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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애애애~~~~~"


부드럽게 휘날리는 연분홍의 머리결.

날개처럼 펄럭이는 치맛자락.

그 속에 서 있는 아리따운 여인과.

그리고..... 

모기 소리처럼 귀를 울리는 앵앵거림.


'살려줘.'


지휘관은 당장이라도 귀를 틀어 막고 싶었다.

그러나 어찌 그러겠는가.


"애애애앵~~!!"


플리머스가 노래를 부른다.

목소리를 빼놓고 보면 천상의 노래가 따로 없다.

비주얼만 보면 하늘이 내린 선녀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그렇다. 이 천상의 노래는 목소리를 빼놔야 완성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목소리가 없어야 완벽해지는 노래가 여기 있다.


그러나 완벽이란 그리 쉽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애애애앵!!!"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

마치 작은 전기톱의 시동을 켠 것 같은 소리.

플리머스의 노래는 고막을 강간하고 있었다.

지휘관은 피를 삼키며 노래를 들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모든 일은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플리머스, 목소리 엄청 좋다.


플리머스가 비서로써 그를 보좌해주던 와중, 지휘관은 플리머스의 잔잔한 목소리에 감동했다.


-마치 동화를 읽어주는 누나 같아.

-어머나.


플리머스의 얼굴에 홍조가 졌다.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기뻐했었다.


-지휘관님께서 원하신다면야, 잠자리에 동화를 읽어드리는 것쯤은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어요.


너무 톤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듣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불러 일으키는 그런 목소리였다.


-지금 동화를 들려드릴까요?

-동화?

-네. 업무에 지치신 지휘관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

-오, 그러면 동화 말고.....


지휘관은 잠깐 말을 멈췄다.

플리머스는 미소를 지은 채 그가 말하기를 기다린다.


-노래는 어때?

-노래요?

-응. 플리머스의 노래가 들어보고 싶어.

-....네. 그렇다면, 지휘관님이 기뻐하실 수 있도록 열심히 불러볼게요.


그렇게 지금이 됐다.

일렬의 일을 통해, 지휘관은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


'목소리가 좋은 것과 노래를 잘 부르는 건 별개였구나....'


"지휘관님, 어떠셨나요? 저 플리머스가 지휘관님을 기쁘게 해드렸을까요?"


플리머스가 땀을 닦으면서 밝게 웃었다.

한 점의 티도 없는 밝은 웃음.

사령관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

"아아, 그러면 혹시 다른 곡도 한 번-"

"으흠..! 업무가 밀려서 미안하지만 이제 다시 업무를 봐야겠어."

"하지만 지휘관님. 오늘의 업무는 이제 거의 다 끝났는데요?"

"....재검토해야해."

"평소에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셨잖아요?"

"플리머스. 일은 철처하게 해야하는 법이야. 생각해보니까 오늘, 플리머스의 목소리에 취해서 제대로 집중을 못 했던 것 같아."

"혹시 제가 지휘관님을 곤란하게 해드린 걸까요?"


플리머스가 살짝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지휘관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럴 리가. 아, 플리머스. 간식을 준비해줄 수 있을까?"

"....평소에는 업무를 보실 때 아무것도 안 드시지 않으셨나요?"

"아, 아냐. 이것저것 먹어야 머리가 돌지. 음, 그렇고 말고...."


플리머스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네, 지휘관님. 사르데냐 엠파이어 스타일의 풀코스를 준비해드리겠습니다. 틀림없이 기뻐하실 거예요."

"어, 음... 좀 과한 것 같지만 부탁할게."


플리머스는 지휘관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소리가 나지 않게 차분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노래가 끝난 다음에 지휘관님의 반응....'


영 좋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있던 걸까?


"으음...., 뭔가 마음에 안 드셨던 걸까요?"


지휘관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그녀의 사명이었다.

전투에서 승리하여 기쁨을 주고.

불편함 없이 보좌하며 편안함을 주며.

피로하실 때에는 달콤한 휴식을, 무료해 하실 때에는 즐거움을 주는 것.

그것이 플리머스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그녀의 삶의 낙이었다.


'혹시 저는... 노래를 못 부르는 편인 게 아닐지...?'


