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항에서 메이드를 자칭하는 함선 소녀들은 남에게 봉사하는 것에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이 진심이었다.


 로열의 레이디와 기사단을 비롯하여 엄밀히 말하자면 로열 소속이 아닌 지휘관의 잡일까지 도맡아주는 그녀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서려있었다. 그 열정을 보다보면 메이드를 직업이 아니라 하나의 종족으로 정의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곤 했다.


 하지만 지휘관의 일거수일투족에 수발을 자청하는 그녀들의 행동이 부담스러운 정도를 넘어 섬뜩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야 물론 지휘관도 사람인만큼 제 방을 정리정돈하고 청소하는 게 귀찮을 때가 있었다. 빨래는 또 어떠한가. 함선 소녀들 앞에서, 또 상관들 앞에서 후줄근한 모습을 보일 수도 없으니 옷을 깔끔하게 다리는 건 필수였다.


 그러니 그런 것들을 솔선하여 해주는 메이드대의 일원들에게는 매 번 감사를 표해도 모자랐다. 그리고 그렇게 지내기를 얼마간이었다. 심지어 화장실까지 수발을 들려고 하는 바람에 기겁하고 도망치는 것마냥 화장실에 들어가고 나서야 지휘관은 무엇인가 잘못 됐다는 걸 알았다.


 지휘관은 메이드대에게 신변잡기적인 것들마저도 대부분 맡기고 서류에 도장이나 찍는, 그야말로 글러먹은 인간 직전이 된 걸 뒤늦게 깨닫고 만 것이다.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당시에 지휘관을 도와주고 있던 다이도에게 넌지시 너무 모든 것을 해주지 않으려 해도 된다고 말을 꺼냈다.


 "주, 주인님, 다이도가 쓸모 없어지신건가요?"


 이어지는 다이도의 그 말에 차마 모질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만은.


 결국 지휘관에게 남은 길은 로열의 메이드대를 총괄하는 메이드장인 벨파스트와 전임자인 뉴캐슬을 불러 이야기하는 방법 뿐이었다. 메이드대 소속의 함선 소녀 개개인에게 일일이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공적인 일과 장소라면 모르겠지만, 사적인 일과 장소에서까지 그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게 지휘관의 의견이었다.


 벨파스트를 비롯하여 다이도와 허마이오니의 반론이 이어졌다. 그녀들의 삶의 목적은 봉사이므로 거기에 공과 사가 없다는 것이 그녀들의 의견이었다. 뉴캐슬은 전임 메이드장이라는 입장으로 한 걸음 떨어져있었지만 그 의견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벨파스트는 영악하게도 눈가에 눈물 방울이 그렁그렁 맺힌 다이도를 앞세워 지휘관을 공략했다.


 벨파스트의 전략은 지휘관에게 굉장한 효과를 발휘했다. 마음이 약해진 지휘관은 하나 둘 양보하기 시작했다. 그 공성추와 같은 공략에 지휘관은 결국 제 숙소까지 내주고 말았다.


 입장이 뒤바뀐 듯한 그 논의 끝은, 이를테면 목욕시중과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는 최소한도의 선을 마련하는 걸 메이드대와 극적으로 타협하여 끝낼 수 있었다.


 "후우, 네, 알겠습니다. 정 주인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그리 말하는 벨파스트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해보였지만, 이 이상 그녀들에게 일을 맡겼다가는 지휘관은 로열의 메이드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될게 뻔했다. 그건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이었다.


 "앞으로 한 걸음이었는데 말이죠."

 "응? 뭐라고 했어?"

 "아뇨, 아닙니다, 주인님."


 벨파스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는 그리 열띠게 주장했던 그녀들의 존재의의─봉사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있었다.


 지금에서야 과연 그것이 정말로 봉사에 대한 아쉬움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지휘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그렇지는 않을 터다. 설마 벨파스트를 위시로 한 메이드대가 지휘관을 글러먹은 인간으로 만들어 그녀들의 치맛폭에서 살아가게 하려고 했을까.


 설마. 지휘관은 오소소 돋는 소름에 몸을 흠칫 떨었다.


 여하튼 로열의 메이드대란 그런 존재였다. 봉사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봉사 받은 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같이 기뻐하는 그런 이들.


 언젠가 지휘관이 넌지시 그리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사는 게 힘들지 않냐고 벨파스트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벨파스트는 지휘관이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는 듯 드물게 놀란 표정으로 지휘관에게 되물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여쭙겠습니다. 주인님은 이 모항을 관리하는 일에 그리 시간을 쏟으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글쎄. 어찌됐든 이 모항을 관리하는 입장이고 하고……. 무엇보다 휘하의 함선 소녀들이 노력해주는만큼, 그에 대한 보답은 해주고 싶어. 역으로 생각해서 실컷 일하고 돌아와 몸을 던진 침대가 딱딱한 싸구려 침대라면, 그 누구라도 싫어하지 않을까?"

