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휘관."


브륀힐드가 말했다.


"응."

"가슴에서 손 좀 떼지."

"아...."


지휘관은 마치 몰랐다는 듯 탄성을 뱉었다.

그리고 아쉬워하는 표정을 보이자 브륀힐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쯤 그 버릇이 고쳐질지."


브륀힐드가 합류한지도 벌써 여러 달.

그 동안 그녀는 꾸준히 부관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때마다 지휘관은 가슴을 움켜쥐는 장난을 쳤다.


"손장난을 칠 시간에 일을 해라, 지휘관."

"좀 쉴까 했지."

"...잠시 쉰다고 해서 남의 가슴을 움켜쥐는 게 말이 되는가?"

"하하."


웃어넘기는 지휘관의 태도에 브륀힐드는 살짝 콧웃음을 쳤다.


"됐다, 나도 마침 무료한 참이었으니.."

"그럼 더 만져도-"

"오늘은 이 펜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군."


브륀힐드는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끊었다.

대신 꽤나 이상한 질문을 했는데, 그건 그녀의 취미였다.

옛것스러운 느낌이 나는 물건이 보이면 그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왜 그런지는....

지휘관도 모른다.


"....브륀힐드는 골동품을 정말 좋아하네."

"그렇다."


지휘관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브륀힐드를 본다.


"할 말이 있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라."

"골동품의 어떤 부분이 좋아?"

"흐음... 그것이 궁금한가. 좋다, 얘기해주지."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고치는 그녀는 살짝 신이 나 보였다.

표정이 다채롭지 않은 그녀인데, 드물게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그 물건에 얽힌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예를 들어볼까, 지금 지휘관이 마시는 그 커피. 그것은 누가 타다 준 것이지?"


사령관의 책상에는 반쯤 마신 커피가 놓여 있었다.

브륀힐드가 타다준 것은 아니었다.


"벨파스트가."

"맛이 어땠지?"

"맛있지. 벨파스트가 해주는 커피는 언제나 맛있었어."

"그래. 사소한 커피 한 잔이지만 벨파스트는 너를 위해 정성들여 커피를 끊였을 거다. 긍지를 가진 메이드장이니, 너에게 보다 더 맛이 좋은 커피를 바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을 테지. 물의 온도와 원두의 양,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산했을 거다."

"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듣고 나니 납득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확실히, 그녀를 비롯한 메이드들은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어떤가. 이 이야기를 들으니 단순했던 커피가 조금 더 빛이 발하는 듯하지 않나?"

"확실히... 애정이 더 느껴져."

"바로 그런 것이다. 커피로 예시를 들기는 했지만, 내가 너의 물건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뒷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그 말에 브륀힐드가 훗, 하고 웃었다.


"둔하구나. 나는 단지 이야기에만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어, 그랬어? 그러면?"

"그 이야기 속에 담긴 감정과 마음을 중요시한다."

"마음?"

"또 간단히 예를 들자면, 이 반지가 그렇지."


브륀힐드가 손을 펼치며 약지에 끼고 있는 반지를 보였다.

정성스레 관리한 그 작은 반지에 박힌 다이아몬드는 어떤 흠집도 없이 밝은 빛을 발했다.


"너는 사랑을 속삭이며 내 손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나는 이 반지를 볼 때마다 너의 애정을 떠올린다."

"응..."


어쩐지 조금 부끄러워졌기에 지휘관은 뺨을 긁적였다.


"그러나 나는 너에 대해서 잘 모른다. 애석한 일이지. 우리의 결혼은 조금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서로의 마음에 공백이 많아."


지휘관은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여러 번에 구애 끝에 결국 그녀가 반지를 받아줄 때까지 미친듯이 들이박았었다.

그 때문에 둘은 결혼한 사이면서도 아직 완벽하게 하나가 되지 못한 채였다.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닌데, 서로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알고 싶은 거다. 네가 사용한 물건에 대해 들으면 너의 성향을 알 수 있지.

네가 사용하는 펜을 잘 살펴보면 얇게 나오는 걸 즐겨 쓴다는 걸 알 수 있다.

책상은 넓고 서랍이 많이 딸린 것을 좋아하더군. 그건 네가 정리를 잘 안하고 처박아두기를 일삼기 때문이다. 서류도 산더미처럼 쌓아만 두지."


은근슬쩍 잔소리가 끼어 있었다.

지휘관은 머쓱해하며 웃을 뿐이었다.


"하하..."

"의자도 마찬가지. 너는 푹신한 의자를 좋아하더군. 하지만 지금 쓰는 것은 수명이 다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최근 나는 새 의자를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 의자를 완전히 못 쓰게 되었을 때, 네 취향에 꼭 맞는 것을 선물해줄 수 있을 테니까."

"오호...."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너에 대해 알고 싶은 내 호기심을, 골동품을 좋아하는 내 취미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이었다."


감동이었다.

무뚝뚝해 보이는 그녀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니.


'나 조금 반성해야 할지도....'


허구엇날 가슴 만지는 장난질이나 치고 있었으니, 조금 미안해졌다.

이제는 가슴 만지는 걸 좀 줄이고 그녀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알려주겠는가? 만약 그대가 알려주겠다면 나도 보답을 해주겠다. 그대가 평소 원하던 것으로."

"그럼 가슴 만져도 돼?"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농담이었다.

뒤늦게야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닫고 입을 막아봤지만 이미 말은 뱉어졌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가슴 만졌던 걸 조금 후회하고 있었는데, 생각이 가슴으로 쏠려버려서...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아...."


얼굴이 새빨개져서 횡설수설하는 지휘관을 보며 브륀힐드는 깊은 한숨을 뱉었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었다.

지휘관은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그저 두려웠다.


"....너는 숱하게 내 가슴을 만졌지."

"...잘못했어요."

"아니, 그 이상한 장난질도 네 나름대로의 애정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육체를 원한 것이라면 강제로라도 취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으니까."

"....!"

"그래, 가슴을 만지고 싶다고?"


그녀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만나고 결혼까지 한 이후, 처음으로 보는 표정이었다.

이어서 붉은 입술이 달싹이며 그를 유혹한다.


"마음대로 해라."



--








반반뷰지백작 개꼴려



벽람 그림, 단편문학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