어쩌다보니 그 가능성에 생각이 닿았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며 복도를 걷는다.

너무 열중한 나머지 주방을 지나쳐 알 수 없는 구역으로 들어갔다.

걷고 또 걷고 걷다 보니, 어디선가 들려 오는 소리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와이야아아아아아-


"이건...."


귀에 때려박는 듯한 강렬한 사운드.

누군가가 목을 긁는 듯한 소리를 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단어 하나하나가 날카롭고, 내뱉는 음정 하나하나가 거칠다.

신이 나는 것 같으면서도 화를 내는 것 같은, 억눌린 감정을 발산하는 듯한 노래.


'누굴까요.'


플리머스는 홀린 듯 노랫소리를 따라갔다.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여기군요.'


플리머스는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림과 함께 소리가 폭발하며 그녀의 전신을 후려쳤다.

마치 폭풍이 부는 것 같은 사운드와 열기.


그 안에는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플리머스가 두 여자의 화합을 구경하려고 발을 들였다.

그런데 노래가 뚝 끊겼다.


"뭐야, 왜 멈춰."


날카로운 인상에 보위시한 헤어스타일.

울리히 폰 푸텐이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누가 왔잖니."


대답한 것은 지휘봉을 쥔 긴 생머리의 여인.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였다.


"....넌 뭐지?"

"안녕하세요, 울리히님. 프리드리히님. 저는 플리머스라고 해요."


플리머스가 인사했다.


"무슨 일이지?"


울리히가 그녀를 날카롭게 쏘아봤다.

딱딱하고 배척적이기로 유명한 성격.

그러나 지휘관은 그녀가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지휘관이 그렇다고 했으면 그런 것이다.


"빨리 용건을 말해. 다음 공연에 부를 노래를 연습 중이었다고. 방해할 거면 나가."

"저, 두 분에게 노래를 배우고 싶습니다."

"노래?"

"네."

".....너, 내가 무슨 노래를 하는지는 알고 온 건가?"

"네. 방금 복도에서 들었습니다."


울리히가 프리드리히를 본다.

그녀는 눈웃음을 지며 울리히에게 선택을 맡겼다.


"네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을 텐데."

"음,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해야 합니다."

"해야 한다?"

"지휘관님께서.... 제 노래를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플리머스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방금 그 강렬한 사운드... 분명 업무에 지친 지휘관님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수 있을 거예요."

"네 사정은 알겠어. 하지만 내가 도와줘야 할 이유는?"

"...지금 울리히님은 메이드 카페에서 일하고 계셨지요? 제가 거들어드리겠습니다. 무보수로. 만약 그것 외에 다른 도울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부디 노래를 알려주세요."

"흐음......"


울리히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보니 넌 얼굴이 좀 되는군. 홍보 대사 역할을 해주겠다면, 좋아. 계약하지."

"어떤 홍보 대사인가요?"

"....굿즈 판매."


울리히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네?"

"....내 굿즈 판매라고."

"굿즈요?"

"이거란다. 아가."


프리드리히가 상자에서 인형을 꺼내 보였다.


"어머나. 귀여운 꼬마 울리히님이네요."


작은 울리히가 거기 있었다.


"내놔."


울리히가 부끄러워하면서 작은 울리히를 뺏고 상자에 처박았다.


"....할 거야?"

"네. 얼마든지. 다 팔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흠.... 좋아. 그럼 시작하자. 일단 불러봐. 어떻게 부르는지 들어보게."

"네, 그러면... 애애애애애앵~~"


플리머스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울리히는 즉각 중단시켰다.


"그만.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네?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평소에는 말짱한데 노래 부를 때는 맛이 가잖.... 젠장, 모르고 있었나. 기초부터 가르쳐야 하잖아. 아이우에오 해봐."

"아헤가오요?"

"아이우에오!"


.....긴 교육이 시작됐다.






'플리머스는 대체 어디로 간 거지?'


간식을 준비해준다던 플리머스는 그날로 실종됐다.


'너무 티냈나....'


지휘관은 양심이 찔렸다.

