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두둑)


그 날 역시 음산하게 내리는 비가 잘츠부르크 시내를 가득 메운 하루였다.


회색빛의 구름이 누런 빛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 우울한 프린츠 오이겐씨의 얼굴빛을 대변하고 있었다.


하나 둘 켜지는 가로등 불빛, 사람 대신 싸늘한 바람이 부는 거리


그녀는 그러한 바깥 세상을 보며 항상 그래왔듯 눈을 감고 어둠에 빠졌다.



“ 저기 오이겐! 듣고 있어? 나 히퍼인데 전화 좀 받아봐.. “


그녀를 찾는 언니의 애절한 전화메세지를 알람삼아 눈을 뜬 오이겐씨


프린츠 오이겐씨는 한 때 바다를 삼킨 세이렌에 맞서 지구를 지켜야 했던 엘리트 중순양함이었지만 지금은 마트 종업원이다.



군인시절 그녀는 잘나갔다. 


모든 함선들이 사랑하는 지휘관과의 관계도 좋았고 항상 모든 선봉대에서 그녀가 빠진 적은 없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대형순양함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그녀는 지금 펴는 담배연기처럼 가늘고.. 천천히.. 잊혀져갔다…

 

따르르릉


오이겐씨는 어쩐지 전화가 받고 싶어졌다. 


세상과 잊혀지고 싶어 모든 행적을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자매와의 연을 끊기란 쉽지 않았다. 


또한 사랑하는 지휘관이 다시 연락을 하지 않을까.. 전화번호만큼은 바꾸지 않은 그녀였다.

 

“ 여보세요 히퍼 오랜만이네 “


“ 오이겐!!! 너!!! “

 

수화기가 부서질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전화를 받는 맏언니는 이내 울음을 터뜨렸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전선 저 너머의 모습을 상상하며…


아주 오랜만에 살짝 미소를 지은 오이겐씨는 천천히 그녀를 달랬다.



“오이겐!! 이번달에 시간 낼 수 있겠어?“


“어머 언제인데?“


“10월 23일…“


“ ! “


어째선지 오이겐씨는 마음 속 빗장이 풀리며 그동안 흐린 눈으로 일관한 느낌이 전신에 맴돌았다. 


그녀가 무언가 눈치챘다는 걸 감으로 느낀 히퍼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지휘관 결혼한대 그래도 우리 목숨을 걸고 다 같이 싸웠잖아..? 참석 하는게 예의 아니겠어? 그것도 있고 너도 이제 밖으로 다시 나와야지… “


순간 오이겐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전화속에서 들었던 지휘관의 결혼,


지난 몇 년간 피해왔던 끔찍한 진실,


설탕물에 손을 담근 것 처럼 계속해서 남는 끈적한 불쾌감,


그것은 분명 그날 밤 집무실 안에서 들렸던 지휘관과… 자신과 비슷한… 바다여신의 달콤한 웃음소리였다.


그것을 다시 느꼈을 때 오이겐씨는 이미 더 이상의 회피를 포기한 상태였다.

 

“어디로 가면 돼..?“


“내가 곧 청첩장을 보내줄게 그 때 보자”



오이겐씨는 그만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위에 그녀는 침몰하고 있었다. 


진청색의 깊은 바닷속으로 천천히… 


그녀가 지휘관을 만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아주 느리게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