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덴덴아, 나 다른 함순이랑 서약해도 돼?".txt


-띠,띠,띠,띠, 띠리릭!


먼저 지휘관실의 문을 박차고 나온 힌덴부르크는 집에 오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아...바보같아..."


자신은 한달 전부터 오늘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작 아침에 본 지휘관의 모습을 보니 지휘관은 기억도 못하는 듯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로부터 돌아온 것은 일부다처제를 허락해달라는 어이없는 요구였다.


"역시 기억 못할 줄 알았어...나쁜 계약자..."


기억을 못하는 게 아니고서야 그런 어이없는 요구를 할리가 없었으니까

자신은 그것도 모르고 오늘을 위해 지휘관이 평소에 마시고 싶어했던, 한정판 중앵산 사케까지 사다놨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지휘관에 대한 짜증과 원망만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정확히 100일 전 지휘관이 자신의 손에 끼워준 서약 반지였다.


"..."


순간적으로 반지를 빼버릴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걸 빼면 지휘관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 같아 싫었다.


결국 빼지 못한 반지만 만지작 거리며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을 곰곰히 생각해봤다.


솔직히 이번에 일부다처제 이야기를 꺼내기 전만 해도 지휘관은 다른 함선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고, 혹시 다른 함선과 단둘이 만날 것 같은 때는 매번 자신을 동행하거나 영상통화를 늘 할 정도로 일편단심이었다.


그랬던 그였기에 이번에 말한 일부다처제 건도 어쩔 수 없이 꺼냈다는 생각이 들어 허락해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허락해줘도 어차피 자신은 지휘관에게 있어 첫번째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그건 너무 많았잖아 계약자..."


하지만 그 숫자를 듣자 도저히 용납이 안되었다.


'1,2명도 아니고 10명이라니, 아무리 자신이 첫번째라도 지휘관을 10명하고 나눠 갖긴 싫어'


결국 못 참고 지휘관실을 박차고 나왔지만, 지금 와서는 평소에도 힌덴부르크의 말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주었던 지휘관이기에 차분히 계약자를 설득하는게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지휘관이 오면 잘 말해보는 수 밖에


"검색...사케 안주 추천..." 


그렇게 되뇌이며 힌덴부르크는 사케에 어울리는 안주를 만들 준비를 했다.


***


힌덴부르크가 나간 후, 지휘관은 재빨리 지휘관실을 정리하고 퇴근 준비를 했다.


'나는 도대체 뭔 짓을 한거냐??'


평소에도 하면 안되는 말을 하필이면 결혼 100일에 해버리다니 진짜 정신이 나간건가??

그렇게 혼자서 자책하며, 나는 지휘관실을 나와 아카시에게로 향했다.



"허억...아카시... 물건 도착했어??"



거의 달리다시피 도착한 상점에는 다행히 아카시가 남아있었고, 퇴근 준비를 하던 아카시는 달려오느라 엉망이 된 지휘관의 모습에 놀라 물었다.


"무..무슨 물건 말하는 거냥??"


"나 결혼식 때 예약해 둔 물건 있잖아?!"


다급해 보이는 지휘관의 모습에 재빨리 생각을 해 본 아카시는 드디어 생각났다는 듯 양손을 부딪치며 말했다.


"결혼식 날 지휘관이 비상금을 탈탈 털어서 산 100일 선물 말하는 거냥?"

"그래, 그거!!!"

"처음에는 100일 선물을 결혼식 날부터 준비하길래 참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 까먹-"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지휘관을 보며 아카시는 금고 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물건을 꺼내 지휘관에게 건네며 가볍게 말을-


"고맙다, 아카시!!! 내가 좀 바빠서, 먼저 가볼게!!"


걸려고 했지만 들려야 할 곳이 많았던 지휘관은 물건만 확인하고 그대로 뛰어나갔다.


"-었냥...?"


그의 뒷모습을 보던 아카시는 혼자 중얼거렸다.


