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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지휘관은 방문을 아주 조금 열었다.


"쿠우우우-- 푸우우우우-"


누군가 코를 골며 자는 소리가 들려온다.

문을 조금 더 열자, 한 줄기의 빛이 어두운 방 내부를 가로질렀다.

그 빛이 비춘 것은 이불을 박찬 채 배를 드러내고 자고 있는 백룡, 하쿠류였다.


"...."


지휘관은 시간을 확인한다.

벌써 시간은 2시를 넘어 3시에 근접해 있었다.

물론 새벽이 아니라 낮이었다.


"후...."


지휘관은 작게 한숨을 뱉고 안으로 들어간다.


물컹.


발을 디디자마자 무언가 밝혔다.

뭔가 싶어서 내려다보니 옷 뭉치였다.


"...."


방바닥은 벗어 던진 옷과 과자 봉지 같은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하아...."


지휘관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쓰레기들을 피해 커튼이 쳐진 창가로 갔다.


'참, 그걸 먼저 챙겨야지.'


그는 커튼을 걷기 전, 그는 하쿠류의 침대로 갔다.

하쿠류는 코를 골고 배를 긁적이며 잠들어 있었는데, 다른 손에는 검을 꼭 쥐고 있었다.

큰 박스티에 팬티 차림이지만.... 이미 볼 거 다 본 사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면서도 검을 쥐고 있네.'


지저분한 방을 보면 한숨부터 나오지만, 이런 모습은 귀여운 면이 있었다.

지휘관은 슬쩍 그녀의 머리 위로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는다.


"흐, 흐히..."


하쿠류가 잠꼬대를 하는 바람에 그는 순간 움찔했다.


"무으, 뭘 하려그으..."


그녀가 미간을 좁히면서 뭐라고 웅얼거린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뺨이 살짝 상기된 채 간들어지는 목소리로 잠꼬대를 이어간다.


"어서.. 어서 멈추어라... 머리를 쓰다듬다니히잇...."

"...."


하쿠류와 서약 한지도 벌써 여러 달.

조금 친해져보려고 머리를 쓰다듬으려면 베어버리겠다고 하던 그녀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 검이 무서운 것도 사실이었다.


'검은....'


지휜관은 하쿠류의 손을 본다.

여전히 검을 꼭 쥐고 있었다.


"...."


두 번째 방법으로, 그는 하쿠류의 몸 위에 숙인 후 이마에 입을 맞췄다.


"흣.. 으흣.... 흐흫..."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웃는 그녀를 보며 지휘관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첫인상과 가장 많이 다른 사람을 꼽으라면 하쿠류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아, 됐다.'


하쿠류가 검을 쥔 손을 놓고 이마를 어루만졌다.

그 찰나에 지휘관은 그녀의 검을 빼앗으며 침대에서 떨어졌다.


"으... 으음...."


하쿠류가 미간을 좁히며 검을 찾아 침대를 수색한다.


"으, 으응...? 으응...."


조금씩 조금씩,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배를 긁던 손도 동원해 이리저리 침대를 더듬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검은 나의 영혼이라 했던가?'


검을 소중히 여기는 그녀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휘관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커튼을 걷자, 바깥의 햇살이 온 방의 어둠을 소멸시켰다.


"크, 크아아아악!"


백룡이 꼭 흡혈귀 같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자기 관리 철저하던 멋진 누나는 어디로 간 건지..."

"으, 으아아! 으아아! 지휘관! 지휘관!!"


대끔 그녀가 그를 찾아 부르짖었다.

잠이 깼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반쯤 감긴 눈으로 침대를 빠르게 더듬거리면서 아무렇게나 외치고 있었다.


"지휘관! 나의 검! 나의 검을 보지 못했는가! 지휘관!"


'잠도 안 깼는데 나부터 부르는 것도 기특하네.'


무의식 중에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생각에, 지휘관은 묘한 기쁨을 느꼈다.


"응, 나 여기 있어."


지휘관은 숨지 않고 당당히 말했다.

하쿠류가 고개를 퍼뜩 들더니 거의 애원하는 듯한 투로 말한다.


"분명 손 옆에 두었는데, 깨고 나니 없더구나... 어서 날 도와 찾아.... 찾아.....?"


그녀가 말을 멈추고 지휘관의 손을 본다.

눈동자에 비친 것은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긴 검 한 자루였다.


"지휘관! 내 검을 찾아두었구나!"


그녀가 밝게 웃었다.

그 표정을 보자니 죄책감이 폐부를 찔렀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지지 않았다.


"이리 다오, 어서!"


하쿠류가 손을 뻗으려 할 때, 그는 뒤로 물러나며 손을 뺐다.


"....? 지휘관?"

"검을 돌려받고 싶어?"

"도, 돌려주어라, 어서! 어서!"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절망에 빠진 표정이었다.

지휘관은 죄책감을 억누르며 말한다.


"그럼 내 말을 들어."

"아, 알았다. 말에 따르면 되지 않겠나!? 어서 돌려주어라...."

"우선 방 청소 좀 하자."

"응...?"

"방이 너무 어지럽잖아. 벌써 오후가 다 되고 있는데 깨어나지도 않고. 그러다가 몸 나빠져. 규칙적으로 생활해야지."

"끙...."


하쿠류는 끙 앓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영 하기 싫다는 표정. 하지만 지휘관의 손에 잡힌 검이 다시 눈에 들어오자 노기 어렸던 그 표정이 풀어졌다.


