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냄새와 종이 냄새가 낮게 깔린 집무실에 익숙하듯 익숙하지 않은 향이 끼어든다.  들고 있던 서류를 넘기며 향의 근원지로 시선을 옮기자, 금일 비서함이 티 세트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온다.  순백에 가까운 단발에 검은 절제 된 검은 프릴 머리띠,  인형의 눈이라 해도 믿을 만큼 붉고 투명한 적안과 단정하면서도 여성스러움이 돋보이는 물결 마감의 메이드복 그리고··· 자극적인 외향···. 천천히 다가와 내 옆에 티 세트를 놓으며 티 푸드에 대해 하나 하나 설명하고 있다. 




"이건 포트넘앤메이슨의 홀리프만을 이용한 홍차로···" 하며 설명을 하며 퍽 비싸 보이는 찻 주전자로 홍차를 따르고 있다.




"아··· 응! 고마워 시리우스" 




시리우스의 설명을 자르며 '아하하···' 하고 얼버무리며 말을 덧붙인다




"미안, 나 그렇게 설명해줘도 잘 모르는 걸···. 그래도 이게 엄 - 청 고급 홍차라는 건 알겠어. "




하며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맛을 본다. 역시 잘은 모르겠지만 이 향이나 맛··· 익숙한 티백 홍차와는 한 차원··· 아니 두 차원 정도 다른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그도 그럴게 메이드대 아이들이 내게 사용하는 모든 상품은 '퀸 엘리자베스' 에게 올리는 것과 같은 것을 사용하니 안심하고 드셔도 좋다 벨파스트에게 들은 적이 있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그럼 이거 한 잔에 얼마나 하는 걸까··· 하고 의문이 피어오를 때 즈음···  시리우스가 포크와 나이프를 든다.




" 죄송합니다···. 저의 자랑스러운 주인님 다음엔 좀 더 쉽게 설명 드릴 수 있도록 간략하게 준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미소 지으며 팬 케이크와 함께 집기를 내 앞에 하나 둘 세팅하기 시작한다. 그 포크와 나이프를 집으며 "아냐···  그냥 이대로 부탁할게···" 하고 백기를 든다. 




 팬 케이크를 자르고 입으로 가져가며 시선을 옮기는 도중, 뭔가 시선이 느껴진다. 내 모습을 뭔가 비장하게 바라보는 시리우스··· '뭐지?' 하면서도 그대로 입으로 옮겨 우물거린다.  




 비서함은 별 일이 없다면 하루마다 돌아가며 맡는 이른바 '당번제' 비슷한 느낌이다. 허당인 아이들도 있고, 텐션이 높은 아이도 있어 가끔 집무실이 소란스러워 질 때도 있지만 이렇게 메이드대 아이들 중에 한 명이 들어오게 되면 그야말로 몸은 호강하고 마음은 든든해진다. 


'아··· 다이도는 조금 다른가···.' 


하고 생각하는 도중 갑자기 입에서 위화감이 들기 시작해 시리우스를 올려다본다 




"어? 아··· 어?" 




내 상태를 보고 시리우스는 뭔가 올 것이 왔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가 서서히 눈을 뜨며 물어온다.




" 오··· 왜 그러시죠 자, 자랑스러운 주인님··· "




" 짜··· 엄청. "




 그럴 리가 없다며 잘라 놓은 팬 케이크를 한 조각 입으로 가져가는 시리우스, 조금 씹는가 싶더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을 훔치고는 작게 헛기침을 하며 팬 케이크 접시를 나에게서 뺏듯이 집어 든다. 




" 정말 죄송합니다 주인님··· 설탕과 소금을 착각 한 것 같습니다··· 부디 이 부덕한 메이드에게 벌을···. " 




정말 큰 잘못이라도 한 듯 붉은 눈동자가 크게 요동친다. 그 모습을 보고 어찌 화를 낼까···. 일단 물고 있던 팬 케이크를 삼키며 시리우스에게 진정하라고 다독인다. 확실히 시리우스는 똑 부러지고 굉장한 메이드지만 이상하리 만큼 요리에 있어선 다이도 이상으로 젬병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황에서 시리우스는 요리를 하지 않지만, 가끔··· 아주 가끔 이렇게 잊을 만 하면 지뢰를 하나 씩 가져온다. 본인도 이 약점을 극복해내고 싶겠지. 




