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메이드의 정석?"


에기르가 교본을 내려다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오늘, 비서로 임명된 그녀에게 새로운 임무가 부여됐다.

바로 메이드로써 지휘관을 모시는 것.

그러면서 던져준 것이 바로 이 교본이었다.


[메이드의 정석]


'날 우습게 보고 있군.'


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책장을 넘겼다.

인사할 때의 각오부터 말투, 상황 별 대사와 메이드가 해야 하는 일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아찔한 정보양에 그녀는 책을 덮었다.

정보 과잉이었다.


"흥, 메이드 업무술이니 뭐니 호들갑이나 떨고. 이 정도 업무쯤, 나한테 걸리면 우습다고."

"정말?"


대체 언제 문이 열렸는지 지휘관이 안으로 들어왔다.

에기르는 숨을 삼키며 비명을 질렀다.


"읏!? 너, 너... 보고 있었어?!"

"방금 들어왔어."

"대체 어느새... 아니, 됐어. 왔으니 어서 업무나 보도록 해. 사람 놀래키지 말고."

"업무라."


지휘관이 무언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에기르는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가 미간을 오므렸다.


'그놈의 메이드.'


"안 해줘?"

"뭐를? 아니, 그보다 지금 나한테 뭔가를 하라고 요구한 거야? 감히?"

"메이드니까 아침 인사 해줘야지."


지휘관이 책을 펼쳤다. '제 1장. 메이드의 첫발, 아침인사.'라는 제목이 크게 쓰여 있었다.


"인사 안 해줘?"

"감히 내게..."

"설마 에기르가 그 정도도 못하지는 않겠지. 이것도 엄연히 업무인데."

"큭....."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용솟음쳤다.

감히 나를 얕보다니.

에기르는 발끈했다.


"크, 크흠...."


하지만 막상 내뱉으려니 목구멍이 턱 막혔다.

그녀는 목을 가다듬는 척하며 첫 장을 힐끔 훔쳐보았다.


[아침 인사의 정석 : "좋은 아침입니다. 주인님."]


"좋은 아침입니다, 주인니....."


말을 하다가 지휘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기대하고, 또 놀라워하는 표정.

그 기대 어린 표정을 보자 에기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역시 그만두자고! 그만!"

"에에, 왜 그래. 좋았는데. 혹시 대사를 못 외웠어?"

"하!?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날 우습게 보지 마!"

"그럼 해줘."

"흐, 흥...."


에기르는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이미 할 수 있는 걸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지. 연습은 실전처럼이라는 말 몰라? 실전처럼 할 수 있게 되면 끝인 거야. 더는 할 필요 없어."

"그게 무슨 궤변-"

"아아, 의뢰 완료야."


마침 의뢰 완료 보고가 들어왔다. 에기르는 거만한 눈빛으로 지휘관을 보았다.


"설마 날 보내려고 한 건 아니겠지."

"음, 금방 다녀올게."


지휘관이 떠났다.


"후....."


에기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떻게든 한 고비가 지났다.


'하지만 이 다음에는 지금처럼 빠져나갈 수는 없을 텐데....'


그때 문이 열렸다.


"이상하군. 왜 지휘관이 혼자 나갔지. 지금 비서가 아무도 없나?"


메이드복을 입은 한 여성이 들어왔다.

에기르는 그녀를 보자마자 오만상을 찌푸렸다.


"파르제팔."

"후후후.... 그렇군. 당신도 이 '놀이'를 즐기고 있었나?"

"하? 뭐라고?"

"메이드가 됨으로써 주인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관계일 뿐. 이 옷을 벗는 순간 내가 지배하는 본래의 관계로 되돌아가. 내가 주인님에게 '져 드리는' 상황이 즐거운 거라고. 후후후."


파르제팔이 웃음을 흘리다가 멈칫했다.


"흐음, 그런데 지휘관은 왜 혼자서 나갔지? 복귀한 동료들을 맞이하러 간 것 같은데."

"지휘관이 안 나가면 누가 나가? 내가 그런 일을 해야겠어?"


그 말에 파르제팔이 웃음을 흘렸다.


"기껏 이런 즐거운 장치를 이용하면서도 평소처럼 행동하다니."

"하?"