"저렇게 다급한 걸 보니, 여간 잘못한 게 아닌 것 같다냥"


그러면서 새로운 상품으로 도게자 세트를 준비하는 아카시였다.


***


안주를 다 만든 힌덴부르크는 쇼파에 자신의 무릎을 끌어 안은 체 시계를 바라봤다.

평소보다 많이 늦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늦은 시간, 슬슬 만들었던 안주들이 식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계약자...늦네..."


자신이 먼저 뛰쳐 나왔다지만, 그날 업무는 거의 끝난 상태였다. 

대충 마무리하고 온다고 해도 못해도 30분 전에는 도착했을 시간인데...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는 자신이 나오기 전에 소리친 말이 생각났다.


'그래, 어디 한 번 계약자 마음대로 다 결혼하고 다녀봐!!'


지휘관이 설마 그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힌덴부르크를 엄습했다. 


"아무리 홧김이었어도 그런 말은 하지 말걸 그랬나??"


힌덴부르크는 자신의 무릎을 더욱 꽉 끌어안으며, 불안감을 쫓아내고자 중얼거렸다.  


"계약자...아니지...?-"


그리고 그 순간-


-띠,띠,띠,띠, 띠리릭!


힌덴부르크가 그토록 기다리던 도어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힌덴부르크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은 체 현관으로 가다가 이내 싸운 것을 생각하고 아차 싶어 표정을 굳혔다.


웃으면서 마중 나가면 마치 자신이 지휘관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것 같지 않은가?


지휘관이 제대로 반성하고 사과할 때까지는 최소한 무표정을 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지휘관을 마주한 순간


"계..계약자...이게 대체..."


다짐이 무색하게 현관에서 나타난 지휘관의 모습에 그만 무표정을 풀어버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게 얼굴은 마치 한참을 달리다 온 사람처럼 숨도 고르지 못하고 땀범벅이면서, 손에 있는 장미와 케이크는 망가지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괜찮게 보이려고 집 앞에서 대충 정리한 것처럼 보이는 머리까지... 태도는 합격이었다.


그 모습에 지휘관의 손에 들려있던 장미와 케이크를 넘겨받자, 


"덴덴아, 아까는 내가 잘못했다... 아무리 말이라도 그런 망언은 하는 게 아닌데, 정말 널 볼 면목이 없다. 미안하다."


지휘관은 힌덴부르크에게 고개를 숙여가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자신이 힌덴부르크였다면 그 자리에서 이혼하고도 남았을 텐데...그럼에도 자신에게 기회를 준 그녀에게 참으로 고맙기도 하고, 그 이상으로도 미안하기도 했다.  


"일단 들어와, 들어와서 마저 얘기하자."


힌덴부르크 역시 지휘관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일단 지휘관을 지켜보기로 했다.


***  


덴덴이의 허락을 받고 집에 들어오자 마자 내 눈에 들어온 건-


내가 그토록 먹고 싶다고 했던 중앵산 사케와 만든 지 얼마 안된 것으로 보이는 오코노미야끼였다.

자신과 싸웠음에도 자신을 위해 준비해뒀던 사케와 그 안주까지 만들어준 힌덴부르크를 생각하니, 고마움과 죄책감이 가슴을 조여왔다.


진짜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눈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 울고 싶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녀였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던 중


"계약자, 그래서 이것들은 뭐야?"


그녀가 나를 불렀고 나는 황급히 눈물을 훔치며, 그녀를 돌아봤다.


***


솔직히 놀랐다.


지휘관의 설명을 듣고 나서 든 가장 솔직한 생각이었다.


그가 준비한 장미는, 철혈의 기술력을 사용하여 만들어낸 시들지 않는 특수 장미였고, 케이크 역시 이글 유니온 최고의 빵집에서 만들어지는 케이크였다.


특히 해당 빵집은 1년에 케이크를 300개만 주문받아 예약이 매우 어려운 걸로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그의 정성에 놀라고 있자,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혼 전에 최고의 100일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미리 예약해두긴 했는데...나 때문에 안 좋은 기억만 남긴 것 같아서 미안해..."


