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은, 생각외로 눈치가 빠르거든."


 무사시는 지휘관을 밀어붙이듯 방에 들어섰다. 


 뒤에서 들리는 달칵, 하는 문소리. 이어 슬쩍 허리를 숙이며 지휘관과 눈을 맞추는 무사시의 눈꼬리가 둥글게 휘었다.


 지휘관이 침을 삼켰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쏘다니고 시선이 방황했다. 무사시는 제게 시선을 맞추지 않는 지휘관을 바라보며 다시 짙은 웃음을 띄웠다.


 지휘관이 눈을 질끈 감았다.


 죄송해요, 털 날리는 걸 못 참겠어서요.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말, 허나 무사시는 그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마스크 너머, 지휘관의 입술이 있을 자리에 손가락을 슬며시 세웠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 그럴만 하겠지. 지휘관에게 누군가가 지휘관 님, 머리카락이 너무 떨어져요, 라는 말을 한다면 지휘관도 발끈할 게 뻔했다.


 아무리 자애로운 무사시라 한들 그녀 또한 감수성 풍부한 여성일 터였다. 그런데 털 날려요, 라는 말을 간접적으로나마 듣는다면 얼마나 화가 치밀까.


 지휘관은 마음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이어질 무사시의 일갈을 받아들일 준비를…….


 아니, 근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지 않나?


 "첩은 자네 마음을 모두 알고 있으니 직접 부탁해도 들어주었을텐데, 부끄러워서 그랬나?"


 지휘관이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무사시의 얼굴은 아주 약간이지만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젊은 사내의 몸 아닌가, 하루는 커녕 매 시간이 멀다하고 욕정이 끓어오르는 게 당연한 법. 여체와 조금이라도 가까이 붙어 있고자 꾀병을 부리다니."


 그제야 지휘관은 무사시가 터무니 없는 오해를 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


 물론 뒤돌아 생각해보면 들킬 법도 했다. 열도 없고, 기침은 어색하고. 거기에 나중 가선 털에 적응된 나머지 재채기마저 드물게 하지 않았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요, 라는 말로 퉁치기에는 이래저래 어설픈 부분이 많기는 했다.


 지휘관이 아무 말도 않고 침묵을 지키자 정곡을 찔린 것이라 생각할 것일까, 무사시의 손가락이 지휘관의 뺨을 쓸고, 목덜미를 지나 가슴팍을 쿡 찔렀다.


 "깜찍한 것."


 지휘관의 머리가 핑핑 돌았다. 사실대로 털이 날려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 아니면 욕정이 일어 무사시에게 안기고 싶었다고 무사시의 추리를 긍정하는 것.


 지휘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꾀병을 부리며 이미 한 번 거짓을 고했으니, 한 번 더 거짓을 꾸미는 게 죄책감이 덜해서는 아니었다.


 평소와 다르게 살짝 올라간 무사시의 목소리, 거기에 새겨진 건 분명 기대감이었으니, 그걸 굳이 배반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었다.


 지휘관과 눈을 맞추고자 허리를 숙인 무사시의 그 풍만하고 깊은 가슴골에 눈길을 빼앗긴 건 결코 아니었다.


 아마도.


 지휘관은 차마 확신하지는 못했다.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죄책감은 욕망에 휩쓸려 금세 사라졌다. 그게 슬픈 남자의 본능이었다.


 지휘관도 건장한 축에 속했지만, 무사시가 그 굽이 높은 신발을 벗고 나서도 그녀와 시선이 맞질 않았다. 무사시는 그 사실이 만족스러운지 지휘관의 뺨을 슬며시 쓸며 마스크를 벗겼다.


 입술이 버석버석하게 마른 이유는 날이 추워지며 건조해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덕인지.


 엄지로 지휘관의 입술을 가볍게 매만진 무사시가 슬쩍 허리를 숙이며 지휘관의 입술을 핥았다. 바싹 마른 입술에 닿는 말캉한 혀의 감촉이 나쁘진 않았다. 


 "으응, 후우……."


 이어서 그대로 입술이 맞닿았다. 그리 깊지 않은 가벼운 입맞춤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요염한 무사시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만족스러운 듯 옅은 한숨을 내쉬는 무사시가 한발짝 떨어졌다. 지휘관과 무사시의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지휘관을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혀로 입술을 훑었다.


