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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

 퍼시어스가 내 파티션 너머로 팔을 걸친 채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녀의 비스듬한 눈길이 나를 내리쬐었다.

 “아. 퍼시어스. 어쩐 일이야?”

 나는 가능한 한 화사한 미소로 응대했다.

 “…….”

 하지만 확실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도 그렇겠지.

 그녀에게 용건 따위는 없을 테니까.

 그녀는 진작에 자기 일을 끝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내게 찾아왔다.

 단지 그것뿐이다.

 “…저녁은 어쩔 거야?”

 그녀가 물었다.

 나는 시계를 본다.

 [14:30]

 “으음.”

 저녁 이야길 하기에 그다지 적합한 시간은 아니다.

 퍼시어스도 그걸 깨달았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센스를 발휘한다.

 “오늘 구내식당 맛없다던데… 퇴근할 때 같이 새로운 음식점이라도 찾아볼래?”

 나는 물었다.

 퍼시어스의 얼굴이 펴진다.

 “…거부권은?”

 “없어. 거절하면 항명이야.”

 “그래, 그럼.”

 그리고 우리는 얼마간 잡담을 이어갔다.

 퍼시어스는 충분히 내 업무를 방해하고 나서야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최근 들어 이런 일이 많이 늘어났다.

 이유도 없이 내 자리에 들려 과자를 놓고 간다거나,

 괜히 시비거는 척 내게 말을 걸고는 했다.

 그런 그녀에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퍼시어스와 이야기하는 건 즐겁다.

 그녀가 내 일을 방해하러 오는 것이 기쁘다.

 하지만 이 설레는 감정의 이면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 사랑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의 결말을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사랑이기에.

 

***

 

 [18:30]

 

 “너는 맛 없는 요리를 고르는 재능이라도 있는 것 같아.”

 퍼시어스가 말했다.

 “으음.”

 나는 고기를 한 점 입에 집어넣었다.

 “내가 음식 선택에 있어 조금 도전적인 구석이 있는 건 인정할게.”

 나는 말했다.

 “이건 도전적이란 말로 용서가 될만한 수준이 아닌데.”

 확실히.

 이건 좀 심하다 싶을 만큼 맛이 없다.

 고기는 질기고 양념은 밍밍하다.

 “하지만 맨날 해물만 먹으니까 질리잖아. 해군이란 이유로 생선만 먹어야 하는 건 불합리해.”

 나는 변명을 해보았다.

 “그렇다고 굳이 육지 생물 중에 가장 맛없는 것만 골라 먹어야 할 필요는 없어.”

 퍼시어스는 비꼬듯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 눈치를 살피는 점이 사랑스럽다.

 그녀는 음식에 집중하는가 싶다가도 나를 힐끔힐끔 본다.

 ‘이런 식으로 굴면 안 되는데.’

 그녀는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좀처럼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나처럼 인간관계가 서툰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식기를 놓고 입가를 닦았다.

 “이야. 그래도 한 가지는 배웠네.”

 “뭘?”

 “여긴 다시는 오면 안 되겠어.”

 그러고서 나는 웃었다.

 그녀도 따라 웃는다.

 조소에 가까운 웃음이지만 어쨌든 웃어준다.

 “그런 건 말이지. 굳이 들어가서 돈 내고 먹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거라고.”

 그녀는 말했다.

 “어떻게?”

 나는 바보처럼 물었다.

 “구글 평점이라던지, 바보야. 그런 걸 꼭 말해줘야지 아는 거야?”

 “그래도 그냥 같이 걸으면서 찾아다니는 편이 재밌잖아.”

 “그건… 으음.”

 그녀는 잠시 대답을 망설인다.

 “…그렇지.”

 예전의 그녀라면 하지 못했을 말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는 체하며 딴청을 피운다.

 최근 들어 퍼시어스는 점점 더 솔직해지고 있다.

 내 가면이 점점 더 두꺼워지는 것과는 반대로.

 

 조금 앉아 있으니 종업원이 식기를 가져가고 후식을 내왔다.

 “내가 만든 게 더 낫겠네.”

 퍼시어스는 커피에 딸려온 브라우니에 대고 불평을 했다.

 그리고는 은근히 내 쪽을 보았다.

 얼마 전에 그녀가 내게 준 과자를 의식하라는 것 같았다.

 사온 건 줄 알았는데 직접 만든 거였구나.

 그건 몰랐다.

 “그러게. 네가 만들어 준 게 훨씬 맛있었는데.”

 나는 말했다.

 “…그래?”

 퍼시어스는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빵집이라도 차릴 생각인가 싶었다니까.”

 “괜히 호들갑 떨지 마.”

 “진짜야. 전역하면 그걸로 먹고 살아도 되겠어.”

 “…흥.”

