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에 머리를 부여잡으며 지휘관이 몸을 일으켰다. 흐으.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출근 시간은 아직 한참 남기는 했다만, 평소에 비해 일어나는 시간이 늦었다. 어제 대령과 부어라 마셔라 마신 기억이 났다. 쟁여두었던 꽤 괜찮은 술을 다 마시고도 모자라서 싸구려 증류주를 꺼내마셨지. 그 다음에, 뭐했더라. 술 마시면서 음, 꽤 부끄러운 것을 털어놓았고, 그리고, 그리고…….


 아.


 대령과 했던 내기의 내용이 퍼뜩 떠올랐다. 대령이 그의 함대에 그가 숫총각이라는 소문을 은근히 퍼트리고, 과연 그 휘하 함선 소녀들이 그를 유혹할지 말지, 대령에 따르면 그가 따먹힐지 말지, 에 대한 내용이랬다. 그리고 대체 그것이 뭐라고 대령과 그는 둘이 술에 취한 머리를 맞대고 계약서를 작성했었다. 갑은 을이 숫총각이라는 소문을 흘린다. 을은 소문을 부정하지 않는다. 갑은 을이 15일 간 별다른 함선 소녀의 유혹이 없을 시 소개팅을 주선한다……. 술자리에서 나온 장난치고는 쓸데없이 자세했지만 동시에 허술했다. 그는 다시 머리를 부여잡았다. 술에 취한 객기에 덥석 넘어간 것이 후회되었다.


 "주인님, 일어나셨습니까?"


 노크 소리가 울렸다. 벨파스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약간 낮았다. 어제 비서함을 맡긴 것으로도 모자라 술 시중에 아침까지 신경쓰이게 해버렸다. 안줏거리를 마련해주며 그리 강조하던 잔소리를 무시하고 숙취에 절어 이제야 일어났으니 그럴 법도 했다.


 "들어가겠습니다."


 대답이 없자 방에 금세 들이친 그녀는 방 안에서 풍기는 술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휘관은 미안한 듯 고개를 돌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한숨을 푹 내쉰 벨파스트가 방 한 켠에 마련된 샤워실을 가리켰다. "씻고 오십시오. 정리해두겠습니다." 지휘관은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온 남편 마냥 쭈뼛거리며 슬금슬금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실 문이 닫히자마자 벨파스트는 재빨리 한구석에 놓여있는 그의 옷가지를 주워들었다. 흐읍. 술냄새에 섞인 옅은 땀냄새와 그의 체취. 후우. 그녀가 황홀한 듯 젖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메이드대가 이 아침 시중을 위해 저들끼리 얼마나 치열한 혈투를 벌이는 지 모를 것이다. 그래도 그녀들에게는 저들끼리의 절대적인 규칙이 있었다. 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는.


 그의 체취는 흡사 중독성 짙은 마약과 같았다. 머리가 몽롱해지고, 마치 그의 품에 안긴 것 같은 환각조차 보이는 그러한 것 따위의. 그가 자고 일어난 침상─베개와 이불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녀는 메이드대에서 그가 벗어 던진 셔츠야 말로 지고의 일품이라 주장하곤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모든 것을 즐기기에는 그의 샤워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그 짧은 샤워 시간이 아쉽지만, 샤워실 얇은 벽 너머로 지휘관이 알몸을 드러내고 몸을 씻고 있다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벨파스트는 그 자리에서 세 번은 절정에 달할 수 있었다. 마치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남편을 마중나온 아내 같지 않은가.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면, 살짝 부푼 배를 쓰다듬으며 마중나가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는 피곤은 싹 사라졌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그녀를 껴안고, 그러면 그녀는 그의 품 안에 안겨 그의 체취를 맡을 수 있겠지. 그리고 그 귓가에 속삭이는 것이다. 식사부터 하시겠습니까, 목욕부터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모습에 쓰게 웃은 그는 아마도 목욕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그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그대로 뒤에서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그를 쓰러트리는 것이다. 이제 안전하다고 합니다. 그리 그의 귓가에 속삭이면, 그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그대로…….


 쓰읍. 그녀가 흘러나온 침을 닦았다. 상상만으로도 가볍게 절정에 달했다. 그의 품에 안겨 기쁨에 겨워 신음을 내뱉는 것도 좋지만, 역으로 그녀가 그를 덮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게 좋았다. 자다 일어나 멍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따위 충동을 억누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여간 저 음란한 몸뚱이를 무방비하게 드러내곤 하는 그녀의 주인님의 잘못이 큰 것이다. 


 물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의 샤워 시간을 생각하면 이제 슬슬 정리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손에 쥔 그의 셔츠를 아쉬운 듯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깊게 숨을 들이 쉬었다. 아쉬움에 가벼이 한숨을 내쉬며 그녀는 방정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체취가 담긴 물품마다 가볍게 냄새를 맡고, 그때마다 속옷을 적시며 방안을 정리하던 그녀의 눈에 띈 것은, 이면지를 활용한 듯한 낯선 종이 조각 하나였다.


 정확하게는 그 구석에 보인, 소개팅이라는 단어.


 그 이후로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방 정리를 끝내고 어느새 숙소로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돌아간 메이드대의 숙소는 더더욱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흡사 세이렌과의 대규모 전투를 앞두고 있을 때와 같은 전운이었다. 아니, 전운이라기에는 묘하게 들뜬 듯한 느낌. 숙소를 가득 채운 웅성거리는 소음에 벨파스트는 셰필드에게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냥 별 것 아닌 소문입니다. 셰필드는 그리 운을 띄웠다.


 "네, 별 것 아니죠. 그저 해충, 실례, 주인님에 대한 작은 소문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셰필드도 어딘가 흥분한 기색이 보였다. 벨파스트가 한 번 더 고개를 갸웃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소문이기에 셰필드마저도 이리 흥분했단 말인가? 설마, 자신이 본 그 단어에 대해? 벨파스트가 가벼이 숨을 들이켰다. 오히려 자신이 접한 것이 늦었나?


 그리고 들려온 이야기는, 그녀에게 충격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아주 좋은 쪽으로. 그리고, 동시에 아주 나쁜 쪽으로.


 "주인님이 여자 손 한 번 못잡아 본 숫총각이라는 이야기요."


 언제나 우리에게 고생했다 말해주는 야릇한 목소리를 가진 주인님이, 제복 셔츠 너머 가끔 보이는 그 핥고 싶은 쇄골을 가진 주인님이, 잠에서 깨어 머리를 쓸어 올리는 그 야한 동작을 하는 주인님이, 하나하나 자신을 따먹어달라 외치는 언행을 보이는 주인님이 숫총각이라고? 벨파스트가 군침을 삼켰다. 그녀는 주인님을 제 밑에 깔고 자신이 천천히 리드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숫총각인 주인님이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그녀의 알몸을 바라보지 못해 고개를 돌리고, 머뭇거리는 손길로 그녀의 몸을 만진다? 상상으로도 하루, 아니 며칠간 식사는 걸러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스쳐지나가듯 보았던 그 단어가 떠올랐다.


 숫총각인 주인님이 소개팅이란 단어를 쓴 종이 쪽지를 가지고 있었다? 저 야한 몸을 가진 지휘관이 소개팅을 나간다. 벨파스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소개팅에 누가 나오던지 그 따먹음직한 지휘관을 바라보고 참을 여자는 없을 것이라고. 


 벨파스트의 눈에 이채가 일었다. 누군지도 모를 불여시에게 주인님의 동정을 빼앗길 순 없었다.


 모항에, 심상찮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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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충이라 자러감 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