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하고 있사오니 빨리 말씀해주시면 좋겠사와요. 지휘관님."


"음. 나도 로열 기사단과 마침 다과회를 열 예정이니 그녀의 말대로 용건은 짧고 간단하게 부탁하겠다."


"그럼 짧고 간단하게 말하지. 작작 좀 먹어라. 이 돼지들아."


"돼... 돼지....?!"


포미더블이 지휘관의 폭언에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무슨 그런 망발을! 지휘관님, 이건 모욕이어요!"


"포미더블은 그렇다 치고, 나는 딱히 돼지까진 아닌 것 같다만."


"조지 님, 그 발언도 무척 실례라고 생각됩니다만?"


지휘관이 책상 서랍에서 서류를 한 장 꺼낸 뒤에 내역을 읽기 시작했다.


"10월 1일. 로열 기사대 저녁 회식. 지출액 40만 2000엔."

"10월 5일. 로열 항모 전대 티타임 다과회. 지출액 5만 6000엔."

"10월 12일. 로열 기사대 장기 원정 성공 귀환 기념 파티. 지출액 212만 7000엔."

"10월 15일. 로열 항모 전대 퍼시어스 착임 기념 저녁 회식. 지출액 125만 1000엔."

"10월 21일. 로열 정기 합동 만찬. 지출액 520만 5000엔."

"10월 한 달. 로열 지출 추가 식비 904만 1000엔. 거의 뭐 천만 엔 가까이를 쓰셨구만. 아주 최고급 요리로만 드신 모양이지? 식비에 한해서는 예산을 어떻게든 커버쳐줄테니 자유롭게 먹으라고 말은 했다만... 이건 너무하지 않냐?"


지휘관이 서류를 읽어 내려가다 포미더블과 조지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 외, 다수로부터 불만사항 접수. 로열 항모 전대의 일원인 포미더블과 로열 기사대의 일원인 조지가 식당에서 밥을 담아가면 늦게 식당에 도착한 뒷사람들은 이미 준비한 음식이 다 떨어져 그나마 좀 남아 있는 맨밥에 컵라면을 반찬삼아 먹거나 빵쪼가리로 허기를 채우기 일쑤. 특히 철혈 쪽에서 굉장히 큰 불만이 나오는 상황인데..."


"억지랍니다! 그건 억지예요!"


"흠. 최근에는 확실히 많이 먹은 것 같기도 한데..."


"조지는 그래도 반성을 좀 하는 것 같은데. 포미더블, 너는 부끄럽지도 않냐? 내가 어지간하면 먹는 걸로 지적하고 싶진 않은데 말이다. 다른 진영 쪽에서 불만이 나오기 시작하면 두고 볼 수만은 없다."


"큭... 그건 모함이어요! 지휘관 님! 저희보다 철혈 쪽 인간들을 더 신뢰하시는 건가요?"


"너 아까 지출 내역서 내용 들었잖아. 내가 진영 논리로 사람 차별하는 사람으로 보이냐? 변태일지언정 그런 부분은 철저히 하고 있다."


"변태인 건 딱히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어요."


"와하하. 나는 지휘관의 변태같은 점도 좋아한다만."


"조지... 너는 좋은 녀석이구나. 그러나 너가 식비 지출의 큰 공헌을 하고 있다는 점은 조금 용서하기 힘들다."


"음. 역시 지휘관은 물렁한 사나이가 아니라는 거군. 로열 기사대에 들어와도 대환영이다."


"진짜? 가슴도 만지게 해주면 들어가고 말고."


"지휘관 님! 은근슬쩍 변태 욕망을 드러내지 마시와요!"


"아니, 너가 만지게 해 줄 것도 아닌데 왜 난리야. 난 조지한테 물어보고 있잖아."


"같은 로열 소속으로써 그런 파렴치한 행동을 묵인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하아... 꼬박꼬박 말대꾸를 한단 말입니다. 괘씸하거든요?"


"아무튼! 그런 행동은 좀 삼가해 주시면 좋겠사와요!"


"뭐가 잘났다고 떽떽거리는 거야. 오늘 너희를 부른 이유를 방금 들었잖아? 너희 때문에 식비 지출이 장난이 아니라고. 게다가 뒷사람 몫까지 배려하는 자세가 없으니까 같은 진수부의 동료들한테도 민폐를 끼치는 거잖아. 반성 안 할래? 로열에 들어가는 식비 다 깎는 수가 있어?"


"큭... 이런 비겁한...."


포미더블이 분한 듯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지휘관. 내 불찰이다. 로열 기사단장으로서 면목이 없군. 확실히, 10월은 과도하게 식비를 지출한 것도 모자라 식당에서 뒷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다음부터는 주의하도록 하겠다."


"조지. 반성하는 자세는 훌륭한데,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어떤가?"


"행동이라 한다면?"


조지의 반문에 지휘관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뒷짐을 진 채로 창 밖 너머를 응시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진지한 분위기에 조지가 자신도 모르게 살짝 긴장했다.


"조지. 그 사실을 아는가? 남자에게는 꿈이 있다. 그것도 아주 큰 꿈이."


"과연. 그 꿈을 이루고 싶다는 것이군. 뭔지는 모르겠으나, 로열 기사단장의 명예를 걸고, 이 킹 조지 5세. 지휘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적극 협력하지."


"정말? 그럼 스위프트슈어의 가슴을 만지게 협력해 주라."


"뭣...?"


"지휘관 님, 부끄럽지도 않으신가욧! 그런 짓은 절대 안 된다고 제가 누누히..."


드물게 당황하는 조지와 또다시 인상을 찌푸리는 포미더블.