"하기야... 그게 당신의 한계겠지."

"뭐라고!?"


에기르가 발끈했다. 하지만 파르제팔은 여유가 넘쳤다.


"가끔은 자만을 내려놓고 다른 입장이 되어 보는 건 어때? 뭐, 어떻게 즐기든 당신 마음이지만, 그럼 이만."

"거기 안 서! 야! 내 말 안 들려?!"


파르제팔은 들은 척도 않고 떠났다.


"큭...."


짜증이 치솟았다.


"메이드를 하겠다고 나서지 말 걸 그랬어!"


메이드 임무가 내려오게 된 건 파르제팔 때문이었다.

그 요망한 마녀가 메이드복을 입고 지휘관한테 아양을 떨었다.

그것까지는 상관 없었다. 각자 차례 때 즐기는 것까지 간섭하지는 않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에기르는 이런 거 못할 텐데, 즐거웠어.


지휘관이 툭 뱉듯 내뱉은 그 한 마디에 에기르가 발끈했다.

그래서 그까짓 것, 해주겠다고 말했다.

비교의 당사자에게 저 말을 들으니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흥....! 좋아. 나도 하면 할 수 있다고. 보여주지. 프로 메이드의 모습을."


에기르는 팔짱을 끼며 혀를 찼다.

분노가 머리를 뜨겁게 달군 건 잠시였다.

그녀는 방을 한 번 둘러보고 신음을 흘렸다.


"음....."


프로 메이드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뭐부터 손을 대야 하지?


"끄응...."






지휘관이 돌아왔을 때, 방은 아까보다 더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리고 메이드가 건넨 것은 접시 하나.


"자."

"이건...?"

"보면 몰라? 다과야. 이걸로 됐지?"

"......"


그녀가 건넨 접시에는 과자가 놓여 있었다.

과자의 모습은 마치 무너진 도미노처럼 질서가 있는 듯, 없었다.

방 곳곳에는 과자 부스러기와 뜯은 게 아니라 터진 봉지들이 있었다.

어디에선가 찻잎의 냄새가 났는데, 차는 내오지 않았다.

달랑 다과만 내온 것이다.

업무실이 엉망진창이 되는 대가와 맞바꾼.


"음, 에기르. 청소 좀 해줄 수 있을까?"

"어차피 어질러질 텐데 뭐 하러?"


그렇게 말하기에는 업무실이 너무 난장판이었다.


".......그럼 에기르는 어차피 더러워질 텐데 왜 씼어?"

"뭐, 뭐라고?!"


에기르가 눈을 크게 뜨고 지휘관을 보았다.


"지금 뭐라고 했- 하읏?!"


그 순간을 노려 지휘관이 에기르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뭐, 뭐하는 거야!?"

"에기르. 메이드의 업무가 뭐뭐 있는지 알기는 해?"

"아, 알아. 청소, 차 만들기..... 그것보다 좀 떨어져. 놓으라고."


에기르가 당황하게 지휘관을 떼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지휘관의 손은 더 치마 안쪽으로 들어가며 더 집요하게 굴었다.


"뭐, 뭣!? 잠깐, 거기는... 하읏...!"


손가락이 둔덕 사이를 슬래시하자 에기르가 야릇한 신음을 내며 몸을 떨었다.


"메이드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바로 밤시중이야."

"바, 밤시중?! 그게 무슨..."

"지금 받아볼까 하는데..."


지휘관은 에기르에게 바짝 붙어 키스를 하려고 했다.

엉덩이를 콲 움켜쥐며 그녀를 끌어안으려고 하는데...

에기르가 그를 밀어냈다.


"그, 그만해!"


그러나 튕겨져 나간 건 에기르였다.

그녀는 흐물흐물거리며 넘어져 소파에 벌러덩 엎드렸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감히 날 능멸해? 내가 마음만 먹으면 심연으로 널 삼켜 버릴 수 있다는 걸 몰라서 이러는 거야?!"


어지간히도 당황했는지 그녀가 반쯤 정신을 놓고 외쳤다.

눈이 골뱅이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정신을 못 차리네. 누구와는 정반대인걸."

"비, 비교하지 마! 감히 나, 심연의 신을- 흐읍!?"


