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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주인님. 경순양함 다이도라고 합니다. 로열 메이드단의 일원으로서 주인님께 봉사하게 해주세요."


다이도는 최대한 조신한 태도로 인사를 건넸다.

지휘관과의 첫 만남.

시작은 좋았다.

먼저 온 로열 메이드의 메이드들이 말하길, 지휘관은 대원 하나하나를 아껴준다고 했다.

특히, 시리우스가 실수를 저질러도 너그럽게 넘어가준다고....


"오, 네가 다이도구나. 만나서 반가워."

"저기... 시리우스가 폐를 끼치지는 않았지요...?"

"폐라고 할 것 까지야."


지휘관이 웃어 넘겼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시리우스가 들어왔다.


"주인님. 시리우스가 차를 내왔습니다, 앗."


챙그랑!


쟁반에 다과와 차를 두고 들어오다가 문턱에 발이 걸려서 죄다 쏟았다.

과자가 차와 함께 카펫에 흩뿌려지고 찻잔이 깨졌다.


"저런, 괜찮아?"

"아, 죄, 죄송합니다. 지휘관님. 지금 바로 치우겠습니다. 아얏!"


시리우스가 깨진 유리를 치우다가 손가락을 베였다.


"아이고."


지휘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시리우스에게 다가갔다.

그가 직접 정성스래 손가락의 피를 빨아주고 소독약을 발랐다.


"다행히 꿰맬 정도는 아니네."

"아, 아아, 주인님.... 시리우스가 실수투성이라 죄송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카펫은 빨아야겠네."


'저, 저건....'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주는 지휘관을 보며, 다이도는 치맛자락을 꼭 쥐었다.

지휘관은 어쩔 줄 몰라하는 시리우스의 손을 꼭 잡아주며 그녀를 다독였다.


"그, 그럼 주인님. 다시 차를..."

"아니야. 괜찮아. 어차피 나도 이제 업무 시작할 시간이라서."

"아..... 죄송합니다. 제가 늦었었군요...."

"괜찮아."


지휘관은 천사와도 같은 미소로 시리우스를 대했다.

시리우스가 방에서 나갔다.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가 잦아들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깨졌다.


"미안, 다이도. 조금 소란이 있었지?"

"아... 아뇨. 괜찮습니다. 주인님."

"조금 더 깊게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그가 시간을 확인했다.


"잠깐 한눈판 사이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네. 자세한 업무 내용은 벨파스트가 알려줄 거야. 앞으로 잘 부탁해."

"아, 네..! 반드시 주인님을 만족 시켜드릴 수 있도록 봉사하겠습니다."

"응, 부탁할게."


지휘관이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지만 손길은 우악스럽지 않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따스했다.


"네, 그럼 이만..."


다이도는 문을 닫고 나왔다.

그녀는 지휘관이 만졌던 어깨에 손을 대고 베시시 웃었다.


'따스한 손길.... 좋은 분이셔.'


첫 만남은 조금 정신 사나웠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눈엣가시 같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지휘관이 시리우스의 손을 꼭 잡은 장면이었다.


'그거에 비하면 다이도의 어깨에 손을 댄 정도는.....'


별 거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덜컥 겁이 났다.


'주인님의 그 손길이 예의상 해주셨던 거라면....'


시리우스를 대할 때와는 뭔가 달랐다.

뭐랄까, 단순히 상처를 치료해주는 게 아니라 좀 더...

좀 더 진심이 담겨 있는 듯한 손길과 눈빛이었다.


"주, 주인님!"


다이도는 다시 문을 벌컥 열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응, 무슨 일이야?"


지휘관은 살짝 놀란 눈치였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


"로열 메이드로서 다이도는 주인님께 온 힘을 다해 봉사할 거예요. 어떤 명령이라도 반드시 받들어 보이겠습니다...!!"


지휘관이 살짝 눈을 크게 떴다.

그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미소를 지었다.


"응, 고마워. 앞으로 잘 부탁할게."

"네...!!"


다이도는 안심했다.

방금 지휘관의 미소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시리우스에게 보여준 것 못지 않은 진심이.


