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은 날 늦을 줄이야."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지체하면 그녀의 성격상 좋은 말이 나올리는 없기에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그녀와 만나기로 했던 장소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내가 만나기로 한 그녀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금발의 머리를 매만지며 서성이고 있었다.


"늦어, 자기가 정해놓은 시간도 못 맞추고 숙녀를 기다리게 하다니. 정말 최악의 매너네!"


넬슨은 나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쏘아대기 시작했고 누가봐도 내 잘못이 명확했기에 나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내뱉었다.


"...됐어. 어차피 네 성격상 딴 짓 하다가 늦었을 리는 없을테니 여기까지만 하겠어."


팔짱을 낀 그녀의 표정이 누그러드는 것을 보며 어떻게 하면 그녀의 기분이 풀릴지 고민하던 나의 눈에 그녀의 옷차림새가 들어왔다.


"그 옷은 어디서 난거야?"


"선물 받았어. 이런 날에는 이런 걸 입어야 된다면서 아카시가 주던데?"


나는 속으로 이곳에 없는 아카시에게 칭찬세례를 한 뒤 다시 한 번 넬슨을 보았다. 그녀가 입고있는 건 중앵의 유카타. 푸르른 쪽빛 염색의 옷은 그녀의 금발과 대비되어 단아하고 화사한 느낌을 주었고 그녀의 몸매를 부각시켜 청초한 느낌도 들었다.


"잘 어울리네. 오늘따라 사람이 달라보이는 걸?"


"...무슨 칭찬이 그래. 칭찬을 할거면 제대로 하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기분이 풀린 듯한 넬슨은 한 손을 내게 내밀었고 그 행동의 의미를 알아들은 나는 경의를 표하듯이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레이디, 오늘 에스코트는 제게 맡겨 주시지요."


"흥, 잘 하는지 두고보겠어."


그 대답에 픽 하고 웃은 나는 살포시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


"나랑 같이 가자고?"


이틀 전, 비서함 업무를 수행하던 넬슨은 나의 권유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왜 다른 아이들이 아니고 나한테 그런 권유를 하는지 일단은 물어봐도 될까?"


"오랫동안 나와 함께 모항에서 열심히 일한 너에게 주는 자그마한 선물...같은거라고 하면 될라나?"


실제로 그녀는 내가 이 곳에 부임했을 때부터 줄곧 나를 도와준 몇 안되는 함선이었고 서투른 내 업무능력을 도와주고 가르쳐준 그녀에게 늘 고마운 마음 뿐이었기에 이번 기회에 보답을 하고자 한 것이다.


"...정말 그거 뿐이야?"


머리를 매만지며 재차 묻는 넬슨의 말을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그 모습에 그녀는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좋아, 그 날은 별다른 예정이 없으니까. 어디서 볼건데?"


그녀의 답을 받아낸 나는 만날 시간과 장소를 그녀에게 전해주었고 넬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뒷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나만 가기는 미안하니까 로드니랑 콜로라도에게도 물어볼게. 그래도 괜찮지?"


상관 없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고선 넬슨은 비서함의 자리로 돌아갔고 그녀가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모항 내에 업무종료를 알리는 방송이 울렸다. 자리에 앉으려던 넬슨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문고리를 잡으며 나를 돌아봤다.


"그럼 그 날 늦지않게 오도록 해."


그녀가 나간 뒤, 나는 곧장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업무가 살짝 밀려 늦었다는 건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작은 비밀이다.


"...봐, 지휘관 내말 듣고 있는거야?"


나를 부르는 넬슨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길 한복판에 서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런 나를 보며 넬슨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너 제대로 즐기고 있는거 맞아? 모처럼 불러내놓고 막상 네가 못 즐기면 어쩌자는거야."


질책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면목 없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것 또한 그녀 나름의 배려겠지. 그렇게 나는 넬슨의 꾸중 아닌 꾸중을 듣던 중 무언가를 보고는 그녀의 손을 잡아 내 품에 안았다.