 그녀는 커피를 홀짝거렸다.

 “지휘관은…….”

 그녀가 운을 뗐다.

 “지휘관은 전역하면 뭘 할 거야?”

 “어. 음.”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였다.

 나는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를 의식했다.

 “그러게, 피아노 강사라도 해볼까?”

 “피아노? 뜬금없네. 연주해 본 적이나 있는 거야?”

 “응. 고등학생 때까지는 피아노를 했거든.”

 “뭐…? 처음 듣는데.”

 그렇겠지.

 내 과거 같은 건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고, 모항에도 내가 연주할만한 피아노 따윈 없으니.

 “그렇게 안 어울려?”

 나는 퍼시어스의 얼굴을 마주 보며 물었다.

 “어… 그런 건 아닌데… 피아니스트라도 되고 싶었던 거야?”

 “아니. 그냥. 난 남중 남고 나왔거든.”

 “그게 지금 이야기랑 무슨 상관인데?”

 “이러다간 평생 여자랑 만날 일이 없을 거 같아서. 피아노 하면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아질까 싶었지. 그러다 보니 계속하게 되고…”

 “그래서 결과는?”

 “음? 무슨 결과.”

 “아니야… 됐어.”

 퍼시어스는 고개를 저었다.

 ‘결과’라…….

 “별로 재능이 없었거든. 오래 하긴 했는데. 딱히 ‘피아니스트가 아니면 안 돼!’…같은 열정도 없었고.”

 “내가 궁금한 건 그쪽이 아닌데.”

 “그럼?”

 “됐다니까…….”

 퍼시어스는 말끝을 흐렸다.

 아마도 그녀가 궁금한 건 내 여성 편력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걱정할만한 일은 없었다.

 내가 피아노를 배우기로 했던 첫 동기는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여자는 여자였고 피아노는 피아노였다.

 내 피아노 선생님조차 줄곧 남자였다.

 “흐흐.”

 나는 짖궂게 웃었다.

 “왜 웃는데? 기분나쁘게….”

 “내가 왜 군인이 됐겠어?”

 “?”

 퍼시어스는 내 의도를 이해한 듯했다.

 그녀는 금세 원래 표정을 되찾았다.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처음에 모항에 왔을 때는 놀랐지. 놀랐다기보다 당황했어. 이렇게 여자 사람이 많은 부대라니 상상도 못했거든.”

 “…그래서 좋으셨겠어.”

 퍼시어스가 빈정댔다.

 “아니. 오히려 무서웠어.”

 나는 즉각 부정했다.

 “무서웠다고?”

 “너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거든. 애당초 나는 여자라는 생물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어. 그래서 두려웠어. 실수할까 봐. 너희가 날 미워할까 봐.”

 “하지만 지금 너는…”

 “꽤 잘하고 있는 거 같지? 능숙하게.”

 퍼시어스는 재수없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냥 씩 웃고 말았다.

 “너무 오래 앉아 있었네. 집에 가자. 바래다 줄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걸었다.

 우리는 나란히 걸었고, 둘 다 두 손이 비어 있었다.

 나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퍼시어스의 손은 자기 옷소매를 붙잡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어쩔 줄을 몰라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까지 걸어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손을 잡은 적이 없었다.

 나는 그녀한테 닿은 적조차 없었다.

 그녀가 서류를 건네줄 때조차 나는 그녀와 손이 닿는 건 피하려고 했다.

 그게 지휘관으로서 옳은 일이었으니까.

 난 그것 외에 그녀를 대해야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지휘관.”

 별안간 퍼시어스가 나를 불렀다.

 “응?”

 “…지휘관은 쉬는 날 뭐해? 아니…”

 그녀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오늘 밤에는 뭐해?”

 그녀가 물었다.

 그리고 그곳에 퍼시어스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마치 잡아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사랑스러웠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녀의 손을 마주 잡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랬다.

 하지만 기시감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첫 번째 사랑의 기시감이었다.

 다른 사람, 같은 장면.

 퍼시어스는 하나부터 열까지 첫사랑과는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퍼시어스는 운명처럼 그 자리에 서서 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첫 번째의 나였다면 퍼시어스를 거부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너를 정말 좋아한다고.

 남은 모든 시간을 너와 보내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이건 두 번째 사랑이다.

 “운동하고, 씻고, 어제 보던 책을 좀 읽다가 잘 거야. 주말에는 약속이 있어.”

 나는 말했다.

 “…….”

 떨리던 퍼시어스의 손이 힘을 잃고 허공에 떨어졌다.

 “…그러셔.”

 그녀는 나직히 말했다.

 

***

 

 나는 그녀를 기숙사까지 바래다주고 다른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사실 나는 집에서 운동 같은 건 좀처럼 하지 않는다.

 책도 잘 읽지 않는다.

