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한 방, 눈을 뜬다. 무언가 꿈을 꾼 것 같지만,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

 

허공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는 벽을, 아무것도 없는 눈동자로 멍하니 바라본다.

 

째깍째깍, 시간은 흐르지만, 계속해서 바라본다. 초침이 한 바퀴를 돌아도, 두 바퀴를 돌아도, 하다못해 열 바퀴를 돌아도, 움직이지 않는다.

 

내 세상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

 

그런 나를 움직이게 만든 건 벽에 걸린 한 장의 사진이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희미한 미소를 그린 지휘관의 얼굴.

 

……크흑……흐흐흐……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여러모로 어처구니가 없었으니까.

 

죽은 사람처럼 움직이던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사진을 보고 동력을 얻는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하지만 그 모순의 덩어리가 내 근간이었으니, 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섰다. 정확히는, 어제도 들렸던 그의 묘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휘관은, 자살했으니까.

 

 

 

 

***

 

 

 

지휘관의 시체는 본인의 방에서 발견됐다. 튼튼한 밧줄에 목이 메여 허공을 걷고 있는 그 모습은, 모두에게 충격을 가져다주기에 차고 넘쳤다.

 

사인은 질식, 정확히 따지자면 외부 압박으로 인한 산소 결핍.

 

대외적으로는 그랬다.

 

자살은 보통 어떤 경우에 시도할까.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니, 그의 자살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원인을 찾아보고자 마음속에 질문을 던졌지만, 고려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때. 앞으로 나아갈 현실이 두려울 때, 혹은 삶의 의지를 잃었을 때.

 

하다못해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자살하는 경우 또한 존재하기에,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자살의 동기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왜 자살을 시도했을까.

 

역시나 알 수 없었다. 나는 이 남자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으니까.

 

늘 자부해왔다. 그의 소꿉친구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남들에게 뽐내기 바빴다.

 

나보다 이 사람을 잘 아는 이는 없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가 자살한 다음 날, 깨달아 버린 것이다. 나는 이 사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대체 얼마나 큰 고통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걸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제 스스로 목을 조를 때 그는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꼈을까. 아등바등 발버둥 치며 어떤 고통에 시달렸을까.

 

아니, 그 전이 문제지, 그런 고통과 두려움을 뛰어넘을 정도의 압박감, 공포, 고통이 있었기에, 지휘관은 자살을 택한 거니까.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흐윽……흐으윽…………흐윽…….”

 

가슴이 아팠다멍청하고 미련한 내 자신이 미웠고역겹고증오스러웠다.

 

그가 시름시름 내부부터 썩어 문드러질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웃으며 영화 보기철없이 장난치며 달려들기그것도 아니면 방에 틀어박혀 망상에 잠기기?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지휘관은 아파했다티는 내지 않았지만이 세상 그 누구보다 아파했다.

 

나는 그 아픔을 받아주지 못했고받아 낼 생각조차 없었다영 힘이 없어도 그의 괜찮다는 말 하나만 믿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지휘관.”

 

무덤엔 수없이 많은 꽃이 놓여있었다형형색색의 빛깔이 모인 광경은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올 수준이었지만그렇지 못했다.

 

지휘관……지휘과안…….”

 

대신 눈물이 나왔다.

 

머리가 아프지만그 이상으로 마음이 아파 도저히 견딜 수 없다.

 

눈을 감고 당신의 얼굴을 그려보지만웃음은 나오지 않았다그저 하염없는 절망과 고통이 내 치부를 찌를 뿐그게 전부였다.

 

통증은 더욱 심해지고이젠 목이 막혀 소리조차 뱉지 못했다.

 

내가 그를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그의 아픔을 나눴더라면하다못해 조금만 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더라면무언가 바뀌었을까?

 

이젠 의미 없는 가설에 불과하지만그의 미소를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미안해……미안해…….”

 

원망한다멍청한 나 자신을 원망하고 멍청한 행동을 원망하고 꽃밭만 들어찬 멍청한 머리를 원망한다.

 

허나 바뀌는 건 하나 없다그저 자조할 뿐그게 전부다.

 

지휘관……지휘관…….”

 

색색이 떠오른다당신과 쌓아낸 추억이 떠올라 내 가슴으로 파고든다.

 

가시였다깊이 박혀 아프지만빼낼 순 없었다이미 너무나 깊게 박혀버린 가시는 이미 내 삶의 일부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이 추억마저 지워버린다면나는 더 이상 당신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그러니까 더 깊이가시를 마음속 더 깊이 찔러넣는다.

 

당신의 얼굴이 더 생생해진다.

 

당신과 그려낸 추억이 더 생생해진다.

 

통증이 더 생생해진다.

 

눈물을 흘렸다.

 

 

 

 

 

 





오랜만에 본업


순애 그거랑 연결되는 거 아니니까 걱정 하지하지하지마세요


그리고 미워하지도 말아주세요 제바ㅣ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