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통수가 으스러질듯 아려온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당장 눈을 뜨려고 해도 눈꺼풀 위에 포미더블이라도 올라타 있는것처럼 쉽게 떠지지 않았다.


정확히 어떻게 기절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히 오늘 하루도 평소와 다를것 없이 흘러갔다. 


U보트 아이들의 의장을 점검해주고, 블뤼허와 오이겐과 함께 히퍼의 빨래판같은 가슴을 놀려주고, 서약함이자 현 비서함인 프린츠 루프레히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남은 잔업을 처리하기 위해 지휘관실에 잠깐 들렀던가.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더라.


더이상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분명 한가득 쌓인 서류더미를 향해 나아가던 중 무언가 옅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막 돌리려고 했었던것 같기도 한데.


감겨져 있던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간신히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익숙한 지휘관실이 아닌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쌓인 모항의 창고였다.


그리고 나는 마치 심문실에 끌려온 포로처럼 창고 중앙에 놓여진 의자 위에 몸이 묶여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모항에 세이렌이 잠입해 들어올 리는 없을텐데. 


"아. 일어나셨나요~"


한참 상황파악을 위해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그 목소리에 내 고개는 저절로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한다.


"지휘관님을 배려해서 최대한 힘조절을 해 보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줄은 몰랐네요?"


"너, 어째서..."


특별계획함 1기. 모종의 방법으로 복잡한 제작 과정을 건너뛰고 오이겐과 함께 모항에 착임하여 힘들뻔한 초임 지휘관 시절을 보다 수월하게 보낼수 있게 도와준 함선소녀. 론이었다.


그녀가 처음 모항으로 오던 날, 나는 그녀의 말랑하고 귀여운 외모에 반했다. 포근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취했으며, 그것과 완벽하게 대조되는 무자비함과 강함에 매료되었다.


처음 그녀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던 날. 그녀의 상기된 얼굴을 아직도 기억한다. 사랑스럽고, 귀엽고, 어여뻤던 그 모습이.


지금, 이렇게 보여서는 안 될 상황에서마저 보일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는데.


"어째서.. 라고요? 정말 덧없는 질문이예요, 지휘관님."


"최근. 저 외에 다른 아이들과의 교류가 훨씬 잦다는 걸. 제가 모를줄 알았나요?"


"그, 그건..."


첫 서약함도. 첫 비서함도 전부 그녀였다. 나의 처음을 전부 그녀에게 내어주었음에도 그 말에 쉬이 반박할수 없었던 것은, 그녀의 말 또한 사실이었다는 것에 있었다.


점차 모항의 규모가 확장되고, 특별계획함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잔불을 포함한 META 진영의 함선소녀들도 몇몇 데려오기 시작하면서 신경써야 할 인원들의 수가 늘어났다.


그렇게 늘어난 인원 중에는 론을 포함한 초기 인원들보다도 훨씬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하는 함선소녀들도 많았으며, 저마다의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그녀들을 차마 내칠수는 없었다.


늘상 쓰던것에 안주해있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갈망하던 것이 바로 자신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첫 서약함이자 비서함이었던 론만을 향했던 관심이 사그라들고 식어버리게 된 것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으응, 역시 반박을 못 하시네요. 제 말. 하나도 틀린게 없는거죠?"


"지휘관님. 당신의 관심이 점차 다른 아이들에게 향할때도, 제 관심은 오직 지휘관님을 향해 있었답니다."


"전장에서 수많은 적을 찢고 부술 때보다.. 지휘관님과 함께하는 매 순간, 일분 일초가 더더욱 충실감을 느끼게 했으니까요."


점점 그녀의 목소리가 격앙되기 시작한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자신은 알고 있었다. 지금 그녀를 막을수 있는 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애초에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할것이라는 사실을.


"그런데도 지휘관님은 끝내 그 사실을 알아주지 않았어요. 아니, 정확히는 망각하고 계셨겠죠? 제가 그렇게. 몇 번씩이고 되뇌여줬건만.."