 "저희도 같은 마음입니다."


 그 당시 벨파스트의 미소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물론, 그 정도가 광기의 영역에서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고 있다는 게 조금은, 그래, 조금은 문제였지만, 그 이후로 지휘관은 그 정도는 눈을 감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 정점이라고 하면은, 눈 앞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집무실을 청소하고 있는 카리브디스가 아닐까.


 오죽하면 그 벨파스트조차 지휘관에게 "카리브디스를 너무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못하는 글러먹은 사람이 될 겁니다." 라며 경고할 정도였으니.


 솔직히 처음에는 설마 그 정도일까, 싶었지만 벨파스트의 말이 십분 옳았다는 걸 카리브디스가 몇 번인가 비서함 업무를 들어오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카리브디스는 지휘관의 모든 행동을 자신이 도와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심지어 그가 선을 그어놓은 것 중 하나인 화장실 수발까지도!


 그나마 카리브디스는 다이도처럼 툭하면 "주인님, 다이도를 버리실 건가요?" 라며 울먹이지 않고, 말을 하면 물러서주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방심하면 치고 들어오는 카리브디스를 막기 위해서는 도리어 지휘관이 카리브디스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고역을 낳았다.


 지휘관의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카리브디스의 의향에 따라 모든 걸 그녀에게 맡기던가, 아니면 카리브디스가 도움이 필요없다고 판단할 정도로 모든 일을 지휘관이 도맡아 끝내던가.


 지휘관이 선택한 건 후자였다. 물론,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야 그럴만도 했다. 카리브디스는 존재 자체가 범상치 않았다. 그 듣기 좋은 목소리, 나긋한 행동거지, 완벽한 일처리에 무엇을 맡겨도 믿음직했다.


 더욱이 단아하면서도 레이스 장식이 화려한 맛이 있는 직접 꾸민 메이드복, 은근히 드러난 어깨에 이어져 옷으로 미처 담지 못해 삐져나온 옆가슴과 살짝 벌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밑가슴의 계곡은 남성의 시선을 깊숙히 끌어들였다.


 심지어 군데군데 보이는 덜렁이 같은 기질 때문에 귀여운 맛도 있으니, 모든 걸 카리브디스에게 맡기고 몇날 며칠이고 그녀를 바라만 봐도 질리지 않을 터다.


 말하자면 카리브디스에게는 사람을 글러먹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었다.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집무실 정리를 끝마친 카리브디스가 잔뜩 기대를 담은 목소리로 지휘관에게 물었다. 


 "주인님, 맡기실 일이 있으신가요?"

 "그러네, 음, 그러니까……."


 ─핫. 지휘관이 정신을 차렸다. 


 무심코 카리브디스에게 기대려 했었다. 지휘관이 심호흡했다.


 "아냐, 괜찮아. 집무실 정리하느라 고생했어, 앉아서 좀 쉬어."

 "네, 네? 지금 맡길 일은 없으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 그런, 주인님……."


 카리브디스가 바들바들 떨며 지휘관을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휘관은 카리브디스의 그 시선을 애써 피했다.


 "저, 정말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없을까요? 제가 한가하다니, 메이드대로서 이런 일을 용납할 수 있는 걸까요, 주인님……?"


 다이도 못지 않은 정신공격이었다. 지휘관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하지만 이대로 넘어가면 안됐다. 심호흡을 이어간 지휘관이 카리브디스에게 일렀다.


 "차 한 잔 부탁할게. 목이 좀 마르네."

 "네에! 기다려주세요, 금방 가져올게요, 주인님."


 방금까지 물기가 섞일랑말랑하던 목소리는 어디에 갔는지, 금세 밝아진 목소리로 카리브디스가 탕비실로 향했다. 후, 지휘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버텨냈다. 이쯤되니 역으로 조교 당하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시야에 보이지 않는게 안심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과연 로열의 메이드대, 그 일처리 솜씨는 혀를 내두를만 했다. 이럴 때만큼은 조금 느긋하게 해줘도 될텐데.


 "주인님, 말씀하신 차입니다. 다과도 있으니 잠깐 쉬고 하시는 게 어떨까요?"


 풍겨오는 다향이 향긋했다. 차 한 잔과 함께하는 휴식을 부르는 향이었다. 카리브디스에게 간단한 서류는 맡기고 차 한 잔 하며 잠깐 쉴까.