"네가 즐겁지 않으면 꿈자리가 뒤숭숭하니까, 제대로 좀 즐겨...우왓!"


말을 끝맺지 못한 넬슨은 이유를 묻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았고 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뒤를 가리켰다.


"저기 뭐가 있다는 거....야?"


내가 가리킨 방향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단체로 춤을 추며 행진하고 있었고 넋을 놓고 지켜보는 우리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저건 '아와오도리'라고 하는 군무라네요. 실제로 보는 건 저도 처음이지만요."


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로드니가 우리를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로드니가 나타자나 넬슨은 화들짝 놀라며 내게서 떨어졌고 그 반응을 본 로드니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어머나, 보기 좋았는데 아쉽네."


"아...아쉽긴 뭐가 아쉬워! 그나저나 로드니, 콜로라도는 어쩌고 혼자 있는거야?"


넬슨의 물음에 로드니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 곧 있으면 교대시간이라 돌아가봐야 할 것 같아. 콜로라도는 먼저 돌아갔고 나는 말은 해줘야될 것 같아서."


로드니의 말에 넬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로드니가 돌아간 뒤,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는 서로를 보았다.


"그럼 우리는 좀 더 즐겨볼까?"


그렇게 말한 나는 넬슨의 손을 잡았고 우리는 인파 속에 섞여들었다.


*


"사람이 많네. 넬슨 괜찮아?"


방금 전 군무행렬 때문인지는 몰라도 축제장의 인구 밀도는 조금 높아진 듯 했고 나는 걱정스런 마음에 넬슨에게 말을 걸었다.


"당연하지, 나를 뭘로 보는거야. 이렇게 네 손도 잡고 있는데 이 인파 속에서 길을 잃을거 같아?"


그 말에 안심한 나는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지만 계속해서 밀려오는 인파로 인해 힘에 부친 나머지 그만 넬슨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정신이 없던 나는 그 사실을 한적한 곳으로 오고 나서야 눈치를 챘고 그녀를 찾기위해 다시 인파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넬슨, 어딨어! 들리면 대답해!"


그렇게 넬슨을 부르며 인파를 헤집고 다녔지만 내 목소리는 수많은 사람들에 금방 묻혀버렸고 기약없는 수색에 포기하려던 찰나 누군가 나를 끌어당겼다.


"이 멍청아, 거기서 손을 놓으면 어떡해! 하마터면 따로따로 다닐 뻔 했잖아!"


나를 끌어당긴 넬슨은 화를 버럭버럭 내기 시작했고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던 나는 그녀의 호통을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어야했다.


"하여간 너는...! 하아, 됐다 됐어. 찾았으니까 다행이지."


속으로 분노를 삭히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그녀가 돌아갈까봐 노심초사했고 그런 내 생각과 다르게 넬슨은 내게 가까이 붙어 팔짱을 꼈다.


"...이러면 떨어지기 힘들테니까. 너 따위가 좋아서 하는게 아니란걸 명심해!"


그녀의 행동에 나는 슬며시 웃었고 넬슨은 그런 나를 보며 빨리 가자며 나를 끌었다.


*


한참을 축제를 즐긴 우리는 잠시 후 어느 한적한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맘놓고 놀았던 거 같아. 넬슨 너는 어땠어?"


"다행이네, 네가 휴일에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지휘관은 아니여서. 나도 즐거웠어."


그녀의 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한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무언가 더 즐길 게 없나 두리번거리던 중 한 노점을 발견했다.


"넬슨 마지막으로 우리 저거 할까?"


내가 가리킨 방향에는 흔히 말하는 금붕어 건지기 라는 놀이를 할 수 있는 노점이 있었고 어리둥절하는 넬슨에게 나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건넸다.


"가서 금붕어 많이 건지는 사람이 소원 들어주기 어때?"