'지휘관님은 날 좋게 봐주시고 계셔.'


다이도는 배시시 웃으며 숙소로 돌아갔다.






"시리우스! 주인님의 아침 식사는요?"


다이도가 시리우스를 재촉했다.

메이드의 아침은 항상 그렇듯 바쁜데, 오늘은 특히 그랬다.

시리우스가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가 자명종을 박살 낸 것이다.

자기 딴에는 새 자명종을 꺼낸다고 꺼냈는데, 시간을 잘 못 맞춰서 모든 인원이 1시간 반 늦게 기상했다.

때문에 메이드장인 벨파스트부터 시작해 모두 정신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가져가려고 합니다."


시리우스가 음식접시들을 담은 쟁반을 들고 문을 열려고 쟁반에서 한 손을 뗐다.

쟁반을 잡은 팔이 불안하게 파르르 떨린다.


"잠깐, 시리우스. 제가 문을 열어드리도록-"

"시리우스. 주인님의 아침 식사는 다 됐습니까?"


문이 벌컥 열리면서 셰필드가 들어왔다.

문고리를 잡았던 시리우스의 손이 미끄러졌다. 중심이 흔들려 쟁반이 흔들리자, 음식이 롤러코스터를 탔다가 쟁반이라는 레일을 탈출하며 땅에 처박히는 대량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아아, 주인님의 식사가...."

".....시리우스, 가서 옷을 갈아입으세요. 얼굴이랑 머리카락에 묻은 소스도 닦으시고요."

"그럼 그 전에 식사를 다시 요청하고..."

"제가 할게요. 시리우스는 어서 몸을 깨끗이 하세요. 메이드답게."


다이도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지휘관을 모신지 약 1주 째. 다이도에게는 적응하고도 남을 만한 시간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주인님의 건강.'


그녀에게도 밀린 일이 있지만 당장은 주인님의 식사를 챙기는 게 우선이었다.

그녀는 두 팔을 걷고 혼신의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란 마음이 급하다고 빨리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팔 두 개를 세 개, 네 개처럼 빠르게 사용하면 그만큼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고, 곧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된다.

다이도는 시리우스는 흉내도 못 낼 능숙함을 뽐내며 요리를 만들었다.


"그럼, 주인님께 아침식사를 올리겠습니다."


다이도는 양손에 쟁반을 들고 복도를 또각또각 걸어간다.


"주인님. 식사를 내왔습니다."

"어, 들어와."


노크를 한 후, 문을 열고 들어간다.

지휘관의 방에 구수한 버터 내음이 퍼졌다.

다이도가 요리한 음식의 냄새였다.


꿀꺽.


다이도는 침을 삼켰다.


'주, 주인님께 다이도의 요리를....!'


직접 만든 음식을 주인님께 대접하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이제 겨우 1주일 째이기에, 다이도는 다른 업무를 익히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직접 요리한 음식을 내드리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오, 맛있는 냄새다. 뭐야?"


지휘관이 옷을 입다가 말고 돌아섰다.


'주, 주인님이 다이도의 요리에 관심을 가져주셨어...!!"


다이도는 벅찬 기쁨을 느꼈다. 어찌나 기쁜지 온몸에 짜릿한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


"네..!! 다이도가 준비한 요리는 바로 이-"


다이도는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쟁반을 휘두르면서 음식을 보였다.

그러나 너무 들떴던 걸까.

과한 몸짓 때문에 쟁반이 날아갔다.


퍽-!


"어컥-"


쟁반이 지휘관의 목젖을 강타했다. 숨이 막혀서 벌어진 입으로 음식이 슬라이딩한다.


"케헥!"


지휘관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털썩 쓰러진 그는 독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발버둥을 쳤다.


"주, 주인님!!"


다이도는 당장 달려가서 지휘관의 상태를 살핀다.

음식물이 목을 막아서 숨을 못 쉬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그녀는 지휘관을 반 억지로 일으켜 세운 뒤, 등 뒤에서 껴안으며 그의 명치를 감쌌다.

그리고 훅 당겼다.


"쿨럭!"