" 괜찮아. 그래도 계속 노력하잖아? 조금씩 좋아질 꺼야 응? "  




위로를 듣자 진정한 듯한 시리우스는 ' 감사합니다, 저의 자랑스러운 주인님··· ' 울먹이며 나를 본다. 




" 그래도 다음부터는 자신이 만들었다고 말해주기다? 그··· 마음의 준비? 는 해야지." 하고 말하자 울먹이던 눈동자가 더 심해져 눈물이 넘칠 듯이 그렁그렁 해진다. 




아뿔싸··· 말 실수했다. 하는 찰나 전화가 걸려온다. 시리우스가 진정하고 전화를 받는다. 




" 비서함 시리우스 전화 받았습니다. " 


그리고 네, 네, 그렇습니까 하고 몇 번 짧게 대답만 하다가 전화를 끊는다.




" 주인님. 지금 공창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카시씨가 아주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 어? 아카시가? "




'또 무슨 일을···' 하고 혼잣말을 하며 외투를 걸쳐 입는다. 시리우스가 다가와 오른쪽 옷깃과 주름을 정리해주며 '동행 할까요?' 하고 물어온다. '음···' 하고 좀 생각하다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일단 거절하고 집무실을 부탁하며 문 밖으로 나서자 ' 다녀오십시오 저의 자랑스러운 주인님. ' 하고 배웅한다. 




" 응, 다녀올게. 아, 혹시 엄청 단 초콜릿이라도 가져다 줄래? 그··· 단짠 단짠 이란 느낌으로 먹어볼게~ " 




 아까 한 말 실수가 마음에 걸려 일단 최대한 먹어보기로 한다. 그래도 날 위해 열심히 만든 건데 성의는 보여야지 않을까 싶었다. 


사령실 건물을 나와 공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살짝 구름이 낀 화창한 날이다. 외투를 입고 있어 그런가··· 살짝 날이 더운 걸 보니 이제 곧 여름이 다가오는 듯 하다.




"  슬슬 하복도 세탁 맡겨야겠구나···. " 하고 중얼거리며 가장 빠른 길로 가기 위해 중앙동을 거쳐 가는 도중에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 유니콘은··· 유니콘은 살아있어 ! "


" 으으··· 하지마··· ! " 




 드물게 유니콘이 얼굴을 붉히고 울먹이며 새러토가에게 화내고 있었다. 




 " 아하하~ 유니콘이 너ㅡ무 귀여워서 그런거라구? " 


 유니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는 새러토가. 또 무슨 장난을 쳤길래 유니콘이 유우를 붕붕 휘두르며 화를 내는 걸까···


하고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유니콘이 이쪽으로  총총 달려와 소매를 잡아 끈다. 그런 유니콘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을 붙인다. 




" 안녕 유니콘, 새러가 괴롭혀? 혼내줄까?! " 하고 빙긋 웃어 보인다.


" 오빠··· 있지, 새러토가 씨가 자꾸 홍보영상으로 놀려··· ! " 하고 새러토가를 손으로 가르키며 울먹인다. 




" 아하하··· 안녕 지휘관. 설마 유니콘이 이렇게 싫어 할 줄은 몰랐어. 미안해~ " 하고 유니콘을 뒤에서 안아준다. 




 군에선 1년에 한번 정도 군의 이미지 쇄신과 군 지원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주기적으로 홍보 영상을 찍어 방영하곤 한다. 