"알았다. 하면 되잖느냐."


그렇게 방정리가 시작됐다.

1시간 쯤 지났을 까, 반쯤 정리했을 때 하쿠류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하아, 힘들군. 정리하기 싫다...."

"저런, 그래서는 이 검을 돌려받지 못할 텐데."


지휘관은 자리에 앉아 숙련된 조교처럼 그녀를 지휘하고 있었다.


"....이왕 같이 있는데, 좀 도와주지 않겠어?"

"내가 한눈 판 사이 검을 빼앗으려고?"
"빼앗은 건 네놈이잖느냐. 나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정말로?"

"그렇다."

"알았어. 같이 정리하자."


지휘관은 함께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하쿠류는 꽤 진지하게 임하기 시작했다.


'의외네.'


갑자기 군소리가 없어진 것도 신기한데 더 놀라운 건 검을 되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검에서 떨어지는 순간 달려들며 검을 찾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흐음.'


지휘관은 그런 하쿠류의 변화에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일까, 그도 원래 하려던 것보다 더 열심히 청소를 도왔다.


"드디어 다 끝났구나!"


하쿠류가 기지개를 켜며 방긋 웃었다.


"자, 이제 검을 돌려다오. 청소하는 동안 검에 먼지가 묻었으니 함께 씻어야겠다."

"...."

"지휘관?"


그는 검을 내려다본다.

막상 검을 돌려주려고 하니, 흥미로운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검을 인질 삼아 협박하면 어디까지 들어줄까?'


조금 짓궂은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거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뭐라고?!"


깜짝 놀라는 하쿠류.

어리둥절해진 그 표정이 지휘관의 못된 장난기를 자극했다.


"원래 내 요구는 네 방을 청소하라는 거였지."

"그, 그렇다. 그래서 말끔하게 정리했지 않은가!"


하쿠류의 방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해졌다.

바닥이 반짝반짝 빛날 정도.

그러나 그 고생의 절반은 지휘관의 것이었다.


"반은 내가 도왔잖아. 그러니까 그 반만큼 더 일을 시켜야겠는데."

"윽.... 좋다. 어떤 일을 시킬 생각인가?"

"나도 먼지투성이가 됐거든. 날 좀 씻겨줘야겠는데. 단, 메이드복을 입고. 메이드처럼 여러 부분에서 정성을 들여 봉사하면서 씻겨줘. 무슨 말인지 알지?"


야릇한 요구에 하쿠류가 뺨을 붉히며 놀랐다.


"이, 이...! 대체 뭘 요구하는 것이냐, 이...!"

"싫어?"


지휘관이 검을 보였다.

그러자 하쿠류가 움찔했다.


"........."

"어쩔래?"

"내, 내 검을 인질로 잡으면...."


하쿠류의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졌다.

그녀는 지휘관을 살짝 외면하더니 다리를 베베 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요구를 들을 수밖에 없잖느냐.... 어서 화장실로 들어가라.... 메이드로써... 무엇이든 하겠다."

"오우...."


뺨을 붉히는 그녀는 분명 나쁜 장난을 원하고 있었다.

아무리 검을 영혼처럼 대한다고 해도 진심으로 싫다면 어울리지 않았을 거다.

저쪽에서 부끄럼을 참고 어울려주니, 지휘관은 이 순간을 즐기기로 결정했다.


"그럼 들어갈까?"


지휘관은 먼지를 뒤집어 쓴 옷을 벗고 들어간다.

당연히 검도 함께 가지고 들어가려는데, 하쿠류가 갑자기 외친다.


"아, 검은 두고 가라!"

"응? 왜? 검을 곁에 안 두면 불안한 거 아니야?"

".....괜찮다. 두, 두고 가라..."

"....?"

"....."


하쿠류는 지휘관의 손에서 검을 떼어 놓았다. 그 대신 지휘관의 손을 소중히 꼭 잡았다.


"....!"


지휘관은 놀랐다. 이거 설마....


'검과 나를, 대등하게 생각해주는 건가?'


하쿠류는 무기를 자신의 영혼으로 여겼다.

그녀는 손에 아무것도 없으면 성격이 변할 정도로 불안에 떨 정도로 검을 소중히 여겼다.


지휘관이 그녀의 그런 나약함을 알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신의 치부를 남에게 보이지 않고 꼭꼭 숨겼기 때문에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검이 사라졌을 때 가장 먼저 지휘관을 찾으며 도와 달라고 했다.

검을 인질로 잡아도 화를 내기는커녕 웃으며 받아들일 정도로 그를 믿게 되었고.

더 나아가 검의 빈자리를 그가 대신할 수 있게 되다니.

고작 목욕할 때 검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 행동이지만, 하쿠류에게는 큰 결의였다.


"하쿠류..."

"자, 어, 어서! 어서 들어가라."


그녀도 부끄러운지 그를 욕실로 떠밀었다.


쿵.


화장실 문이 닫히고 잠시 후, 당황한 하쿠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뭘 하려고!? 어이, 어, 어서 멈추어라!! 봉사를 해달랬잖느냐, 멈춰라, 멈ㅊ-"

"더는 못 참겠어. 사랑해, 하쿠류."

"자, 잠깐. 오늘은 내가 해주려고... 아흣...! 하윽...! 아...!"


그녀의 목소리는 곧 헐떡이는 신음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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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약 대사랑 목소리 개쩔더라

메이드 스킨도 개쩔고


벽람 그림, 단편문학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