 헛, 다시 넘어갈 뻔했다. 지휘관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고마워. 그런데 서류가 좀 남아 있어서 말이야. 책상 위에 놓아줄래?"

 

 지휘관이 서류를 슬쩍 눈짓했다. 아주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변명거리로 삼을 정도는 되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죄악으로 생각하는 카리브디스의 시선을 마주보며 일을 하기에 그의 마음은 꽤나 여렸다.


 "앗, 네에……. 알겠습니다, 주인님. 필요하신 일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말씀해주시길."


 저 침울한 목소리가 마음 속 양심을 찔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글러먹고 쓸모 없는 인간이 되기에는 그의 휘하에 있는 함선 소녀들이 많았다.


 집무실은 고요했다. 카리브디스가 바느질을 하던 손을 잠깐 멈추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서류에 시선을 파묻은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카리브디스가 메이드대의 봉사도 마다한 채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모항을 이끄는 지휘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메이드된 몸으로 그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만은, 그 시선을 보지 않으려 애써 서류에서 시선을 들어올리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을 카리브디스가 알 리가 없었다.


 다행히 그 이상의 사고, 그래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휘관은 뭉친 어깨를 풀며 고개를 들었다. 일을 모두 해치웠으니 카리브디스에게 맡기지 않아도 되었다. 


 대끔 말을 걸어올 줄 알았던 카리브디스가 조용해 비서함 자리로 시선을 돌리자, 책상에 팔베개를 하곤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카리브디스의 모습이 보였다. 탁자에 놓여있는 옷감과 바느질거리가 눈에 띄었다. 바느질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든 것일까.


 드러난 어깨가 싸늘해보였다. 지휘관은 옷걸이에 걸쳐둔 재킷을 카리브디스에게 덮어주고 소파에 앉아 조금은 퍼석해진 다과를 집어 먹었다. 어지간히 집중했던건지 일을 다 끝마쳤음에도 시계는 일과가 끝나는 시간으로부터 한참 먼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랫동안 활자를 바라본 눈이 뻑뻑했다. 눈을 부빈 지휘관이 소파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5분만, 5분만 이러고 있자.




 뒤통수가 푹신했다. 기시감이 들었다. 그때, 그러니까, 아즈마였던가.


 지휘관이 눈을 떴다. 5분만이라고 해놓고 깜빡 잠들어버린 모양이었다. 시야를 가득 채운 회색빛 머리칼이 보였다. 아즈마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비서함이, 아, 그래.


 "카리브디스……?"

 "네에, 주인님, 저는 여기에 있답니다."


 뭐가 그리 만족스러운지 방실방실 웃는 모습이었다. 지휘관이 방금 깬 상황에서도 카리브디스는 배를 가볍게 토닥여주고 있었다. 아이를 재울 때나 그럴 것 같은데, 그리 생각을 하면서도 몸을 일으키기가 싫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계속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려는 지휘관의 머리를 카리브디스가 가볍게 눌렀다.


 "눈이 충혈되셨어요. 좀 더 누워계세요."


 지휘관이 제게 응석부리는 이 상황이 좋은지 기쁨이 배어있는 목소리였다. 지휘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카리브디스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녀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 뭐, 조금 응석을 부려볼까.


 거기까지면 차라리 괜찮았겠지만, 지휘관이 더한 문제를 안 것은 조금 더 뒤였다.


 "어머."


 카리브디스가 가볍게 탄식을 내뱉었다.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지휘관이 다시 눈을 떴다.


 바지 가랑이가 불쑥 튀어나와 제법 커다란 텐트가 서있었다. 잠에 취한 머리로 지휘관이 생각했다. 아, 그래, 자다가 일어났지, 자다가.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었지만, 카리브디스는 그걸 알 턱이 없었다. 카리브디스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주먹을 불끈 쥐며 지휘관에게 말했다.


 "거, 걱정 마세요, 주인님. 메이드장에게 배워 어떻게 해야할지 알고 있답니다!"

 

 대체 뭘 배운 것인지 물어볼 기회는, 아마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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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러먹은 인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루어질 수 없는 꿈입니다. 회사에 길들여진 몸이 피곤을 호소합니다. 퇴사자 인수인계에 디자인 리뷰까지 겹쳐서 정신이 없어 집에 오면 쓰러지듯 잠을 잤습니다. 덕분에 자취방이 개판 오분 전입니다.


 왜 요즘 마망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카리브디스는 없으니 제 몸뚱이를 움직여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려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오늘도 헛소리가 길었습니다.


 긴 공백에 비해서 내용이 짧은 점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그럼에도 기다려주시고 또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