 누워서 뒹구는 걸 좋아하고, 주말에는 별일이 없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무기력한 인간이다.

 사관이 된 것도,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한 것도,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나는 되는 대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얕보이기 싫어서 가면을 썼다.

 모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여자들이 잔뜩 있는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예의바른 지휘관’을 연기했다.

 하급자에게도 정중하게 대하는 지휘관으로서의 나는 쉽게 호감을 샀다.

 모두가 나를 성실한 사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사랑도 그런 나에게 이끌려 다가왔다.

 가짜 꽃에 날아든 나비처럼.

 

 당연하게도 거짓말로 만든 관계는 손쉽게 파멸을 맞았다.

 생각보다 나는 거짓말에 서툴었고, 손쉽게 내 본성을 드러냈다.

 열등감, 소유욕, 질척질척하고 더러운 본성.

 사랑을 하는 나는 집착스럽지만, 집착할 만큼의 배짱도 끈기도 없는 존재였다.

 첫 번째 사랑이 끝난 뒤에 내 가면은 더 단단해졌다.

 하지만 두 번째 사랑 앞에서도 나는 계속 가면을 쓸 수 있을까?

 나는 확신이 없었다.

 내면의 본성을 내버려둔 채로 가면만을 사랑받는 것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내 본성을 깨달은 퍼시어스가 나를 떠나버리는 그 아픔을 견딜 자신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두려웠다.

 모항에 처음 왔던 그 날처럼.

 퍼시어스가 날 미워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녀마저 내 본성을 마주하고 날 증오하게 되면,

 그때는 정말로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걷다가 걷다가 해변까지 왔다.

 달빛이 수면에 닿아 문드러졌다.

 사실 이곳에서는 어느 쪽으로 걸으나 바다뿐이다.

 모항은 섬에 위치하고 있으니까.

 도망갈 구석이 없다.

 나는 해변의 모래를 걷어찼다.

 모래는 어디로도 가지 않고, 파묻힌 내 발등 위에 소복이 쌓였다.

 

 그때 나의 뒤에서 모래를 밟는 소리가 다가왔다.

 “…운동한다며?”

 나는 놀랐다.

 퍼시어스였다.

 “게으른 바다표범처럼 월광욕이라도 하는 거야?”

 “…퍼시어스. 여긴 또 어쩐 일이야?”

 나는 뒤돌아보며 웃었다.

 그녀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런 식으로 애써 웃지 마.”

 그녀는 말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녀는 더 심각해보였다.

 그녀의 눈에 비친 이 해변은 마치 세상의 끝이라도 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체했다.

 “무슨 뜻이야?”

 나는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늘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했어. 하지만 이제는 평범하게 말할 거야. 못 봐주겠어… 그런 거.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렇게 어쩐 일이냐면서 억지로 웃는 거. 하지 마. 보고 싶지 않아.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주는 거. 하지 마. 듣고 싶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면 평생 미워할거니까.”

 그녀가 나의 말을 잘라냈다.

 계속 가면을 쓰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화면이 파래진 컴퓨터처럼 나는 멈춰버렸다.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더라.

 나는 머릿속을 샅샅이 뒤졌지만, 해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멈춰버린 나에게 그녀는 걸어왔다.

 모래 때문인지 그녀의 걸음은 조금 비척거렸다.

 그녀는 걸어와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왜 거짓말했어?”

 그녀가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나는 되물었다.

 “지휘관은… 아니, 너는 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드러나니까.”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형편없어. 다른 애들은 속을지도 모르지만, 나한테는 안 돼.”

 그녀는 말했다.

 나는 그녀를 떼어내려고 했다.

 나는 여전히 그녀를 거부하고 싶었다.

 부정하고 싶었다.

 어차피 내가 진심을 말하면 날 떠나버릴 거면서.

 나 같은 건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하지만 그녀는 더 세게 나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뭐가 그렇게 두렵냐고.

 나는 이미 알고 있는 결말에 손을 데는 것이 두려웠다.

 이건 두 번째 사랑이니까.

 첫 번째와 같은 결말은 맞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운명이란, 피할 수 없기에 운명이다.

 두 번째 사랑 앞에서 가면은 여지없이 바스라진다.

 

 “…좋아해.”

 그게 퍼시어스의 말이었는지,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이제 상관없었다.

 나는 이때 와서야 겨우 깨달았다.

 아마 이것이 두 번째가 아니더라도,

 이 순간이 몇 번이고 반복되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내 허리를 감싼 그녀의 손.

 나는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풀어 마주잡았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아끈다.

 우리 둘 다 그 결말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그녀는 우리를 결말까지 데리고 갈 것이다.

 이것은 그녀와의 첫 번째 사랑이기에.

 



-퍼시어스와 두 번째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