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서함이 누구였더라. 지휘관은 벽에 걸린 칠판을 바라보았다. 카시노. 도움되는 것이 언제나 기쁘다며 베시시 웃는 그녀가 떠올랐다. 비록 다른 함종에 비해 전투에 적합하지는 않았지만, 운송함이라는 함종 말 그대로 때로는 보급품과 함께  전장을 누비고, 때로는 군수 의뢰를 나서며 누구보다 이 모항 운영에 도움이 되는 그녀였다. 맹한 얼굴로 웃는 그녀의 얼굴은 누가 보아도 귀엽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그러고보니 어제는 우유를 가져다 주었지. 신선한 우유라는 것이 꽤나 사치품이 된 시점에서 간만에 마신 질 좋은 우유는 참 맛있더랬다. 그녀가 배려가 고마워 그 자리에서 꿀꺽꿀꺽 들이켰던 것이 생각났다. 얼굴을 살짝 붉히며 헤헤, 하고 웃는 그녀의 모습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다만 그녀의 매력은 그것 뿐만이 아닐 것이다. 순진무구한 얼굴 아래 출렁이는 그 가슴으로 생각이 뻗쳤다. 자유분방한 모항, 그 수많은 함선 소녀들의 의상 속, 개중에 지휘관이 부담스러워 절로 눈을 돌리는 것까지 있는 이 곳에서 그녀의 복장은 꽤나 얌전한 축에 속하는 것이었지만, 그녀의 몸매는 전혀 얌전하지 않은지라, 제 나름 내노라하는 몸매를 자랑하는 함선 소녀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모성애는 가히 폭력적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은근히 드러나는 그 속옷 선 너머로도 느껴지는 그 압도적인 중량감은 뭇 남성의 시선을 빼앗아가기는 충분했다. 그리고 지휘관은 그 중 하나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고 그 가슴을 손에 담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한손으로는 다 담지 못할, 셔츠 너머 그 거대한 가슴에 푹신하게 손가락이 파묻혀 들어가겠지.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그녀의 셔츠 단추를 슬그머니 풀면 살내음이 들이칠 것이다. 벌어진 셔츠 속, 미처 속옷에 담기지 못한 젖가슴이 뭉글뭉글 제 존재감을 뽐내고, 그의 손가락이 이번에는 그녀의 브래지어 끈에 닿는다. 어깨에서 가벼이 끈을 제낄 뿐인데, 툭, 툭하고 묵직한 소리가 들린다. 달큰한 젖내가 훅 코를 찌른다. 충동적으로 그 분홍빛 첨단을 입에 물고, 아이처럼…….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움찔거렸다.


 지휘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술김에 말하는 것이 진심이라더니, 어여쁜 소녀들이 모인 곳에서 욕정이 쌓인 것일까. 모항 운영을 위해 열심히 도와주는 그녀에게 고마워하지는 못할 망정 질나쁜 망상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에 죄책감이 스물물 올라왔다. 그는 마른 세수를 했다. 오늘 어떤 얼굴로 카시노를 봐야할지 모르겠다. 그러게 왜 쓰잘데기 없이 그런 내기를 해서.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카시노에요." 지휘관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들어오라 일렀다. 답답한 마음에 물을 들이키고,


 그대로 뱉어냈다.


 고개를 돌린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대로 물을 뿜어냈으면 그녀가 더더욱 못볼 꼴을, 지금도 눈둘 곳이 없는 못볼 꼴이었지만, 보이게 되었을테니. 가라앉히려 했던 얼굴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터질 듯 빨개졌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지휘관이 잘못 본 것이 아니면 오늘 카시노는 속옷을 입지 않았고, 남성을 격침시키기 위한 병기라 불러도 손색없는 그 아름다운 흉기를 얇은 셔츠 한 장으로 가리고 있었으니까.


 귀여워라. 카시노는 지금이라도 당장 지휘관에게 달려가 그를 제 품에 끌어안고 싶었다. 상상했던대로 그에게 제 젖을 물리고, 품에서 아이처럼 칭얼거리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꾸욱 참으며 무엇이 잘못된지 모르는 체하며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지휘관 님? 괜찮으세요?"


 새하얀 셔츠 너머로 은근히 비치는 살색이 그의 시야를 가득 가렸다. 지탱할 것을 잃어 출렁이는 가슴은 제 부드러움을 자랑하고 만져보라 유혹하듯 흔들렸다. 지휘관이 침음을 삼켰다.