이번 컨셉은 지켜주고 싶은 여동생의 이미지를 내세워 지원자를 모아보겠다는 속내였는지 유니콘이 채택됐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영상이 좀 난해하다 해야 하나··· 엉성하다 해야 하나···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지만, 사람들의 머리 속엔 영상 시작부터 끝까지 나오는 한마디 만이 강렬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아,  '유니콘은 살아있어!' 말하는 거야? "




 그러자 새러토가를 깔깔 웃으며 ' 아하하··· 지휘관 웃기지 마~ ' 하고 내 어깨를 친다. 그리고 그 동시에 유니콘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 오빠··· 오빠 까지···. " 




유니콘은 내 소매를 잡고 있던 손을 떼어 유우를 끌어안으며 울먹이기 시작한다.




아··· 큰일 났다. 




" 유니콘, 눈 감아볼래? " 


" ··· 응? " 




새러토가를 뒤로 물리고 유니콘의 뒤로 돌아가 번쩍 안아 올리며 목마를 태운다. 놀란 유니콘이 ' 으아아?! ' 하고 놀래며 창피하다고 내려달라곤 하지만 크게 저항하는 것 같진 않았다. 




" 지금 아카시를 보러 가야 하는데 유니콘도 같이 갈까? "


" 으··· 으응! "




 긍정하는 유니콘의 다리를 잡고 천천히 공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새러토가는 그런 뒷모습에 ' 잘 다녀와~ ' 하고 배웅하고는 반대로 걸어갔다.  최대한 영상 이야기는 잊어버리도록 시시콜콜한 대화로 화제를 잘 돌려본다. 진정한 유니콘이 웃으며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그러자 뒤통수에 뭉클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가득 느껴진다. 당황한 나머지 급하게 달래보려고 일단 목마를 태웠지만 요 몇 년 간 유니콘의 성장을 너무 과소평가 한 것 같다. 처음 유니콘을 만났을 땐 그냥 어린 아이었는데, 키는 별로 성장하지 않았지만 다른 외향적 부분은 이 나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웬만한 함선 소녀들 못지 않게 성장했다.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면서도 움직일 때 마다 접했다 떨어졌다 반복하니 신경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보고 유니콘이 ' 오빠··· 유니콘 무거워서 힘들어? ' 하고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어온다.




" 응? 아니야, 우리 유니콘은 하나도 무겁지 않아요~ " 하고 좀 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공창에 도착하니 아카시가 손도 빠져나오지 않은 소매를 들어 인사한다. 그 앞에 유니콘을 내려주고 부른 이유를 물어본다. 




" 안녕 아카시 무슨사고를 쳤길래 급히 부른거야? "


" 무슨 소리 하는거냥! 아카시는 언제나 사고만 치고 다니진 않는다냥! "


" 오호··· 그으래···? "




 하고 눈을 흘기자 아카시가 한 풀 죽은 목소리로 ' 어···언제나는 아니지 않냥···. ' 하고 눈을 돌리다가 뭔가 생각난 듯 양 소매를 번쩍 들며 부른 이유를 설명한다. 




" 그보다, 전에 맡긴 특별 계획함 의장 건조가 끝났다냥! " 하고 옆에 건조 도크를 가르키며 다가가 도크의 문을 연다.  그리고 드러나는 새하얀 의장.  거대한 여러 겹의 헤일로와 함께 천사의 날개··· 아니, 기사의 견갑을 연상케 하는 장갑. 그리고 3연장 주포 3문. 얼핏 봐도 전함이나 항공모함은 아니다. 




" 아카시,  특정 된 정보는 있는거야?  " 


"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냥···. 의장의 형태로 봐선 철혈이나 노스유니온은 아닌 것 같다냥. "


" 그렇네··· 그쪽 의장은 보자마자 확 눈에 들어오니까···.  함종은 중순양함이나 대형 순양함 같은데···. "




하고 '의장의 주인을 찾아야 하는데···'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중, 누가 옷깃을 집어 당겼다. 유니콘이었다.




