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 들어갈게~"
뤼초가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오른팔엔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의장 인형을 껴안고, 축 늘어트러진 왼팔의 끝엔 어지럽게 겹쳐진 서류들을 금방이라도 떨어릴 것 같이 손으로 집은 상태로, 살짝 비뚫어진 고개로는 한창 지루한 표정을 지으며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여어ㅓ 기.."
왼팔을 들어올려 서류들로 얼굴을 가리는 뤼초

말투나 행동으로 보아 분명 하품을 하는게 분명했다

이내 인형을 껴안던 오른팔을 가슴쪽으로 모으고 오른손으로 서류 더미를 바꿔 집으며 가려진 얼굴을 다시 들어냈다

"서류, 가져왔어"
얼굴이 가려진 잠깐 사이에 또 어떤 발상을 했는지 뤼초의 얼굴엔 지루함과 피곤함은 가시고 위험한 웃음기가 드러났다

"그래 고맙다"
쥐휘관은 뤼초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보고 자연스레 경계하며 대답했다

"자~ 지휘관"
빙긋 웃으며 왼손으로 집고 있던 서류더미에서 한 부를 빼 지휘관에게 건내주었다

미심쩍은 기운을 느끼며 서류를 받는 지휘관, 하지만 입수한 서류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무슨 속셈인 거지?'
고개를 올려 뤼초를 한번 바라봤지만 약은 미소를 지으며 무엇인가를 한껏 기대하는 표정으로 지휘관을 조용히 바라볼 뿐이였다

"자~ 아~ 지휘. 과안~"
확인한 서류를 옆으로 치우자 뤼초가 이번에도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 한 부를 넘겨주었다

혹시나 서류에 '뤼초의 365일 노터치 수면 보장'같은 문구가 있을까 점검해 봤지만 역시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자아~ 지~~ 휘관?♡"
서류를 치우자 이번에는 애교를 부리며 다른 한 부를 건내주었다

'도데체 무슨 속셈인 거냐!'
이번엔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너무 긴장을 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후 하고 내쉬고 확인한 서류를 치웠다

"자~ 지~이~ 휘관~"
...알았다
뤼초는 일부러 앞에 '자'로 시작해서 뒤에 '지휘관'을 붙혀 그 단어를 연상시키게 하려는 셈이다

"...뤼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흐흠♪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아님 내 입으로 듣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젠장 이렇게 되면 말려들어가기만 한다
그저 무시하는게 제일인데 안일하게 아는 척을 해 버렸다

"아니야 됬어 그 서류들 하나씩 주지 말고 그냥 책상 위에 올려둬"

"...체 재미없어"
뤼초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서류들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휴... 고비를 넘겼구만'
지휘관은 속으로 승리했다고 생각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커피로 승리를 축하했다

'그래 괜히 힘쓰지 말고 이렇게 무난하게 넘어가는게 최고지.. 이 140-110-90 의 비율을 자랑하는 맠식커피처럼 말이야'

"... 자지"

"푸흡?!"
지휘관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했다

"푸하하 아 웃겨 지휘관"
지휘관의 반응에 키득키득대는 뤼초

"뤼초....! 지금 무슨 짓이야!"

"왜? 내 입으로 직접 말하는 걸 듣고 싶은거 아니였어?"
뤼초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자지라고 말이야"
뤼초가 상체를 수구리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하아... 뤼초... 너는 언제쯤 정신 차릴거냐"
쥐휘관은 피곤하다는 듯이 이마에 손을 얹고 대답했다

지휘관의 한탄을 듣고 뤼초는 마치 '내가 왜??' 라고 몸으로 말하는 듯 양 볼을 부풀리고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시작되는 지휘관의 설교,
뤼초는 귀찮다는 듯이 눈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다른 생각을 하며 듣는둥 마는둥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뤼초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사뭇 진지한 얼굴로 지휘관을 똑바로 바라보는 뤼초

그 얼굴에는 반항의 기질이 아닌, 어떤 기쁜 감정을 느끼는지 미소가 수줍게 베어났다

평소라면 가만히 듣고있지 않고 적당적당히 대답하거나 딴지를 걸던 뤼초가 지휘관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지휘관이 물었다
"뤼초, 지금 듣고 있는 거냐?"

지휘관의 물음을 끝으로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다 뤼초가 입을 열었다

"지휘관..."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지휘관은 또 다른 긴장을 하며 대답했다

"뭐지?"


"좋아해"





순간 숨이 턱 하고 멎는 것 같았다
지휘관은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후우 상대는 뤼초다 분명 또 다른 장난을 치려는 속셈이겠지'
'좋아한다니 나한테 반했다는 건가? 무엇으로? 꾸준히 장난질을 받아주면서도 자신을 위해 한마디 해 주는 모습에 감동이라도 한 건가?'
'장난치지 말라고 무시하는게 제일이지만 좋아한다는 말에 그렇게 정색할 수도 없지'
'...그리고 이쪽에도 조금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

'그래 여기선 좋아한다는 정확한 대상을 알아내는 거다 그래야 내가 대응할 수단이 생긴다'

지휘관은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좋아한다니 어떤걸 좋아한다는 거지?"

뤼초는 진지했던 얼굴을 약은 미소로 바꾸며 대답했다
"지휘관의 당황해 하는 얼굴"

'으으으으읏! 크아아아아아!'
이런 대답이 나올줄 몰랐다
이건 대응할 수단도 없었다

'분하다...! 또 걸려들고 말았어'
괜찮은 척 하려고 노렸했지만 숨길 수 없었다
뤼초는 키득키득 거릴 뿐 이였다

"튀링겐입니다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문 너머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튀링겐이 들어왔다

"어머 뤼초씨도 계셨군요"

"응 방금 전까지 지휘관이랑 자지 이야기 하고 있었어"

'....!!!!!!!!!!'

"뤼초! 그건 이미 끝난 이야기잖!"

'아...'
튀랑겐도 뤼초의 성격을 아는지라 그냥 지나갈 수 있었을텐데 괜히 흥분해서 일을 키워버렸다

지휘관의 반응에 놀라는 튀링겐
"... 자지..."

재밌다는 듯이 함박 웃음을 짓는 뤼초
"지휘관 정말 좋아한다니까"

뤼초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며 집무실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