"하지만... 만져보고 싶단 말이야. 스위프트슈어의 가슴..."


"변태여요! 변태가 여기 있사와요!"


"지휘관, 내 가슴 정도라면 빌려주겠다만. 어째서 스위프트슈어인지 의문이군. 특별히 이유라도 있는지?"


"바로 그게 문제다, 조지. 넌 부탁하면 언제든지 만지게 해 줄 거 아닌가. 그러면 재미가 없다. 하지만 스위프트슈어라면? 처음에는 안 된다고 버티다가 애걸복걸하면 왠지 마지못해 허락해 줄 것 같단 말이지. 그게 좋은 거야."


"재미...라고...? 터무니없군..."


"변태 지휘관! 그런 말을 잘도 레이디 앞에서 하다니! 용서 못 해요!"


"아까부터 시끄럽네. 너한테는 죽어도 부탁 안 할 테니까 좀 조용히 해라. 그리고 레이디? 웃기시네. 너 별명 뭔지 알아? 못뚱공이야 못뚱공. 못 들어봤어?"


"못뚱공...?"


"못생기고 뚱뚱한 공룡이라고. 이미 진수부 내에서 유명하니까 이 참에 알아두도록."


"뭐... 뭐라고...요....? 못생기고 뚱뚱한...?"


지휘관의 말에 충격을 받은 포미더블이 순간 휘청했다.

말도 안 돼. 로열 항모 전대는 우아한 이미지라고 정평이 나 있을 터인데, 어느새 그런 추악한 별명이.


"키이익! 용서 못 해요! 그 별명, 지휘관 님이 퍼트린거죳!"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날뛰기 시작하는 포미더블을 조지가 옆에서 말리며 진정시켰다.

역시 전함. 항모 정도의 출력은 가볍게 압도한다는 것인가.


"아무튼 포미더블. 앞으로는 다과회나 연회 등을 개최할 때는 반드시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해라. 예산도 타이트하게 검사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조지. 못뚱공을 내보내도록. 너한테는 할 말이 더 있으니까 좀 더 남고."


"누가 못뚱공이라고! 지휘관! 절대로 용서 안 할 테니까요!!!!!!!"


발광하는 포미더블을 강제로 끌다시피 해서 지휘관실 밖으로 쫓아낸 조지가 이내 한숨을 쉬며 문을 잠갔다.


"물론 조지. 너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사전 허가제다. 어쩔 수 없지만 이해해 줬으면 좋겠군."


"그건 지휘관으로서 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만, 나는 아무래도 방금 전 대화가 계속 신경쓰이는군."


"스위프트슈어의 가슴 만지는 이야기? 그게 안 된다면 겨드랑이 핥는 걸로 대체해도 괜찮아."


"아니, 후자가 훨씬 위험해 보인다만. 그리고 지휘관에게는 유감이지만 나는 로열 기사대를 이끄는 기사단장이다. 부하의 가슴...을 만지게 협력하는 그대의 요청에는 응할 수 없을 것 같군."


"역시 그런가아... 뭐, 그게 킹 조지 5세지. 너가 로열 기사단장으로 있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언제나 든든하다."


"칭찬에는 감사하다만... 혹시 다른 꿈은 없는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하겠다."


"뭐든지?"


"어? 응... 뭐든지,라고 했다만..."


조지의 말에 지휘관이 장고에 들어갔다.

사뭇 진지한 분위기에 조지 역시 살짝 긴장한 듯이 침을 삼켰다. 대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그럼 조지 겨드랑이 핥게 해 줘."


"뭣? 그런 터무니없는! 안 된다! 아무리 나라도 그건 부끄럽다고!"


"방금은 뭐든지라고 했잖아. 게다가 가슴 정도는 빌려주겠다면서, 겨드랑이는 안 되는 거야?"


"후자가 훨씬 부끄럽지 않은가! 변태 지휘관!"


"조지한테서 처음으로 변태 소리가 나올 줄이야... 참 좋습니다."


"이게 대체 왜 좋은 건가! 지휘관, 그대는 분명 우수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변태일 줄은 전혀 몰랐는데."


"변태가 어때서. 딱히 괜찮잖아. 이래 보여도 이 자리는 꽤나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상부 눈치도 봐야하고 너희들 케어도 해야 하고 전황 분석도 해야 하고 전략과 전술 입안도 해야 하고 예산안도 살펴봐야 하고... 어차피 전장은 실적으로 증명하는 곳이다. 우수한 실적을 낸 지휘관이 변태라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레이디에게 아무래도 예의를 지키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군."


"그래도 조지는 나를 좋아하잖아? 그지?"


"좋... 아니, 그... 음... 싫어하지는 않는다만..."


조지의 얼굴이 빨개졌다. 


"뭐, 나도 조지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겨드랑이를 핥짝하고 싶다 이겁니다. 한 번 괜찮겠습니까?"


"부끄러운 말을 여러 번 하지 마라! 잠깐... 잠깐 생각 좀 해보겠다... 즉답은 어려우니 나중에라도 상관없나?"


"긍정적으로 검토 부탁하지. 그럼 나가봐도 좋아. 식비에 관해서는 모두한테 잘 전달해 줘."


"...알았다."


얼굴이 토마토마냥 붉어져 혼란스러워하는 조지가 머뭇거리다 지휘관실을 나섰다.

왠지 요새는 일이 잘 풀린다. 에식스도 결국 허락해줬고(마지막에는 도망쳤지만), 조지도 아마 허락해주리라.


가만있자... 슬슬 이번 주 비서함이 올 때가 됐는데. 누구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