 왜 요염한 여성을 보며 여우 같다고 하는지 알 수 있는 웃음이었다.


 다시 한 번 입맞춤, 이번엔 제법 진득했다.


 혀가 얽매였다. 별다른 경험은 없는지 조금은 서툰 혀놀림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무사시가 주도권을 잡았다.


 오히려 지휘관이 흠칫거리며 조금씩 밀려가는 모양새였다.


 "으응, 후우."


 입술이 떨어지고, 진득하게 타액이 늘어졌다. 불그스름하게 상기된 무사시가 미소를 띄우며 지휘관을 내려다보았다.


 가뜩이나 살짝 올려다 보아야하는데, 등 뒤에서 살랑거리는 풍성한 꼬리와 그 웃음마저 합쳐지니 무심코 지휘관의 몸이 움츠러 들었다.


 시선을 피하자니, 얄상한 턱선을 따라 흐른 타액이 흘러내려 고스란히 드러난 쇄골에 고이는 그 광경이 더욱 선정적이었다.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보아도 시야가 무사시의 품 안에서 벗어나질 않았다.


 그나마 자유로운 곳은 천장 뿐이거늘, 그마저도 시야 한 구석에서 쫑긋거리는 무사시의 여우 귀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시선이 내려가고 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족쇄가 달려 무사시에게 메인 듯한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니 오늘 오후부터 그랬다. 무사시의 꼬리에 메여, 시야에서 무사시의 모습이 사라지질 않았다.


 마치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묘한 압박감에 지휘관이 한 걸음 물러섰다.


 물론, 슬쩍 내빼려는 지휘관의 몸뚱이를 놓아둘 무사시가 아니었다.


 "왜 그러지, 살갗이 그리운 게 아니었나?"

 "그으, 그게." 


 거짓말이기는 한데, 거짓말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신체는 너무 솔직했다.


 아직 닿지는 않았지만, 무사시가 시선을 살짝만 내린다면 지금 당장 터질 것처럼 부풀어오른 지휘관의 바지춤을 볼 수 있었을 터였다.


 정면으로 끌어안기니, 꼬리에서 풍겼던 옅은 짐승의 털 냄새, 무사시에겐 미안하지만, 와는 다른 여체의 향이 비강을 가득 메웠다.


 샴푸나 바디워시의 향의 인위적인 향이 아닌, 어쩐지 몸이 달아오르는 달큰한 향. 이성을 유혹하는 향, 이라는 광고 문구로 온갖 곳에 뿌려져있던 찌라시가 생각났다. 그땐 모두 상술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거기에 시야를 가득 채우는 무사시의 새하얀 살갗은 언뜻 그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라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애시당초 가릴 생각도 없는 어깨는 이미 불그스름하게 달아 올라있었다.


 거기에 말캉하게 짓눌러진 커다란 젖무덤의 감각.


 본래부터 언뜻 보면 풍성해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무사시의 옷이었다. 지휘관을 끌어안으면서 살짝 흐트러진 것만으로도 무사시의 풍만한 가슴은 이미 가려진 면적보다 가려지지 않은 면적이 더욱 많았다.


 이대로 무사시의 등 뒤로 손을 돌려 살짝만 힘을 주어 내린다면 무사시의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나겠지.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대로 얼굴을 묻어도 상관 없어. 후후후."


 흠칫거리는 지휘관의 손에서 그런 기색을 읽은 것인지, 무사시는 지휘관을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고 한 발짝 물러섰다.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던 상의는 이미 반쯤 내려가있었다. 속옷도 없었던 걸까, 무사시의 젖무덤을 가리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고, 수줍게 모습을 숨긴 유두까지 고스란히 드러나있었다.


 커다란 가슴에 맞게 제법 넓은 유륜의 크기는 평소에 입고 있던 옷으로는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질 정도라, 가끔 혹시나, 하며 눈을 흘기던 가슴께 그 분홍빛 흔적이 진짜였다는 걸 뒤늦게나마 알게 해주었다.


 "자아, 어서."