지휘관은 그녀의 위에 올라타며 입을 맞췄다.

아니, 에기르의 입술을 마구 탐하며 빼앗았다.


"자, 잠깐- 흡. 아읏...!"


손이 가슴 사이를 파고들자 뜨끈한 땀이 만져졌다.

다른 손은 그녀의 허리 굴곡을 느끼며 아래로 향하다가 치마 안쪽으로 향했다.

손을 올리자 치마가 들리면서 골반과 끈이나 다음 없는 T팬티가 드러났다.


"앗....!"

"야한 거 입고 왔었네."

"흣....."


에기르가 외면하더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히, 에기르가 정식으로 메이드를 연기해줄 거라고는 생각 안했어."

"나, 나도 하려면 할 수 있어! 단지... 단지...."


그녀가 발끈했다가 화가 난 듯하면서도 우물쭈물하며 말한다.


"난 메이드라는 거 자체가 불만이라고... 위대한 내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 거다. 그녀에게는.


"그러면 말해줘. 뭘 기대하고 여기로 온 거야? 왜 메이드 복을 입었어?"


단순히 발끈해서 파르제팔을 따라하지는 않았을 거다.

허세부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해도 그 이상으로 귀찮은 일을 싫어하니까.


"아, 아무것도 없어. 난..."

"거짓말. 뭘 기대하고 있는지 난 알아."

"뭣!?"


지휘관이 그녀의 몸을 깔아뭉개듯 밀착하며 귓가에 속삭였다.

에기르가 뜨거운 숨을 뱉으며 깜짝 놀랐다.


"빨리 안 알려주면 나 그냥 업무하러 간다?"

"......."


그녀의 뺨에 진한 홍조가 졌다.

그래도 끝까지 자존심이 남았는지,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한 손은 원을, 다른 손은 손가락을 일자로 쭉 뻗었다.

그 상태로 손가락을 원에 넣다 빼며 자신의 욕망을 밝혔다.


"이 발칙한 암캐년."

"읏...."


지휘관은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고 유륜을 가득 한입 담아 빨았다.

혀가 젖꼭지를 괴롭히고, 손가락이 아래의 꼭지를 마구 놀리며 자극했다.


"흣....! 아흣....!"


에기르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며 신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쑤욱-


자지가 깊이 들어간다.

귀두가 질속을 자극하며 들어가자, 에기르가 숨을 길게 뱉었다.


"아아아앙! 하읏...! 아아앙!"


거친 교성만이 울려 퍼졌다.

몇 시간의 교미가 끝났을 때, 업무실은 두 사람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었다.

소파, 탁자, 심지어 벽에도 에기르의 침과 질내에 꽉 차서 사방으로 튄 정액이 묻어 있었다.


"하아아앙! 아흣!! 이, 이제 그만! 그마아아아앙!!"


마지막으로 그녀는 다시 소파로 돌아와 엎드러 누웠다.

자지가 푹푹 박힐 때마다 젖은 살과 엉덩이가 닿는 천박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메이드 업무 제대로 할 거야? 말 거야?"

"할 게여!! 할 게여어어어어엇!! 히야아아아앙!!"


정액이 보지 속을 가득 채웠다.

에기르는 침을 질질 흘리며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기대었다.

수도 없이 박혔더니 이제 바람만 닿아도 꿈찔거리며 가버릴 정도로 민감해져 있었다.


짐승 같은 교미가 끝나자, 지휘관은 다시 상냥하게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어서 관자놀에에 달콤한 키스가 닿는다.

이로써 드디어 메이드의 업무가 끝났다고 느껴질 때, 속삭임이 귀를 파고들었다.


"다음에는 이것보다 더 혼날 줄 알아."


'이것보다.... 더....?'


에기르는 흠칫 놀랐다.

하지만 곧, 미소가 피어 올랐다.





가끔씩, 지휘관의 소파에는 건방진 개폐급 메이드가 엎드려 있곤 했다.

엉덩이를 살짝 보이고 다리를 흔들거리는 그 메이드의 업무는 하나였다.


'오늘은 언제쯤 수신호를 보낼까.'


오늘도, 에기르는 욕망 가득한 수신호를 보낸다.



--






벽람 그림, 단편문학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