그렇게 말하는 지휘관의 목소리는 약간의 물기와 자기 혐오가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며 힌덴부르크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휘관이 잘못을 하긴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죄책감에 시달려 자기혐오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에초에 진심으로 사과하면 그래도 사과는 받아주려고 했던 그녀였기에, 자신을 위해 이렇게 까지 열심히 준비 해준 지휘관을 용서해줄 수 밖에 없었다.


'저 모습이면 차마 화를 낼 수도 없고'

"하아..."


결국 힌덴부르크는 고개를 떨군 체 서있는 지휘관에게 다가가 지휘관을 안아주었다.


-움찔!


자신이 끌어안자 순간적으로 몸을 떤 지휘관.

그런 그를 품안에서 느끼며 힌덴부르크는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계약자, 그대의 정성을 보아 이번 한번 만 용서해주도록 하지."


-꽈악! 


"흐윽...진짜..진짜 미안...해...또 고맙고...사랑해"

"그래,그래 나도 사랑해"


그제서야 자신의 품 안에서 울음을 터뜨린 지휘관을 토닥여주며, 힌덴부르크와 지휘관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













"계약자, 그대가 너무 오래 우는 바람에 오코노미야끼가 다 식어 버렸잖아?"


"미안해...그래도 엄청 맛있어 덴덴아!!!" 


"하아...오늘 평생 살면서 들어야 할 미안하다는 말은 다들은 것 같네"


한바탕 울음바다가 끝난 후 지휘관과 함께 오코노미야끼에 사케를 곁들여 먹으며 잡담을 하고 있자니 어느덧 알딸딸한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슬슬 케이크도 좀 구경하고 싶은데 괜찮지?"


더 취하기 전에 슬슬 그가 준비해온 케이크도 좀 구경해보고 싶었던 힌덴부르크는 식탁 한쪽에 놓여져 있던 케이크 상자를 가져왔고 그녀가 케이크를 완전히 다 꺼내자 보인 것은-


-Du bist das wichtigste in meinem leben, hindenburg

(힌덴부르크, 당신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라고 새겨진 케이크의 모습이었다.


이에 넋을 놓고 케이크를 처다보고 있자 지휘관은 어느덧 자신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마치 자신에게 서약 반지를 건네었던 때처럼


하지만 그때와 달리 그의 손에 있던 것은 반지가 아닌 목걸이였다.


자신의 머리카락 색과 같은 색의 커다란 레드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

딱 봐도 케이크와 장미의 몇 배는 비싸보이는 목걸이였다.


너무 놀라 말도 못하고, 목걸이와 지휘관을 몇차례 번갈아보고 있을 무렵.

지휘관은 천천히 목걸이의 보석을 뒤집으며 말했다. 


-Du bist das wichtigste in meinem leben, hindenburg


케이크와 마찬가지로 보석 뒤에 새겨진 문구.

지휘관은 그 문구를 힌덴부르크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Du bist das wichtigsta in meinem leban, hindenburg"


완벽하지는 않지만 꽤 많이 연습한 듯한 발음.

본인의 실수를 드디어 알아차린 듯 붉어진 귀. 

술기운에 약간 달아오른 듯한 얼굴.

긴장해서 떨리는 손끝과 눈동자.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푸훗"


그 모든 것이 힌덴부르크를 웃게 했다. 


"Du bist das wichtigste in meinem leben, 계약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힌덴부르크를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지게 했다.


***


신나서 쓰다보니 분량 조절에 실패해버렸네요

비온뒤에 땅 굳는다라는 속담처럼, 불화가 생긴 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는데, 잘 전달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고, 추후에 덴덴이와 지휘관의 질펀한 순애물이나 일부다처제를 안하기로 한 지휘관과 힌덴이 모항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둘 중에 하나를 후일담으로 쓰게 될 것 같네요. 투표 올려둘 테니 많이 참여해주세요!!