 양팔을 뻗고 가볍게 손짓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출렁였다. 출렁이는 커다란 가슴은 뭇 대부분의 남성의 시선을 빼앗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고, 지휘관도 그 대부분의 남성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신체 건강한 청년이란 그랬다. 여자와 가벼운 입맞춤만으로도 남자의 몸뚱어리란 흥분하고 만다. 그게 무사시처럼 아름다울 뿐더러 매력적이다 못해 폭력적이기까지한 몸매를 지닌 여성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커다란 가슴, 그러면서도 얇은 허리는 뭇 여인의 매력적인 곡선을 더욱 아름답게 부각해주었다.


 이어서 내려오는 육감적인 골반은 또 어떤지.


 서서히 이성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저 크다 못해 한 손으로는 턱 없이 모자랄, 거대하다 표현할 저 젖가슴을 마음껏 희롱하면 어떤 기분일까.


 젖무덤에 얼굴을 묻고, 천박할 정도로 커다란 유륜에 입술을 대고, 모습을 숨긴 유두를 핥아내어 제 모습을 바깥에 드러낸다면.


 저 얇은 허리를 붙잡고 마음껏 허리를 놀려 무사시의 꿀단지에 양물을 처박을 때마다 커다란 가슴이 한껏 출렁이겠지.


 게다가 풍만한 엉덩이는 방아질을 할 때 남자의 몸을 부드럽게 받아줄 터였다.


 또 만약 아이를 가진다고 하면 큰 어려움 없이 사랑의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고.


 남성의 온갖 욕망을 풀어놓기에 모자람 없는, 아니 넘치는 몸이었다.


 본능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홀린 것처럼 무사시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자,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에 지휘관이 깊은 숨을 내쉬었다.


 "흐으……."


 축축한 숨결에 무사시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무사시는 지휘관의 얼굴에 스쳐지나가는 그 욕망을 쉬이 읽을 수 있었다.


 눈 앞의 여인을 제 아래에 깔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 욕구.


 누군가는 꺼려할지도 모르는 욕망이었지만, 무사시는 오히려 그리 솔직히 욕구를 드러낸 지휘관의 모습이 더욱 만족스러웠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체면 차릴 일 없이 제 욕구를 풀 수 있는 곳. 마음 편히 응석 부릴 수 있는 그런 곳.


 무사시가 생각하는 돌아올 곳이란 건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지켜주고 싶었던 이가 품에 안겨 응석을 부리니 얼마나 기꺼운가. 무사시를 돌아올 곳으로 생각해주니 얼마나 즐거운가.


 그러니 지휘관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 정도는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다.


 "어떤가, 만족스러운가? 후후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은 모두 버려도 좋아. 첩의 품 속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편히 쉬도록 해.

 자, 좀 더 나에게 의지하도록. 내 사랑하는 지휘관, 그 어떤 존재도 첩으로부터 자네를 빼앗을 수 없으니."


 마치 머릿속에 새기라는 듯 무사시가 그리 속삭였다. 차분한 무사시의 목소리에는 상반될 정도로 숨길 수 없는 흥분이 어려있었다. 


 "그러니 지휘관, 자네의 욕망을 마음껏 풀어놓도록 해."


 마음껏.


-


 분명 외형이 마음에 들어 무사시를 선택했는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무사시의 대사를 몇번이고 읽어봐도 이게 무사시의 생각이 맞으려나, 하는 마음속 한 구석 꺼림칙한 기분이 사라지질 않습니다.


 마망 캐릭터는 대체 어떻게 써야하는 걸까요. 응석을 부려본지가 한참인지라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생각해보니 독립하여 자취를 시작한지 3년을 넘어 4년을 향해 갑니다. 늘어간 것은 욕설과 스트레스 뿐입니다.


 그리고 저도 털갈이를 하는지 이상하게 머리카락이 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탈모는 안되는데.


 비도 오고 하니 날이 갑작스레 추워졌습니다. 두꺼운 이불을 꺼내들고 이불 속에 파묻혀 있자니 정신이 멍해집니다. 가구 당 무사시를 하나씩 보급해줘야하지 않을까요. 꼬리에 파묻혀자면 세상 포근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헛소리가 길었습니다.


 늘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