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 자지 보지에 삽입 직전)


"한참 찾았잖아, 당신."


푸르런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고, 아늑한 내 집은 주옥같은 불꽃에 삼켜져 그을음으로 물들어간다.


바베큐 그릴과 테이블이 놓여있던 뒷마당의 잔디밭에는 그녀의 의장이 착지하여 으르렁거린다.


그녀의 날이 돚힌 듯 애타게 찾던 임과 재회환 기쁨에 겨운듯, 고요하고도 감정의 들끓음이 느껴


지는 목소리가 폭발로 먹먹해진 내 귀를 뚫고 들어온다.


따스한 햇빛을 내리쬐던 늦여름의 태양을 가리는 그녀는 힌덴부르크. 철혈 진영의 특별 계획함.


"... 그게 아닐텐데. 나는 지휘관의 함선. 당신의 검. 계약의 대상."


"그리고, 당신만의 힌덴부르크. 아니야?"


힌덴부르크가 불만스러운 감정을 내비치는 것 처럼 꼬리를 세차게 흔들고 어금니를 깨문다.


의장의 앞발이 내 집이었던 잔해를 움켜쥐는건 착각이 아닐터. 여차하면 나를 납치할 심산이나,


그녀는 전투의 승자가 주도권을 쥐고 아량을 베푸는 마냥 나를 내려다 보며 묻는다.


"이 나를 두고, 대체 어디로 갔었던 거지?"


"...나 전역했잖아 힌덴아. 갑갑하고 눈치보이는 모항이 아니라 나만의 집에서 쉬고 싶었어."


빠드득. 힌덴부르크가 어금니를 더욱 세게 깨문다.


"내가, 당신만의 힌덴부르크가, 당신만의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있었는데."


"내 힘과 내 의장이라면 당신을 골치아프게 하고 억압하는 것들을 재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야."


바로 이 집처럼. 그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읊조린다. 그녀에겐 이 집이 나를 옥죄는 감옥으로 보였나 보다.


힌덴부르크는 내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그러나 강단있게 얘기했다. 내 집을 재로 화하고 나를 


충격과 공포로 움직이지 못하게 억누른 걸 보니, 그녀가 론 이상의 불안 증세와 강박증에 횝싸인 듯 했다.


"KMS Hindenburg 의 상관은 내가 아니라 내 후임일 텐데?"


"맞아. 하지만 힌덴부르크의 계약자는 아니지. 에기르의 주인과 파르제팔의 사역마는 더더욱 아니고."


내 후임이 특별 계획함들을 운용하는데 큰 지장을 겪고 있다는 문제는 익히 들어본 적이 있었다.


내 주도로 건조된 까닭일까, 진영을 막론하고 특별 계획함들은 후임의 지시를 거부했다.


진영을 대표하거나 어느 집단에 소속된 함선들은 간접적으로나마 협조적이었지만,


사냥개로밖에 풀어놓을 수 없는 론, 긴 잠에 빠진 앵커리지, 검이 있어도 의기소침해진 하쿠류 등


병기로밖에 취급할 수 없거나 그마저도 불가능해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막대한 예산과 자원을 투입한 의미가 옅어진 것이나 다름없어져, '특별 계획함 무용론' 이나 


'특별 계획함 전역 조치' 등, 그녀들의 의장을 해체하고 민간으로 내보내자는 말이 국회와 매스컴의


대부분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 이런 일 때문에 진작에 전역한 것이다. 한 개인에게만 의존하는 조직은


존재 자체만으로 심대한 부담감을 안겨준다. 하물며, 수장이고 정부고 나로 하여금 함선들간의


힘의 균형을 맞추려 하던데 도망치지 않는다면 뇌는 장식임을 증명하는 꼴이다.


...일단 내 뇌는 그런 것 같다. 함선 소녀들의 집착을 간과했다.


"당신.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는 건 좋지만 당신만의 힌덴부르크도 같이 갔어야지."


"난 서약한 적이 한번도 없었어. 한평생 독신이야."


"나 힌덴부르크는 하찮은 인간들이 만든 여가거리가 아니라 나와 당신만의 계약을 얘기하는거야, 계약자."


"당신과 나의 계약은 그 어떤 증서나 증표 따위로 고정하고 표현할 수 있는게 아닐텐데."


"이 집을 찾아온 것도 그 계약 덕분인가?"


"그래. 틈틈이 외출해서 계약의 연결고리가 강해지는 방향을 찾아냈지. 단순한 반복 작업이야."


"아무리 특별 계획함이어도, 벽람항로가 그렇게 많은 외박이랑 외출 허가를 주나?"


"당신이 생각한대로, 출격을 대가 삼아 허가를 받아냈을 뿐."


지랄났네.


"영외 상태에서의 무허가 의장 전개는 군사 재판 대상이다. 철혈의 위상을 실추시키고 싶은건가?"


갑자기, 힌덴부르크가 한쪽 발을 바닥에 짓밟으며 서늘하고도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당신. 나의 계약자여. 이곳이 도로도 없고 전파도 안 닿는 걸 잊었어?"


"속세의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전역 계획을 짜던 것, 벽 너머로 다 들어서 알고 있어."


"그런데, 어딜 가도 바다가 있는 이 행성에서 은둔하려면, 벙커로 들어가야 하는거 아니었나?"


"...그러게 말이다."


"힌덴부르크, 나한테 대체 뭘 하고 싶은거지?"


"민간인 신분인 지금의 나는 아무렇지 않게 납치해서 너희 본국으로 후송하는 건 일도 아닐텐데?"


그녀가 처음으로 웃었다. 맛있는 사냥감이자 전리품을 취하기 전 승자가 만끽하는 웃음을.


무저갱처럼 시커먼 음심이 한데 뭉친 눈을 빛내는 힌덴부르크는 꼬리를 손 삼아 지퍼를 올렸다.


"어머나. 몸은 솔직한가봐, 당신. 이렇게 우뚝 세울 줄이야."


"그것이 죽음에 앞서 종을 보존하려는 하찮은 시도인지, 혹은 당신만의 함선을 달래려는 것인지는."


"상관 없지만."


폐허의 열기에 움찔대는 내 자지에, 그녀가 맑은 침을 한방울 떨어뜨렸다.


침이라기엔 점도가 너무나도 낮은 그것은 그녀의 음부에서 비롯됐으나, 사냥감을 노리며 흘리는


점에서 포식자의 침과 다를바가 없었다.


"다시 한 번 계약을 맺을 시간이야. 이 힌덴부르크의 계약자여."


"이건 우리들을 하나로 묶는 사슬, 영원한 결속의 증표."


힌덴부르크가 보지 부근의 천을 찢어버리고, 무의식적으로 살랑거리는 날개 한쪽을 잡아 밖으로 빼낸다.


마치 커트시를 연상케 하는 동작. 수발을 빙자하여 계약의 사슬로 내 사지를 묶어버리겠다는 암시.


본능에 굴복한 내 자지는 한없이 발기하여, 힌덴부르크의 계약의 서문에 닿을락 말락한다.


"우리들의 사랑의 결실을 맺고, 이 재를 양분 삼아 일으키는 거야."


"당신과 나만의 안식처를. 걱정하지마, 철혈 계획함들은 출격을 대가로 운신을 보장받을 테니."


힌덴부르크가 내려앉았다.


내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