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지휘관이 한숨을 내뱉었다. 오늘만 몇번째지? 그 수를세어보진 않았지만 어떤 고민이 있어서 내쉬는 한숨이라 하기에도 과하게 많은것임은 틀림없었다.

당연했다. 이건 의도적인 한숨이었으니까. 상대방의 한심스러움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지휘관은 한숨을 선택한것이다.
정확히는, '한심스럽게도 소파 위에 누워있는 메이드'를 보고 내뱉는 한숨이었다.

그 대상이 된 메이드는 오히려 큰소리쳤다.
"왜...뭐! 왜 나를보면서 한숨인데!"

먼저 큰소리치는걸 보니 몹시 뻔뻔하지만, 본인도 찔리는구석이 있다는것은 알고있는모양이다.

사실 찔리는게 있는 상황은 맞다. 메이드라면서 바닥은 엉망이고, 청소는 커녕 서류정리도 되어있지 않은 방안에서 주변을 돌아다니던 불쌍한 만쥬를 납치해 배 아래에 깔고 소파위에 누워있었으니까. 복장을 빼면 어느곳도 메이드다움은 없었다

결국 지휘관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솔직히 말해봐 에기르. 너 메이드일 똑바로 할 생각은 있는거야?"

메이드-에기르는 현재 메이드복을 입고있었다. 평소엔 절대 입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메이드복을.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것인지, 아니 어쩌면 그 때문이 아닐지도 몰랐다. 메이드복을 입은 당사자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음을 말하고있었다.

그렇다면 왜 에기르는 이런짓을 벌였을까? 당연히 에기르에게도 그녀만의 사정이 있었다.

-때는 하루 전, 일요일 철혈기숙사에서-

"그러니까말이지, 내 사역마가 나를, 이 마녀를 이기려드는 모습이, 그 모습이 참을수없이 귀엽단말이지." 마녀-아우구스트 폰 파르제팔의 말이다.

이곳은 정확히는 모항의 기숙사-철혈기숙사. 그 중에서도 파르제팔의 방이었다.

모항의 비서함 스케줄에 따르면 다음주 비서함을 맡게되는것은 에기르. 비서함이라는자리는 지휘관의 업무를 돕는 자리이지만, 그와 동시에 지휘관가 가장 긴 시간을 둘이서 보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실제로 지휘관과 서약한 함선들중에서 비서함 업무를 해보지 않은 함선소녀는 없었고, 평소에 자신도 모르게 지휘관에게 호감이 있었던 에기르는, 비서함에 지원할수 있는상황이되자마자 지원했다. 그리고 이번이 그 차례가 된것이다.

즉 다르다는것이다. 에기르가 파르제팔을 찾아온 것은, 지휘관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뭐가있을지를 물어보러 온것이지, 지휘관의 매력포인트를 알고싶은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그 매력포인트가, 파르제팔 혼자만이 느낄수있는점이라면 더더욱.

적어도 에기르가 보기엔, 파르제팔과 지휘관의 관계가 비서함업무를 하면서 크게 가까워졌음을 느꼈고 은연중에라도 그 방법을 알고싶었던것이다.
그리하여 에기르가 한 첫 질문이 '비서함 업무에 지원한 이유가 뭐지?' 였다.

사실 대놓고 지휘관과 가까워지고싶다는 취지의 질문을 했다면 원하는답을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에기르에게 그런건 너무 무리한 바람인것이다.
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지휘관과 가까워지고싶어서' 정도를 예상했던 에기르에게 돌아온 답은, '사역마가 업무를하는 모습이 보고싶어서' 였던것이다.