플리머스의 노래 실력에 깜짝 놀라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좀 더 태연하게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평소 목소리와 갭 차이가 너무 컸던 탓이다.


"만나면 사과해야..."

"아, 지휘관님."


옆에서 플리머스가 나타났다.


"여기 계셨군요. 마침 찾아가려던 참이었답니다."

"플리머스! 지금까지 어디 있었어!?"
"후후. 비밀이에요."

"저기, 저번에는 내가 미안해. 내가 불러 달라고 해 놓고 염치 없이-"

"쉿."


플리머스가 윙크하며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죄송합니다 지휘관님. 평가는 조금만 뒤로 미루어주시겠어요?"

"응....?"

"저 플리머스의 새로운 곡. '우르르 쾅쾅'하는 노래를 들려드릴게요."

".....?"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지휘관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덜덜 떨면서 개 같이 끌려가는 것 밖에는.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지난 며칠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플리머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프리드리히와 울리히가 반주를 넣어준다.

그리고 플리머스가 노래를 시작했다.


'우르르 쾅쾅 하는 노래라더니.'


그 말대로였다.

천둥이 내려치듯 전신이 번쩍 드는 강렬한 락.

그러나 단순히 시끄럽게 내리치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하늘을 뒤덮을 듯 웅장하고,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사운드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여기까지는 프리드리히와 울리히의 실력이었다.


그러나 플리머스의 가창력도 부족함이 없었다.

전기톱처럼 사방팔방으로 튀던 음색이 안정감을 되찾았다.

거기에 락의 가파른 선율에 따라 더해지는, 목을 긁는 기교들.

하얀 옷자락을 펄럭이며 락을 부르는 플리머스의 모습은 마치 세상에 종말을 고하는 천사 같았다.


지휘관은 어느새 세 사람의 락에 녹아들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광분하고 있었다.


"굉장해! 플리머스! 언제 그렇게 잘 불러진 거야?!"

"후후, 저는 지휘관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답니다."

"굉장해! 진짜로 깜짝 놀랐어!!"


고작 며칠 사이에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만큼 피 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뜻이리라.


"조금 더 기뻐해주세요, 지휘관님."


들떠서 펄쩍 뛰는 지휘관을 보며 플리머스는 마음 속에서 차오르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녀는 지휘관을 보며 환히 웃었다.


"저는 당신이 저로 하여금 기뻐하실 때가 가장 행복하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플리머스는 비서로써 지휘관실로 향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지휘관님. 오늘도 노래를 들려드릴까요?"

"목은 괜찮아?"

"물론입니다."

"조금만 있다가 부탁해도 될까? 지금 업무 이거만 하면 일단락이라서."

"네, 그럼 기다릴게요."

"요새 플리머스 노래 듣는 맛에 살아. 정말로."

"감사합니다, 지휘관님. 오늘은 잔잔한 음악으로 세 곡을 준비했어요."


플리머스는 그 뒤로도 노력해서 락만이 아니라 여러 장르로 손을 뻗었다.

잔잔한 음악부터 슬픈 노래, 신나는 노래까지 전부.

그녀의 실력이 발전할수록 지휘관은 더더욱 기뻐했다.


"아아, 빨리 듣고 싶다. 곧 끝낼게. 조금만 기다려줘!"

"네, 지휘관님."


지휘관이 업무에 집중한다.


플리머스는 자리에 앉아서 대기한다.

기다리는 동안 가지고 있던 울리히 인형을 꺼냈다.

울리히가 부끄러워서 절대 그녀에게는 안 준다는 걸 프리드리히가 몰래 하나 건네준 것이었다.


'후후후.'


누구나 혼자서는 완벽할 수는 없다.

사실 플리머스도 스스로가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지휘관에게만은 완벽한 존재로 있고 싶었다.


응원과 청소, 요리 같은 봉사. 그리고 사랑까지.

모든 방면에서 지휘관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으나,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는 걸 얼마 전에 깨달았다.

바로 노래였다.


지휘관의 기쁨은 곧 플리머스의 행복.

울리히는 노래를 알려줌으로써 그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고마워요, 울리히님.'


플리머스는 울리히 인형을 꼭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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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람 그림, 단편문학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