘 비서함을 맡고 있던 벨파스트는 지휘관을 향해 적당히 마시라는 잔소리를 퍼부으면서도 대령이 봐도 정성을 쏟은 안줏거리를 내왔더랬다. 남편이 속 버릴까 걱정하는 아내가 따로 없었다.


 그 외에, 오늘 일과 때 대령이 감찰을 하면서 본 것만 해도 여럿이었다. 다이호는 그야말로 수시로 집무실에 쳐들어왔으며,  수송 호위 의뢰 보고를 하던 카시노는 신선한 우유를 어디서 구해왔다며 지휘관에게 건넸다. 지휘관은 마침 목이 말랐다며 우유를 마셨고, 카시노는 그 모습을 보며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헤실헤실 웃었다. 대령은 그것이 정말 우유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하긴 그럴법도 했다. 준비해온 비싼 술이 모자라 싸구려 증류주를 꺼내 마시는 지금에도, 그의 외모와 절제된 모습은 술잔에 담긴 술이 어디 비싼 보드카라도 되는 듯 만들었다. 얼굴이 모자란 것도 아니오, 몸이 모자란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성격이 모난 것도 아니다. 게다가 대령에게 올라오는 보고 따위를 보면 능력은 또 어떠한가. 지금이야 자신의 밑에 있지만 대령은 금세 그의 어깨에 별이 달릴 것이라 쉬이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총각이라고? 설마.


 "……너 3cm냐?"


 갑작스런 대령의 질문에 지휘관이 벙쪘다.  "아니, 야, 너 정도면 3cm든 뭐든……." 이어지는 그 말에 지휘관은 무슨 소리인지 깨달았다는 듯 입꼬리를 경련시켰다. 아니 이 양반이 진짜.


 "직접 보시겠습니까?"

 "아니, 농담이지 시발. 술 맛 떨어지게 뭐하러 사내 새끼 좆을 봐."


 눈치를 보아하니 3cm는 아니군.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했다. 대령은 다시 술을 들이켰다. 하지만 그러면 더더욱 이해가 안됐다. 신체 건강한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군대란 곳이었으니 성 불구자일리는 없었다. 술 자리에서 언뜻 불편해하는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다른 함대의 지휘관들이 제 이야기를 풀 때 은근히 경청하는 모습도 본 적 있다. 저 건강한 몸에 혈기는 얼마나 넘칠 것인가. 그런데 대체 왜?


 대령의 모습에서 그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알아챈 지휘관이 목을 가다듬었다.


 "그, 어떻게 다가가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 지랄 하네."


 척수 반사적으로 대령이 욕설을 지껄였다. 있는 자의 기만이 따로 없었다. 


 "말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진짜 지랄 하고 있네, 이 새끼."

 "아니, 그, 여자들은 분위기를 굉장히 중시하지 않습니까? 볼 일이 있으면 사무적으로 대하면 되니까 상관이 없는데, 사적으로는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단어 선택이라든지, 그런 것 말입니다."


 "저라고 저희 애들 맘에 안들겠습니까. 그런데 사적으로는 대체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대령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대령은 그가 지금 당장 이 함대에서 지나가는 적당한 함선 소녀를 붙잡고 빠구리 한 판 뜨자 돼지 썅년아, 라고 말해도 어맛, 얼마든지요, 저 오늘 안전한 날이에요. 하면서 함선 소녀가 승낙할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후, 대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령은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내밀었다. 짠, 하는 소리와 함께 잔이 비었다. 둘은 그렇게 말 없이 몇번인가 잔을 비웠다. 머리에 술 기운이 올라왔을 때였다.


 "야, 너 나랑 내기 하나 하자."

 "예?" 


 뜬금없는 대령의 말에 지휘관이 되물었다.


 "내가 은근슬쩍 네가 아다라고 이 모항에 소문을 낼게."

 "……저 자살하는 꼴 보고 싶으신 겁니까?"

 "닥치고 들어 봐. 그러면 네 휘하 애들이 널 덮칠 것 같냐, 안 덮칠 것 같냐."

 "아니 그건 대체 무슨……."

 "그래, 조금 돌려서 말하자. 그럼 너희 애들이 더 적극적으로 유혹할 것 같냐, 아닐 것 같냐?"

 "……지금도 유혹하는 애들이 없는데, 떨어져나가면 더 떨어져나가겠죠."

 "하, 시발 이 새끼 진짜 눈치라곤 쥐좆대가리만큼 없네."

 "말이 심하십니다."

 "내가 보름 내로 너 따먹힌다에 내 대령 자리 건다."


 술이 들어갔다고 해도 대령의 눈빛은 진지했다. 쓰읍, 지휘관은 침음을 삼켰다. 지휘관은 곰곰히 생각했다. 숫총각이라는 소문이 퍼져서 나쁠 것, 솔직히 말해서 딱히 없다. 말이 자살하니 어쩌니했지만, 어차피 소문일 따름이니 그저 조금 부끄러운 정도였다. 해봤자 주변 지휘관들에게 놀림 좀 당하는 정도겠지. 지휘관은 저울에 그 소문으로 떨어질 자신의 지위와, 반대편에 올릴 만한 것을 생각해보았다. 대령 자리 씩이나 걸었으면 조금 무리다 싶은 것을 올려도 괜찮을 듯 했다.


 생각을 정리한 지휘관이 고개를 슬쩍 숙이고 조용히 덧붙였다.


 "그, 대령 자리는 됐고, 소개팅 좀 시켜주시면 안됩니까?"


 그것이 지옥으로 들어가는 길인 것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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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나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