 "저, 카시노, 미안한데 좀 비켜줄래? 잠깐 사레가 들린 것 뿐이니까."


 자꾸만 가슴으로 향하는 시선을 애써 돌린 지휘관이 카시노에게 그리 일렀다. 시선을 돌린 끝에 카시노가 싱긋 웃으며 혀로 입술을 핥는 것을 보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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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말해야 할까. 지휘관은 속옷을 입지 않은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이리저리 집무실을 정리하는 카시노를 슬쩍슬쩍 눈으로 좆았다. 가벼운 걸음걸이에도 출렁이는 가슴은 사람의 시선을 강탈하는 마력이 있었다. 평소와 달리 당최 업무에 집중을 하질 못하니, 업무 진도는 더디기 그지 없었다.


 후우, 그가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잠시라도 눈에서 떼네면 괜찮을까. 카시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마음을 가라앉히기로 결심한 지휘관이 카시노를 불렀다. "네에." 다시금 모성의 폭력이 지휘관의 눈 앞에 도래했다. 폭력에 굴복하여 자꾸만 내려가려는 시선을 어떻게든 올려 그녀를 마주본 그가 카시노에게 말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직 숙취가 좀 남아서. 마실 만한 음료 좀 준비해줄 수 있을까?"


 미처 숨기지 못한 떨림에 카시노가 빙긋 웃었다. 그녀는, 제 자신의 무기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네, 금방 준비해드릴게요. 따뜻한 우유는 어떠세요?"

 "그걸로 부탁할게."


 음료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지휘관은 냉큼 대답했다. 저 걸어다니는 모성애 덩어리를 빨리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해야 일을 할 수 있었다.


 "금방 준비해드릴게요." 

 "아냐, 천천히 와도 괜찮아."

 "지휘관을 도와드려야죠. 그게 비서함이잖아요."


 예쁜 말이고 고마운 말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바라지 않는 말이었다. 휴게실에 누워 낮잠을 청하는 포미더블이 그리웠다. 쫄래쫄래 사라지는 뒷모습에서도 흘긋 흘긋 보이는 그녀의 가슴에 오늘따라 탕비실로 향하는 그 길이 길어보였다. 지금이다. 지휘관은 눈 앞에 놓인 서류에 집중했다. 탕비실로 향하는 그녀가 황홀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로.


 십 여 분 동안의 시간 동안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한 그가 오늘 일의 삼분지 일을 끝냈을 무렵 카시노가 홍조 띈 얼굴로 우유를 가져왔다. 슬그머니 김이 피어오르는 우유는 속을 덥히기에 충분해 보였다. 후우, 그가 다시 심호흡했다. 잔을 받아든 그가 천천히 우유를 마셨다. 어제와 같은 우유인지, 고소한 것이 갓 짠 듯 신선한 우유인 듯 했다. 그 무엇보다 진한 십 여 분의 업무와 따스한 우유를 마시며 속을 가라앉힌 그가 마음을 다잡았다.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랐지만, 적어도 더 이상 그녀의 차림새를 보고 아무 말도 않는 것은 그의 눈에도 독이었고, 그녀에게도 실례였다. 그녀가 돌아갔을 때야 그녀가 자신의 옷차림을 발견하고, 오늘 내내 그가 그걸 알고도 모른 체 한 변태 취급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신사적으로, 그래, 신사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옳았다.


 미안한데, 오해하지 말고 들어줘. 그리 운을 떼려던 그의 눈길이 그녀의 셔츠 가슴께로 향했다. 은근히 보이는 분홍빛 첨단 너머 셔츠가, 살짝 희뿌옇게 젖어있었다.


 그런데, 오늘 탕비실 냉장고에 우유가 있었던가? 오늘 아침 마지막으로 봤을 땐 물 뿐이었던 것 같은데. 카시노는 오늘 맨몸으로 오지 않았던가? 그는 물끄러미 그가 들고 있는 잔을 바라보았다. 잔에 담긴 것은, 확실히 진한 우유였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옅게 홍조가 띈 카시노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눈 너머로,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열기가 들끓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문득 대령과 했던 내기가 떠올랐다.


 네가 아다라고 소문이 나면, 네 휘하 함선 소녀들이 널 덮칠 것 같냐, 안 덮칠 것 같냐.


 잔을 든 손이 떨렸다. 카시노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에헤헤, 눈치 채셨네요, 지휘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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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치여 살아서 늦었읍니다 죄송합니다



응애 나도 카시노 젖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