" 유니콘은··· 도울 거 없어? " 




복잡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으니 따분했던 나머지 이야기에 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음··· 그럼 유니콘은 각 진형 부관들에게 나한테 연락하라고 전해줄래? "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러자 ' 응! ' 하고 베시시 웃으며 뒤를 돌려는 찰나 아카시가 멈춰 세운다.




" 후후··· 이 유능한 공작함을 너무 얕본거냥! 이미 SN과 KMS를 제외한 부관에게 이 몸이 전~부 연락을 돌려놨으니 곧 도착할거냥. " 




' 오오, 대단한데. ' 하고 칭찬하려다 위화감을 느낀다.




" 전방 지부에 주둔한 부관들도 있는데, 곧 도착한다고? 급히 와도 하루는 소요 될 텐데? "


" 그, 그건···. " 




의기양양하던 아카시의 낯빛에 음영이 지며 내 눈을 피하기 시작한다. 아카시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하는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눈에 힘을 주며 추궁하자 아카시가 천천히 입을 뗀다.




" 그··· 아카시님이 너무 바쁜 나머지···. 그, 그··· 지휘관에게 연락하는 걸··· 까, 까먹··· 었다냥···. " 




하··· 하고 한숨을 깊게 내쉬며 아카시를 부른다.




" 왜··· 왜그러냥? "


" 아카시는··· 나비탕 좋아해? 관절에 그렇게 좋다더라구 " 




 그 말을 들은 아카시가 손사래를 치며 ' 미안하다냥, 용서해달라냥 ' 하며 나에게서 한 걸음씩 멀어진다. 유니콘이 ' 나비탕···? ' 하고 갸웃하는 순간, 공창의 문이 활짝 열리며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 오랜만이야 honey~ 잘 지냈어? "




그 목소리에 대꾸도 하기 전에 달려와 한아름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익숙한 이 부드러운 압박감··· 뉴저지였다. 그런 뉴저지를  ' 잠깐··· 부관을 불렀는데 왜 니가··· ' 하고 살짝 손으로 밀어 떼어 내려하자 검지를 세워 내 입을 막아 말을 자르며 윙크한다. 




" 그런 당연할걸, 허니가 보고싶어 온 게 당연하잖아? " 하며 한 두 걸음 떨어진다. 




 각 진영엔 하나의 부관을 두고 있다. 부관은 진영 대표의 대리인 권한으로 전파할 일이 있을 때나 보고를 받는 등의 사무적이고 대외적인 의견을 주고 받는 등 많은 일을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두 진영 이상의 합동 작전을 진행할 때엔 나와 부지휘관, 그리고 부관들이 지휘실에 모여 함대를 조율하고 작전을 실행하는 등의 중책을 맡는 등, 진영의 얼굴을 담당하기에 신뢰와 지성, 그에 맞는 품위를 갖췄다 볼 수 있다.  그런데 뉴저지 녀석은···.




" 부지휘관 까지 되면서 직무유기하고 그러는 건 안되지! " 




그 말에 뉴저지는 살짝 우월감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내게 검지를 흔들어 대며  ' 아니지 아니지~ ' 하고 반박해온다. 




" 나의 사랑을 너무 얕보는 걸 허니? 오늘 만나러 오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내일 서류 작업까지 전~부 마치고 왔단 말씀. " 




' 흐흠 흐흠··· ' 하고 목을 가누며 말을 이어간다.




" 그렇게 한 달만의 아름다운 만남을 기대했는데··· 내 마음도 몰라주고, 마중도 안 나와주고···  허니··· 변해 버렸어! " 하며 뿡뿡 거리며 ' 흥! ' 하고 고개를 살짝 돌린다. 그리고는 살짝 실눈을 뜨고 내 안색을 살펴보다 눈이 마주치니  다시 감아버린다.  도저히 이 녀석은 이길 수가 없다···. 



* 글자 수 제한 있는 줄 모르고 길게 썼다가 안 올라가서 두 개로 나눔 

  제목은 앵커리지지만 이번엔 앵커리지 하나도 안나 옴 수구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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