플랜 A이외에는 다른 플랜을 세우지 않은 에기르에겐, -자존심때문에서라도 당황한것을 드러내고싶진 않았다- 임기응변이라는 선택지밖에 없었고 그런 에기르의 눈에 들어온것이 파르제팔이 입은 메이드복이었던것이다.
그 메이드복을 입은 저의를 물어보자 돌아온 답이 저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파르제팔의 특수한 취향과 다른 취향을 가진 에기르는 이걸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냥 돌아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뭐? 그런 시시한 이유라니..."
파르제팔에게 물어봤자 오히려 상황이 어려워질것을 느낀 에기르는, 차라리 다른 서약함에게 물어보는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섰다.
시시한 이유라고한것은, 그냥 돌아서면 파르제팔에게 지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왜 그냥 가는거지?" 파르제팔이 물음이다.
"차라리 다른 함선에게 물어보는게 낫겠군. 메이드복이라니... 웃기지도 않아." 그리 말하는 에기르. 걸음조차 멈추지 않았다.

사실 이 시점에서 파르제팔은 에기르의 질문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했다. 거의 확신하는 단계. 그러나 쉽게 정보를 줄 생각은 없었다.
에기르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파르제팔의 이어지는말에는 멈추지 않을수가 없었다.

"흐응~ 그래? 우리 철혈의 용께서는 지휘관의 취향을 잘 모르는 모양이군."
"뭐?" 에기르가 문고리를 놓고 돌아섰다. 여전히 몸은 문밖을 향하고 있었지만, 이정도의 반응아면 확실했다.

그래. 파르제팔은 에기르가 저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확신했다는 뜻이다. 혹시나 해서 철혈의 용이라는표현까지 써가며 에기르를 자극한 보람이 있었다.

"뭐... 원래는 알려주지 않으려고했지만, 하는 행동이 딱해서 알려줄게. 지휘관의 첫 서약함이 누군지 알아?"

누가 딱하다는거냐고 쏘아붙이려던 에기르는 바로 이어진 파르제팔의 말에 신빙성이 있다는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휘관의 첫 서약함-벨파스트는 바로 자신이 파르제팔에게 물어보는것을 포기하고 찾으려한 함선이었으니까.

거기에 벨파스트만 있는것도 아니다. 그 옆에는 다이도급 자매들도 있겠지. 지휘관과 서약관계이거나, 아직 반지가 오지 않아서 서약을 못했을 뿐, 사실상의 서약관계인 함선들인것이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모두 메이드였다.

파르제팔은 생각을 읽는 마녀라는 별명답게, 에기르의 반응을 보고 자신이 원한 그림이 되어가고있음을 확신했다.

"메이드가 많지. 그렇지 않아?"
"으..응... 그렇군..." 에기르는 이미 자신의 태도조차 고수하지 못하게될 정도로 파르제팔에게 설득당한상태였다. 파르제팔은 굳이 이 태도를 지적하진 않았다.
굳이 밥상을 엎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사실 파르제팔의 말은 여기서 에기르가 정신을 차리고 서약함들의 분포를 침착하게 생각한다면 간단하게 논파당할 논리였다.
그러나 파르제팔은 생각을 읽는 마녀, 절대 그럴만한 틈을 주는 만만한 함선이 아니었다.

당장 다음날부터 비서함업무를 하게 될 에기르였고, 모항 내에서 발이 그렇게 넓지 않은 에기르는 급할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리되는것도 당연했다.

"이제 알겠어? 사역마의 취향... 거기에 그 착하기만 한 사역마가 메이드에게만 보여주는 모습도 있지..." 파르제팔 특유의 속삭이는듯한 목소리가 에기르의 귀를 파고든다.

"크...크흠..." 에기르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미 파르제팔의 장난감이 되어가는중이었다. 파르제팔은 실시간으로 붉어지는 에기르의 얼굴과 반응을 보며 이를 즐기고있었다.

이쯤되면 이미 파르제팔의 의도대로 흘러가는것을 느꼈더라도 '그게 뭐 어때서?' 가 되는 수준이었다. 빠져나가기엔 이미 늦었다는 뜻.
어느새 에기르는 파르제팔의 의도대로 메이드복을 입고 거울앞에 서있는 자신을 보게되었다.




창작은 처음써봤음.
오타나 개선점 지적 환영

다음편은 룽청이 일을 똑바로하면 나옵니다
아닐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