명치를 압박하자 지휘관이 숨을 뱉었다. 목구멍을 틀어막았던 음식물이 분수처럼 솟아 오르며 방을 가로질렀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비명이-!!"


벨파스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음식물 덩어리가 정확하게 타겟에 명중했다.


철퍽-


"아.. 아아..... 아아아....."


모든 것이 망가졌다.

지휘관의 몰골도, 지휘관의 방도.

며칠 전에 새로 갈아치운 카펫도.

그리고 메이드장의 얼굴도.


"......"

"......"


긴 침묵.

벨파스트가 말없이 얼굴에 묻은 음식물을 털어냈다.

그 침묵이 다이도의 정신을 어둡게 물들였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다이도는 지휘관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메이드로서의 단정한 자세나 말투 같은 건 지금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발 부탁이니 다이도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제발..!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풉."


지휘관이 뭔가를 뱉었다.

다이도는 침을 뱉었다고 생각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거슬러 올라온다.


"자, 잘못했습니다! 제발, 주인님! 제발! 제발 다이도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검은 마수가 뻗어온다.

조심스레 어깨를 다독여주던 그 손이.

지금은 난폭한 거인의 것처럼 크고 불길해 보였다.

마치 그녀를 한 번에 으깨버릴 것처럼.


"죄, 죄송, 죄송합니다.... 죄송..."


다이도는 눈을 질끈 감고 그저 빌었다.

그때 따뜻한 무언가가 머리카락을 꾹 누르며 머리를 비볐다.


"아하하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가 방에 울려 퍼진다.
다이도는 슬쩍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지휘관이 그녀의 머리를 싸다듬으며 웃고 있었다.


"다이도."

"네, 네...!"


다이도가 벌떡 일어났다.

사실 당장이라도 주저앉아 소변을 지리고 싶었다.

지휘관이 실망했다는 생각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아까 그거 네가 요리한 거였어?"
"아... 네, 네... 그렇..습니다......."


다이도는 질책을 들을까 봐 두려워서 고개를 숙였다.

숨 막혀 죽을 뻔했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어쩌나 싶었다.


"맛있었어. 비록 삼키지는 못했지만."

"네....?"


다이도는 깜짝 놀랐다.

지휘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주...인님.....?"

"주인님. 무슨 일인가요?"


벨파스트가 다가왔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깨끗하게 닦은 후였다.


"아아, 다이도가 준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막 먹다가 목이 막혀 죽을 뻔했거든."


지휘관이 한 팔로 다이도의 어깨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

한쪽 어깨와 뺨이 지휘관의 가슴에 닿았다.

탄탄하고 따뜻했다.


"다이도가 구해줬어."

"그렇군요."


벨파스트가 미소를 지었다.


"무사하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식사는....."


그녀가 방의 꼴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별장에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응, 부탁할게."

"자, 다이도."


벨파스트가 그녀를 불렀다.

다이도는 반쯤 얼이 빠진 상태라서 힘없이 대답하고 그녀를 따라간다.


"다이도."


지휘관이 그녀를 와락 끌어 안았다. 다이도는 건장한 사내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따뜻해....'


"고마워. 여러가지로."


지휘관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다이도를 꼭 안아주며 속삭인다.


"그리고 난 널 절대 버리거나 내치지 않아. 내가 얼마나 다이도를 좋아하는데."

"저, 저, 저를요? 주인님이 다이도를 좋아하신다고 하셨어요!?"

"응."

"아, 아아... 아아...!!"


다이도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었다.

다이도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품에 안긴 채 팔을 파닥거렸다.


"안고 싶으면 안아도 돼."

"저, 정말요? 정말 다이도가 주인님을 안아도 될까요?!"

"물론이지."

"아아.. 어떻게....! 웃음이 멈추지 않아요오.....!!"


다이도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기뻐했다. 꽉 안은 사내의 몸은 단단하고, 요리할 때의 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뜨거웠다.


"....우후훗."


벨파스트는 조용히 방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방문을 닫는다.


쿵.


방 안에서는 풋풋한 사랑이 싹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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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람 그림, 단편문학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