"호오, 감히 이 넬슨에게 승부를 거는거야? 좋아 그 잘난 콧대를 꺽어주겠어."


우리는 노점으로 향했고 거기서 익숙한 얼굴을 마주했다.


"오, 지휘관이랑 넬슨이 같이있다냥. 보기 드문 조합인데 어쩐 일이다냥?"


"너도 이 축제에 참가했었어?"


나의 물음에 우리 둘을 보고 놀라워하던 아카시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당연하다냥.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면 돈을 벌 수 없다냥. 돈은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냥."


그런 아카시의 말에 나는 그녀 답다며 말하고는 뜰채 두개를 달라고 했다.


"여기있다냥. 그럼 열심히 건져보라냥!"


뜰채를 건네 받은 우리는 쪼그려앉아 금붕어를 건질 준비를 했다.


"잘 봐두라고 지휘관. 나 넬슨에게 내기를 건 것을 후회하게 해줄테니까."


그렇게 말한 그녀는 금붕어를 건지기 위해 뜰채를 들이밀었고 결과는 뜰채가 찢어지며 금붕어를 놓쳤다. 망연자실한 그녀를 보던 나는 뒤이어 뜰채를 들이밀었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카시, 이거 뜰채가 잘못된 거 아니야?"


열이 받은 듯한 넬슨의 말에 아카시는 조용히 옆을 가리켰고 금붕어를 떠가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는 할말을 잃었다.


"...뜰채 하나 더 줘."


"내가 이래서 돈을 많이 버는거다냥."


*


한참을 도전했지만 금붕어를 건져올리기는 커녕 물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는 나는 기브 업을 선언한 뒤 옆을 보았다. 넬슨은 뜰채를 조심히 넣은 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이야!"


그렇게 말한 넬슨은 뜰채로 금붕어를 건져 올렸고 그녀가 금붕어를 건지자마자 뜰채는 운명을 다했다.


"이 로열 네이비의 늠름한 모습을 봤느냐!"


"오, 축하한다냥!"


금붕어를 건져올린 넬슨은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고 내가 보고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얼굴을 붉히며 진정했다.


"지...지금껀 못본 걸로 해줘!"


그녀의 숨겨진 면모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넬슨은 부끄러운지 아카시가 올 때까지 나와의 시선을 피했다.


"자, 여기 건진 금붕어다냥."


아카시는 물주머니에 담긴 금붕어를 넬슨에게 건넸고 그걸 받아들고 떠나려는 우리에게 아카시가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보니 두 사람은 도데체 왜 같이 다니는거냥? 혹시 사귀냥?"


"누...누가 이 띨띨이랑 사귄다는거야! 마...말도 안되는 소리 좀 하지마!"


강렬히 부정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살짝 서운한 듯한 마음이 들었지만 실제로 우리 둘이 사귀는 건 아니였기에 그녀의 말에 동의를 표했고 그런 우리 둘을 보며 아카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냥? 난 축제까지 같이 왔길래 그런줄 알았다냥. 실례였다면 미안하다냥."


그렇게 우리는 아카시의 노점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걷기만 했고 내 눈치를 살피던 넬슨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아까 금붕어 건지기. 내가 이겼으니까 소원권은 내꺼네?"


그런 약속을 했었지. 고개를 끄덕인 나를 보며 넬슨은 말했다.


"그럼 나랑 불꽃놀이 같이 봐."


*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나란히 앉아 불꽃놀이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 사이에는 말이 없었고 침묵을 견디지 못한 넬슨은 짜증을 냈다.


"아, 진짜 도데체 아까부터 왜 그러는데! 갑자기 조용해지기나 하고 말이야. 묻고 싶은게 있다면 말을 해!"


그 말에 나는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고 나의 반응에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넬슨은 당황했다.


"뭐...뭐야, 할 말이 있으면 해."


"아카시의 노점에서 말한 거. 그거 진짜야?"


나의 물음에 그녀는 겨우 그런거로 그랬냐는 듯한 반응을 내비치며 답했다.


