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바로 영국과 아이슬란드의 '대구 전쟁'이었고요


우리가 잘 먹는 그 대구 맞다





유럽권은 대구를 반쯤 주식으로 삼아 먹었는데 어획량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포르투칼이나 아이슬란드는 지금도 대구를 주식으로 먹는다


이때 대구를 잡아서 먹고 팔고 남은건 땅에 묻어 거름으로 쓰는등 대구 남획과 소비가 무분별하게 일어나자 19세기 후반부터 대구 개체수를 걱정하는 의견과 이를 입증하는 연구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어민들의 로비를 받은 유명한 진화론자 토마스 헉슬리(이때는 영국 왕립 협회장)가


"대구는 개체수가 너무 많아 잡는걸 제한할 필요가 없다


인간한테 낚이는건 약한 개체이고 강한 개체는 살아남아 번식할테니


진화론적으로 우리가 어획량을 늘리면 자연도 그에 맞춰 강화될것" 


이라는 주장으로 이 문제를 덮어버렸다



당연히 이후 유럽의 대구 개체 수는 급감하기 시작했고 헉슬리의 이 주장은


진화론이 세상을 망친다고 두고두고 까이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되었다 (또 다른 유명한 레퍼토리는 제국주의)





이렇듯 남획이 워낙 심하다보니 전세계적으로 어종자원이 말라죽어갔는데


우리나라는 대구 개체수 복원 사업이 성공해서 어획량이 회복하고 있다고 하니까


매운탕 걱정은 하지말자





아이슬란드는 작은 국토와 추운 기후로 농업 생산이 절망적인데


영국의 어선단과 아이슬란드 어선 사이에 충돌이 자주 일어났다


모국인 덴마크가 아이슬란드로부터 50해리는 아이슬란드의 바다라고 다른 어선의 출입을 막았지만


영국이 이를 씹고 아이슬란드가 자국민에게 치밀하게 할당해둔 어장을 어지럽혔다



세계머전이 일어나자 영국이 자국 어선들을 징발해가서 아이슬란드는 한시름 놓았지만


45년 전쟁이 끝나고 영국의 어선단이 다시 돌아왔다


근데 이번에는 좆망한 영국 경제를 살려야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더 필사적이고 더 무례하게 변해서 돌아온것.



아이슬란드는 자국으로부터 12해리까지 아이슬란드의 수역이라고 선언했는데


영국은 이에 항의하며 트롤어선을 안쪽까지 밀어넣었다


이때 영국은 자국 어선단에 구축함을 호위로 딸려보내는 초강수를 두었다


아이슬란드의 경비선 '토르'가 위협사격하며 영국 어선을 위협하자 영국 구축함이 와서 한번만 더 쏘면 널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다


이렇게 몇 차례 충돌을 가지며 결국 영국은 아이슬란드의 12해리 주장을 인정하게 된다


어선단에 하나하나 구축함을 딸려보내는건 득보다 실이 더 컸고, 무엇보다 어선들이 구축함이랑 같이 다니면 물고기를 제대로 잡을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아이슬란드가 동원한 함선은 경비정 6척인데, 영국은 무려 37척의 군함을 동원했다


1차 전쟁 끗



10년 후 아이슬란드는 미국이 주장한 본토와 이어진 대륙붕까지는 자국의 해역이라는 논리에 편승해 해역을 50해리까지 넓혔다


영국은 '우리 어선단을 제한할테니 그건 봐줘'라고 딜을 넣었지만 아이슬란드는 국민의 사활이 걸린 문제여서 거부.


영국은 계속 어업선단을 보냈는데 이번엔 냉전시기인데다가 아이슬란드가 소련에 붙을걸 두려워해서 처음에는 군함을 보내지는 않았다




(에기르급 경비정 1번함 에기르)



아이슬란드는 영국 어선의 그물을 자르는 방법으로 저항했고


영국이 예인선을 보내 함선 박치기를 시작하자 빡친 에기르는 영국 트롤어선에 6발 발포하여 4방을 명중시킨다


이때 쏜 포탄은 화약을 뺀 쇳덩이여서 사상자는 안 나왔지만


자국 선박이 군사공격을 받았다는거에 빡친 영국은 강경하게 나왔고 나토도 당황해서 이 둘을 중재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함선 박치기에 경비정 오딘을 수리하던 승무원이 사망하자 양측의 갈등은 점점 심해졌고 나토의 중재로 먼저 사람을 죽인 영국이 물러나면서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2차 끗




(3차 대구전쟁 오딘 vs HMS 실라)



74년, 아이슬란드 근해의 대구 씨가 마르고, 오일쇼크로 아이슬란드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3세계를 중심으로 배타적 수역을 200해리로 넓히자는 주장이 나오자 아이슬란드가 자국의 수역을 200해리로 넓히면서 다시 전쟁이 시작된다


독일은 '우리는 대구 안 잡고 볼락만 잡을게'라고 약속하여 어업권을 인정받는 형식으로 전쟁을 피해갔지만 영국은 이를 거부하고 어선과 군함을 보낸다


영국 선박과 아이슬란드 경비정의 실탄사격과 함선 박치기가 계속 이어졌고 경비정 토르가 침몰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함급이 너무 밀리자 아이슬란드는 미국한테서 고속정을 구입하려고 했는데 미국이 이를 거절하자 이번엔 소련한테서 고속정을 사겠다는 제안을 했다


아이슬란드와 소련이 가까워지려고 하자 나토는 뒤집어졌는데 아이슬란드가 소련한테 붙으면 나토가 만들어둔 소련 잠수함 감시망이 한번에 붕괴되고 아이슬란드가 소련의 전략폭격 중심지로 만들어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다 소련이 아예 미사일기지를 만든다면?


나토 회원국들은 그깟 대구 때문에 동맹을 붕괴시킬 생각이냐며 연일 영국을 맹비난했고 유럽과 미국에서도 베타적 경계수역 200해리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영국은 끝까지 아이슬란드 영해에 군함을 투입하고 1만톤급 순양함까지 출동대기를 내리자 나토의 분노가 폭발하고 영국 내부에서도 정부가 고작 대구 때문에 너무 미쳐돌아간다는 여론이 나오기 시작한다


영국은 대세에 굴복하고 아이슬란드 영해에 영국 어선 24척만 넣는다는 조건으로 국교를 정상화하는데 고작 연간 3만톤의 대구만을 잡을 수 있어서 사실상 아이슬란드의 완승으로 대구전쟁이 끝났다



아이슬란드가 영국 해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때 사용한 경비정의 이름은 북유럽 신화의 신들의 이름을 따왔고


각각 에기르, 티르, 토르, 오딘 이었으며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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