".... 그래서 오늘. 바로 지금. 제가 그 사실을 더욱 확고히 해 드리려고 지휘관님을 데려왔답니다."


의자 주변을 뒷짐을 진 채로 여유롭게 돌아다니며, 귓가에 나긋하게 속삭이듯 이야기하던 론이 일순간 앞에서 멈춰섰다.


"더 이상 지휘관님이 다른 아이들과 희희낙락하는 꼴을 보았다가는... 그 아이들을, 제가 직접 부수어버릴지도 모르니까요."


그녀의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자만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입지를 잃고 존재감이 흐려졌어도 그녀는 특별계획함이었으며, 그 이름이 우습지 않을 무력을 소유한 함선소녀였다.


 그렇다고 그녀 이상으로 강한 함선소녀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그녀가 호언장담한 대로 수를 쓰기도 전에 처참히 부서지고 말게 뻔했다.


잘 구슬려 상황을 좋게 끝내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는 듯. 무언가 더 이야기를 꺼낼 틈도 없이 론은 그대로 허벅지 위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자세로 걸터앉았다.


떨쳐낼수 없는 중압감이 몸을 짓누른다. 거부할수 없는 공포심이 이성을 마비시켰다. 론은 몸을 점차 가까이 밀착해왔다.


"아아ㅡ 얼마만인가요. 이렇게 지휘관님의 가까이에서 지휘관님의 온기를 느끼고, 숨결을 느끼는 것은..."


"저. 계속 이렇게 지휘관님과 함께하고 싶어요. 오직 저만을 바라보는 지휘관님과 함께- 영원한 시간을."


론은 손을 들어 몸 이곳저곳을 훑었다.


"지휘관님의 손... 처음 봤을때보다 굳은살이 더 박혀버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랑스럽네요?"


"아아. 처음 지휘관님을 마주했을 때보다 훨씬 말라버리셨네요. 분명, 삼시세끼 잘 챙겨 드시라고 말씀드렸는데도..."


"지휘관님의 다리. 이대로 으스러트리면, 제가 바라는대로 오직 저와 함께할수 있겠죠?"


나긋한 목소리로 걱정해주는 듯 하면서도, 어딘가 핀트가 나가있는 섬짓함이 한껏 묻어있는 이야기가 몸 이곳저곳을 짚을 때마다 들려왔다.


그리고 그녀의 손은 정확히 눈 위를 향하다 멈췄다.


".... 지휘관님의 눈. 영원히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


"저만을 바라보고, 저만을 향하고, 저만을 위하며.... 저만을 갈망하는 눈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데. 안 되나요?"


이야기를 할 수록 점차 론의 손이 가까워지고, 그녀의 손가락이 당장이라도 눈을 뽑아낼것처럼 눈가 주변을 서서히 압박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강한 공포심을 주며 압박하던 손이 이윽고 서서히 멀어졌다. 그것에 대해 안심하기도 전에, 론의 손은 목을 향했다.


"그래도 저는 온전한 지휘관님이 좋으니까요. 용서할수 없는 건 다른 아이들이지 지휘관님이 아니니까요."


론은 생글거리며 어여삐 웃는다. 그러나 손에는 점차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숨통을 졸라오기 시작했다.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 봐도, 의자에 묶여있는 몸으로는 그 어떤 저항도 론에게 무의미했다.


"아아. 우리 지휘관님, 괴로워하는 모습도 매력적이어라..."


"조금만 기다려줘요. 아까 그랬던 것처럼, 잠깐 주무시고 일어난다면... 모든게 완벽히 돌아갈테니까."


흐릿해지는 시야.


그 시야를 가득 채우는 것은, 한결같이 웃고 있는 론의 모습이었다.


"영원히 사랑해요. 지휘관님."


***


처음이라 존나 어색하고 어설퍼서 일부러 사람들 덜 보는 새벽에 찍싸고 튀기


당체 끝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할지 감이 안와서 좀 어영부영한 감이 없지 않음


나도 글 잘쓰고싶다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