"당연하지. 너랑 나랑 사귀는 것도 아닌데 거기서 내가 그렇다고 말할 이유는 없잖아?"


"그럼 나랑 불꽃놀이는 왜 보자고 한 건데?"


"...착각하지마. 혼자보다는 둘이 나으니까. 그러니까 보자고 한거야."


그런 그녀의 반응에 나는 순간 치밀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짜증을 냈다.


"겨우 그런 이유로 나랑 보자고 한거야? 너한테 난 겨우 그 정도밖에 안되는 거였어?"


"뭐야, 잘 놀고 갑자기 이제와서 왜 이래? 좋아, 우리 솔직해지자. 너도 나한테 별다른 감정 없잖아! 그러면 깔끔하게 즐길거 다 즐기고 서로 후련해지는 게 낫다고!"


"난 아닌데?"


나의 반론에 허를 찔린 그녀를 나는 틈을 주지않고 몰아붙였다.


"솔직해지자고 했지? 난 너가 좋아. 애초에 너한테 별다른 감정이 없으면 여기 오자고 하지도 않았겠지! 근데 방금 아카시의 가게에서 너의 대답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알기나 해?"


"....읏?!"


속내를 터놓고 울분을 토하자 넬슨은 당황한 듯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고 나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밀리고 쫒아가는 과정이 이어지고 어느덧 넬슨은 나무에 부딪혀 도망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그녀를 양팔로 가둔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난 여기서 네 마음을 알아야겠어.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해! 넬슨 너는 어떤데?"







































"나도 네가 좋아!"


그 순간 머리 위로 폭죽이 쏘아 올려졌고 폭죽소리에 힘입어 넬슨은 말했다.


"나도 너가 좋다고 이 바보야! 처음에는 어리버리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네가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성장하고 노력하는 너를 보면서 어느새 너만을 바라보는 나 자신을 알 수 있었어. 하지만 섣불리 고백했다가 네가 거절하면? 그럼 그 다음에 나는 어떻게 해야되는데? 그게 싫어서, 무서워서 너와 거리를 둔거야. 솔직히 네가 여기 오자고 했을 때 내심 기뻤지만! 나의 물음에 답하지 못하는 너를 보고 느꼈어 여기까지라고. 그런데 갑자기 이제와서 그러면 어떡해!"


울면서 말하는 그녀를 본 나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웃었다.


"뭐야, 결국 우린 똑같았네."


그렇게 말한 나는 그녀의 입술을 덮쳤고 그런 나의 행동에 당황하며 나를 밀치던 넬슨은 이내 포기한 듯 나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입술을 겹친 채 서 있었고 불꽃놀이가 끝나갈 무렵 떨어졌다.


"그럼 오늘부터 우리 1일인가?"


그런 나의 말에 넬슨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똑바로 서. 이 넬슨이랑 같이 생애를 보내게 됐으니 가슴을 펴라고! 뭐, 너한테 선택받은 것도 이 넬슨에게 있어 자랑이지만."


"흠, 그럼 너는 이제 내꺼네? 그럼 이제 말 좀 부드럽게 해주라. 사랑하는 사람한테 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냐?"


"너 말야... 그렇게 쳐맞고 싶은 거야!? 기어오르는 걸 봐주는데에도 한계가 있어?"


그런 대화를 주고받던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고 이내 다시 한 번 짧은 키스를 나누었다. 그에 축하라도 하듯 마지막 불꽃이 머리 위에서 터졌고 우리는 깍지를 낀 채 여름의 시작과 우리의 시작을 알리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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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도항로의 끝을 알리는 뉴비들의 영원한 젖가슴, 넬슨 편 진하게 하나 써드렸읍니다. 

저기 중간에 빈 공백에 일러스트 하나 딱 들어가면 진국인데 똥손이라 그런거 없다. 뒤는 알아서 상상하시고 잘자콘이나 달고가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