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히는 평범한 사람은 경험하지 못 할 진귀한 경험을 했다.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는 경험 말이다.


시시각각, 표정이 굳어간다. 안색은 창백해지고, 눈동자는 점차 굳어가 이내 빛을 잃었다. 


하지만 울리히 앞의 사내, 그러니까 그녀의 지휘관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상대방을 조롱하기 위함이 아닌, 그저 순수히 눈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응. 사실 반 년 전 부터 만나던 상대인데, 너무 잘 맞는 거 같아서 결정했어, 너무 급하게 한 느낌도 없지않아 있지만 그래도 사랑할 자신이 있으니 괜찮아."


지휘관은 웃는 표정으로 그녀의 가슴에 활을 쏘았다. 막 깨진 흑요석 이상으로 날카로운 말이, 그녀의 가슴을 꿰뚫은 것이다.


반 년 전? 말도 안 돼. 나는 일 년 전 부터 만났는데.


사랑할 자신이 있다고? 그럼, 그럼 나는, 일 년 넘게 당신을 지켜봐온 나는, 뭐가 되는 거지.


그녀의 머릿속에 수 없이 많은 의문이 떠오르지만, 답은 내지 못했다. 그저 하염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가라앉길 기다리는 게 최선이었다.


발버둥 쳐도 의미 없었다. 이건 늪이었으니까.


"다행이야. 평생 짝을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나는, 애초에 나는 당신의 짝으로 고려조차 되지 않은 거였나?


"다 울리히 네 덕분이야. 네가 나한테 여자에게 호감 사는 법을 알려줬잖아?"


그건 나한테 쓰라고 알려준 거지, 생판 처음 보는 여자한테 쓰라고 알려준 게 아닌데, 대체 왜?


"부끄러워서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너는 내가 가장 믿는 '친구'니까 알려주는 거야. 알았지?"


"아."


그 순간, 울리히의 머리에 번개가 내리쳤다. 마침내 답을 찾은 까닭이다.


친구, 오랜시간 가까이 해 정이 두터운 사람을 이르는 말.


지휘관은 단 한 순간도, 그녀를 여자로 본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벌벌 떨리는 입술을 강하게 깨문다. 애써 부정하며, 그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때묻지 않는 순수한 눈동자를.


그리고 겨우겨우 입을 떼어 묻는다. 제발, 설마, 아닐 거야. 아니어야만 해.


"우리는...친구인가?"


울리히는 현실을 부정하며 지휘관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가슴이 찢어지기 전, 마지막 발악에 가까웠다.


"당연하지. 우리는 '친구'잖아?"


대가는 잔인했다.


"...아."


아.


그런 거 였나.


쩌적, 그녀의 마음에 쐐기가 박히고, 균열이 일어난다. 작고 가늘었지만, 차츰 커져간다. 


균열은 끝도 없이 번져간다. 울리히의 마음이 찢어지고, 또 갈라져 형태를 잃는다.


그렇게 균열은 계속해서 커지고, 커지고, 커지고, 커져서 마침내.


-뚝.


산산조각.


"울리히? 안색이 창백해, 괜찮아?"


그제야 이상함을 눈치 챈 지휘관이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다정함에서 비롯된 순수한 걱정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울리히는 다짐했다.


"...아니, 괞찬다. 아무일도 아니다."


지휘관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울리히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다행이라며 안심했고, 울리히는 가만히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결혼식이 언제라고 했지?"


"아, 다음달이야. 혹시 시간 나면 와줄 수 있어?"


"당연히 가야지.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정말? 고마워!"


지휘관은 뛸 듯이 기뻐하며 울리히의 손을 맞잡았다.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의 결혼식에 와준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기 때문이다.


"응. 그래. 걱정하지 마라."


울리히는 맞잡은 손을 바라보며 또 한 번 입꼬리를 올렸다.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고, 눈동자는 텅 비다 못해 비틀려 있었다.


"분명, 잊지 못할 결혼식이 될테니까."


지휘관은 보지 못했다.


"평생."








저 표정 보자마자 개쩐다 하고 휴다닥 써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